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준(b. 1987)은 신체와 사물의 지각 방식을 재구성하는 도구로써 사진을 다뤄오며, 물질성과 비물질성 사이의 간극을 탐구해 왔다. 그는 광학적 기술의 발전이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작업을 통해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워터 포터아우토맛》 전시 전경(Space DDF, 2024) © 윤태준

윤태준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신체와 사물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일에서 출발한다. 과거에는 신체를 통해 사물을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오늘날의 경우에는 사진과 디지털 스크린 같은 매체들이 지각의 과정을 중개하며 경험의 층위를 확장하고 사물과 신체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워터 포터아우토맛》 전시 전경(Space DDF, 2024) © 윤태준

이에 작가는 사진을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를 넘어, 사물과 신체 감각을 혼합하고 변화시키는 변환 장치로 여긴다. 

사물을 데이터로 바꾸고 다시 눈앞의 물질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진의 속성을 바탕으로, 윤태준의 작업은 사물과 신체 간의 물리적 경계를 흐리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신체의 유약함, 부드러움, 중력의 부재를 드러내고, 새로운 물리적 개념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파빌리온 전시 《Spaceless + 60 Photobooks》 전경 © 윤태준

이를 바탕으로 전개해 온 윤태준의 작업은 디지털 매체의 매끄러운 표현력과 실재하는 세계의 물질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탐구한다. 

작가는 신체 감각과 데이터, 전통적 사물과 현대적 재현 방식의 교차를 통해 사진 매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실험적으로 확장하며, 사진과 사물, 디지털 스크린, 그리고 다양한 인쇄 매체를 활용한 시각적 변환과 재해석을 시도해 왔다. 


윤태준, 〈회한의 무게 #03〉, 2014, 종이에 인쇄, 가변크기 © 윤태준

한편 초기 작업인 ‘회한의 무게’(2013-2014) 연작은 기억과 시간에 대한 사유를 사진을 통해 담고 있다. 윤태준은 사진매체가 흘러가는 시간의 단면을 포착해 그 순간을 프레임 안에 동결시키는 것처럼 특별한 기억과 연관된 사물을 얼음 속으로 얼려 가뒀다. 


윤태준, 〈회한의 무게 #11〉, 2014, 종이에 인쇄, 가변크기 © 윤태준

그러나 불완전한 저장 장치인 얼음은 결빙과 해빙을 거치며 사물의 본래 형태를 변형시키고 변질시킨다. 이렇게 얼음 속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모습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움직이며 재구성되는 기억의 성질을 가시화한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이 특정한 시간에 머물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함께 생동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회한의 무게’는 작가의 내면에서 살아 숨쉬며 유동하고 있는 기억들에 대한 토로이다. 


윤태준, ‘환상계단’ 시리즈, 2017. 《2017 커뮤니티 아트 안녕하세요》 전시 전경(북서울미술관, 2017) © 윤태준

이후 윤태준은 유동하고 가변하는 과거의 기억과 사진이 갖는 진실성과 허구성을 함께 사유하며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이를테면, 2017년 작업인 ‘환상계단’ 연작에서 작가는 성북 5구를 둘러싼 산들의 역사적 맥락과 초안산에 남아 있는 사료를 조사하며, 중인·내시·평민의 묘가 함께 자리한 초안산의 독특한 역사에 주목했다. 또한 초안산의 오래된 은행나무의 구멍에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윤태준, ‘환상계단’ 시리즈, 2017. 《2017 커뮤니티 아트 안녕하세요》 전시 전경(북서울미술관, 2017) © 윤태준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사료 속 역사적 인물들을 ‘사라진 존재들’로, 자연물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고, 제례를 통해 과거의 존재들을 현재로 소환하는 위로의 퍼포먼스를 구상했다. 

나아가 이러한 개념을 오늘날로 확장해 도시 속에서 잊히거나 소외된 존재들을 비누방울 같은 망점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물성을 가진 오브제로 치환하는 이 작업은 과거와 현재, 실상과 허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윤태준, ‘낮고, 빠르게 쏘기’ 시리즈, 2019-2020. 《의문문》 전시 전경(캔파운데이션, 2020) © 윤태준

한편 2019년 이후 윤태준의 작업은 디지털 기술과 사진의 융합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사진 매체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의 평면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인 특성을 제거하고 시각적인 정보만을 남겨놓았다면, 디지털 기술은 합성과 추출, 모방과 변형 등의 가공을 통해 물질이 가진 본래의 성질을 해체한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은 곧 재현의 실재성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디지털 환경 안에서는 원본성, 항구성, 불변성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들턴》 전시 전경(공간 X Shift, 2021) © 윤태준

윤태준은 디지털 기술이 연 ‘포스트 포토그래피’ 시대의 사진에 대해 고민하며, 현실과 디지털, 물질과 감각이라는 두 이질적 영역을 연결하는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들턴’(2020-2022) 연작은 광학적인 촬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진과 3D로 만들어낼 수 있는 소스들을 함께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추출하는 작업이다. 


윤태준, 〈Twist〉, 2020, 종이에 프린트, 잉크젯 프린트, 120x150cm © 윤태준

3D 그래픽 소프트웨어에서 사진은 두께가 있는 단단한 배경이 되거나 물체의 표면으로 둔갑한다. 이후 작가는 가상의 사물을 사진과 충돌시키거나 새로운 성질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진의 여러 부분들을 조합해 하나의 사진으로 제작했다.
 
조합된 가상의 장면을 사진적 이미지로 재현함으로서, 실제 존재할 수 없는 형상을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윤태준, 〈Reflection〉, 2021, 종이에 프린트, 잉크젯 프린트, 100x125cm © 윤태준

작업에 등장하는 주요한 대상은 돌과 돌의 형상을 가진 가상의 사물이다. 우리는 손이라는 신체기관을 통해 대상을 지각한다. 손에 꽉 차는 단단함과 무게, 거친 표면의 질감을 통해 돌이라는 대상을 머리속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돌이 찍힌 평면의 사진을 볼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작업에선 돌의 형상을 한 가상의 사물과 실제 돌의 특성이 혼합되거나 대체되는 지각과정을 사진의 형태로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윤태준은 가상과 현실의 대상을 지각하고 감각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동시에, 오늘날 이미지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윤태준, ‘Network’ 시리즈, 2022. 《어디에 지금 우리는?》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2) © 윤태준

이와 같은 작업을 계기로, 윤태준은 사진의 객관적 재현성을 넘어 디지털 프로세스를 통한 다양한 감각적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이를테면, 2022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디에 지금 우리는?》에서 선보인 ‘Network’ 연작은 실제 촬영한 대상과 가상 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디지털 코드로 변환된 시각 환경 속에서, 신체의 시각 경험이 감각 전반에 스며드는 상태를 탐구한다. 


윤태준, ‘Network’ 시리즈, 2022. 《어디에 지금 우리는?》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2) © 윤태준

터치패드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 검은 화면 위의 물방울, 그리고 그 위를 흐르는 낯선 형상들은 물질과 비물질, 실제와 가상 사이를 오가는 감각적 경험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전통적 감각이 분산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시각화하며, 이미지가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매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윤태준, 〈Gaze〉, 2025, 디본드 패널에 잉크젯 프린트, 폴리카보네이트, 알루미늄 프로파일 설치. 2026 서울사진축제 《컴백홈》 전시 전경(서울시립 사진미술관, 2026) © 윤태준

나아가 2026 서울사진축제 《컴백홈》에서 선보인 ‘송신기에서 물체로(Transmitter to the obeject)’(2025-) 연작을 통해 작가는 보이지 않는 신호와 데이터가 어떻게 단단한 형태의 사물처럼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컴퓨터 스캔이나 정밀한 기계 장치를 활용해, 평평한 화면 속 이미지에 부피와 질감을 부여했다. 이에 관객은 디지털 이미지가 단지 가벼운 정보가 아니라, 몸과 감각, 현실과 깊이 연결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또한 작가는 우리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클릭하는 아주 사소한 행동들 역시 모두 데이터로 기록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우리의 몸과 디지털 기술이 이미 깊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사진이라는 도구로써 드러낸다. 


윤태준, 〈Unspeakable〉, 2025 © 윤태준

이렇듯 윤태준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 속에서 범람하는 이미지들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유통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감각과 인식이 작동하는지를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현실과 환영, 물질과 비물질, 신체와 디지털 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이제 사진은 물리적으로 완성된 고정체가 아니라, 조립과 손상을 기다리는 유동적인 데이터로 저장된다. 필름 시대의 이미지가 진실을 증거하는 '사진(Photography)'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가공을 위한 재료로 정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동시대의 사진을 더 이상 진실의 발현이라 읽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시각적 닮음만을 수행하는 데이터의 집합이자, 실체 없이 부유하는 '짙은 신기루'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윤태준, 작가 노트)


윤태준 작가 © 윤태준

윤태준은 중앙대학교에서 사진학과를 전공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순수사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워터 포토아우토맛》(스페이스 디디에프, 광주, 2024), 《미들턴》(공간 X Shift, 서울, 2021), 《우리는 미래에도 돌위에 살 것인가》(일현미술관 을지스페이스, 서울,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2026 서울사진축제 《컴백홈》(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서울, 2026), 《Technically Speaking》(Space DDF, 광주, 2025),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파빌리온, 광주, 2023), 《지금 우리는 어디에?》(성곡미술관, 서울, 2022), 《소환술》(d/p, 서울, 2021), 《의문문》(캔파운데이션, 서울, 2020), 《2017 커뮤니티 아트, 안녕하세요》(북서울미술관, 서울, 2017)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윤태준은 한미사진미술관이 주관하는 ’26/27 MH Talent Portfolio’의 최종 선정 작가로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 광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