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영 작가는 인천 백령도에서 미술교사로 임용되어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작가에게 인천은 근무지를 넘어, 홀로 두 아이들과 지냈던 곳이자 삶의 방향이 전환된 장소이다. 작가에게 백령도에서의 시간은 자연의 압도감과 고립감이 공존했던 경험으로 깊이 남아 있다. 잦은 해무로 섬 밖 이동이 제한되는 환경 속에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을 지속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또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운 경험은 이후 작업과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인천의 섬들은 주변부이자 경계의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삶을 견디게 한 장소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천은 작가의 삶과 작업에서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백령도 근무 이후 연수구로 옮겨와 현재까지 인천에서 생활하고 인천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민진영 작가 © 민진영

민진영 작가의 작품 주제는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존엄, 그리고 연약함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인간의 조건이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한강 작가의 문장은 최근 작가가 가장 많이 되새기고 있는 질문이자 작업의 출발점이다.


민진영, 〈연약함, 위대함 2〉, 2021, 혼합매체, 260 x 260 x 260 cm © 민진영

민진영 작가의 작업은 개인적인 유년의 기억과 상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고백에 머무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이 사회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보편적인 인간의 고통과 맞닿아 있음을 드러내고, 타인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연약함, 위대함’ 시리즈를 비롯해 설치 작품 전반으로 확장되며,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존엄과 연민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진영, 〈연약함, 위대함 1〉, 2014, 레진, 아크릴, 패브릭, 조명, 365 x 146 x 80 cm © 민진영

‘연약함, 위대함’ 시리즈는 연약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온 존재들에 대한 응원이자 찬사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각기 다른 환경과 한계 속에서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내는 보통의 인간들이다. “어떤 씨앗은 비옥한 땅에 떨어지고, 어떤 씨앗은 바위틈에 떨어진다”는 비유처럼, 삶의 출발선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인간은 저마다 다른 조건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작업의 전제로 삼고 있다.

‘연약함, 위대함’ 시리즈는 니체가 말한 ‘초인’ 개념이 중요한 사유의 기반으로 작용했다. 작가가 이해하는 초인은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 주어진 운명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끌어안은 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간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가혹한 조건을 탓하기보다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에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민진영 작가는 ‘연약함, 위대함’ 시리즈를 통해서 이러한 태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를 시도하며, 연약함과 강인함이 결코 대립 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쉽게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오히려 가장 오래 버티고, 가장 느린 걸음이 결국 가장 멀리 나아간다는 역설을 작업 속에 담고자 했다.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불안정한 구조와 긴장 상태는 바로 이러한 인간 조건을 은유한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성공이나 성취의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태도와 의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 그 자체, 포기하지 않고 삶을 지속하는 선택이야말로 위대함의 본질이라는 믿음이 이 작업의 중심에 놓여 있다. ‘연약함, 위대함’은 결국 거대한 담론보다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건네는 헌사의 형식으로 완성되고자 한다.


민진영, 〈녹색계단 2〉, 2013, 혼합매체, 210 x 150 x 170 cm © 민진영

작가는 설치 작품과 설치 공간을 하나의 무한한 캔버스로 인식한다.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선언이 오히려 매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듯, 작품에서 특정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형식은 변화할 수 있지만, 작업에 담고자 하는 질문과 태도는 지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진영 작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가의 사유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작업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작가는 주제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선택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아크릴, 레진, 시멘트, 페브릭, 모터, LED, 영상과 평면 작업에 이르기까지 재료는 언제나 사유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으며, 재료를 먼저 정하기보다 생각이 요구하는 형식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작가의 작업에는 고정된 스타일은 없지만, 모든 결과물에는 세계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제 시선과 태도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과정은 의도된 스타일이기보다 작업이 축적되며 형성된 감각의 흐름에 가깝고, 그 지점에서 작가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입체 설치 작품은 제작과 운송, 보관 등 여러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사유가 실제 공간 속에서 물질과 구조로 구현되는 순간의 성취감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작가는 메시지와 매체에 대한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패하며,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자 한다.


민진영, 〈집을 읽다 1〉, 2009, 스틸, 비닐, 바퀴, 나일론 로프, 280 x 45 x 135 cm © 민진영

‘집을 읽다’ 시리즈는 연약하고 위태로운 집의 이미지를 통해, 특히 불안한 유년기를 경험한 이들의 기억을 상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텐트나 비닐하우스의 형태는 분명 집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한 집이라기보다는 언제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구조에 가깝다.

집은 본래 가장 안전하고 안락하며,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집은 보호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양가적인 집의 속성에 주목한다. 보호와 위협, 안락함과 불안이 동시에 공존하는 장소로서의 집은, 개인의 기억과 정서가 가장 밀도 높게 축적되는 공간이기 때이다.

‘집을 읽다’는 집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보다, 집이라는 공간에 축적된 감정과 기억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 가깝다. 작가는 불완전한 집의 형상 안에서 각자의 기억이 겹쳐지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민진영, 〈Tunnel〉, 2012, 혼합매체, 260 x 260 x 260 cm © 민진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전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매우 독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이 야만적인 구조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받고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지도록 길들여 집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저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연민’입니다. 동정은 눈앞에 드러난 고통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연민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문제처럼 깊이 끌어안고, 그 고통이 발생한 구조와 본질을 함께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연민은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이며,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의지입니다. 저는 이 연민의 힘이 어머니의 모성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호하고, 품고, 대신 짊어지려는 태도는 인간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윤리이자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연민(모성)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이 거친 세계를 견디고 서로를 연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 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작가의 작품과 작업은 연민의 힘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또한 작가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자신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함께 아파하고,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데 있다고 믿는다. 타인의 삶에 마음을 내어주고, 그 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민진영 작가의 작업은 개인적인 유년의 기억과 상처에서 출발했지만, 그 서사가 개인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기를 작가 스스로 바란다. 오히려 그것이 사회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처와 맞닿으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민진영, 〈Between roof and roof〉, 2012, 혼합매체, 25 x 110 x 25 cm © 민진영

민진영 작가는 앞으로도 작가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각자의 역할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삶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험과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축적해 나가며,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작업의 방향이 형성될 것이라 믿는다.

급하게 결과를 설정하기보다는, 삶과 작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 속에서 지속 가능한 창작을 이어가는 것이 향후 작가의 가장 중요한 작업 계획이다. 긴 시간 멀어져 있던 작가의 자리로 돌아온 지금, 그간의 삶이 준 층위를 예술로 풀어내고자 한다.

향후 인천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예술’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천 시민들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인간의 고통과 연약함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고 하며, 전시와 공공적 예술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삶과 맞닿은 예술을 제안하고, 작가로서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시민들과 감각과 경험을 나누는 소통의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