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b. 1989)은 근원 공간과 정체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사유를 바탕으로 추상 조형과 설치 작업을 전개해 왔다. 작가는 고정된 땅에서 흩어지는 존재들의 움직임과 경로를 탐구하며, 물질과 신체가 맞닿으며 발생하는 촉각, 소리, 반복과 수행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언어로 삼아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다.


이소영, 〈미로〉, 2022, 석기질 점토, 나무, 가변설치 © 이소영

이소영의 작업은 우리가 뿌리를 둔 공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물리적 공간과 가상공간이 뒤섞인 오늘날, 주체에게 ‘고정된 장소’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져오며, 점유와 이동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움직임과 경로를 탐색해 왔다.


《코라(Chora)로의 회귀》 전시 전경(김세중미술관, 2019) © 이소영

2019년 김세중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코라(Chora)로의 회귀》에서 이소영은 ‘코라(chora)’라는 여성적 공간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풀어나가고자 했다.
 
이소영은 여성성의 의미를 해체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강박을 주체적으로 대면하고자 하였다. 대상의 의미를 분열시키는 예술적 과정을 통해 표현한 여성성은 새로운 관점과 개념으로 나타난다


《코라(Chora)로의 회귀》 전시 전경(김세중미술관, 2019) © 이소영

여기서 여성적 공간으로 제시되는 ‘코라’는 프랑스 철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발전시킨 개념으로, 정체성의 명확한 경계를 나누기 이전의 원초적 공간을 의미한다. 코라는 어머니의 자궁이 태아의 발생과 성장을 위한 임시적인 터를 마련하는 것처럼, 수용적이고 유동적인 생성의 장(場)이다.
 
이소영은 코라라는 여성적 공간을 주체의 원초성이 재현되는 힘이자 주체의 정체성이 해체되는 공간, 그리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타자들과 뒤섞이면서도 자신과 차이를 확보해 나가는 상호주체적 삶의 방식으로서 재해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탯줄과 배꼽, 어머니의 젖가슴을 상기시키는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땅이라는 또 다른 원초적인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흙과 작가의 신체가 반복적으로 맞닿으며 만들어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배꼽 간격 – 장소의 기록》 전시 전경(CoSMo40, 2020) © 이소영

이듬해 열린 개인전 《배꼽 간격 – 장소의 기록》에서 작가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와 그 장소를 정체성의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꼽’이라는 시각적 기호로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게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와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는 일상과 더불어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맞이하였고, 따라서 관계 맺기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꼽 간격 – 장소의 기록》 전시 전경(CoSMo40, 2020) © CoSMo40

“분산적 형태의 분절된 우리가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그것은 과연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유동적이고 분열된 모습의 공동체는 개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것은 또 다시 우리의 범주로 통일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와 같은 의문들을 시작으로, 전시 《배꼽 간격 – 장소의 기록》은 ‘우리 동네’라는 장소를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변화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배꼽 간격 – 장소의 기록》 전시 전경(CoSMo40, 2020) © CoSMo40

태초에 공간화된 몸에는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흔적인 ‘배꼽’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비롯하였으나 분리되어 남겨진 배꼽처럼 ‘우리’의 간격은 미묘하게 허물어지지만 하나로 융해될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몸과 공간을 매개로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이소영은 공동체로서의 ‘우리’와 ‘나’라는 정체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공간 안에 모으는 동시에, 가장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몸’의 부분을 하나의 오브제로 표현하여 도시와 공동체,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고정된 관계를 다시금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배꼽 간격 – ‘우리’의 불확실성》 전시 전경(예술공간 트라이보울, 2020) © 이소영

이처럼 여성의 몸을 작업의 소재로 차용하는 것에 대해 작가는 프랑스 여성주의 철학과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적 글쓰기’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적 글쓰기란 기존의 사회구조, 언어들의 고정된 체계를 다시 쓰는 방법을 의미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으로 재현되는 여성의 육체는 기존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를 묶어 두는 사고의 체계를 자유롭게 열어주는 일종의 장치가 된다.
 
이소영은 이러한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고정된 의미들을 해체하고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작업들을 제시하며, 개인의 정체성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사유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자 했다.


이소영, 〈Unrooted Pots_1〉, 2021, 세라믹, 각 8x8x20cm (2점), 7x7x10cm (2점), 가변설치 © 이소영

나아가, 2021년 개인전 《Unrooted》에서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뿌리 내리는 공간과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묻는 작업을 ‘화분’이라는 오브제를 매개로 풀어나갔다.  
 
장소의 감각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경험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장소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적, 사회문화적 요소들로 구성된 총체적인 공간을 의미하며, 주체의 경험과 감정, 존재의미 등의 개입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소영, 〈Unrooted_2〉, 2021, 세라믹, 각 7x7x5cm, 가변설치 © 이소영

이소영은 우리가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장소를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의 차원에서 나아가 주체의 존재의미에 따라 가변하고 이동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전개된 전시 《Unrooted》는 식물이 어느 곳에서든 이동하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상적 사물인 ‘화분’을 매개로, 존재의미의 근간을 고정된 지점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화분으로부터》 전시 전경(인천서구문화회관 아트갤러리, 2022) © 이소영

여기서 화분은 존재의 좌표두기를 새롭게 시각화하는 오브제로 기능하며, 뿌리 내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능동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각자의 뿌리를 놓아둘 장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전시 《Unrooted》에서 시작된 화분 작업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분양되어 각자의 생활 공간 속에 스며든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모으는 ‘Unrooted’ 프로젝트(2022)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이소영, 〈부서지기 쉬운 도시 1〉, 2023, 백자, 석기질 점토, 나무 파렛트, 가변설치 © 이소영

한편 이소영은 개인전 《부서지기 쉬운 도시》(공간 불모지, 2023)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변화와 순환의 과정을 흙을 이용한 조형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오늘날의 도시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화려하고 견고해 보이는 한편, 끝없는 재개발의 굴레 속에서 기존의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소멸과 생성의 순환에 따라 이동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소영, 〈부서지기 쉬운 도시 2〉, 2023, 백토, 아크릴 수조, 400∅ x 120(h) cm © 이소영

이소영은 우리와 우리 주변을 이루는 흙의 순환에 주목하며, 도시라는 장소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의 유약함을 드러냈다. 가령 흙을 이용해 벽돌과 같은 건물의 요소를 재현하여 쌓아 올리고, 이를 다시 부수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가게끔 했다.
 
이러한 작가의 흙 작업은 영속적인 형상을 이상으로 삼아 온 기존의 조각의 전통과 달리, 시간과 소멸을 조각의 중심부로 끌어들이며 형상이 무너지고 다시 뭉쳐지는 사이에 남겨진 움직임의 흔적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소영, 〈부서지기 쉬운 도시 2_progess_5〉, 2023, 백토, 아크릴 수조, 400∅ x 120(h) cm © 이소영

이러한 과정 속에 놓인 형상을 탐구하는 작업은 2025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에 입주하며 더욱 확장되어 나갔다.
 
그 일환으로 열린 개인전 《끝난 길 만들기》(스페이스 빔, 2025)는 도로의 종료 지점, 항만, 제방, 갯벌 등 인천의 경계지대를 탐색하며 발견한 형상의 움직임과 리듬을 조형 언어로 포착한다.
 
이소영은 인천의 풍경과 사물의 건축적 요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흙을 빚어 조각을 제작하였다. 그리고나서 조각을 부수고, 다시 짓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형상 이전의 움직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소영, 〈부서지기 쉬운 도시 3〉, 2024, 영상, 10분 © 이소영

이와 같은 작업에서 조각은 완결된 결과물로 존재하기보다, 흙이라는 물질이 생성과 소멸,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한다. 따라서 균열과 침식, 붕괴와 재결합의 물질적 운동은 작품의 형식을 넘어 그 자체로 내용이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끝난 길’이라는 공간의 이미지를 형성 이전의 상태로 반복하여 되돌려 보는 시도를 함으로써, 과정의 움직임과 리듬, 그리고 형성의 시간 자체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소영, 〈Let Me Go Somewhere〉, 2023, 석기질 점토, 가변설치 © 이소영

이렇듯 이소영은 기존의 체계를 허물고 다시 새롭게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경계를 공유하는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작업을 통해 묻는다.
 
물질과 신체의 반복적인 접촉과 마찰을 통해 전개되는 그의 작업은 삶의 공간과 사회 속에서 수많은 존재들과의 만남과 충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고 소멸하는 관계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주체’를 완결된 존재가 아닌, 관계와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유동적 상태로 제안한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어디로부터 탈주하고 이동하며 새로운 경로를 그려 나간다. 삶이 그리는 길은 어떤 목표나 지시 대상으로서의 길이 아닌 원초적인 움직임 자체에 명명되어지기에 종종 우리가 뿌리를 두는 근원적인 공간이란 과연 숭고하여 불변하는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이소영, 작가 노트)


이소영 작가 © 이소영

이소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도자예술전공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도자예술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끝난 길 만들기》(스페이스 빔, 인천, 2025), 《부시지기 쉬운 도시》(공간 불모지, 인천, 2023), 《화분으로부터》(인천서구문화회관 아트갤러리, 인천, 2022), 《Unrooted》(청라블루노바홀, 인천,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유리:창 | Glass: Beyond the Window》(갤러리 메일란, 서울, 2025), 《Pieces of Us》(갤러리 도잉아트, 서울, 2024), 《어느정도 예술공동체 부기우기 미술관》(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3), 《수선의 발》(갤러리아쉬, 파주, 2020), 《청주국제공예공모전》(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청주,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이소영은 New Taipei City Yingge Ceramics Museum(대만, 2026), 인천아트플랫폼(인천, 2025), 예술나루 레지던시(인천, 2024)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양구백자박물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