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준, ‘Network’ 시리즈, 2022. 《어디에 지금 우리는?》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2) © 윤태준

“탈재현적 전환은 혼합된 맥락 속에서, 말하자면 상이한 것과 환원될 수 없는 것의 잠재성과 실재성 사이의 착각 속에 무언가가 남아 일어서고 있다는 것. - 빌렘 플루서, 『그림의 책』 「통합적 혼합 속에서 남아 되돌아오다」 중에서”

회화는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 복사이고, 사진은 보려는 것에서 출발한 역사가 아닐까. 시각적 모방과 기록이라는 평면 이미지가 본성의 변형을 겪는다면, 애초 ‘빛의 지연 현상’에서 비롯된 사진의 필연은 ‘보고자 하는 욕망과 같이 관련되어 있다.’

과거 카메라 옵스큐라로 함축되는 광학 장치, 다게레오 타입으로 수렴되는 화학적 장치로의 진보, 그리고 앞으로 우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보려는 욕구와 사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대한 역사를 갖는다. 따라서 ‘거인의 어깨 위에 소인(小人)이’라는 오래된 비유를 따를지 모르더라도, 오늘날의 사진은 그 긴 역사의 끝 ‘어디에 지금 우리는?’에 대해 늘 사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고민과 실험을 담은 전시는 성공미술관에서 “《어디에 지금 우리는?》”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이 전시는 사진에 대한 세 가지 축의 문제 의식으로 구성된다. “어디에” 라는 질문은 공간의 문제를, “지금” 이라는 질문은 시간의 문제를, 그리고 “우리”는 세대의 문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세부적으로 여섯 명의 작가로 구성되며, 이들에게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을 하며 오늘을 사는 작가들의 경험에 대한 반응과 답변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모두 포스트 인터넷 세대이자 이미지 원주민(digital native) 세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밀레니얼(8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출생 세대) 세대이다. 이들이 이전 세대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정보화 이후 나타난 시공의 이중성이다. 자연적이며 전통적인 물리적 시공과 인공적이며 가상적인 인공 기술적 세계가 이들의 일상 속에 동거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진의 개념 변화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강력한 함의였다. 정보화와 기호화를 통한 이미지의 변화 과정에서 사진의 가능성의 확대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진의 경험은 이번 전시 작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해석 자료로 작용한다.

이들은 공간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 구조에 따른 감각의 불안정성, 가상 모델링, 투사 이미지의 파편성, 그리고 사진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틈, 세계를 인식하는 전통적인 감각과 기술의 관련성을 다루며 스스로를 사유한다. 곧 사진은 공간과 가상의 이미지 공간의 간극, 그 간극에 주목한다. 또한 이 같은 공간의 변화는 결국 ‘지금’이라는 시대의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사진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공간을 재확인하고, 동시대성을 재현하면서 사진과의 관계는 매체 특유의 시간성과도 관련된다. 그것은 사진이 과거 물질적 매체로 존재하던 피사체와의 관계, 사진이 과거 물질적 실체에서 가졌던 시간의 속성과 관계한다. 그리고 사진 이미지 자체가 지닌 시간의 속성과 관계한다.

이는 빌렘 플루서가 사진가와 사진의 행위를 일컬은 “철학적 제스처” 라고 했던 것의 변형, 즉 "복잡한 관찰을 형식적으로" 일궈냈던 것의 변화, 사진의 매체적 특성 변화로 일궈낸 것을 말한다. 사진의 매체적, 기술적 변화와 확장은 곧 사진의 철학적 제스처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이번 전시의 작가 세대가 재현 현실에 대한 감각의 형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먼저 윤태준의 ‘Network’ 연작은 실제 촬영한 대상과 가상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디지털 코드로 변형되어 네트워킹됨에 따라 신체의 시각이 감각에 흡수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예컨대 우리가 터치 패드를 손가락으로 움직일 때 촉각은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흔히 디지털 디바이스를 확대할 때 쓰는 손의 모양과 매끈한 검은 화면 위 물방울, 그리고 그 손 위를 타고 흐르는 기이한 현상은 오늘날 이미지를 경험하는 방식의 감각적 가시화이면서, 신체와 그림자, 가상과 실제, 본다는 행위의 모호성에 대한 언급이다. 네트워크라는 고결한 망 위에 전통적 감각이 기화되고 파편화되는 과정에서 이미지는 ‘대상성을 상실한 감각들의 시각화로 집중’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도엘러의 ‘Replay(Pyramid)’는 피라미드라는 기하학적 형태가 디지털 가상성과 실감으로 갈 때 나타나는 변형을 제시하고, 이미지 자체 형태의 가능성을 재단한다. 그는 피라미드 형상에 디지털 이미지를 출력하여 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이것을 다시 3D 스캔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변형, 이를 다시 출력하는 방식의 반복으로 증폭되는 변형을 미세하게 다른 5개의 피라미드 형상들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오류의 반복’ 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그 과정은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기술적 변형을 통한 이미지의 가능성을 함의한다. 여기서 관객은 이미지 자체의 형식적 결과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세밀한 이미지의 변형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작업의 내용이 기술적 형식 자체와 일치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형식과 그 논리에 어떻게 개입하고 이를 통해 이미지의 ‘새로운 실험’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영호의 작업에서 어떤 감각적 분기점의 하나인 그의 ‘Unphotographable Cases’ 시리즈는 하나의 사건이나 기호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경험을 데이터로 추출하고, 이를 그래프로 환산한 후, 다시 조형적 형상으로 변형하여, 3D 프린터로 물리적으로 형상화 후 촬영하는 비정형적이고 불완전한 작업 방식의 결과물이다.

정영호는 하나의 사건이 현실에 불투명한 부피를 지닌 대상과 평면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 간의 ‘계보적 경계를 교차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형물들이 우리 감상을 이끌고 있는 2차원 이미지나 물리적 실체 대상이 가진 3차원의 물리적 차이의 이탈된 물질적 대상을 보는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고 했다. 마치 조각 작업을 보는 것과 같은 그의 작업은 세계를 이미지로 인식하는 보편적 방식의 배경에 대한 명확한, 명확한 시각적 이미지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실재와 이미지 접합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감각의 구조는 작가의 심미적 접합에서 비롯된 작가의 존재론적 질문과 맞닿게 된다. 그의 ‘경험한 방은 사진에 찍힌 장소가 곧 사진이 있는 곳이다’ -빌렘 플루서의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중에서- 라는 관념은 사진에 찍힌 피사체가 곧 지금 놓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경험한 방” 이라는 제목과 같이 사진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공간은 이미지의 물질로 포착되면서 동시에 실재적 공간으로서 대상을 주물로 만들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어느것이 아닌 시간’ 이다.

이현우의 〈Overlayer〉는 자신이 살았던 도시의 변화와 그 변화의 지표와 같은 영상물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사진에 투영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관련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에는 작가의 개인적 감각, 숨어있는 장소의 역사, 바다에서 육지가 된 생태와 환경 변화에 이르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가 이미지 속에 실재적으로 놓여있다. 그의 작업은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 즉 이미지 속의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주목한다.

정영호의 ‘Unphotographable Cases’ 시리즈가 하나의 사건이나 기호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경험을 데이터로 추출하고, 이를 그래프로 환산한 후, 다시 조형적 형상으로 변형하여, 3D 프린터로 물리적으로 형상화 후 촬영하는 비정형적이고 불완전한 작업 방식의 결과물은, 그 자체로 사진과 영상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기술적 변화’ 가 나타난 이후, 이번 전시의 작가 세대에게 사진에 대한 ‘전통적 고찰의 답답함’을 다루는 듯하다.

대상을 객체나 부재와 관계없이, 이들에게 ‘이미지의 평면성과 피사체는 그 자체의 기술적 구조에서 변형적인 하나의 의문 부호’ 인 것이다. 이 점은 정성윤의 〈영역하는〉 화상 탐사 로봇이 찍은 이미지를 정면으로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가진 의문에서 출발한다. 곧 사진상의 범주에서 무엇이 평면이고 입체인가 하는 점이다. 로봇이 찍은 납작한 이미지를 그라운드로 본다면, 이것을 재현 구현한 구체적 형상을 지워야 할지, 아니면 실재를 지워야 할지에 대한 난제가 남겨진다.

정성윤의 〈영역하는〉은 ‘그 구체적 형상을 지워야 할지, 아니면 실재를 지워야 할지’에 대한 난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추출된 정보의 평면성과 시간 간에 나타난 역학 관계를 살핀다. 어떤 대상이나 개념과 같은 비정형적인 것이 어떻게 촬영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적으로 표현되는 키워드들의 확장으로 표상되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가시화하여 촬영하는 것’을 통해 직접적 배압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는 이후 신체적 감각이 실내 대상을 거치지 않은 채 디지털 코드로 변환되며 지우개만 제거되어 실재와 사진 사이에 개입하는 동시대적 사진의 ‘혼종적 과정’과 결부된다.

전시는 이처럼 ‘어디에 지금 우리는?’ 이라는 질문에 여섯 작가가 각자 자신들이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의 매체적 특성과 관련하여, 사진의 매체적 변화 과정 속에서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개인/인간이 발하는 ‘불안과 고독’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한적하고 불완전한 개인/인간적 고민’을 작품으로 시도하고 설명하는 듯하다. 그들이 보는 것은 오늘날의 기술 환경 속에서 매체가 만들어내는 ‘무한 변주’의 기본 본질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사진이란 ‘어떤 매체보다도 복잡하고 예민한 시각 장치’ 이면서, ‘시간과 공간의 재현 방식’ 특유의 존재론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든’ 맞닿게 되고, 또한 반드시 겪게 되는 문제 의식의 바탕에 상존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또한 ‘단단한 카메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디에 지금 우리는?》에서 관객은 사진의 매체적 특성 고찰 너머 ‘우리’라는 세대의 현대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이 ‘실재’를 불완전하게 재현하지만,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인 그 한적하고 불완전한 ‘개인/인간적 질문’을 작품으로 시도하고 설명해 주고 있다. 그들은 ‘오늘의 기술 환경 속’ 에서도 사진의 ‘발생’ 이 신체와 정신의 결핍에서 출발하며, 이것이 ‘무한 변주’를 낳는 매체의 본질과 결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