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모 작가 © 김정모

전시장 한 귀퉁이, 단 한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는 〈시간-예술 거래소〉. 번호표를 뽑고 관객은 대기시간을 포함해 입장하는데 걸린 총 시간을 기록한 뒤 작가의 안내 문구에 따라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계약서를 쓰게 된다. 하루에 1백명이 참여해 전시가 끝날 때까지 1만7백 명이 작품을 공동 소유하게 되는 거다. 관객의 시간과 작가의 작품이 교환되는 과정을 통과하다 보면 언뜻 미술 시장의 생리를 목격하게 된다.


〈시간-예술 거래소〉는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온 관객 참여형 전시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시간이라는 요소를 가져온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관객 참여형 작품은 큰 맥락에서 보면 물리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않나. 전시에 찾아오는 것 자체도 근본적으로 참여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시간이라는 요소는 전시에 포함되기 마련이다. 시간을 크게 의식했다기보다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컬렉팅은 특정 소수 계층만 가능한 행위이지 않나. 작품 가격대가 워낙 높게 형성돼 있고, 진입 장벽도 높다.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된 작품을 소장하는 행위를 모든 관객이 경험했으면 했다. 미술 작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 돈 말고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화인 시간이 떠올랐다. 거래소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린 대기시간을 내 작품의 지분으로 바꾸는 생리를 생각해봤다.


관객 참여형 전시를 구상하고 관객에게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조소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닐 때까 지만 해도 전통적 조소 작업을 했다. 3m, 5m 등 내가 구현하고 싶은 조형적 세계관이 있는데 공간의 제약 때문에 그걸 고수하는 게 힘들었다. 전시장에 보내기 전 작업실에서 작품의 느낌을 보고 싶지만 협소한 공간에서는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외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베를린 전시다. 베를린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처음 관객을 만났다. 이전에는 전시장에 작품을 놓고 관람하는 관객을 멀리서 지켜봤다면 처음으로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거다.


어떤 전시였나?

당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리더가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뭘 할까 하다가 당시 베를린 길거리 풍경을 휴대폰으로 찍고 다녔는데, 유독 쓰레기 더미에 관심이 갔다. 어디선가 미술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지금껏 미술관에서 봤던 조형적인 특징들이 그 쓰레기 더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거다.

왜 미술관에 놓인 어떤 오브제를 보고는 ‘이게 쓰레기인가, 작품인가’ 하며 농담을 하지 않나.(웃음) 지금껏 길에서 찍은 쓰레기 더미 사진을 출력해 관객에게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묻고 그 이유를 적어달라고 했다. 관객들이 굉장히 정성스럽게 의견을 적어주고, 또 관객들끼리 토론을 나누는 걸 보는데 재미있었다. 빼곡히 적어준 글을 보는 순간, 이 작품이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관객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했다.


지난해 4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에서 〈행운 교환소〉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정 조건을 갖춘 관객에게 배지를 주는 등 기념품처럼 무언가를 준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에게 ‘증명서’를 준다.

관객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것이 일종의 거래라고 봤다. 전시에 참여한 관객들이 뭔가 하나를 갖고 돌아가기를 바랐고, 또 거래라는 속성을 명확히 가시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워드’가 있으면 확실히 관객 참여도도 높다.(웃음) 관객들이 소장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증명서도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어보려 했다.


김정모, 〈시간-예술 거래소〉, 2022, 관객의 참여와 시간, 가변크기 © 김정모

관객을 작품 안으로 초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작가로서의 즐거움도 있을 것같다. 어떤가?

관객을 직접 대면하기보다 구조를 만들고 그 옆에 비켜서서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주된 일이다. 설정한 구도 안에서 관객이 각자 체험하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로 그 반응을 확인하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다양한 의견을 올려주신다.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 대부분은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그분들 의 존재가 작품보다 더 돋보였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이런 촬영도 나 혼자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작업을 설명하는 글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성이다. 일전에 ‘전시장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다층적 이해관계가 포함된 곳’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장소는 작가의 작업에 있어 관객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마다 지닌 성격과 맥락,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어떤 전시장은 20대 초반 관객이 유독 많이 찾고, 공공 미술관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찾는다. 작가로서 구상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전시장이 지닌 특징을 고려하고, 동시에 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앞서 말한 ‘행운 교환소’를 전시한 일민미술관은 20대 초반 관객이 많다.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카드 게임을 생각한 것도 공간의 영향이 크다. 이번 전시를 여는 삼성 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역시 특정 관객층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리움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미술품 컬렉션에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일전에 ‘어떤 가치가 제도화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은 어떤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특정 가치보다는 전시를 준비하는 상황 혹은 준비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들에 대해 그때 그때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이번 전시에서는 컬렉팅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이어진 것 같다. 미술도 일종의 제도이지 않나.

교육제도 안에도 미술이라는 카테고리가 있고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미술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데 어떤 지점에서 미술은 지나치게 신성시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관객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일부가 이번 작품에도 녹아 있는 듯하다.

맞다. 요즘 작품 소장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재력 있는 한 개인이 고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면 최근에는 작품을 분할해 판매한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사람이 공동 구매하는 거다. 가령 한 거장의 1억원짜리 작품을 1백 명의 사람들이 10만원씩 내고 나눠서 구입하는 식이다. 마치 건물을 사듯이. 그렇게 구입한 작품은 갤러리 창고에 보관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판매 수익을 나눠 갖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방식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을 구매하고 소장한다는 것의 의미가 이렇게나 달라 질 수 있구나 싶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이는 컬렉팅이 아니지 않나. 대체 불가능 토큰(NFT)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고 있다.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근 두근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