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이브(b. 1983)는 평소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환경과 삶의 구축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주로 건물 형태에서 오는 부동성과 건축적 활동을 관찰해왔으며, 생김을 스케치하고 행위의 가변성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평면이면서 입체가 되고, 입체이면서 평면이 되는 매체들(페인팅, 조각, 책, 인쇄물)을 다루고 있다.


곽이브, 〈면대면 시공-건축 프로젝트: 역할〉, 2017, 디지털페인팅, 옵셋인쇄, 11EA, 가변설치 © 곽이브

곽이브는 한국의 아파트와 같은 집합주거와 현대 도시 건축이 지닌 구조와 리듬에 주목하며, 그 안에서 축적되는 시간과 이미지의 생산·복제, 그리고 시스템 속 신체가 형성되는 방식을 탐구해 왔다.
 
그는 일상에서 체감한 정보와 감각을 바탕으로 공간의 테와 틀을 스케치하고, 회화·조각·책·인쇄물 등 평면 매체를 제작한 뒤 이를 전시장 안에서 다시 조합해 하나의 임의적 공간 구조(그리드)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곽이브, 〈면대면2.3.4〉, 2015, 디지털페인팅, 옵셋인쇄, 59.4x84.1(cm), 42x59.4(cm), 29.7x42(cm), 7EA, 가변설치 © 곽이브

이 과정에서 곽이브는 평면 이미지가 어떤 조건과 움직임을 통해 입체적 공간으로 전환되는지를 실험하며, 2차원의 이미지와 사고가 3차원의 물질과 환경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물질과 시간의 차이, 거리와 속도, 규모와 같은 물리적·비물리적 조건들이 중첩되는 가운데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공간을 구축하고,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연결되면서도 분리되어 존재하는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시각화한다.


곽이브, 〈배산임수-곧게〉, 2010, 시멘트, 가변설치 © 곽이브

곽이브의 대표적인 작품 중 2009년부터 시작한 ‘배산임수’ 연작은 아파트 평면도를 임의 기준이 적용된 규모의 시멘트 조각으로 입체화하고 디오라마로 재현하는 작업이다. ‘지탱’, ‘부서지더라도,’ ‘곧게’로 세분화되는 이 작업은, 주변에 비슷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음에도 한 나무에 여러 개의 새집이 밀집된 ‘과잉’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곽이브는 자연 환경 속에서 목격한 ‘과잉’의 모습으로부터 현대 인간 사회에서의 아파트라는 집합주거형태를 발견했다. 그리고 작가는 사람들의 욕망만큼이나 높게 솟아오른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 평면도를 작업의 주요한 틀로 가져와 입체 작업으로 재형상화 하였다.
 
작가는 평면도 전체 외곽 형태를 따라 틀을 세우고 시멘트를 붓는 방법으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면도에 그려진 구조와 상관없이 내부 공간이 생략된 채 그대로 외곽의 형태가 결정된다.
 
내부 공간의 구조가 중요한 기존의 건축 방식과 반대로 이루어지는 곽이브의 작업은, 실재하는 아파트의 형상만을 담으며 높이 솟은 건물에 대한 심상을 더욱 중점적으로 드러낸다. 


곽이브, 〈배산임수-곧게〉, 2010, 시멘트, 가변설치 © 곽이브

또한 작업의 재료인 시멘트는 본래의 성질과 다르게 쓰인다. 다른 물질과 혼합되며 강력한 내구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인 시멘트는 그의 작업에서 오히려 연약하고 섬세하며, 쉽게 손상되는 재료로 다루어진다.
 
곽이브는 작업 과정 중 재료의 상태가 변하는 것을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그 상황에 대응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이를테면, 작업 중 부서진 조각을 다시 붙여서 형상을 유지하게 하였다.
 
작가는 이에 대해 “아파트가 높은 만큼 밀집된 인구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온전하던 형태가 부러지고 다시 원형태로 되는 과정이 있으니까 그 밀집된 형태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의 의지, 심정이 더 강조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곽이브, 〈걸음〉, 2015,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 전시 전경(갤러리 조선, 2015) © 갤러리 조선

나아가, 2015년 개인전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는 건축이라는 공간적 요소를 매개체로 시스템과 환경에 대해 작업해 온 곽이브의 시선을 각기 다른 세 개의 장소에서 더욱 폭넓게 선보였다.
 
먼저, 갤러리 조선에서는 그동안 작가가 탐구해왔던 건축이라는 공간의 생김과 이미지, 그리고 소비의 방식에 관한 조각들을 선보였다. 그중, 지하로 내려가는 전시장 입구의 계단에 설치된 〈걸음〉(2015)은 실제 계단의 크기와 높이를 변형한 조각 작품으로, 관객이 직접 밟으며 지나갈 수 있게 하였다.
 
보폭이 줄어든 구조는 가파른 경사면이 되어 전시 기간 동안 오르내리는 걸음 속에 때가 묻고 닳으면서 조각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때 관객은 폭이 좁은 계단을 내려가며 이제껏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구조와 행위를 신중하게 대하게 된다. 


곽이브, 〈오아시스 #3〉, 2010, 석고, 시멘트, 플라워 폼, 11x23x16cm © 곽이브

꽃꽂이에 쓰이는 플라워 폼 위에 동일한 규격의 석고를 부어 굳힌 조각 〈오아시스 #3〉(2010) 또한 관객의 행위를 개입시키며 완성된다. 이 작업은 작가가 지방의 레지던시에서 지내면서 두 지역을 이동하던 중에, 도시의 구축물과 자연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를 보고 제작한 것이다.
 
본래 형태는 플라워 폼을 조각도로 파내기만 한 것이었지만, 재료의 독특한 촉각성이 불러온 호기심으로 인해 몇몇 관객이 꾹꾹 눌러 자국이 남았다. 작가는 이를 복원하는 대신 그 자리에 석고를 부어 변형된 상태를 기록했다. 도시 구축물과 자연 사이에 인간의 행위가 개입되는 현실처럼 이 또한 당연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곽이브, 〈면대면1〉, 2015, 디지털페인팅, 옵셋인쇄, 59.4x84.1(cm), 42x59.4(cm), 29.7x42(cm), 6EA, 가변설치 © 곽이브

한편, 전시장 안쪽에는 공간 안에 또 다른 가변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픽셀 작업 ‘면대면’(2015-) 연작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스 형태로 조립된 작업은 펴지기도 하고, 입체가 되기도 하며 유동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 작업에서 곽이브는 대량 인쇄 주문을 통해 제작한 출력물을 건물의 유리창, 벽돌처럼 사용하며 전시장의 벽면에 도시의 건축 환경을 그렸다. 먼저, 작가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으로 그린 각 장면의 부분들을 종이 위에 담아 물질화 한 다음, 대량으로 복제 및 인쇄하여 이미지를 입체화 하였다. 
 
이 작업은 이후 전시 성격에 따라 전시장에서 장면을 구현하고 남은 인쇄물을 작업 주변에 두어 관객이 가져다가 활용하거나 그 자리에서 직접 조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그린 장면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개입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곽이브, 〈면대면1〉(세부 이미지), 2015, 디지털페인팅, 옵셋인쇄, 59.4x84.1(cm), 42x59.4(cm), 29.7x42(cm), 6EA, 가변설치 © 곽이브

그리고 전시장 한 편에는 2014년에 제작한 책 『다른 13가지』를 조각적으로 변용하는 세트가 설치되었다. 이 책은 2014년도에 건설 중이던 특정 아파트의 평면 정보를 참고해 만들어진 것으로, 각 세대 수만큼 페이지가 중첩되어 절취할 수 있게 가공되어 있다.
 
이 전시에서는 전시 기간 중 책의 절취선을 뜯어 조각화 하면서 음각되고 생성되는 공간과 그 과정에서의 미묘한 감정을 영상으로 촬영하였다.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 전시 전경(가변크기, 2015) © 곽이브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종로구 원서동의 이노주단에서는 직접 옷을 제작하고 대량생산되는 spa브랜드의 옷과 대조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오늘날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입혀진 스탠다드한 옷의 모양새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의 마지막 파트인 가변공간에서는 반복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업무 환경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불균형에 주목한 작업이 설치되었다. 근무 환경을 시각화한 파티션과 시간 장치, 의자 형태를 탐구한 에스키스 조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리서치 자료가 함께 구성되었다.


《흰머리》 전시 전경(공간형, 2017) © 곽이브

한편, 2017년 개인전 《흰머리》를 통해 곽이브는 사람의 일생 어느 시기에서 개인의 생체적 시간에 따라 맞이하게 되는 ‘정신이 없어진 것’과 ‘머리카락이 흰색이 된 상태’를, 시간을 담아내는 공간-구조인 달력과 함께 시각화하고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은 당시 눈에 띄게 흰머리가 나던 작가 개인의 경험과 2014년 치매를 판정 받은 아버지의 시간을 함께 보며 진행되었다. 그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염색을 하며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병실 공간을 과거 살던 집으로 인식하고 착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머리가 하얗게 되면 시간 뿐 아니라 공간 인식에도 오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흰머리》 전시 전경(공간형, 2017) © 곽이브

이에 작가는 치매라는 병이 표면화 되기 20년 전부터의 시간들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자 20년 전의 과거와 전시가 열리는 시간대의 현재, 그로부터 20년 후의 미래를 담은 44년 6개월의 시간을 담은 〈달력〉(2017)을 제작하고, ‘현재’를 감각할 수 있는 그림 〈날〉(2017)을 그렸다.
 
그는 객관적인 시간의 양을 볼 수 있고, 시간을 담보한 특수한 차원의 공간인 달력을 ‘시간의 공간’으로 연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달력에서 매월 반복하는 숫자와 그 숫자가 위치한 공간을 각각 35개의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날〉을 전시장 벽면에 따라 두른 벽처럼 보이도록 설치하고, 〈달력〉은 전시장에서 손으로 들고 볼 수 있는 크기로 제작해 관객이 벽면의 시간과 대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24》 전시 전경(Hall 1, 2024) © Hall 1

2024년에 열린 곽이브의 최근 개인전 《이사24》는 과거를 살펴 지금을 단장하고 미래의 쓸모를 예측하는 ‘이사’ 행위에서 미술의 순간을 발견하며 시작되었다. 작가는 일상을 세우는 일 전반에 수행되는 ‘그리기‘와 ‘입체화하기‘, ‘이동’과 ‘재배치‘에 주목해 평면을 모조하고, 반복을 거듭하고, 공간을 가늠하며 전시장 벽면을 새로운 구조로 탈바꿈 시켰다.
 
전시장 벽면에는 다세대주택 건물을 상기시키는 벽돌 패턴과 집안의 나무 몰딩 무늬처럼 일상의 건축 환경 속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공간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과거에 제작한 기존 작품들과 신작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사’라는 행위는 새로운 공간을 이룰 요소들과 패턴들을 선택하고 공간에 배치하게 하며, 또 나를 둘러싼 기존의 것들을 정리하고 이동하여 새로운 것들과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건설적인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곽이브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미술 행위와 닮아 있다. 


《이사24》 전시 전경(Hall 1, 2024) © Hall 1

이렇듯 곽이브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시공간과 신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서로 변화해 나가는지 작업을 통해 시각화한다. 이러한 작업은 고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건물이나 건축 환경을 사람 또는 자연의 생애주기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생존해 나간다는 점을 새로이 상기시킨다.
 
즉, 곽이브는 물질과 비물질이 함께 구축하는 세계를 관찰하며, 그 안에서 환경과 서로를 닮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익숙한 연상 체계, 그리고 믿음이 형성되는 구조를 탐구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층위의 풍경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시각화함으로써, 축적된 시간과 개인의 경험이 교차하는 감각을 드러내고자 한다.

"물성과 비물성의 구축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 세계와 서로를 닮아가는 사람(들)의 평범성, 통속적인 연상 체계, 믿음의 구조와 같이 각각의 입장으로 수렴된 입체적 풍경을 기억하고 기록-시각화하여 종합된 시간과 개인을 감각하게 하는, 미술 기본적인 목적으로의 지향점이 있다." (곽이브, 작가 노트)


곽이브 작가 © 곽이브

곽이브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이사24》(Hall 1, 서울, 2024), 《흰머리》(공간형, 서울, 2017) 《면대면 시공-건축 프로젝트: 역할》(취미가, 서울, 2017),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갤러리조선, 이노주단, 공간 가변크기; 서울,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레퍼런셜》(하이트컬렉션, 서울, 2026), 《틸팅그라운드》(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부드럽게 걸어요, 그대 내 꿈 위를 걷고 있기에》(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5), 《RE: 새-새-정글》(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2-2023), 《숏서킷》(취미가, 서울, 2021), 《선셋 밸리 빌리지》(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Piercer》(SeMA 창고, 서울, 2021), 《나메 Name》(뮤지엄헤드, 서울, 2020-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곽이브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0), 캔파운데이션 명륜동작업실(2019), 인천아트플랫폼(2017),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6)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19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인천미술은행 및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