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 2008년 이후의 작품을 보면 등장하는 이미지, 표현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가 그리는 게 아니라 이미지들이 자란다는 느낌을 받았고 화면의 전지자가 되고 싶어 기호 문자, 모양 자, 드릴의 매뉴얼 등으로 화면을 구성하기 시작’한 시기인 것 같다. 작가가 완벽히 계획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한 자동 발생은 불가능하다. 사실 2007년까지의 작업도 충분히 계획적으로 보인다. 정갈해 보일 정도이다.
이에 대해 ‘욕망의 통제나 억압’처럼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시각적인 부분에서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미감이나 취향에 맞게 형상과 먹의 표현을 조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엄격성,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통제한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꽤 많다.
LSJ : 내 작업은 자동 발생에 대한 작업이지만 결과물이 자동발생적인 그림은 아니다. 이미지를 기술하듯 그려내는 과정은 밑그림이나 계획 없이 점 하나에서 시작하므로 자동발생적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완성을 염두에 두며 그리는 이상 자동 발생이라는 것은 과정에 붙이는 이름일 뿐 결과가 될 수 없다. ‘매뉴얼의 복수’ 연작(2010)을 예로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매뉴얼의 복수’는 ‘낯선 명절’ 연작(2009)에서부터 시작한다. (1)
나는 ‘눈밭의 비겁자’ 연작에서 도입했던 재생과 일시 정지 기호에 보쉬(Bosch) 드릴 사용 설명서에서 채집한 회전, 주의 기호 등을 더해 기호로 구축된 풍경의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살을 붙이듯 자동발생적으로 이미지를 그려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다. (2) 이후 완성한 그림을 180도 회전시켜 위에 얇은 순지를 덮어씌우고 골조가 된 기호 외의 이미지를 전사했다. (3) 전사한 이미지들에 다른 기호들을 삽입해 풍경을 만들었다. (4) 이 과정을 반복해 9개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렇게 세 개씩 이미지, 배경, 기호로 구분해 채색하는 부분을 달리하는 연속하는 3세대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 각자 다르게 반응하는 풍경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자동발생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관성적으로 그려지는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래서 ‘낯선 명절’ 연작에서 내가 그린 이미지들 중 유사한 패턴들을 채집하여 26개의 모형(template)을 만들었다. 나에게서 자동발생적 혹은 관성적으로 나오는 이미지들을 표본화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을 조합해 하나의 밑그림을 만들었고, 그것이 ‘매뉴얼의 복수’ 연작의 모체 화면이 되었다. 나는 이 모체 화면을 0으로 삼고, 가로선과 세로선으로 나누어 크롭(crop) 1, 2, 3, 4로 삼았다. 그리고 0(모체 화면)과 크롭 1, 0과 크롭 2, 0과 크롭 3, 0과 크롭 4로 조합한 화면을 모체 화면 하나와 그로부터 파생된 절반의 화면과 모조리 중첩해 하나의 화면을 만들었다. 내가 정한 원칙과 방법론에 따라 수행하면 완성이 되는 그림을 추구했지만, 사람의 손과 눈이 하는 일인지라 절단면이 중첩될 때의 어색한 연결 부분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결국 나의 조형적인 미감과 선택에 따라 조율하고 자연스럽게 조합하며 그리게 되었다. ‘매뉴얼의 복수’ 연작에서 나는 완벽한 통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내가 상정한 규칙을 거스르는 모순과 오류에 관한 질문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 완성의 지점, ‘자동발생적’, ‘수행’ 모두 어떻게 난입하고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오류, 모순, 변칙과 조율, 균형, 타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내가 만들고, 내가 지키기로 한 매뉴얼을 스스로 깨면서 ‘자율’이라는 것에 관해 질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