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개의 기둥》 전시전경 © TINC

인간이 대지 위에 무언가를 구축하는 행위에서 가장 처음으로 드러나는 형상은 기둥을 세움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실질적인 공간을 세우기 위한 역학적 함의를 전달하는 구조체로서만 작동하는 물리적인 관점에 머물지 않는다. 구조물로서 주변과의 관계성을 고려했을 때 형상을 세운 조각은, 주위의 ‘모습’과 함께 호흡하는 태도를 내포하며, 공간의 체계에 포섭된 하나의 완전체로서 조각과 공간이 건축의 맥락 안에 들어오게 된다.

김주리의 개인전 《0개의 기둥(0 Columns)》에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실험했던 ‘모습(某濕, Wet Matter)’이 갖고 있는 구축적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형태에서 함의하고 있는 축적된 시간의 감각들을 추적한다. 

김주리의 조각은 대지 위에 하나의 기둥을 세움으로 시작되는 건축의 기원과 닮아 있다. 여기서 구축 행위로서의 기둥은 조각적인 태도로 이어지며, 구조를 세우거나 덩어리를 직조하고, 표면을 깎는 등 그 과정에서 철학적이고 조형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전시 《0개의 기둥》은 장막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주름 조각의 맥락 위에 파생된 물질 덩어리들이 분리되어 조각과 건축 사이에 응축되고 다시 생성되는 유동하는 시간에 주목한다.

이는 김주리가 참조하는 인류와 역사가 산출한 모든 정형과 비졍형의 대상에서 비롯되는데, 대상이 담고 있는 질감과 형태의 ‘모습(某濕)’들을 바탕으로 직조되어 과거와 현재의 감각들을 축조하는데 있다. 마치, 죽지 않은 유령을 소환시킨 거대한 무덤이자 우리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혹은 가장 보고싶은 무언가를 덮고 있는 장막으로 기이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러한 점에서 제목에 명시된 숫자 ‘영(0, zero)’은 고정된 수(數)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이 복수의 것을 가능하게 하고 휘발하는 동시에, 축적된 무형의 감각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혹은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양극의 변수들을 수렴한다.

작업의 태도에서 수렴되는 축조된 기억과 감각을 실시간으로 품고 화석화 되는 상반된 속성은, 조각에서 드러나는 규모와 장소에 위치시키는 초인적인 노력과 재료의 탐구로 직결된다. 특히, 복수의 덩어리들로 구성된 이번  연작은 ‘원시화’의 경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대 거석 문화를 연상할 수 있다. 예컨대, 과거에 거석을 옮겼다는 것 자체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마술적 속성을 불러들이는 수단이듯이, 장소가 갖는 의례적인 성격을 몇 배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덩어리를 ‘거대화(gigantism)’하는 환상적이고 묘한 감각은 조각과 장소의 상징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발현되는데,  본 전시에서는 이같은 거대화에 주목하면서 젖은 흙의 물성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지점이 확장된 공간과 뒤섞이고 분리된 혼성의 풍경에 주목한다. 또한, 복수의 덩어리들이 주변과의 상호관계로 작용하거나, 특정 공간에 세워질 경우에 그 경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각각의 덩어리의 질감과 윤곽, 부피, 크기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이들이 만났을 때 비로소 공간을 갖기 시작하고 경계의 의미를 찾게 된다. 

공간과 조각의 경계 사이에 흩어지고 모이는 시간은 왜곡되고 불완전한 형태와 물성으로 드러난다. 반면에, 형태는 유동적이지만 의식적으로 흙이라는 가변적인 물질을 굳건히 유지시키는 김주리의 이중적인 태도는 시간을 박제하기 위한 의지를 대변한다. 복수의 하얀 표면과 느슨한 형태의 전환을 시도하는 전시 《0개의 기둥》에서 선보이는  연작은, 물질 자체가 형상이 되도록 물성을 의도적으로 재구성한다.

거대한 중력의 한 덩어리로 설 수 있도록 둔탁하고 습윤한 물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재조합한 물성에는 물리적으로 중요한 속성들이 부여된다. 즉, 날 것의 응축된 덩어리에서 젖은 대지와 ‘살(flesh)’과 같은 표면을 연상하게 하는 근원적인 물질은 직접적으로 작가의 신체가 개입된 소조(塑造)의 형식을 취해 ‘주름’이라는 장치에 의해 인식하도록 한다.

예컨대, 젖은 흙 표면 위에 소조한 주름은 시선을 가로막는 전체 시야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하며, 형태를 인지하기 이전에 덩어리 뒤에 무엇이 있을지 파악할 수 없는 표면 그 자체로서 훑도록 유도하므로 대상을 지시하거나 실시간으로 지각할 수 있는 ‘상태’에 주목하도록 한다. 여기서 관찰자에게 표면에 가까이 서서 질감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물질의 실체를 파악하는 물리적 거리를 감각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표면의 틀을 본다는 것은 표면과 표면의 관계 속에서 질감에 주목하기에 앞서, 표면의 물리적인 위치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가시성에 대한 인식이 전복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0개의 기둥》은 의 ‘상태’가 흙이라는 입자들이 인공적인 재료와 조합되어 젖은 상태가 고안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료의 원본에 대해 질문해 보도록 한다. 조각의 근원적인 재료인 흙이 작가의 신체와 연동되면서 드러나는 몸짓은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써, 실시간으로 표면과 윤곽을 빚어내면서 형태의 부분들이 직관적인 흐름 안에서 이어진다.

결국에는 작가가 흙의 물성을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잠재우기 위한 시도로 흙의 입자가 보유하고 있는 팽창과 수축의 속성을 인정하고, 그 변화를 몸소 수용하는 과정이 곧 작업의 결과물로 이어지면서 미세한 형태를 구축해내는 것과 같다. 이로써, 구조물 위에 직조된 특유의 재료가 구조와 물성의 관계를 드러내고 형태의 본질에 다가가도록 하는 반면에, 김주리가 고안한 물질은 겉으로 재료의 원본을 가장하면서도 그 속성을 거스르는 태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대상의 ‘이치(理致)’를 향한 방어의 제스처일 수도 있는데, 장소와 시간을 감싸고 있는 온, 습도와 같은 비물질의 기억과 감각을 물질화 하려는 방식으로 매체에 잠재적으로 벤 기억과 역사를 감각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0개의 기둥》은, 공간을 숨 막히게 가득 메우는 덩어리의 밀도에서 드러나는 시각적 스펙터클과 물질의 유동적인 속성이 맞물려 작가가 구현해낸 물성의 최대치를 다시 한 번 갱신하게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