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린(b. 1987)은 원본과 복제, 실제와 가상, 새것과 버려진 것처럼 이분화된 범주에서 경계를 찾아내어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공예와 오브제, 영상, 텍스트 작업으로 드러낸다.
 
그는 주로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사회를 작동시키는 인식에 질문을 던지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공간에 연출하며, 작업을 통해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고 이미지를 혼합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다.


오세린, 〈모방과 속임수 No.2009-16〉(세부 이미지), 2009, 925실버, 4.6x7.4x6.7cm © 오세린

오세린의 초기 작업은 대학 시절 금속공예를 전공하며 시작된 자기 성찰적 고민을 반영한다. 동시대의 저가 액세서리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랜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수가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복제한 것들이다.
 
이처럼 대량생산되어 대중에게 빠르게 소비되는 복제품들을 보며 작가는 공예가로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유일무이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서 벗어나 소비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오세린, 〈모방과 속임수 No.2011-25〉, 2011, 925실버, 16x22.5x2.5cm © 오세린

그렇게 시작된 ‘모방과 속임수’(2009-2012) 연작은 대중의 과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싸구려 복제품들에 예술의 가치와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가짜와 진짜 사이의 경계를 실험한다.
 
오세린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짝퉁’ 액세서리를 수집하여, 이를 실리콘 몰드로 수십 개씩 복제한 다음, 다시 재조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로치와 반지를 제작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작업은 “다르기 위해 도망가고 비슷해지기 위해 쫓아가는 궤도에서 이탈해 가짜도 진짜도 아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다.


보그 코리아 2018년 8월호 커버에 등장한 오세린의 작품 © 오세린

진짜와 가짜,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경계에 있는 그의 작품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으며 고급 예술의 유통망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보그와 같은 유명한 패션잡지의 커버에 등장하고, 이후에는 작품이 등장한 패션사진이 국공립미술관에 전시되고, 고급 백화점의 쇼케이스에 진열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었다.
 
미술관, 백화점, 패션잡지, 컬렉터 등을 거치며 가짜 복제물로 뒤섞인 오세린의 작품은 고가의 작품이 되고, 사람들은 이것을 진짜라고 믿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오세린,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2011-2021, 황동, 24K 금도금 © 오세린

이에 대해 심소미 독립큐레이터는 “유통을 거듭하며 의심 없이 고급미술로 치장되어 나가는 싸구려 복제품의 여정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성공적인 자기 신화를 상기시킨다”며 “이는 가짜마저도 진짜로 전환시키는 자본의 구조로부터 추동된다”고 평했다.


오세린, ‘액세서리 기행’ 시리즈, 2016, 피그먼트 프린트, 42x29cm © 오세린

이후 오세린은 유명 브랜드가 소비되는 상하이와 홍콩의 명품 거리, 그리고 전 세계로 유통되는 저가 액세서리의 생산지인 베트남과 중국의 산업단지를 방문했다. 작가는 이 극단적 간극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하며, 현장의 모습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결과물인 사진 작업 ‘액세서리 기행’(2016) 연작과 영상 작업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2016-2018)는 공장의 기계와 사람의 손이 마치 하나의 기계 마냥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같은 디자인의 액세서리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오세린,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스틸 이미지), 2016-2018, 단채널 비디오, 10분 35초 © 오세린

영상 작업에서 액세서리의 제작 과정이 화면에 지나가는 동안, 한 남성의 목소리가 시놉시스를 이끌어 나간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거 액세서리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공장의 사장으로,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차려 전 세계로 수출을 하고 있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영상에서 “고가는 1%만 장악하지만, 전부를 장악할 수 있는 게 저가입니다”라고 말하며, 오늘날 자본주의 유통시장의 시스템을 드러낸다.
 
사회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생존하려 애쓰는 개인의 욕망과 함께, 진짜보다 더 리얼하게 우리의 삶의 표면과 욕망을 장악한 현시대 자본주의의 현실을 담고 있다.


오세린,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스틸 이미지), 2016-2018, 단채널 비디오, 10분 35초 © 오세린

오세린은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 속 생산자-판매자-소비자 사이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하며, 가짜가 진짜인 생산 시스템, 생산이 곧 소비인 사회의 구조에 접근해 나갔다.
 
그가 다루는 싸구려 액세서리들은 오늘날 소비, 소유, 권력에 대한 환상의 산물이다. 한편 영상에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등장하는 공장 노동자의 무수한 손들은 이 환등상 아래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실체를 드러낸다.


오세린, 〈베트남 프로젝트: 메이킹 필름〉(스틸 이미지), 2018, 단채널 비디오, 5분 4초 © 오세린

그리고 2018년, 중국과 베트남의 공장을 오가며 그곳의 사람들에게 “’진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오던 작가는 한 액세서리 공장의 대표로부터 ‘유니크’한 디자인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대가로 그 공장의 모든 설비와 노동력을 무상으로 이용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시작된 ‘베트남 프로젝트’(2018)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액세서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들이 몰려 있는 동반산업단지에서 전개되었다. 공장들의 일부는 자칭 ‘카피캣(copycat; 오리지널 제품을 베껴서 비슷하게 흉내 내 만드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데, 어떤 브랜드의 상품이라도 일주일이면 대량 복제가 가능하다.


오세린, 〈베트남 프로젝트 메이드 인 베트남 (01-06)〉, 2018, 황동, 아연, 모조 다이아몬드 © 오세린

애초에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실험해 온 작가는 본인이 만든 원본 디자인을 준비해 이것이 대량생산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관찰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원본과 결과물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키웠다. 예를 들어, 원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술품 컬렉터로부터 다이아몬드와 진주, 유색 보석 등을 대여받아 18K 금과 함께 세팅했다.
 
베트남 공장에서는 이 보석과 유사한 모조 큐빅이나 에폭시를 사용했다. 이렇게 공장에서 생산된 총 6종의 판매용 샘플은 한국에서 열린 개인전 《반짝임을 나열하는 방식》(세움아트스페이스, 2018)에서 원본과 함께 전시되었으며, 샘플의 일부는 공장에 남겨졌다.


《숲 온도 벙커》 전시 전경(바이파운드리, 2022) ©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한편, 2022년 바이파운드리에서 열린 개인전 《숲 온도 벙커》에서 오세린은 아연 광산과 열목어를 둘러싼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을 도자와 3D 프린팅으로 구현한 조각 작업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작업은 2020년 재료 탐구를 위해 방문한 경상남도 봉화에서 아연 광산의 부흥과 쇠락의 과정에 교차하는 낙동강 열목어의 이야기를 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숲 온도 벙커》 전시 전경(바이파운드리, 2022) © 파운드리 서울. 사진: Kyung Roh.

광산 개발로 인한 환경 오염과 서식지 파괴로 절멸했던 열목어를 되살리기 위해 수년간 한강 열목어를 이식하는 열성적인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성공을 확신했지만, 알고 보니 오늘날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열목어는 방류된 한강 열목어가 아닌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낙동강 열목어라는 이야기이다.
 
자원 개발과 생태 복원을 둘러싼 인간의 의지와 욕망, 그리고 인위적 노력들을 무효화하는 반전의 결말을 따라가면서 작가는 ‘열목어들은 사실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다만 그 세계에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것일 뿐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오세린, 〈광산의 녹는점〉, 2022, PLA, 아크릴 페인트, 글레이즈드 세라믹, 58x56x52cm © 오세린. 사진: Kyung Roh.

이러한 가설과 함께 오세린은 살아가기에 적합한 깊은 숲과 계곡물의 서늘한 온도가 되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낙동강 열목어들이 몸을 숨겼을, 그리고 지금도 인간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삶의 터전이 옮겨진 한강 열목어들이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어느 틈새”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도자와 3D 프린팅이 결합된 조각들로 형상화했다.
 
조각들은 이질적인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진 두 부분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의 하단부는 비정형의 모양으로 빚은 도자로, 상단부는 게임이나 영화에 쓰인 오픈 소스 공간 모델링 데이터를 수집, 결합, 변형하여 출력한 3D 프린팅 매스(mass)로 이루어졌다.


오세린, 〈흐르는 숲〉, 2022, PLA, 아크릴 페인트, 글레이즈드 세라믹, 35x44x35cm © 오세린. 사진: Kyung Roh.

자연적 재료와 인공적 재료, 유기적 형태와 직선적 형태, 유약의 매끈한 광택감과 도료 입자의 사각거리는 반짝임까지, 하나의 작품 속에서 맞부딪히며 공존하는 상이한 요소들은 낯설고 신비로운 감각적 인상을 생성하는 한편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보여지는 것과 그 이면을 오가며 전개되는 작가의 상상을 입체적으로 반영한다.


《Neo-Animism》 전시 전경(THE THIRD, 2026) © THE THIRD

이렇듯 오세린은 현장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영상, 사진, 텍스트 작업과 함께 금속, 흙, 밀랍, 3D 프린팅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기존의 통념을 관찰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익숙한 대상을 기존의 인식 구조로부터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이분법적 범주와 같은 사회적 기준들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분법의 단단한 경계를 허물어 낸 자리 위에 지어 올린 오세린의 작품들은, 그 틈새에 감추어진 질문들과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며 ‘반짝거림’ 이면의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우리 주변의 사물이 특정 지역과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러 욕망 사이에 얽혀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그 안에서 충돌하는 여러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사이에 작가로서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오세린, 서울문화재단 인터뷰 중)


오세린 작가 © 월간도예

오세린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디자인학부 금속공예전공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에서 금속공예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개인전으로는 《숲 온도 벙커》(바이파운드리, 서울, 2022), 《반짝임을 나열하는 방식》(세움아트스페이스, 서울, 2018), 《싱글채널비디오-오세린》(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Neo-Animism》(THE THIRD, 서울, 2026), 《무인공장》(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서울, 2025),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4), 《장식 너머 발언》(서울공예박물관, 서울, 2024), 《아시아 공예 레지던시 아카이브전: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편》(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오세린은 Taoxichuan Art Center(경덕진, 중국, 2025),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창작스튜디오(서울, 2024), Babaran Segaragunung Culture House(욕야카르타, 인도네시아, 2023), 중국미술학원 국가대학과학기술원 Phoenix Creative(항저우, 중국, 2016)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Taoxichuan Art Center, 푸른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