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眞景): 실제 경치를 구현하다
서구
미술에 있어 동시대 예술의 관습화된 감각을 논의할 때 전형적으로 가정된 상상의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다음의 전제를 한번 상기해 보라. 회화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는가? 전통 한국화를 전공한 강서경은 소리, 영상, 조각, 영상 설치와 같은 동시대 예술 작업에 나타난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의 정의를 다양한 개념적 토대들을 통해 재구축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다양한
전통적 개념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언어로 기민하게 직조해 낸다. 강서경 작품들의 구성 요소들은 기실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현대적 표현 방식을 통해 전통의 지속 가능성을 되묻고, 동시대성의 의미와 근현대
미술의 자장 안에서 지금 전통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담론적 화답으로 회화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노자의
무위 사상에 영향 받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는 화가가
풍경의 질서에 대해 무엇을 행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근간으로 삼는다. 오롯이 풍경에 영감을
얻은 예술가의 해석만이 인간과 자연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겸재 정선(1676–1759)은 중국 남종화(南宗画) 양식과 난해한 문인화
방식을 지양하고, 한국 진경산수화의 테두리 안에서 풍경에 대한 보다 주체적 해석 방식을 전개해 나갔다. 정선에게 진경산수화는 풍경 그 자체의 재현일 뿐만 아니라, 풍경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해석을 구현해 내는 일이었다. 이렇듯 겸재는 풍경을 중국 화가들처럼 단순히 ‘ 상상’하며 정확히 그려 내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풍경에 대한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진정한 경치(眞景)’ 를 구현해 내려는 사상에 중점을 두었다.(1) 따라서, 진경이란 예술가가 겪은 시공간 체험의 구체적 물화(物化)이자 풍경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관점을 철학적으로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강서경의
작품들은 이러한 진경의 의미에 영향을 받아 개념적 회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따르면서 시각성과 형이상학적 의미로서의 예술이라는, 보다 포괄적 회화의 개념들을 아우른다. 각 물성 간의 상호 작용을
복합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작가가 제시한 개념적 회화의 의미는 일견 관람자에게 모호할 수도 있다. 혹자는
캔버스를 쓰지 않는 회화적 양태가 어떻게 담론적 회화라는 확장된 구조를 유발하는지, 그리하여 강서경이
제시하는 공감각적이고 수행적인 시각성이 과연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인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고려한, 동일한 시각으로는 도저히 측정 불가한 다양한 주제와 형태, 서사 조합의 얼개를 만들어 내는 반복적 기술의 집적을 통해, 작품
안에서 마치 진경의 의미처럼 최소한의 예술적 개입만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강서경의 예술적 비전은 상호
매체성, 주체와 객체 간의 비지시적 상호 작용, 실재성의
현현에 기반하여 주체가 겪는 현상학적 전회를 통해, 즉 주체가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함으로써 작가가
제시한 시공간은 이행성(transitivity)의 장소가 되고 끊임없는 우발적 전이의 과정 혹은 이행적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정서적 차원에서 관람자에게 보다 섬세한 감각과 개별 의미를 불러일으키게 한다.(2)
전이적(轉移的) 격자: 정간보(井間譜)라는 정방형
강서경은
〈검은자리 꾀꼬리〉(2018)와 〈검은아래 색달〉 (2015) 을
통해 회화 개념의 재정립을 시도한다. 칠흑 같은 화면 속에 펼쳐진 화문석(검은 자리)과 한국 전통 기보법인 정간보(井間譜)는 작가 스스로 직조해 낸 개념적 회화를 위한 캔버스가 된다. 세종대왕이 도입한 조선 왕조(1392–1910) 최초의 기보법인
정간보는 대중들이 소리의 형태를 자유롭게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강서경의 일련의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문화적 참조 기준점인 정간보는, 연주하는 악기 소리(청각)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기 위해 감각을 확장시킨 보조 기억 체계이자, 연주자들이 소리를 시각화하여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기호 체계이다. 따라서, 보조 기억 체계로서의 정간보는 연주자들이 무엇을 연주할지 알려 주는 하나의 명령 체계이며, 악보의 기본 단위인 정(井) 안에
들어 있는 기호들은 마치 표음 문자인 한글처럼 소리를 통해 생각하게 하는 바를 표현하는 의사소통 체계로 실제 소리에 대한 시각적 대체물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조선 시대의 기보법을 작품에 차용했을까? 강서경은 작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법을 통해 한국
전통 회화를 재해석해 왔다. 따라서 정간보의 기하학적 최소 단위인 정은 단지 전통을 통한 예술적 확장이라는
관습적 은유가 아니라, 잊혀진 작곡법을 소환하여 작가의 비전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활용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간보는 소리와 소리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나타내는 우물 모양의 정사각형이다. 즉, 소리
길이를 공간의 양으로 쓰는 기술이다. 정간보는 보다 다양한 소리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음색(율명 律名), 음고(오음약보
五音略譜), 다양한 기호(합자보 合字譜), 주석(육보 肉譜) 등을
활용했다. 정은 악보를 위한 최소한의 형식이기에, 강서경
작업에서 보이는 정의 궤적들은 정적 오브제로부터 때로는 음악적이고 때로는 안무적인 것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회화가
되기 위한 수행’으로 하나의 확장된 가상 캔버스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강서경의 작업에 있어 정간보는 정이라는 제한된 사각 틀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시공간의 파편으로
작동하는 진경의 오케스트레이션인 것이다.
〈검은아래
색달〉(2015)에 등장하는 나이 지긋한 두 퍼포머는 ‘수행적’이라기 보다 ‘움직이는 회화가 되기’
위해, 빈틈없는 동시에 어딘지 부정확해 보이는 기하학적 구조물을 향해 느릿한 속도로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불완전한 움직임의 연속을 선보인다. 강서경의 작업은 이렇듯 대개 조화로운 부조화라는 불협화음의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검은아래 색달〉 은 구전 문학의 대표적 작품인 고려 속요(3) 〈쌍화점〉에서 영감을 받았다. ‘만두 가게’를 의미하는 〈쌍화점〉은 고려 충렬왕(1236–1308) 때 익명으로
제작되어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다. 〈쌍화점〉의 서사는 남녀 간 스스럼없는 노골적인 성적 대화를 바탕으로, 주로 고려 시대의 독특한 양식과 미학을 향유한 무관들이 주최한 연회에서 상연되곤 했다고 전해진다. 채록된 고려 속요의 가사는 조선 시대의 까다로운 유교적 도덕관과 순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 탓에 수정을 거듭했다.
강서경의
〈쌍화점〉 전유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고려 속요 하위 서사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상호
매체적 참조—구전 가요(청각)의 공감각적 시공간화—로 차용한 〈 쌍화점〉 이라는 구조의 반복성에
있다. 고려 속요 〈 쌍화점〉에서 각 연은 성차나 사회 문화적 위계성,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이성애적 욕망 교환과 같은 특별한 의미망을 함유하고 있는데, 강서경
작업 속에 등장하는 모든 기호들은 이런 선형적 비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주체의 위치성
(positionality)을 교묘히 변형시키고 관객들에게 숨겨둔 텍스트가 지닌 전복적 쾌락과 상상을 은밀히 드러내게끔 한다. 〈검은아래 색달〉의 화면 양 끝에서 움직이는 노년의 퍼포머들은 개별적으로 스스로의 신체 리듬에 천천히 대하며, 영상 속 간헐적인 조우의 끝과 시작을 〈쌍화점〉의 구절에 맞춰 느릿하게 되풀이한다. 퍼포머들이 설치한 오브제들은 고정되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퍼포머의 움직임들 사이를 느슨히 유영해
나가는 듯 보인다. 이처럼 오브제들은 마치 정동적으로 전이하는 격자로 쌓아 올린 인간 형상을 한 조각들
틈새에서, 마치 즉흥적으로 연희 되거나 의도적으로 수정되는 듯 검은아래 색달 속에서 해후한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월터 J. 옹은 20세기의 전자 기술이 구술
문화를 복귀시키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4) 〈검은아래 색달〉을 옹이 언급하는 것과 같은 이차적
구술성, 즉 텔레비전 서사와 같은 시각 매체를 통해 전송되는 구술성으로 상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구전을 통해 전달되는 일차적 구술성(설화, 소문, 구전 문학 등)과
여러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검은아래 색달〉은 고려 속요라는 구전 문학 형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옹이
일차적 구술성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이차적 구술성은 반복적이거나 장황하고 단발적이지 않다. 여기서 강서경의 작업은 일차적 구술성(구전 문학)과 이차적 구술성(영상– 퍼포먼스)을 구분해 온 시각화의 특성을 배반하고 일차적 구술성으로 회귀한다. 옹은
이차적 구술성은 본질적으로는 “더 의식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구술성으로,
쓰기와 인쇄의 사용에 영구적으로 기반한다”고 논했다.
〈검은아래
색달〉 에서 강서경은 한지에서 시작해 동으로 만든 볼트, 쇠, 실, 나무, 플라스틱, 가죽에
이르는 다양한 재료를 가상의 캔버스에 활용하며 〈쌍화점〉의 내러티브를 전유해 움직이는 회화라는 자신만의 개념으로 재구축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강서경의 작업들은 손에 닿을 듯 명징한 촉감을 생생하게 유지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강서경은 왜 동시대
예술 제작 방식에 과거의 기억술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일까? 진경의 차용과 보는 방법/세계 인식은 도대체 어떤 의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디스포지티프의
회화: 정동적 시공간성
강서경
작품 안에 드러나는 전통을 해독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전통 개념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즉, 인용 혹은 하위 서사 주제로서 과거라는 전통,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과거가 이미 “실천 방식 안에 내재” 한다는 전제로서의 과거이다.(7) 강서경의 진경 미학의 확장은 시간과
공간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작가 고유의 시공간성에 대한 개념과 관람객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 그 자리에
있다” 라는 정동적 감정이 결국 작가의 예술적 구현 방식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를 직조한 강서경의 독특한 시공간성의 미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감각을 창출하여 동시대성이라는 모호한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정지
그리고 위치 – 정 井〉(2012–2015)을 구성하는
일련의 설치물들은 거의 대칭적인 듯 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해 보면 어딘지 살짝 어긋나 있다. 작업들은 구조화된 듯 보이지만 파편화되어 있고, 기하학적으로 조화로워
보이지만 섬세하게 어긋나 있으며, 사려 깊은 동시에 임시변통으로 이뤄져 있다. 작업을 좀 더 넓은 맥락으로 살펴보자면, 전통이라는 구조 안에서
동시대적 감각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객이 문화적,
연대기적, 공간적 경계를 가로질러 작가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관조할 수 있다면, 강서경의 작업은 한결 설득력 있고 진심 어린 어떤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기하학적 인식은 작품 개별적 의미와 진경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강서경에게 있어 진경은 푸코적 의미의 디스포지티프 (dispositf)로 기능한다. 여기서 디스포지티프라는 용어는 이미지의 구축과 재구성, 관람자의
이질적 연결망과 다양한 재해석을 포괄하는 용어이다.(8) 매체학 분야에서 장치 이론은 초기 영화를 포스트
구조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연구 틀 안에서 디스포지티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왔다. 디스포지티프 이론은 1970년대에 크리스티앙 메츠에 의해 촉발되었는데, 메츠는 정신 분석학을
영화 이론에 도입한 이론가로 영화를 통한 현실의 상징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외부 현실과 관람자를 연결하는 하나의 장치가 만들어지는 동안, 관람자는
이 장치를 통해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낸다는 것이다.
즉 시각적 재현을 통해 관람자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영화적 비현실, 정동적
효과와 시뮬레이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강서경의 〈검은아래 색달〉과 〈검은자리
꾀꼬리〉(2018) 두 작품 모두 이러한 작가의 철학적, 존재론적
사고 간에 연결-융합-상호 작용이 함께 발생하여 관객을 위한
하나의 디스포지티프의 토대로 마련된다. 강서경의 작업에서 실재(조각)와 가상(영상) 이 각각
실재 세계와 시뮬레이션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도입,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강서경의
조각 설치물에 대한 관객의 경험은 데자뷔로써, 파편화된 영상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연결된
감정으로 구체화된다.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가상으로 대면했던 사물들은,
이제 주체 없이 비활성화된 하나의 오브제로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마치 그 자신이 ‘기억의
증거’인 양 스스로의 물리적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화면
속에 등장한 가상의 무수한 격자의 조합은 관객 스스로의 상상을 통해서 현실이라는 또 다른 영역을 통해 실제 공간 안에서 언제든 임의로 조합될 수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실재하는 이 오브제들은 가상물의 존재론적 의의에 대한 질문을 환기시킨다. 즉, 이제껏 관객들이 상상을 통해 어떻게 시각적인 것(눈으로 보는 사물)을 선형적으로 사고해 왔고, 관객이 상상하는 비선형적 내러티브가 얼마나 스스로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 즉
진경에 대한 인식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실질적으로 제한해 왔는가를 질문한다. 보기/관람하기 방식에 대한 해석과 미학적 영역에서 역설적으로 의미 없음의 문제, 이러한
서사적 다공성의 미학은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기실 이러한 텅 빈 기표 뒤에서 매개될 수도 있다는, 동시대의 진경을 스스로 성찰하고 숙고하게끔 하는 하이데거적 기투(Entwurf)로서
작동한다.
전복적
다공성: 화문석의 구멍과 동그라미
〈검은자리
꾀꼬리〉에서 우리는 어떤 의도를 지니고 끊임없이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얼굴 없는 피사체를 목도한다. 일견
이 불가사의한 움직임들은 어딘지 불안정해 보이고 파스텔색조의 조각들은 이런 시각적 부조화 속에서 온전히 정렬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강서경의 또 다른 예술적 플랫폼인 화문석 (검은 자리) 이라는 인식적 모형 안에서 기괴한 소음은 끊임없이 틈새로 흘러나오고, 신체
없는 발은 느슨하게 행과 행 사이를 뛰어다니며, 다공의 사각형들은 존재의 시공간 안으로 서서히 스며든다.(9) 움직임의 종지부는 명징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10) 반복적으로
끝나는데 이것은 행위의 시작과 끝, 변화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검은
자리 안에서 스스로의 시공간 안에 묶여 있던 주체들은 이제 제 자리를 탈피해 칠흑의 디에게시스(diegesis)
안에서 구멍과 동그라미 안에 발을 넣었다 빼고 있다. 불경스러운 그림자가 마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모든 순간을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강서경에게
있어 다공성이라는 은유는 한국에 있어서 동시대성의 의미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미시적 정치적 참여를 환기시킨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다층적 전제 조건하에서 정처럼 작은 사각형 틀 안에 오랫동안 갇혀 왔던 존재/개인화된 자아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게 즉각적으로 관여하고, 확장하고, 중첩하고, 간섭하며 영향을 미치겠다는 어떤 다짐처럼 읽힌다. 다공성이 지니는
정치적 횡단성은 자아의 침투 가능성에 관해 질문을 제기한다. 강서경의 기존 예술 모티프인 ‘모라’ 나 ‘정’ 과는 달리, 〈검은자리 꾀꼬리〉의 화문석에는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구멍과 동그라미가 있게 된 걸까?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기호로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바는 무엇일까? 모라와 정, 화문석 사이에 존재하는 전환적 연결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정치 사회적 상황 안에서 진척된 〈검은자리 꾀꼬리〉가 표상하는 한국이라는 독특한 시공간의
역사적 특수성을 상기해야만 한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조선 후기 전통 궁중 무용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 춘앵무에서 영감을 받았다. 춘앵무는 ‘ 춘앵전’으로도 알려졌는데, 봄날
꾀꼬리의 춤을 의미한다. 효명세자(1809–1830)가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한 쌍을 바라보며 지었다고 알려진(11) 춘앵무는, 부드럽고 시적인 움직임에 절도 있는 몸짓을 통해 연희되며 화문석으로 된 사각형 돗자리 위에서만 상연된다.(12) 달리 말하자면, 화문석이라는 자리는 무엇이든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된다. 전통적 독무(獨舞)에서는 평조회상이라는(13) 정악(正樂)이 무용과 함께 연주되는데, 강서경은 춘앵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소리만을 사용한다. 춘앵무는 왕실 앞에서 행해진 궁중 무용이기에 표현이 극도로 절제되고 억제되었으며,(14) 춘앵무의 백미는 꽃 앞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화전태( 花
煎 態) 이다. 궁중 무용을 추는 무용수는 감히 왕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는데, 화전태는 이에 대한 유일한 예외적 상황으로, 무용수는
등 뒤로 화려한 소매를 젖혀 올려 꽃 위에 살포시 앉은 새를 흉내 내며 살짝 고개를 들어 왕에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이때 어떤 미소를 짓는지가 무용수의 수준을 판가름 지었는데, 이렇게
미소를 짓는 행위야말로 화전태의 대담함과 전복성의 정점을 가감 없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적
도발은 무용수와 관객이 사회 문화적 지위와 관계없이 위계적으로 동등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었다. 이처럼
황홀한 찰나 안에서만 의미의 진실함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다. 강서경은 화전태가 “ 출발점인 동시에 도착점”이 되는(15)
것으로 최소한의 예술적 플랫폼이라는 점을 명확히 언급했는데, 이로써 화전태는 동시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 안에서 인권의 박탈(dispossession) 이라는 개념과 이것이 수반하는 생명 정치, 정치적 인지, 수행성, 저항, 관계성 등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정치적 영역(topos)을
표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작가의 의중과 상관없이 세월호 사건으로(16) 촉발된 한국의 정치적
혼란과 역사적 순간들에 대한 집단적, 개인적 대중 참여와 명백히 공명한다. 춘앵무의 화전태처럼 바로 이러한 개인적 움직임에 대한 태도가 강서경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포이에시스(poiesis)인 것이다. 이는 마치 부단히 어긋난 구멍과 딱 들어맞지
않는 동그라미들이라는 기호를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개인들의 사회 정치적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듯 보인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이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 이후 현재까지, 너무나 당연시 여겨 왔던
동시대성이라는 것(contemporaneity)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하나의 푯말이 되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촉발된 생명 정치에 대한 문제는 인권 운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제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이라는 ‘탈구된 시간(disjointed
time)’ 에 대한 문제들—주권, 아감벤식
벌거벗은 삶, 살 권리, 통치성 등—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담론들을 파생시켰다.
2014 년 세월호 침몰 이후, 출구
없이 꽉 막힌 한국의 시공간성에 대한 문제들은 이렇듯 언제나 반복적으로 진실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 왔다.
하지만 질 들뢰즈가 말했듯, “진실은 애착이나 선의로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비자발적
기호(signs)에 의해 배반당한다.”(17) 정부가 정치
운동을 통제하고 문화 검열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호들이 존재한다. 미지의
얼굴들, 시공간적 불일치의 징후로 영구히 순수한 상태로 남게 된, 이젠
존재하지 않는 이 얼굴들은 이제 미디어에서 희미하고 뭉개진 순간들로 조작되었다. 과거와 현재에 머무르고
있던 정동의 흔적이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다. 이처럼 미디어화된 기호들은 우리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대신, 영구히 잃어버린 시간을 끊임없이 목도하며 재구성하게 하는 날카로운 고통을 안겨준다.
현실이라는
감각이 문화의 물질성을 구현하기에, 늘 일상의 감정에 되돌릴 수 없는 상실감을 안기며 생존과 무의미함이라는, 이미 서사가 증발해 버린 두 모순된 순간만을 만들어 낸다. 강서경은
특정한 시공간성 내에 존재하는 내러티브는 과거, 현재, 미래
안에 위치한 세밀한 주체의 상황성(situatedness)을 앞으로 나아가게도, 이를 훼손할 수도 있는 잠재력을 창조해 낸다고 언급한 바 있다.(18) 〈검은자리
꾀꼬리〉에서, 강서경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만들어, 시간이
결국 미래를 향해 흐르게 하려는 우리의 의도를 반영하려는 움직임과 공명한다. 기억과 외상에 관한 관념들은
욕망, 삶과 죽음을 출발과 끝으로 상상하려는 행위, 상실/탈구된 시공간, 억압과 소멸, 부재와
상실 등 여러 가지 기호를 통해 드러난다. 〈검은자리 꾀꼬리〉에 드러나 있는 이런 기호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것이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기호인 것과는 관계없이, 현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특정 시공간성 안에서 영속하는 우리의 반복 외상 기억을 이해하는 중요한 의미들을 부여한다
.
코다: 미래 기억의 아카이브
우리는
어떤 이들, 어떤 것으로 이뤄졌기에 동시대인들인가? 동시대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조르조 아감벤(20)
조선의
모든 무용 가운데 춘앵무는 궁중 무용과 예절의 미학적 핵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최고의 안무로 여겨졌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으로 조선의 계급 제도와 노비제가 폐지되고 기생이라 불리며 활동한 전통 무용수들과 이들을 훈육하고
관장하던 기관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해체되면서, 전통 예술은 쇠락하고 공연자들은 사라졌다. 그리하여 춘앵무 또한 역사 속에 사라져 갔다. 기생으로 활동했던
무용수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이 일제 식민 기간 중 전통 예술을 근근이 이어 나가려는 시도를 펼쳤다.(21) 해방
후 1969년, 국립영화제작소는 감독 미상의 선전 영화 〈춘앵무〉(1969)를 제작했다. 희귀한 문화 영화인 〈춘앵무〉는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나이든 기생이 개인 자산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신탁 은행에 위탁해 해방 후에도 경제적 안정을 지키고 안정적으로 딸에게 전통 무용을 전수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이 영화는 박정희 독재 치하 압축적 근대화 과정과 경제 성장을 위해 개인 자산을 국가 소유의 은행에 맡길 것을 독려하고자 만들어진 선전 선동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의 플롯과 시퀀스, 내러티브는 춘앵무와 기생에 관련된
잊힌 기억을 생생하게 환기시키고, 춘앵무를 기록한 아카이브 자료 영상들과 여성 무용수들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늙은 기생의 독백이 생생히 그려지는데, 그녀는 자신의 길고 복잡한 과거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내
마음은 이제 홀가분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딸에게 새로 마련한 꾀꼬리 같은 노란 빛 춘앵무 옷에 색동
한삼을 입히고 내가 썼던 화관까지 씌우고 춤추게 했습니다. 그 후에 난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물론 딸은 몸부림치며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난 저승에서라도 딸에게
떳떳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승에서나마 딸의 춤이 한껏 빛을 내기를 바라며 평소 내가 하던
말이 항상 딸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기를 빌었습니다. 발은 땅에서 뜬 듯이 보이지 않게 내려와 걸어라. 몸은 가볍게 놀리되 무게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 웃을 때는 살짝, 우아한 절정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둥우리로 나가는 제비의 맵시
같은 동작을 해야 한다. 내 마음이 아름다워야 움직이는 몸도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독재
치하에서 진행된 근대화의 한가운데서, 잊힌 전통 안무를 기억하는 계승자인 딸에게 스스로 떳떳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를(22) 인용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과연 누가
한국의 과거를 대변하고 있으며, 누가 미래 기억의 아카이브를 계승하는 후계자가 될 것인가?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로부터 미군 주둔지 성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하위
주체들(subaltern)의 소외된 목소리는 늘 “ 젠더와
인종 문제에 기반한, 해결되지 않은 참극에 대항하는 초국가적 페미니즘”(23)
이 발하는 집단적 저항성의 상징이 되어 왔다. 사회학자 양현아에 따르면 이러한 증언들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여 스스로의 해석력을 통해 촉발된 자기 재현의 서사이며, 이러한 서사의 반복은
결국 공식적 역사 기술에 대항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시의 역사를 불러내고 재영토화하게 된다.
동시대성에
대한 강서경의 개입은 〈그랜드마더타워〉 (2011)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할머니를 그려 낸 초기작에서부터
비롯된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고 언급한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강서경은 자신만의 시각적 문법을 적극 활용한다. 할머니의 개인적
기억과 삶은 식민에서 탈식민에 이르는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며 벌어진 격변기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다. 할머니와의
친밀한 대화와 그녀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시각화된 〈그랜드마더타워〉는, 서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화전태를 펼쳐 보이듯, 손녀 앞에서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끝까지 위엄을 지킨 할머니의
존재감을 그려 냈고, 이후 강서경 작품에 두루 걸친 예술적 비전에 있어 피와 살 같은 존재론적 골격이
되어 주었다. 소멸해 가는 할머니의 존재는 작가에게 단지 전근대의 사라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자의 상실을 뜻하기도 했다. 할머니
연작을 통해 선보인 기억술의 장치(mnemonic device)로서의 미술은 한국 근현대사의 의미, 특히 여성의 삶이 지닌 가치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강서경은 할머니의
관점이라는 독특한 렌즈를 통해 개인적 기억을 공식적 역사 서술로 확대시키고, 과거의 사라져간 목소리를
근대성의 증거로 재활용한다. 따라서 〈그랜드마더타워〉는 모라, 정, 화전태라는 강서경 고유의 주제들을 두루 아우르며, 독특한 정동적
시공간성에 대한 작가의 비전을 반영하는 하나의 원형물로 작동한다. 이처럼 강서경의 개념적 회화가 보여
주는 스펙트럼의 핵심인 기억술로서의 예술 행위는 구성적 자기 전치(self-displacement)와
예술 수행성의 폭넓은 변주를 통해, 한국에서 주체성과 보기의 방식(way-of-seeing)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내재한 다양한 담론들을 이끌어 내는 유용한 예술적 문답과 예비적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
(1)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 작업 시 야외에 앉아 풍경을 직접 바라보며
화폭에 옮겼다. 이는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이 인공적인 실내 조광을 벗어나 야외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플랭에르(en plein air), 즉 외광파(外光派) 회화보다 200 년이나 앞서 진경산수화 기법에서 먼저 확립된 것이다.
(2)상호매체성(intermediality)은
서로 다른 매체를 참조함으로써 매체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베르너 볼프는 이 용어를 정의하면서 개별 텍스트, 필름,
퍼포먼스, 대중문화 등 “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는
한 가지 이상의 매체가 서로 얽힌 어떠한 문화적 현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용어”라 언급한 바 있다. Werner Wolf, 『The Musicali zation of
Fiction』(Amsterdam: Brill Rodopi, 1999), 36.
(3)고려 속요, 고려
가요 혹은 고려의 노래라 불리는 이 양식은 고려 왕조 (918–1392) 시기에 만들어진 구전 문학
형식이다. 한문 표기 방식인 향찰을 활용해 신라 시대에서 고려 초까지 유행한 또 다른 구전 문학 형식인
향가와 마찬가지로, 고려 속요는 특히 고려 중기와 말기에 유행하였다.
고려 속요 대부분은 이후 한글로 쓰였고, 조선 시대까지 구전되었다. 고려 속요는 연의 가운데나 끝부분 후렴구에 다른 멜로디를 도입해 음조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4)Walter J. Ong, 「Print, Space
and Closure: Hearing- Dominance Yields to Sight Dominance」,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London: Routledge, 1982/2002). 한국어 번역본은 『 구술문화와 문자 문화』( 임명진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2018)를 참조할 것.
(5)옹이 전개한 이차적 구술성에 대한 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전자 매체가 시공간을 확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점이다. “이처럼 새로운 구술성은 참여를 요한다는
점, 공동체적 감각을 증진하는 것,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것, 심지어 공식을 사용하는 점에서 예전의 구술성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더 의식적이고 더 자의식 강한 구술성으로, 영구적으로
장치의 대량 생산과 가동뿐 아니라 사용에도 필수적인 쓰기와 인쇄의 사용에 기반한다.” Ong,
『 Orality and Literacy』, 133.
(6)Ong, 136.
(7)데이비드 테는 태국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국가적 전통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술은 과거에 대해 언제나 과거가 그 주제나 대상이 되거나, 과거가 운용방식에 내재하는, 두 가지 과거를 마주하는 이중적 움직임을
보여왔다.” 데이비드 테, 「 위조화폐: 날조된 통화로서의 전통」,
Tradition (Un)realized: 국제 심포지엄』(서울: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5), 115.
(8)푸코에 따르면, 디스포지티프는
단순히 기술적 장치(apparatus)를 의미하지 않는다. 디스포지티프란
오히려 담론, 제도, 철학적 윤리적 진술과 같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이뤄진 하나의 체계로서 긴급한 필요에 대응하는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나타낸다.
「The Confes sion of the Flesh」,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ed. Colin Gorden (New York: Pantheon Books,
1980), 194–228 .한국어 번역본은 『권력과 지식』( 홍성민 146옮김, 서울: 나남출판, 1995) 참조.
(9)화문석은 신라 왕조(기원전 57 년– 기원후 935년)에서 유래하여 갈대, 사초, 짚
등을 수공으로 엮은 돗자리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모란, 매화, 호랑이, 용, 봉황의
형상이 수놓아져 있다. 〈검은자리 꾀꼬리〉 (2018)에서는
화문석이 왕족을 위해 상연된 춘앵무를 위한 제한적 공간으로 존재한다.
(10)박은 궁중 제례 음악에서 전주 부분의 시작을 알리는 타악기다.
(11)춘앵무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서인 『
순조기축 진찬 의궤』 (純祖己丑進饌儀軌, 1848)에 따르면, 춘앵무는 1649년부터 존재했으며 효명세자의 후견으로 개정되고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Moon Il-ji, 「Ch’unaengjŏn (Nightin gale Dance), a Korean Court Dance」, 『Yearbook for Tradi tional Music』 vol. 15 (East Asian Musics, 1983), 71–88쪽.
(12)‘궁중 무용의 꽃’으로
칭송받고 있는 춘앵무는 가장 다양한 안무 패턴과 더불어 과교선(過橋仙),
낙화유수(落花流水), 대수(擡袖), 도수아(掉袖兒), 반수수불(半垂手拂), 번수(飜袖), 화전태(花前態) 등 우아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유일한 춤으로, 여섯 자(尺)의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자’는 한국의 전통적 길이 단위로, 한 자는 약 3 분의 1 미터이다. 따라서
여섯 자는 2 제곱미터에 해당한다.
(13)영산회상은 불교 음악에서 유래한 정악 레퍼토리로, 일곱 단어로 부처의 설법을 영창하여 부른다. 평조회상은 영산 회상의
다른 버전으로, 네 음계 낮춰 연주된다. 평조회상은 주로
궁중 무용인 춘앵무와 대금 독주에 곁들이는 음악으로 쓰였다.
(14)무용수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화문석 위에서 버선만 신은 채 통제된
춤사위를 밟았다. 강서경의 작업과 실제 공연에서도 퍼포머들은 양말을 신지 않고 단색으로 이뤄진 단순한
복장을 입는다. 무용수들은 앵삼이라 불리는 노란 의상을 입고 족두리를 썼다.
(15)강서경과 마리아 린드의 대화
(192 쪽) 에서 발췌.
(16)세월호 참사로도 불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다. 무려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들 대부분은 안산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 이렇게
벌어진 참사는 정부의 노력 부족과 책임 회피, 충분히 예방 가능한 재난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가 악재로
겹쳐 발생한 대비할 수 있었던 재난으로 여겨졌다. 이 사건은 2014년부터 2017 년까지 이어진 촛불 시위로 전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고, 세월호
침몰을 초래한 과정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을 밝혀내고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할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합법적 요구를 끌어냈다.
(17)세월호 참사로도 불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다. 무려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들 대부분은 안산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 이렇게
벌어진 참사는 정부의 노력 부족과 책임 회피, 충분히 예방 가능한 재난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가 악재로
겹쳐 발생한 대비할 수 있었던 재난으로 여겨졌다. 이 사건은 2014년부터 2017 년까지 이어진 촛불 시위로 전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고, 세월호
침몰을 초래한 과정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을 밝혀내고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할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합법적 요구를 끌어냈다.
(18)“나아가, 그 움직임의
과정은 영상이라는 공간을 통해 기록됩니다. 이것이 작업을 위한 플랫폼으로 작동하기를 희망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적 생각과 목소리를 구현할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제 작업이 서 있는 지점이며, 작업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에 또 다른 곳을 향해 움직여 갈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강서경과
마리아 린드의 대화(196쪽)에서 발췌.
추상적 그리드와 프레임으로 이뤄진 강서경의 개념적 회화는, 관람자와 조각된 오브제들의 존재가
동시대적인 것과 낡은 것, 일시적인 것과 미래 기억의 집적으로 영구히 존재하는 정동적 움직임 간의 양태라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시공간성을 통해 드러난다.
(19)Giorgio Agamben, 「What Is the Contemporary?」, 『What is an Apparatus? and Other Essays』(
Palo Alto: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9), 53. 한국어 번역본은 조르조 아감벤·양창렬, 『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서울: 난장,
2010) 을 참고할 것.
(20)일제 식민지 점령 기간(1910–1945)
중에는 궁중 무용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전수되고 있는 궁중 무용 안무는
다섯 개에 불과하다. 처용무( 處容舞), 포구락( 抛毬樂), 검무(劍舞), 무고(舞鼓), 춘앵무(春鶯舞)가 바로
그것이다. 이 춤들은 주로 교방(敎坊)이라 불린 공연장에서 상연되었다.
(21)Dipesh Chakrabarty, 「Postco-loniality and the Artifice of History」, 『Representations』
37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2), 1–26.
(22)Hyunah Yang, 「Finding the
“Map of Memory”」, 『Positions』 16.1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8),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