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범의 작업은 2000년대 초 비디오 매체의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해, 도시와 사회를 구성하는 규칙과 관계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 초기 비디오에서 정면 구도와 원근법, 신체 퍼포먼스, 시간의 가속과 감속을 결합한 방식은 당시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중요한 방법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Parking〉(2001)을 비롯한 초기 작업에서 화면 속 공간과 작가의 신체가 맺는 관계는 비디오를 단순한 기록 매체로 사용하지 않고, 현실의 크기와 거리, 운동을 다시 조직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작업에서도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된다.
작업의 관심사가 확대되면서 도시의 풍경을 조작하던 초기의 시선은 건축과 토목, 지리적 환경, 사회적 규칙으로 이어졌다. 〈Structuralism〉(2008), 〈The Collapse〉(2010), 〈습기에 저항하는 방법〉(2011) 등에서 다뤄진 건축 구조와 환경의 변화는 〈호주 대운하 계획〉으로 연결되며, 개별적인 영상의 상황들이 더 큰 가상의 시스템 안에서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작가는 자신의 이전 작업을 현재의 관심에 따라 다시 분류하는 ‘역산’의 방식을 언급해 왔으며, 최근 작업의 단서가 이미 과거 작업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시기마다 주제를 교체해온 흐름이라기보다 기존의 문제를 다시 불러내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재구성하며 범위를 넓혀온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연속성은 작가의 위치가 직접적인 조작자에서 상황의 설계자와 관찰자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초기에는 화면 밖의 손이 도시의 자동차와 사람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면, 이후 퍼즐 작업과 〈대피소 리허설〉, 〈오른손 연구〉에서는 규칙과 조건을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행동을 기록한다.
작가가 모든 변수를 통제하지 않은 채 우연과 오류가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통제’라는 오래된 관심도 점차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관계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오른손 연구〉에서 작가가 자신이 설계한 상황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를 관조하는 태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박준범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특정한 이미지나 소재보다는 현실을 구성하는 조건을 설정하고, 그 조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하는 태도에 가깝다. 카메라의 원근법과 프레임에서 시작된 실험은 신체, 도시, 건축, 숫자, 언어, 지도와 모형으로 대상을 확장하면서도 계획과 우연, 현실과 가상, 개인과 구조 사이의 관계를 반복해서 다뤄왔다.
이러한 지속성은 비디오의 형식적 실험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을 다루는 실험적 구조로 발전해온 흐름을 형성하며,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을 하나의 긴 궤적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