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uned Stroke》 © Noblesses Collection

지근욱의 회화에서 단연 도드라지는 것은 섬세하게 정렬된 선이다. 회화의 영역에서 스트로크(stroke)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작가의 주제 의식을 표출하거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고유의 요소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그의 스트로크는 어떤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우선 작가는 선이 그어지는 조건과 환경을 세심하게 설정한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모듈로서 선을 다룰 것. 각 선분은 단일한 재료를 사용해 그려내며, 공백을 채우는 것은 사전에 약속된 형태를 갖는 선들의 배열일 것. 선들은 가능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것. 임의로 구획한 공간이 가득 메워지는 시점에서 작품의 완성을 이야기할 것. 다시 말해 그의 작업은 스스로 선택한 조형 요소들 간의 규칙 속에서 획득 가능한 변주의 다양성에 관한 질문으로 볼 수 있다.

완성된 화면은 매우 정적이고 끈질긴 행위의 집적을 즉각 떠올리게 하며, 작가가 캔버스와 보냈을 짧지 않은 시간을 대변한다. 또한 선의 모양과 강약에 있어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추구하던 몸의 불완전한 움직임은 화면 위에 수많은 우연성을 쏟아내며 매번 새로운 획을 그어낸다. 신체를 거쳐 발현되는 선이 화면의 마지막을 채웠을 때, 멈추어 있던 선들의 집합은 일렁이는 환영이자 실재하는 하나의 움직임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선다.

요컨대 지근욱의 획은 단일한 개체로서 의미를 획득하지 않으며, 주변의 또 다른 선과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지점에서 단편적인 조형 요소로서의 기능을 넘어 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총제적인 스트로크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지가 생산되는 물리적 방법론이 갖는 특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기저에 수반된 개념적 논지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다.

즉 어떤 내적 추동이 그로부터 이와 같은 화면을 반복적으로 구축하고 확장하게 하는지, 다각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이 획들의 존재 의미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을 그리며, 왜 그려야 하는 것인가?

응집된 선이 만들어내는 환영은 현실에 자명하게 실재하는 진동을 떠올리게 한다. 빛, 소리, 시간과 공간까지 움직임의 연쇄들로 구성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아우른다. 작가는 꽤 오랜 시간 이 근원적인 물리적 현상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를 시각적 언어로 번안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져왔다. 그의 감각은 일상을 채우고 있는 떨림을 포착하는 일종의 탐지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가까이 있지만 쉬이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현상들은 곧 자의적인 획들의 법칙으로 재구성된다.

즉 매끈한 평면 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획들은 그가 조금씩 그러모은 감각의 부스러기들이다. 이는 때로 ‘Curving Paths’(2020) 연작처럼 유려한 곡선의 파도가 되고, 〈Diagonal Flow〉(2020)의 가파른 빗금이 된다. 〈Levitation Curve〉(2020)에 이르러 채집한 진동은 평면 위에 펼쳐지는 시감각을 넘어 곡면을 둘러싼 3차원의 시공으로 조금씩 이동하기도 한다.

파편화된 파동의 이미지는 작가의 내부에서 발현되는 에너지와 접촉하며 실로 다양한 양태의 흐름을 새로이 생성해낸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의 지표(index)를 나타내거나 평면 위의 시각적 효과를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외적인 기록을 넘어서는 주관적 형태의 언어를 구축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발화의 과정이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관해 의미를 부여하는 독자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전시《Tuned Stroke》는 지근욱이 주목하는 유동적인 힘들을 평면에 집결시키며 스트로크의 가능태를 다루는 매체 실험의 장(scene) 이자, 개인의 반복적인 몸짓이 사회적인 맥락의 감각들과 교차하는 새로운 장(chapter)의 입구가 되어주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