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인종》 전시전경 © 우민아트센터

남씨 이야기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한번 보면 남녀노소 누구든 매료되어 버리고, 흠 없는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들킬까 두려워 떨 정도로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존재. 얼굴에 난 흉터조차 아름다운, 모든 것이 완벽한 남씨. 제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그의 아름다움을 작품 하나에 다 담아낼 수 없었다. 뛰어난 묘사 능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화백 한씨조차 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윤아 작가의 영상작품 〈남씨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씨에 관한 서술이다

우리는 동서양 신화와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이상화된 존재들을 익히 봐왔다. 태양의 신 아폴론, 미의 여신 비너스와 같은 절대적 아름다움을 가진 신화적 존재로부터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황진이와 같은 역사 속 미인들 . . . 또한 완벽한 지략과 용맹을 갖춘 영웅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 잔다르크, 이순신 등등.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적인 미, 완벽함의 상징이자 재현이다. 실제 인물과 전혀 다를 수도 있는 가상의 존재다. 작가는 남씨를 ‘물귀신’이라고 소개한다. 물귀신은 자살한 사람들 개개인의 사연과 구체적인 이유를 모두 삭제하고 편리하게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일반적인 핑계이자 구실이다. 물귀신에게 그러듯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하고 흉측한 일들을 남씨에게 돌린다. 실제로 그 일이 남씨 탓이든 아니든, 진실은 상관없다.

영상작품 〈남씨 이야기〉에서 어느 순간 남씨가 사람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기억조차 희미하게 잊혀지고 만 것처럼, 인간이 세워 놓은 완벽한 아름다움, 절대적 이상 혹은 본질은 일순간 허무하게 무너져 사라져 버리고 마는 공허한 것이기도 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한 시대의 이상, 혹은 미의 이념도 역사적 전환과 함께 변화하고 막을 내리듯.

그렇다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변치 않는 완전한 이상일까? 아니면 부족함 많은 현실일까? 김윤아 작가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실존주의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전례없는 주장으로 이상과 본질만을 추구해왔던 이전의 서구 근대철학에 반기를 들고 삶 그 자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상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난 뒤에도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곳은 현실 세계, 처절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이상이 없다면 우리는 불완전한 현실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과 현실의 긴장과 변주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꿈과 소망, 절망과 분노, 행복과 비극, 미추와 같은 삶의 본모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남씨 이야기〉 본편 마지막 부분에서 나이 든 화백 한씨는 밤거리의 조잡한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야경이 아름답게 느껴진 순간 몸서리치며 “아니야, 이토록 추한 것이 아름다울 리가”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비빈다.

이상적인 미를 추앙하던 그가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지만 불완전한 현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남씨 이야기〉에서 김윤아 작가는 작업의 화두 중 하나인 ‘현실 속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삶’과 ‘완전하고 보편적인 이상’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변치않는 이상,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인 변화무쌍한 실존적 삶의 현실을 대비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남씨 이야기〉 영상에서 자막으로 전개되는 인물들의 삶은 그것을 읽으며 따라가기조차 숨 가쁠 정도로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시련으로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아마도 물귀신 남씨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복 저고리는,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똑같다. 검푸른 물 안에서 옷고름을 펄럭이며 어렵사리 위로 떠올랐다가는 이내 아래로 가라앉기를 계속 반복하며 러닝타임 18분 50초 동안 한결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시 개막과 함께 전시장에서 계속 상영되는 〈남씨 이야기〉 본편 외에 본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인 김양, 노부부, 청추댁의 개별적인 삶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외전 원고 3편을 전시기간 동안 한 편씩 순차적으로 개봉하는 흥미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이는 광각, 망원, 줌 렌즈로 바꿔가며 인물들 삶 속 깊숙이 시야를 좁혀 들어 갔다가 다시 미시, 거시 관로 관점을 변화시키면서 인간 실존의 구체성을 강조하고 실제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거시적 미시적 시점 변화, 전체와 개별성이라는 모티프는 〈우리 모두〉라는 텐트 설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무색인종》 전시전경 © 우민아트센터

우리 모두

어두운 전시장 안, 텐트 여섯 동이 서 있다. 인디언 텐트 형태지만 그냥 텐트라고만 한다면 그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마주한 순간의 놀라움과 인상적인 감동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붉은 체크무늬 남방, 스트라이프 티셔츠, 물빠진 청바지, 베이지 스웨터, 검정레이스, 분홍실크블라우스, 카키색 작업복, 땡땡이 잠옷,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옷 조각들을 세탁해 염색한 후 직접 이어 붙여 만들어낸 거대한 텐트.

이는 김윤아 작가가 오래전부터 천착해왔던 헌옷 매체 작업의 또 다른 확장이다. 실로 다양한 성별, 연령, 직종의 사람들이 입었을 법한 헌옷들이 재봉질되어 함께 엮인 채 우리 앞에 압도적인 크기로 든든하게 서 있다. 

종종 우리는 얼굴이 아닌 옷으로 그 사람을 알아볼 만큼, 옷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입었던 사람과 하나가 된다. 옷조각들을 통해 옷 주인들이 이곳으로 소환된다. 헌옷 조각들이 이어진 거대한 텐트는 마치 옷 주인이었을 사람들이 함께 팔을 걸고 몸을 포개고 텐트 안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 그것은 차별없는 연대, 공동체,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 가는 소우주의 은유다. 작품 제목인 〈우리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김윤아 작가는 2024년 올 한해 엄청난 양의 헌 옷을 자르고 재봉틀로 박아 이어 붙여 텐트 여섯 동을 완성했다. 작가가 여러 번이나 손에 부상을 입고 밤새 눈을 혹사해 가며 필사적으로 완성해 낸 것은 단순한 텐트 여섯 동이 아니라, 지켜내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몇 달 전 미국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흉내 내며 던졌던 ‘너희들이 코코넛 나무에서 방금 떨어진 것 같니?’라는 말이 급속도로 호응을 얻으면서 후보의 영향력을 높이고 그를 지지하는 대표적 밈(meme)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모든 일에는 맥락이 있으며,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공동체와 연대를 강조하는 말이다. 이 발언에 대한 예상치 않았던 큰 호응은 공동체와 연대에 대한 갈망을 깨닫게 한다. 

텐트 안에서 불빛과 함께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소리, 코코는 소리와 인기척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사막 위 오아시스, 전장의 야전 텐트, 어두운 밤길 불 켜진 성당 같다. 텐트에서 나오는 빛과 소리는 사람의 온기, 희망과 기대,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을 환기시킨다.

텐트가 뿜어내는 붉은색과 푸른색 빛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따뜻하고 성스럽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얽혀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 세상, 흠 있고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소우주들로 구성된 현실 세계이며, 화백 한씨가 봤던 도시의 네온사인 밤 풍경이다.

청년, 어르신, 예술가들은 각각의 텐트 안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관람자들은 텐트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텐트 안에, 또 텐트 밖에 존재한다. 본편과 외전으로 이루어진 〈남씨 이야기〉와 같은 구조다. 본편과 외전, 거시와 미시 세계. 텐트라는 소행성들과 그것이 모인 좀 더 큰 우주. 


《무색인종》 전시전경 © 우민아트센터

무색인종

전시 제목인 ‘무색인종’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통상 백인 이외의 모든 인종을 ‘유색인종’(colored people)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인은 ‘white’이지 ‘무색’(colorless)이 아니다. 백인은 색이 없는 중립적 기준이자 본질이라는 가정 위에 ‘유색인종’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작가는 ‘무색인종’이라는 단어를 통해 백인 이외 모든 인종을 ‘유색’이라 칭하는 언어 습관 자체에 내재된 백인우월주의를 폭로한다.

작가는 ‘무색인종’(colorless people)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러한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구별짓지 않음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다. ‘무색인종’이라고 하는 김윤아 작가의 전시 제목은 인종 문제뿐 아니라 남녀, 빈부, 특권과 평범함, 계급 차이 등 모든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대한 언급이다.

〈남씨 이야기〉 본편과 외전의 이야기에는 특히 남녀 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다. 이는 비단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 온 폭력과 억압, 혐오와 배제의 오랜 역사, 그리고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김윤아 작가는 삶과 현실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직접 언급하거나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작품을 통해 우리 현실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인간관계, 공동체, 구별 짓지 않는 연대에 관해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무색인종》 전시전경 © 우민아트센터

모범시민

김윤아 작가는 헌옷을 도자로 소성한 〈모범시민〉이라는 제목의 도자 설치작업을 2017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 오고 있다. 헌 옷과 도자 매체를 융합한 이러한 이색적인 방식은 초기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게 되었고 이제는 김윤아 작가 고유의 작업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헌옷은 그것을 입었던 사람의 냄새, 땀, 그가 있던 환경과 했던 일과 행동 등 그 사람의 구체적인 흔적과 물리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옷주인과 가장 가까운 대상이다. 수거한 여러 헌옷을 도자기 흙물(Porcelain slip)에 적셔 가마에 구워내면 본래의 옷이 가지고 있던 질감과 형태는 도자기에 흔적처럼 남고 옷 그 자체는 가마에서 타서 사라진다. 〈모범시민〉(2017-2024)은  헌옷을 세탁하고 빨래를 개듯 접어 형태를 만든 후, 도자로 소성시킨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에 걸린 옷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첩, 첩산중〉(2024)이라는 헌옷 도자작업을 새롭게 선보인다. 옷을 흙물에 적셔 벽에 걸린 옷과 같은 형태가 되도록 건조시킨 후 구워낸 도자작품이다. 누군가 벗어서 걸어놓은 옷. 주인이 떠난 그 자리, 축 쳐진 옷에서 주인의 존재가 느껴진다.

그의 고단한 하루, 외로움, 남들은 모르는 삶의 이면들 . . . 이 도자작품 여러 피스가 전시장 한 쪽 벽면 전체에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무리지어 살아가는 우리 모습처럼

김윤아 작가 작업을 통해 헌옷들은 도자기로의 물성 변화를 겪으며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 옷을 입었던 사람의 구체적 삶의 역사는 사라지고 흙이 만들어 낸 동일한 질감과 색으로 통일성을 이루며 그것은 오히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역사로 변모한다. 구체적 인간 삶에서 추출된 우리 삶과 인간관계의 보편성. 이제 그것은 그와 그녀의 옷이 아닌 우리 모두의 옷이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이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