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b. 1984)는 오랫동안 식이장애를 앓아왔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신체가 지각되는 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가는 주체 바깥의 신체, 타자의 신체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신체’에 주목하여 스스로의 신체에 대해 환기해보며, 신체 바깥에서의 주체화에 대한 탐구를 이어오고 있다.


고등어, 〈신체이미지 28〉, 2021, 종이에 연필, 70x56cm © 고등어

고등어는 문학 작품이나 뉴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상 등을 탐구해 회화 속 인물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 작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브제나 분할된 화면 등은 어떤 사건이 이제 막 일어날 것만 같은 미스테리하고 언캐니(uncanny)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안에 어렴풋이 암시되는 이주, 노동, 폭력, 욕망, 관계와 고립 등의 서사는 우리가 사회 구조 속에서 반응하며 지각할 수 있는 ‘외연적 신체’를 탐구해보고자 하는 고등어의 태도를 반영한다.


고등어, 〈올랭피아의 구토〉, 2008, 종이에 아크릴, 색연필, 알코올, 59.4x168cm © 고등어

고등어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폭식과 거식을 거듭하던 식이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 일종의 심리치료의 목적에서 시작된 그의 초기 작업에는 식이장애를 겪으며 느꼈던 고통의 경험이 묻어난다.
 
고등어의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알린 작품 〈올랭피아의 구토〉(2008)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모티프를 얻어 거식증을 앓으며 느꼈던 불안감을 표현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의 화면에는 누워 있는 나체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은 자신의 손을 입으로 가져가 구토를 유발하는 듯한 장면으로 그려진다.
 
한편, 화면에는 양복을 입은 남성이 함께 등장한다. 이는 단순히 어느 한 남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구조의 남성적인 힘, 또는 자연지배적 이성을 상징한다.


고등어, 〈Meat & Clothes〉, 2008, 종이에 아크릴, 색연필, 42x59.4cm © 고등어

고등어의 그림 속 여성들은 이러한 남성적인 힘이 작동되는 사회 구조 안에 놓인 덜 자란 소녀들로 상정된다. 이 소녀들은 아직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호한 얼굴과 몸을 가지고서 파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만들어 놓은 숲을 헤맨다. 혹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가지고 자신의 안락을 지키며 애쓰거나 아예 본능을 스스로 죽이기도 한다.


고등어, 〈When Adam gives himself to Adam〉, 2008, 혼합재료, 59.4x84cm © 고등어

한편 그림에 등장하는 또 다른 존재인 여신과도 같은 여성은 스스로의 여성적인 힘으로 파란 양복을 입은 남자의 숲을 조금씩 고요하나 온건한 힘으로 변화를 시킨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파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사회 구조 안에서 힘을 행사하고 거칠게 그 힘을 지키려는 모든 것들을, 아직 덜 자란 소녀들은 구조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언어를 찾고 빛을 향해 나아간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작가의 희망을 반영한다.


고등어, 〈살갗의 사건〉, 2017, 종이에 연필, 30.5x23cm © 고등어

이후의 작업에서 고등어는 ‘자신을 스스로 겪고 있는 신체’와 그 신체가 짊어진 불안에 대해 ‘노동’과 ‘섹스’라는 인간의 두 가지 행위를 중심으로 풀어나갔다.
 
예를 들어, 2014년에 진행한 ‘노동요’ 프로젝트는 작가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이었던 웨이트리스를 주제로 한다. 이 작업에서 고등어는 노동자들의 생존의 풍경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조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노동요’ 프로젝트에서는 ‘노동하는 신체’에 대해 다루었다면, 2017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살갗의 풍경》에서는. ‘관계하는 신체’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신체에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의 흔적이 남는다. 시간, 사물, 타자라는 또 다른 신체에 의한, 또는 그와의 관계에 의한 경험의 흔적 등이 남겨진다.
 
고등어는 특히 두 신체가 가장 격렬하게 서로를 경험하는 섹스와 싸움이라는 사건을 통해 고통과 쾌락의 순간이 아로새겨진 새로운 살갗을 생성함으로써, ‘나’와 ‘너’가 아닌 제3의 신체를 형상화하고자 했다.


고등어, 〈내일의 신체를 위한 연필 드로잉〉, 2017, 종이에 연필 © 고등어

전시는 크게 ‘살갗의 사건,’ ‘내일의 신체,’ ‘뒤틀린 신체’라는 세 가지의 작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살갗의 사건’은 사랑과 애정의 순간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드로잉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애정의 관계는 나의 신체와 타자의 신체를 가장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지만, 동시에 극도의 불안을 야기함으로써 ‘나’와 ‘너’가 아닌 또 다른 신체의 탄생(내일의 신체)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고등어, 〈완벽한 신체〉, 2017, 부서진 집에서 나온 폐기물, 가변크기 © 고등어

이어서 ‘내일의 신체’는 남녀의 섹스 장면을 드로잉한 후 두 신체가 접촉한 부분을 다시 드로잉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형태를 새로이 신체화하는 작업이다.
 
작가에 의하면, 신체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응시'와 '수직성'에 있는데, 이와 같은 드로잉 작업은 〈완벽한 신체〉라는 설치 작업으로 확장된다.
 
〈완벽한 신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신체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시작된 작업으로, 철거된 집의 부서진 자재들을 전시공간에 가져와 '응시'와 '수직성'의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신체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등어, 〈몸부림 120〉, 2017, 종이에 연필, 140x260cm © 고등어

마지막으로, ‘뒤틀린 신체’에서 작가의 '관계하는 신체'는 가장 개인적인 행위인 섹스에서 사회적인 관계로 나아간다. 작가는 "사회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편견에 기반한 응시에 의해 그 구조에서 살아가고 있는 신체가 끊임없이 변형된다(작가 노트 중)"고 믿는다.
 
대형 작업인 〈몸부림〉은 용역들의 강제 철거 장면, 시위대의 몸싸움을 소재로 한 연필 드로잉으로,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사회적 응시에 의해 변형된 살갗으로 채워진 신체를 보여준다.
 
이 일련의 작업을 통해 고등어는 불안으로 야기되는 무너짐에 대항하여 스스로 직립하며 단단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신체를 꿈꾸고자 하였다


《The hours, 3 lights》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1)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한편, 2021년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The hours, 3 lights》는 고등어가 그간 집중해온 드로잉 작업에서 나아가 유화로 매체 변화를 꾀하며 선보인 회화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그동안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다면, 이 전시에서는 내러티브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색’이라는 회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린 이미지들을 채워 넣었다.
 
그가 만들어낸 화면은 특정한 색이 강조되기보다는 빛과 공기가 맞물리며 대기를 형성하고 내밀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사물의 푸른 색이 아닌 대기의 푸르스름한 빛, 마치 새벽 안개가 자아낸 분위기를 표현했다.


《The hours, 3 lights》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1)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전시 《The hours, 3 lights》에서 작가는 노랑색, 파란색, 그리고 하얀색을 모티프로 작업을 했다. 저녁 해의 노란 빛, 달빛이 주는 푸르스름한 빛 그리고 강한 빛을 받아 색이 날아가는 버린 하얀 형태가 그 예이다.
 
고등어 작품에서 대상들은 지는 석양을 받아 노란색이었다가 달빛 속에서 파란색이었고 서치라이트 빛에 잠긴 듯 하얀색이 된다. 작가는 저녁 해, 새벽 달, 하얀 독백의 3가지 빛을 통해 색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의 질감과 방향의 변화를 보여준다.


《The hours, 3 lights》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1)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하얀 독백을 표현하기 위해 고등어는 붓질을 통해 그리기보다 미디엄을 쌓아 올린다. 유화 물감을 ‘바르고 문지르고 긁어내기’를 반복하여 쌓은 화면은 마치 부조처럼 보인다. 이런 수행적 행위로 만들어진 흰 색은 작가의 의도대로 강한 스포트라이트 빛에 “색이 날아가버린”, “색이 증발해버린” 형태를 띈다.
 
작가는 “빛은 모든 피부에서 다 다르게 유희하”며, “사람마다. 달마다. 그리고 날마다 다 다르다”고 말한다. 이를 반영한 그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빛과 색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내러티브처럼, 우리의 빛과 관점, 세계에 대해 반추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Room Tone: room, stain and sounds for the sequence》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4)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그리고 최근의 개인전 《Room Tone: room, stain and sounds for the sequence》(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4)에서 고등어는 회화, 글, 드로잉, 사운드 등의 작업들을 엮어 방 안에서 발생하는 신체 이미지에 대한 시퀀스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전시작은 총 26점으로, 텍스트와 짝을 이루는 작품군과 페인팅, 시퀀스 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가가 직접 쓴 글과 짝을 이루는 작품들은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 & Culture)와 미술관 사이트에서 수집한 성서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 크롭한 다음, 다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관객은 작가의 텍스트 속 클레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엮어가며 새롭게 읽어 볼 수 있었다.
 
회화 작업에서는 작가가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내면의 공간인 ‘룸’에서 느끼는 긴장과 불안, 기억 그리고 죽음에 관한 사유가 신체 이미지와 텍스트로 표현된다.


《Room Tone: room, stain and sounds for the sequence》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4)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시퀀스 작품은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히스테리 연구와 이론을 배운 인물로 알려져 있는 샤르코(J.M. Charcot)와 알베르 론드(Albert Londe, 사진가)의 히스테리 연구를 위한 표본 촬영에 기반을 둔다.
 
샤르코는 히스테리의 표본 연구를 위해 촬영을 시도했으나,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진 못하였다. 이 둘은 크로노포토그래피라는 사진 기술을 사용하였다. ‘동체사진술’이라 번역되는 이 기술은 12컷이 연속적으로 촬영되는 기법이다.
 
고등어는 시퀀스 시리즈에서 히스테릭한 증상이 잘 표현되지 않아 누락되고 발표되지 않은 이미지들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했는지 상상하면서 드로잉하였다.


고등어, 〈Room tone_그 뱀이 허물을 벗었다.〉, 2025,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 국제갤러리

이렇듯 ‘신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고등어의 작업은 자신의 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시각적, 물질적인 탐구를 이어왔다. 작가는 불안이라는 감정과 신체, 나아가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어떻게 관계하는지 사유하고 이러한 ‘외연적인’ 몸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진정한 주체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불안을 느끼는 신체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몸 존재론에 기초한 주체화의 가능성을 탐구해 보려 한다." (고등어, 작가 노트)


고등어 작가 © Artue

고등어는 숙명여자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2008》에 선정되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Room Tone: room, stain and sounds for the sequence》(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4), 《The hours, 3 lights》(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1), 《살갗의 사건》(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서울,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8 Chapters》(에브리아트, 서울, 2025), 《언박싱 프로젝트: 읽기》(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5), 《Next Painting: As We Are》(국제갤러리, 서울, 2025), 《길드는 서로들》(남서울미술관, 서울, 2024),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4), 《워키 토키 쉐이킹》(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2),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고등어는 금천예술공장(2023),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1), 인천아트플랫폼(2016-2017)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