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Moving Sensation》 © Space XX

‘추상성을 감각한다’는 의미는 인간에게 내재한 원초적인 오감의 신경을 다각적으로 자극하는 행동과 맞닿아 있는데, 이는 추상이 ‘실재하지 않음’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현하는 과정을 전제함에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같이 추상으로 분류하는 시각 예술을 마주할 때 일상의 범주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감각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그 이면에 자리한 무엇을 바라보거나 읽어내려는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이유로 추상은 아마도 우리가 소위 형이상학적 대상을 인지하기 위해 운용하는 특수한 감각의 형상, 그 자체의 표현으로 간주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감각의 재현은 하나의 박제된 순간을 포착해 내기도 하지만, 더 작은 조각들로 분할된 그 순간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옮겨가는 움직임을 현현할 수도 있다.

만물을 구성하는 비연속적이고 비분절적인 원자 개념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에 빚을 지고 있는 현대의 입자물리학과, 이를 통해 밝혀진 소립자 존재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미묘한 역동성에 관심을 둔 지근욱의 추상 작업은 바로 위와 같은 추상성의 특징에 대한 작가의 천착에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개인전 《운동하는 감각(MOVING SENSATION)》(space xx, 2018)은 그 이름에서부터 그의 추상 실험이 고민하고자 하는 바를 명징하게 지시한다.       
 
지근욱은 형태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적 조형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점, 선, 면을 활용한 추상 평면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사실 그의 작업은 보통 미술에서 ‘회화’라고 분류하는 시각 예술의 범주 안에 포함하는 작품의 형식을 따르므로, 작가의 관심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조어가 있다면 그것은 ‘운동하는 시감각’이라 명명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지근욱의 ‘Actual Dynamics’ 연작이나 ‘Cohesive Sphere’ 연작은 ‘운동(혹은 움직임, movement)’과 ‘시(각적)감각’이라는 두 개념의 지점을 거치는데 이는 후자, 즉 시감각을 하나의 시각 예술적 실험을 위한 개념틀로 활용하면서 전자의 개념에 더 깊은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위 연작들은 전시에서 그 맥락을 계승하면서도, 각각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증폭하는 시도를 더한 〈Actual Dynamics〉(2018)와 〈Cohesive Sphere Wave Ver.〉(2018)으로 이어진다.

색연필을 가지고 화면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려낸 선들이 중심의 한 점으로 수렴하는 형상을 띠는 작품 〈Actual Dynamics〉에서 작가는 일반적으로 점들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선과 그 각도를 상호 조향하며 형성되는 면 사이를 매개하는 순차적인 흐름을 매립해 버리고, 이 개별적인 구성체들을 서로 다른 층위에 명료하게 위치토록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면에 대한 인식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작가는 색과 밀도를 달리하며 표현하는 선과 이 선들의 겹침이 구축하는 점이 생성하는 원근의 발현을 통해 특정한 깊이감을 조성하면서, 평면 위에 그것의 본래 성격과 상충하는 이질적 입체감을 조성한다. 〈Cohesive Sphere Wave Ver.〉에서는 이 운동성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 한층 더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Actual Dynamics〉의 1점 투시가 본 작업에서는 다점 투시로 변경되고, 그 시각적인 형상 역시도 파열의 찰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파열의 인상은 복잡하게 분열되어 산재하는 화면 위의 파편 이미지들을 진동시킨다. 이로 인해 〈Cohesive Sphere Wave Ver.〉은 평면의 울렁거림과는 또 다른 형태의 움직임-감각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지근욱은 그 이전에는 배제되었던 모순적인 자기-운동성, 다시 말해 평면 위에 입체적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에서 야기되는 이른바 ‘평평한 시감각적 운동성(flat visual-sensational movement)의 지각 가능성’을 시각화한다.   
 
이렇듯 2차원적 평면 추상을 작업의 주요한 형식으로 채택하여 창출한 3차원적 운동에 관한 탐구 방법은 분명 작가의 시감각에 대한 실험을 어느 정도 진전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과 평면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를 완전히 전복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설치 작업 〈Moving Sensation〉(2018)과 영상 설치 작업 〈Sequence of Forms〉(2018)는 이처럼 움직임과 관련한 그의 실험에 있어, 좀 더 구상적이고 현시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그가 절감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단서이다.

〈Moving Sensation〉은 외부에서 투명한 아크릴 원통 안으로 바람을 유입시키며, 그 바람의 운동이 회전시키는 원구 오브제들을 관찰하는 작업이다. 원통 안에 놓인 오브제들의 비선형적 운동은 가시적으로 움직임이 가지는 입체성을 재현한다. 이로써 지근욱은 자신이 인지하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영역’을 더 높은 배율로 확대하면서, 원자로서의 구성체 및 그것의 움직임을 각인시킨다.

불투명한 아크릴 반구 위에 투사하는 점, 선, 면의 유동적 움직임을 묘사한 비물질적 동영상 그리고 이와 연동하는 사운드로 구성된 〈Sequence of Forms〉는 〈Moving Sensation〉과 그 의미 맥락의 궤를 함께하는 작업으로, 작가는 물리적 구현이나 단편적 감각이 초래하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디지털 장치를 이용한다. 이 두 작업은 앞의 다른 두 연작과 마찬가지로 ‘운동’과 ‘감각’이라는 주제를 병렬적으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방점의 설정이 연작들과는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도를 곧 ‘정적인 감각을 통해 동적인 운동을 입증’하려 했던 작가의 논리 전개 방향성을 ‘동적인 운동의 재현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정적인 감각계를 조명’하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이행의 계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Sequence of Forms〉와 〈Moving Sensation〉이 공유하는 3차원성, 공감각성, 입체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품의 물리적 속성은 지근욱의 작업이 오로지 ‘시각적’ 감각과 그 운동성만을 향한 평면 추상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스스로를 벗어나게 하고, ‘평평했던 시감각적 운동성의 지각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연구를 ‘총체적인 감각적 운동성의 지각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확장한다.       
 
지근욱 작업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제는 궁극적으로 근원에 대한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믿거나 의심하는 것과 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본 입자들 가운데서, 작가는 이질적이고 상호 충돌하는 대상들을 모두 포괄하며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한 ‘병합’과 ‘병치’의 방법론은 기존에 선행했던 지배적인 논리 구조를 해체하고,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과 거짓처럼 보이는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인식 전환을 유도하려는 노력과 다름없다.

어쩌면 ‘운동하는 감각’을 향한 그의 추상은 그 이면에 분류되었고, 규정되었으며, 정의되었던 ‘그것’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emotional reaction)을 지속해서 분석하고, 규명하며, 정리하려는 정동적 행위(affective behavior)로 서서히 이전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