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 Boyun Jang

모든 것은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 때가 되어 사라지고 말게 될 것에 대비라도 하듯 인간은 부단히 기록을 남긴다. 명백히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SNS를 한다. 하지만 그 존재의 증명마저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버려지거나 잊혀지고 때론 왜곡되기도 한다. 영원히 그 형태를 오롯이 가진 채 남는 것은 없다.

장보윤 작가는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이를 재현해 내는 작업을 한다. 그녀가 관심을 두는 ‘사라지는 것들’은 주로 타인의 기억에서 시작해 자신의 기억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재생산된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수집하는 버려진 기억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어떤 존재의 서사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내가 되기도 하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던 기억이 장보윤의 손을 거쳐 모두의 기억이 되고 동시에 모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존재의 부재를 현재로 불러오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무수한 나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무수한 나는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존재하는 내가 곧 과거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내가 정확히 그 과거라고 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늘 사진을 찍거나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하면서 기록한다. 장보윤은 이 점에 주목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존재하지 않는 상실된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 끊임없이 현재로 불러온다.

“시작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사진을 찍으면서부터였죠. 제가 타인의 기억을 좇기 시작한 것은 그쯤부터였을 거예요. 몇 년째 비워진 공간의 구석구석을 사진 찍으면서 끊임없이 당시의 현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그게 흥미롭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후 재개발 지역을 다니다가 버려진 필름을 얻게 되고, 버려진 일기장이나 슬라이드 필름을 줍게 된다. 장보윤은 이런 이미지들에 새로운 기억을 덧입힘으로써 그 잊혀지거나 혹은 버려진 존재들을 다시금 동시대로 끌어낸다.


장보윤, 〈Gentle Journey〉, 2009, 잉크젯 프린트, 64 x 43 cm © 장보윤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Preface of Memory: K's Slides)〉 작업만 해도 그렇다. 1968년부터 1978년까지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일본을 여행하며 남겼던 사진 슬라이드를 주운 장보윤은 이 슬라이드에 쓰여 있는 날짜와 장소를 보고 직접 그 남자의 동선을 따라 타인의 기억으로 과감히 들어간다.

“일본을 주기적으로 다녀온 사람의 기록이었는데, 기록된 동선을 따라서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표시해봤어요. 엄청난 거리를 다녔더라고요. 낡고 빛 바랜 이미지가 신기하기도 했고, 그 존재가 궁금하기도 해서 두 곳 정도를 가봤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K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글도 쓰고 일기도 쓰고 했던 것들을 모아서 작업한 거예요”

장보윤은 직접 팩스를 집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현재의 자기를 개입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존재했던 과거와 존재하는 현재를 묘하게 동시대 속에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불가능한 공존

그녀의 작업은 버려진 사진들에서 주로 시작이 된다. K의 기억을 되짚어갔던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리사(가명)라는 인물의 사진 앨범으로 작업한 〈밤에 익숙해지며(Acquainted with the Night)〉와 〈너의 첫 번째 해(Your First Year)〉 같은 경우도 비슷하다.

“미국 레지던시 마지막 날, 자주 뵙던 노인분이신데 제 작업이 흥미로웠다면서 세 권의 앨범을 주시더라고요. 한 여자아이에 관해 기록된 앨범이었는데 그 아이의 탄생에서부터 상실의 모든 과정이 담겨있었죠. 그래서 사진 속 장소들을 다시 가 보면서 작업을 하게 됐어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장보윤의 관심은 ‘경주’라는 도시로 이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수학여행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하잖아요. 경주는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관광 도시죠. 하지만 21세기의 경주는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어요. 천년 고도,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라는 화려함은 사라지고 그저 살아내기 위한 도시의 하나로 분해 있는 거죠.”

그녀의 말처럼 주요 유적들은 그대로이지만 그 주변으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경주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하며 현재에도 도시로서 존재는 하지만 서로 동일한 존재는 아닌 ‘경주’를 〈천년 고도(A Capital City of Thousand Years)〉라는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다시 이곳에서: 마운트 아날로그(Mount Analogue)〉로 이어진다.


장보윤, 〈불국사, 1988년 3월〉, 2016,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0 x 120 cm © 장보윤

닿을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내딛는 걸음

가장 최근작인 〈다시 이곳에서: 마운트 아날로그(Mount Analogue)〉에서 그녀는 그간 끊임없이 보여주었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을 총체적으로 담아냈다.


장보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스타벅스, 2016년 7월〉, 2016,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0 x 120 cm © 장보윤

“르네 도말의 미완성 소설 「마운트 아날로그」 에서 영감을 얻어서 작업한 거예요. 존재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산에 오르는 여정을 그린 소설인데,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에요. 존재하는데 아무도 가보지 않은 산에 오르는 여정이라는 게 말이죠. 한데 제게는 경주라는 곳이 영원히 닿지 못할 수밖에 없는 소설 속의 마운트 아날로그 같다고 느껴졌어요.

우리의 과거를 통해 기억하고 기념할만한 장소이긴 하지만 여전히 경주는 변화하고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천년 고도〉 때 한 작업과 〈기억 보조 장치〉 작업, 추가적인 인터뷰 영상 작업 몇 가지를 더해서 〈다시 이곳에서: 마운트 아날로그(Mount Analogue)〉를 선보이게 됐죠. 그리고 아쉬운 부분들은 책으로 담아냈고요.”

개개인의 서사 속에는 공통된 부분이 존재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할지라도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인간은 공감이라는 것을 이뤄낸다. 장보윤의 〈마운트 아날로그〉는 그 접점을 경주에 빗대어 보여주는 작업이 아닐까.


장보윤, 〈마운트 아날로그〉, 2016, 책 © 장보윤

요즘 그녀는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위해 고민 중이다. 여전히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바꿔보려는 것. 작가로서의 여정 중, 일종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셈이다.

“앞선 작업에서는 타인의 버려진 기억을 습득하고 거기에서부터 서사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존재를 증명하려는 행위의 주체자인 사람의 이야기를 이미지화하려고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잊고 있던 이미지를 다시 떠올린다거나, 혹은 존재하지만 잊고 지내는 것들에 한 번 더 시선을 돌릴 수 있기를 바라요.”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작업하고 싶은 내용에 더 적합한 매체가 사진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된 도전의 길을 병행하고 있는 장보윤 작가. 그녀가 매일 쌓아왔고 앞으로 더 쌓아갈 기억의 서사들은 또 어떤 이미지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줄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