《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1. 의례적 경험의 ”들썩임(effervescence)“과 사진(絲診)

살아 움직인다. 춤추듯 한다.
너울거리는 흰옷, 검은 머리
자맥질하듯, 헤엄치듯

소용돌이, 물속이다.
매듭을 푸는 듯, 매는 듯
속박인 듯, 풀림인 듯
매듭의 춤. 매듭이 타래인 듯 해초를 감아들고
아직 알 수 없는 인간의 의지, 향방, 동작. 움직임이 위태롭다.
여기에 오기까지
소창 매듭은 풀어진 명실(장수를 기원하는 무명실)처럼, 춤사위처럼 움직였다.
“들썩임(effervescence)”이라는 의례적 경험
기포를 만들고
해초를 흔든다.
생기의 환호

포말, 물방울, 부유물
들숨과 날숨,
물속에서 오래 숨을 견딜 수 있는 여자들
그러나 한 여자의 절규가 있다.

흰옷을 입은 다른 여자들의 애탄이 이어진다. 잠재된 무의식의 문(the subliminal door)이 열리고, “지표로서의 신들림. 신령의 현전을 드러내는 목소리와 몸짓의 변화, 피땀 흘리기, 황홀경, 마비 또는 신병 등과 같은 신들림 현상에 수반되는 극적 표정”이 나타난다. 급진적 경험과 몰입 체험의 경계. 회심(回心), 마음이 돌아선다.

’12분의 시간 동안 매듭은 맺히고 꼬이고 풀어지며, 인간과 해초가, 물과 매듭이 정동의 줄다리기를 한다. 매듭과 타래들이 붉은색의 해초군과 엮일 때, 붉은 피색의 해초 적색이 흰색 소창에 배어난다. 이렇게 매듭이 해초에 가닿을 때, 사진(絲診), 실의 진맥이 이루어진다. 제주의 역사가 ‘이어도(바다 너머 섬)’(2022–2024) 연작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잔해〉(2024)에서 보이는 바다에 매장되던 무기들.’

문화 인류학자 김성례는 제주도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도는 통곡의 섬, 일만 팔천 신전의 섬, 또는 영웅 전설의 섬이라 일컬어지는데, 한마디로 애수와 비극의 분위기로 표현된다. 그리고 심방이라 불리는 제주 샤먼의 영험은 이런 분위기를 얼마나 잘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역사적 실재로 존재한다. 과거 제주도는 군사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먼 바다 위에서 접하고 있는 최남단 변방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정객의 망명지거나 모반자의 유배지였다.

근세에는 200년 동안 출륙 금지라는 정치적, 문화적 억압을 감내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조선조 말기에는 잦은 민란으로 관민의 대결이 극심했다. 가깝게는 1948년 4월 3일에 발단하여 6.25 사변 이후까지 계속되면서 섬 전체를 초토화하고 큰 인명 손실을 가져왔던 4.3의 음영이 아직도 걷히고 있지 않다. 삼백여 마을 당신과 집안 조상신의 본풀이와 비판조의 제주 무가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폭력을 또는 폭력을 기억하는 신화 텍스트 (…)”

4.3 사건 이후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심방의 구슬픈 무가 속에서 〈잔해〉 속 예의 사진(絲診)이 수행된다, 실 진맥, 매듭이 너울거리며 드러내는 제주의 국가 폭력, 상흔의 매듭들, 그 매듭을 만드는 〈할망〉(2023), 〈잔해〉의 아카이브 영상에서 보이던 전쟁 무기, 그 무기를 매듭으로 감싸 바다 속으로 떨구는 제의의 의미를 위 설명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다가 검은 역사가 된 곳에 바다와 동체인 해녀들의 움직임, 동작, 물에 휘날리는, 휘갈기는 머리카락과 매듭들.

물속 부유물들
기포 속 정념의 표현
열락, 신명, 신들림,
무엇을 드리는 것인가?
제주 바다가 제물로 응당 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의에서 하강은 때로 고난, 몰락,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과 땅 사이의 일이 아니고
바닷속, 수중에서라면 다른 의미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제인 진 카이젠의 작업은 그 무대를 바닷속으로 옮긴다. 카메라 장치가 동반된다. 수중 촬영을 위한 장비들. 플라톤의 동굴에서 시작된 영화 이론은 물속을 알지 못한다. 바다 밑 수중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빙 이미지(moving image)에 관한 개념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실행, 수행을 ‘에코그래피(Eco/Echo-graphy)’로 명명해 보기로 한다. 에코그래피는 생태를 담는 무빙 이미지, 사진(絲診)과 같은 생태계(ecology)의 진단, 이 작업이 일으킬 공명(echo) 등을 함의한다.

이 에코그래피에서 카메라, 조명기, 수중 장비 등이 동원된 테크노스피어(technosphere)가 바다 안에 일시에 만들어진다. 제의의 상징들이 배치된다. 바다의 생명들이 활개를 친다. 해녀들의 수행은 때때로 다이버들이 겪는 황홀경과 다른 상태, 애도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에코그래피 속에서 자연광과 인공광이 서로를 간섭한다, 빛의 간섭, 회절 속에서 수중 장면들의 미장센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공명이 ‘에코그래피’다.

다시 〈제물〉(2023)

여자, 해초에 감긴 매듭들로 헤엄쳐 간다.
소창 매듭과 해초, 기포, 물질들이 마치 무당의 춤사위 같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물질들이 비물질적 영적 기운과 중첩되는 듯한 감각의 바다. 바다의 감각.

“처음 고비에서의 몸놀림은 대체로 직선을 긋는다. 앞뒤로 또는 좌우로 몸을 움직인다. 그러는 중에 동작에 힘이 실리고 템포가 빨라지면서 동그라미를 긋게 된다. 온몸이 뱅글뱅글 돌면서 원을 그리게 된다. 그 원이 차츰 좁아지다가 마침내 원의 중심에서 돌던 맴돌이는 소용돌이가 된다.”

이러한 맴돌이, 소용돌이, 윤무 등 무당의 춤사위의 특징들이 실제 무당이 부재함에도 바닷물의 흐름에 의해 강조된다. 사람과 매듭과 해초, 바다 생물들이 급진적 경험과 몰입 체험의 경계를 만든다. 제의가, 풀이가 생태 운동에 참여하는 해녀들에 의해 수중에서 펼쳐지면서 기존 제의와의 차이가 만들어진다. 제의는 전통적이고 정전(canon)적 형식을 갖는 반면, 〈제물〉과 〈이 질서의 장례〉(2022) 그리고 〈잔해〉는 제의의 정전, 양식, 아우라를 유지하면서도, 탈제의적 과정을 다시 통과하며 강건한 긴장을 생산한다.

모체(matrix) 기호를 벗어나 기호 이탈(de-sign)을 감행하면서 새 기호를 궁리하고, 그리고 다시 모체로 반역의 몸짓, 언어로의 귀환, 새로운 장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알려진 것과 미지에 대한 것이 자리를 바꾸어 가며 펼쳐진다. 이 실행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촬영, 작업이 일어나는 제주 공동체 구성원들과 작가와의 협업은 여기서 중요한 구성 조건이다.

제인 진 카이젠은 전작 〈이별의 공동체〉(2019)에서 작가의 발화 위치, 자기 지시성을 바리데기(공주) 신화에 놓는다. “무한한 ‘사이’인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여자’는 죽음의 강을 건네주는” 바리공주다. 이 시원(始源)의 장, 원초경(primal scene)을 치환하는 제인 진 카이젠에게 그 첫 장은 자전적으로 보자면 입양이다. 한국에서 덴마크 가정으로 입양되고, 이후 덴마크에 거주하면서 제주도에 돌아와 리서치와 장기간의 컬래버레이션, 학제적 실천을 번역하고, 수행성 이론에 기반해, 서사 실험 영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그리고 텍스트라는 매체를 아우르며 시도하고 있다. 역사의 주름을 펴는 기술로서의 미디어 설치 작업, 파편들의 프리즘의 다중채널과 단채널 작업을 한다.

‘이어도(바다 너머 섬)’에서는 할망, 해녀, 심방, 활동가들, 어린이, 물질, 해조류, 갑각류, 연체동물 등이 〈잔해〉, 〈제물〉, 〈이 질서의 장례〉, 〈할망〉, 〈수호자들〉(2024), 〈어귀〉(2024), 〈심〉(2024)의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2. 각설하고, 동티를 설하다

초기 예술 작품들이 마술적 또는 종교적 의식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고, 예술 작품의 아우라와 관련된 존재는 결코 그 제의적 기능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정한’ 예술 작품의 고유한 가치가 그 원래의 사용 가치가 있던 제의에 기초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제의를 다루는 무빙 이미지, 시네마, 특히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시청각적 에스노그래피(ethnography)로 번역하는 것을 넘어선, 제인 진 카이젠의〈이어도(바다 너머 섬)〉의 정치, 역사, 환경, 생태를 아우르는 실천은 주목할 만하다.

‘이어도(바다 너머 섬)’이 의례를 작동시키는 방식은, 사람들이 ‘동티’라고 부르는 것을 대담하게 동티 설화로 전복시키는 것이다. 동티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건드려 해를 입는 것인데, ”동티 설화는 여기서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이질적이고 불통하는 관계를 동질적이고 소통할 수 있는 관계로 바꾸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 동티를 동티 설화로 바꾸어 내면서 〈이 질서의 장례〉는 통상적으로 남자들에게만 허용된 운구(運柩)를, 세대와 계층, 젠더를 가로질러 환경 활동가, 예술가, 디아스포라, 퀴어, 트랜스 행위자들로 바꾸어 수행한다.

사진이나 초상화 영정은 검은 거울로 대체된다. 동티라는 공포의 담론으로 재생산되는 위계, 젠더를 가격(revolt)하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무빙 이미지를 통한 이야기하기(fabulation)를 이루어 낸다. 1980년대 민중 미술, 거리 시위를 환기시키면서도, 장례 의식, 카니발적 수행에서의 젠더 역할의 뒤집기, 우회하기를 통해 다른 의미의 영역을 만든다. 의례의 형식, 자기 지시적 메시지, 수행성의 과정을 정교하게 재연하는 제의 과정의 반복 안에서 동티 설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 제의 문화의 으뜸인 장례에서 운구는 발인제가 끝난 후 영구를 장지(화장지)까지 운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질서의 장례〉에서 운구와 하관 의식 사이 도깨비가 나타난다. 도깨비들은 장난이 지독한 훼방꾸러기이지만 ‘이 질서의 장례’에 난장을 가져와 질서의 뒤집힘을 가능케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도깨비들이 폐허가 된 리조트의 방과 다른 장소들을, 운구 행렬과 마주치며, 가로막으며, 비켜 가며 돌아다닌다. 긴 지팡이로 두드리기도 한다.

“두두을(豆豆乙), 두두리. ‘두둘’, ‘두들기다’와 관계된 도깨비에게 두들김은 그의 본성과도 같고 또 장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돈 나와라, 와라와라, 뚝딱!’ ‘쌀 나와라, 와라와라. 우당탕!’”

두들김. 이렇게 해서 세 개의 힘이 겨루게 된다. 도깨비의 두들김 난장과 ‘이 질서의 장례’와 기존 질서의 장례 코드, 상복과 운구 용품들. 이 세 세력의 힘과 위세와 반권력이 미장센, 장면을 만들고 그들을 들썩이게 한다.

각설하고, 운구해 온 관을 장지에 하관하는 대신, 운구를 하던 사람들은 관을 내동댕이친다. 이 사태 이전, 타도와 부정, 거부의 구호, 소리가 높았다. 검은 물이 삼켜 버린 것 같은 숏이 이어진 후, 박살 난 관등이 보인다. 이후 상복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관 대신 매듭을 엮는다. 소창 매듭은 ‘이어도(바다 너머 섬)’에서 역사의 악순환과, 자연의 순환, 그것의 얽힘과 풀림, 상처, 내부화 작용을 엮어 내는 생기 있는 물질이다.

매듭은 외부와 내부를 잇기도 하지만 바로 그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만들고, 내부의 외부성이기도 하다. 컴퓨터 시대, 실, 소창, 매듭, 실마리는 프로그래밍의 ‘스레드(thread)’로 치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 안, 제의 촬영이 가지는 자연스럽게 극화된 유동성은 “자연이 어디에서 멈추고 문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정의에 꼭 맞춤인 생태학을 제시한다.


3. 에코그래피, 매듭들

이러한 바다의 유동성과 대비되는 ‘이어도(바다 너머 섬)’의 매듭들은, 심리학부터 무교 연구까지에 있어 중요한 토픽이다. 인간 관계,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R. D. 랭(Laing)은 『매듭들(Knots)』이라는 책에서, 매듭(knots), 얽힘(tangles), 혼란(fankles), 막다름(impasses), 단절(disjunctions), 소용돌이(whirligigs), 묶임(binds)과 같은 심리적 현상으로 표현하면서 시의 형식을 빌어 다룬다. 또 한국의 정서 구조에서 매듭은 이렇게 이해된다. “원한의 맺힘과 풀이에는, 보다 정확하게는 그러한 말에는 끈, 실, 띠 등의 비유법이 작용하고 있다. ‘매듭 고’를 국어사전에서는 “옷고름 따위를 잘 풀려지지 않게 고리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또 매듭은 “묶어 맺은 자리”에 대한 비유법은 원한의 비유법을 넘어서 인생의 비유법에까지 넘나들게 된다.” 이렇게 〈할망〉이 엮어 낸 매듭은 〈제물〉, 〈잔해〉에서 제주와 제주 바다를 사진(絲診), 실로 진맥하여 진단한다. 제주는 한국의 근대사, 현대사의 응축된 증후이자, 생태계다. 국가 폭력,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강정 군사 기지의 해양 생태계 파괴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매듭은 무교를 포함하는 제의에서 신유물론의 유령적 얽힘, 유령론을 왕래할 수 있는 탁월한 물질이다. 앞서 말했듯 매듭이 수중에서 활동할 때 바닷물이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일시적 경계들을 일렁이게 해 그 유동성은 배가 된다. 이러한 매듭의 물길, 우주 속에서 〈제물〉을 수행하는 해녀들, 여성들은 물속에서 어떤 매체로 행동하게 된다.

미디어(media)는 ‘매체(媒體)’로 번역되는데, ‘매(媒)’는 중매, 매파(媒婆), 즉 중매쟁이, 그리고 ‘체(體)’는 주로 몸이나 물질을 뜻한다. 미디어와 한국 번역어 매체는 어느 정도 상응하지만, 매체(媒體)는 비전자전기적 몸과 물질을 가리킬 수 있다. 흥미롭게도 매(媒)의 부수는 여자[女]다. 관련 단어로는 중매쟁이인 매파(媒婆)와 무당인 영매(靈媒)가 있다. 매체는 몸과 물질의 중매로서 무형의 소통, 즉 무당을 연상시킨다. 이것을 실마리 삼아 나아가면 제인 진 카이젠의 작업 ‘이어도(바다 너머 섬)’은 무교, 제의의 장에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세 가지 생태계, 즉 정신적, 사회적, 환경적 생태계를 겹쳐 놓고 순환시킨다.

이때 생태의 정의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인간 주체성까지 확장된다. 가타리는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 위기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확장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며, 모든 생명 시스템 간 차이를 존중하는 새로운 생태 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생태계를 지닌 ‘이어도(바다 너머 섬)’의 “공간 시간 물질화“는 〈어귀〉와 〈심〉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펼쳐진다.

〈어귀〉와 〈심〉은 한편으로는 고대 퇴적층의 갑각류 화석과 다공성 용암으로 기이하고 숭고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이들의 장구한 존재감과, 사운드로 일부 사용되는 뚝딱 음은 아이러니를 생산한다. 두 작품에서 사굴에 깃든 설화 ”제물이 된 처녀와 그를 구해 준 판관에게 내린 붉은 기운의 저주“는, 생명을 움직이는 거대한 여신 설문대 할망에 대한 제주도의 샤머니즘적 시조 신화로 바뀐다.

또한 〈어귀〉와 〈심〉으로 다시 호명된 이 장소들은, 〈잔해〉에서 바다가 쓰레기 매립장인 양 무책임하게 대량의 무기를 버리는 충격적인 장면과 상호 연결되며,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대한 사유를 이끈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던 C. S. 홀링(C. S. Holling)은 작은 규모의 반격, 변화(revolt)와 기억(remember)을 생태학적 회복의 핵심 능력이라고 본다.

〈잔해〉, 〈심〉과 〈어귀〉, 〈제물〉에서 이 작은 규모의 변화와 기억에 관한 생각, 감각이 촉발되며, 자연과 역사가 상호 연결된 제주 바다의 회복 탄력성을 지닌 마을들과 바다는 “짙은 청흑색의 거친 현무암 형성물 틈이 바다 조개의 내부로 들어가는 어귀”로 이어진다. 이에 ‘이어도(바다 너머 섬)’은 ‘기억의 기술(mnemotechnologie)’을 통해 생태, 환경, 역사의 반격을 이루어 내는 변화와 기억을 담는다. 다시 말해, 사진(絲診)의 에코그래피로 발현되고 반향을 만든다.

〈수호자들〉에서 꼭두가 상여 꼭대기에 망자들을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손에 들려진 채 강강술래를 돌 때, 꼭두는 망자의 죽음과 종말만이 아닌, 삶, 내세의 삶, 잠재성, 미래성을 바라보고 지켜낸다. 이 이질적 미래성이 ‘이어도(바다 너머 섬)’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