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b. 1982)은 서로 기대어 있거나 유약하게 접합되어 있는 사물과 조각의 다양한 관계성을 찾아 가변적 구조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불안정하지만 서로 의지하는 힘의 균형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조각의 감각을 빌어 변수 가득한 일상의 풍경을 그려낸다.


전장연, 〈나무 사이로〉, 2011, 혼합매체, 가변크기 © 전장연

전장연은 사물과 조각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개인적인 서사와 감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가 경험하는 일상의 장면들은 단순히 흔한 사물의 외피로 고착되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조각적 구조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나간다.
 
2014년 갤러리 도스에서 열린 개인전 《거짓말하는 사물들》에서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의 다양한 조합과 변형의 설치를 통해 낯선 구조를 만들어냈다. 본래의 기능을 잃은 사물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일상의 감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불안정한 구조를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거짓말하는 사물들》 전시 전경(갤러리 도스, 2014) © 전장연

설치물들은 주로 큰 구조물 사이에 작은 물체가 숨겨진 듯 보여지도록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맞대어 있는 두 테이블 사이로 보이는 영수증 다발과 유리판 사이에서 그 무게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알약들처럼 본래의 기능을 무시한 조합들은 초현실적인 조각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지나치기 쉬운 감정의 순간들에 자신의 독특한 시선을 담아 새로운 사물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거짓말하는 사물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기는 인간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주체가 사물일수도 있고 자신이 주체일 수도 있다는 경계의 지점이기도 하다.


《거짓말하는 사물들》 전시 전경(갤러리 도스, 2014) © 전장연

작업과정에서 생긴 뜻밖의 우연과 이탈의 과정은 일반적인 물건의 상징과 기능에서 벗어나 역으로 사물이 예술의 주체가 된다. 이는 작가가 사물의 낯선 조합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물체가 본래의 쓰임새를 감추고 주체성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사물들의 익숙치 않은 조합을 통해 자칫 잊혀질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사물 자체가 가진 폭넓은 조형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워온 우주》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19) © 전장연

한편, 2019년 개인전 《주워온 우주》는 작가가 여성으로서 겪어온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사물의 낯선 조합을 통한 새로운 조각적 풍경을 펼쳐 보였다. 전시에서는 개인적인 타임라인, 출산과 육아 시기 좁아진 사회적 영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동그란 형태들의 작은 사물들은 그 시기 정서적 변화와 사회적 제약들에 대한 풍경이 담겨 사물 간의 낯선 언어를 만들어냈다. 손 안에 들어 온 사물들은 집의 영역과 시공간이 가장 떨어진 곳인 ‘밤하늘’과 ‘우주’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짓는다.


《주워온 우주》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19) © 전장연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일상 사물을 스캐너에 스캔하여 프린트한 〈주워온 밤〉, 〈숨바꼭질〉, 〈숨어든 귀〉, 그리고 전시 공간에 철제 구조물로 세운 북두칠성, 그리고 그 북두칠성의 구조물을 구성하는 7종류의 변형된 사물 오브제들이다.
 
먼저, 3점의 이미지는 유아 장난감 사물을 스캔한 이미지와 작가의 상상의 이미지 드로잉이 함께 물건의 원래 모습을 변경한다. 변형된 사물은 작가 자신의 삶의 모습을 비유하거나 모양과 기능으로 변모하면서 스스로 예술의 주체적 대상으로 변화하도록 하였다.


전장연, 〈7개의 행성〉(세부 이미지), 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 전장연

한편, 〈7개의 행성〉의 오브제들은 수많은 기원들과 바램의 역사를 상징하는 북두칠성 자리를 따라 만들어졌다. 철골구조에 줄지어 세워진 유사 토템적인 형태들은 7개의 상징적 단어로 풍경을 그려낸다.
 
〈7개의 행성〉은 ‘토끼 발의 행운’, ‘가느다란 시간’, ‘손이 네개’, ‘유모차 엘베’, ‘유목 육아’, ‘우주적 조합’, ‘슈퍼 맘’ 이렇게 작가의 삶의 현실과 상상을 은유하는 사물들의 유희적 결합들로 구성되었다.
 
남성 양복 재킷에 여성적인 매체 중 하나인 자수로 기저귀를 가는 행위 등의 이미지를 새겨 넣거나, 유아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함께 육아와 거리가 먼 여성적 사물인 진주 목걸이를 행성을 구성하는 동일 선상의 세부요소로 활용하는 등 서로 이질적인 사회적 상징을 갖는 사물들을 하나의 우주 안에 결합시켰다.


전장연, 〈7개의 행성〉(세부 이미지), 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 전장연

이런 방식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대상을 만나는 관객은 여성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한순간 육아하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성 역할에 제 모습을 잃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7개의 행성은 바닥도 벽면도 아닌 전시공간의 한중간에 마치 쇼핑을 위한 디스플레이 설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는 한국 생활에서 혼자가 아닌 아이와 돌아온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과 나 자신의 시간이 그리고 육아와 교육이 철저하게 자본과 소비에 연결된 현상”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소비문화 속에서 개인의 경험이 선택과 조형의 과정을 거친 사물을 통해 전달되고 공유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작가에 따르면 사물은 타인에게 특정한 감정과 기억을 환기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며, 서로의 경험을 연결하는 ‘사물적 표지’로 기능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오른 엄마들은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여러 기관과 회사의 타깃 고객층으로 분류되어 많은 소비를 위한 정보의 홍수를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관객이 마치 쇼윈도 속 상품을 바라보듯 작품을 마주하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발끝으로 선 낮》 전시 전경(SeMA 창고, 2022) © 전장연

이처럼 일상적 경험에서 비롯한 사물들을 통한 조각적 구조와 풍경에 관한 전장연의 작업은 2022년 개인전 《발끝으로 선 낮》에서도 이어졌다. 《발끝으로 선 낮》은 사소한 일상의 감정에서 비롯한 사물과 조각에 관한 전시로, 개별 에피소드에 기반한 3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가는 동전, 화장 퍼프, 운동기구처럼 일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사물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이처럼 일상에서 발견되는 흔한 사물들을 본래의 목적을 뛰어넘는 형식으로 재조합하여 새로운 관계망을 부여하고자 했다.


전장연, 〈낯빛〉, 2021, 합판, 아크릴 채색, 화장 퍼프 스펀지, 셰도우 팔레트, 아크릴 미러, 110x150cm © 전장연

먼저 벽면에 기대어 놓인 조각들과 드로잉으로 구성된 ‘낯빛’ 연작을 살펴보자면, 정면에는 검은색 면을, 옆면에는 이와 큰 대조를 이루는 높은 채도의 색이 채워져 있다. ‘낯빛’은 안색을 염려하며 안부를 묻던 친구와의 일화를 기반으로 한다. 전장연은 도형을 일컫는 한자 면(面)이 사람의 얼굴 형상에 기초한 점에 착안하여 얼굴의 ‘낯’과 도형의 ‘면’을 통해 감정의 앞면과 뒷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작품의 면에서 군데군데 발견되는 색조 화장품의 부품들과 측면 틈 사이에 위치한 스펀지 퍼프는 모두 어두운 낯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일종의 장치다.
 
이 말랑말랑한 퍼프들은 쌓여 있는 블록들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블록들 사이에 위태롭게 끼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게 하면서 매일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가변적인 우리의 일상 속 과제들을 상기시킨다.


전장연, 〈숨 고르고 정지〉, 2022, 혼합매체, 가변크기 © 전장연

한편, 운동기구의 스프링과 파이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숨 고르고 정지〉는 신체와 관련된 운동기구의 일부분을 가져다 선택적으로 재조합한 일종의 조각 드로잉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단순히 사물들을 조각의 언어로 치환하는 것을 넘어 사물들 간의 관계나 위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의 분배를 떠올리게 하였다.
 
단순한 정지가 아닌 숨을 한 번 고른 후에 마주하는 정지는 방금 전까지 사물들이 마주했을 움직임을 상상하게 한다. 정지와 운동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 대해 전장연은 “무언가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한 삶의 긴장감과 같은 감각”이라고 말한다.


전장연, 〈휴게〉, 2022, 철판, 담배꽁초, 30x40x4cm © 전장연

마지막으로, 집 안팎에서 발견한 사물들을 활용한 〈휴게〉와 〈낮은 무지개〉는 전시장 안쪽 가장 어두운 공간 바닥에 위치해 있었다.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동전, 민트캔디, 담배꽁초와 같은 일상의 사물들이 철판과 철판 사이에 끼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철판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들은 침대나 소파 밑을 청소하다가 이따금씩 발견하게 되는 머리끈이나 동전, 또는 야외 아스팔트 바닥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담배꽁초나 껌과 같이 모두 ‘하찮은’ 것들이다.
 
두 작품 모두 ‘낯빛’ 시리즈에서처럼 겉면은 어두운 색을 띄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요소들 간의 복잡한 관계가 전면에 드러난다.
 
전장연의 작업은 각각 독립적으로 제작된 조각들을 본 전시에서 하나의 흐름과 이야기로 엮어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발끝으로 선 낮》에 등장하는 사물 조각들은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불안정함과 긴장감이 함께 존재한다.
 
서로 다른 형태와 무게를 지닌 요소들은 미세한 접점 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러한 조형적 관계를 통해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의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무거운 난》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4) © 전장연

한편, 최근의 작업에서 전장연은 견고한 외연 속에 유연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철판의 물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물질이 지닌 고유한 무게와 구조적 한계, 그 안에서 발견되는 미묘한 균형과 일시적 정지의 언어를 탐구하는 과정은 곧 작가의 세계관을 가시화하는 새로운 시도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4년 아트스페이스 보안에서 열린 개인전 《무거운 난》에서 전장연은 얇은 철판을 유연한 물질로 인식시키고 사소한 사물의 시각성을 병치시킨다. 작가는 그러한 작업의 방법과 표현을 과거 문인화에서, 특히 사군자의 ‘난치기’에 비유하였다.
 
《무거운 난》에서 전장연은 현대 도시의 풍경을 문인화의 표현 방식을 차용해 그만의 시각적 어휘로 풀어냈다. 사군자 묵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곡선과 직선의 조화, 그리고 먹의 농담을 통해 만들어내는 강약의 리듬감은 작업에서 유동적인 선과 곡선의 3차원적 조각으로, 그에 더해지는 사물들의 구성으로 변환되었다.


전장연, 〈시장 가방〉, 2024, 혼합매체, 철판, 45x38x150cm © 전장연

전장연의 작업은 조각과 사물 사이에 남겨진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연을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고 관계를 사유하는 문인화적 태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전시 공간의 비어 있는 영역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관객이 기억과 상상을 확장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작가는 전통 회화의 여백 개념을 현대 조각의 언어로 전환하며 형태와 색,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한 즉흥적인 붓질과 먹의 운용을 연상시키는 조형적 감각은 일상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조각들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포착했던 문인화의 시선을 떠올리게 하며, 오늘을 구성하는 순간들의 흔들림과 지속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전장연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나 재현을 넘어, 시간과 변화, 순환의 감각을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자연과 시간에 대한 전통적 사유를 동시대의 물질과 사물로 다시 풀어내며, 관객에게 익숙한 세계 너머의 다른 관계와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제안한다.


전장연, 〈곡선 연습_1-6〉, 2023, 판에 우레탄 도장,영수증,냉장고와 식탁사이의 사물들, 가변 설치 © 전장연

이렇듯 전장연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감각과 서사를 사소한 사물들의 낯선 조합을 통해 새롭게 풀어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쉽게 지나치고 마는 일상의 감정과 관계의 장면들을 마주하도록 하며, 여러 경험과 사회적 환경, 관계가 복잡하게 조직되는 “진정한 일상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기대어 있거나, 쓰러지기 쉽거나, 힘주어 서 있거나 하는 것이 안전하거나 온전하지 않은 삶의 상태와 더 가깝고 솔직하다고 느낀다." (전장연, 작가 노트)


전장연 작가 © 국립현대미술관

전장연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회화, 판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화과와 영국 첼시 컬리지 런던대학교 순수미술 과정을 석사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무거운 난》(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4), 《발끝으로 선 낮》(SeMA 창고, 서울, 2022), 《주워온 우주》(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아름답다》(스페이스 소, 서울, 2025), 《Moment of Moments》(KT&G 상상마당, 춘천,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23), 《Pack Mbps》(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이 위치, 이 각도, 이 타이밍》(공간형,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전장연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5),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3), 아트플러그 연수 레지던시(2021), 이탈리아 지네스트렐레 국제 레지던시(2014) 등에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