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장보윤은 두 개의 영상물을 통해 경주라는 특정 지역에 과거형 시제를 부여한다. 35년간 택시 기사로 일해 온 남성은 경주를 스쳐간 사람들과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더듬어 회고함으로써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과거에 위치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또한 흐릿한 유튜브 동영상과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라의 달밤〉은 경주를 지난날의 도시로 끊임없이 환유하면서 현재로부터 탈각시킨다.
이렇듯 장보윤은 경주에 얽힌 기억들을 불규칙하게 호출하여, 대상으로의 순차적인 추적을 방해하고 실재와의 만남을 한없이 미끄러트린다. 또한 그녀는 추적의 대상을 한 명이 아닌, 다수로 설정하여 현장 부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택시 기사가 회상한 신혼여행 코스로 이동하면서, 불현듯 수학여행 왔던 여고생의 시선을 쫓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눈 앞에 비친 경주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한다.
이는 경주 여행이 단일시점을 쫓던 기존 작업들과 달리, 분열된 복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트를 쓰는 과정에서도 사춘기 소녀와 갓 결혼한 여성, 두 명의 목소리를 결합함으로써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다중시점∙대위법의 사용은 이곳에 머물렀던 모든 인물과 사건을 명시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유일무이한 (특정/어떤) 존재로 환원해 올라가는 의식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요컨대 장보윤은 모든 이의 기억 속에 내재해 있으나 그 기억의 실체와 대면할 수 없는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과거 경주의 모습을 비선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했던 대상이 그 대리물들로 기표화되는 과정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과거와 현재, 존재와 부재, 집단과 개인이 직조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지난 시대의 사진과 장보윤의 사진이 뒤섞여 배치된 작품 앞에서, 결코 두 개의 시간과 두 개의 시선, 그리고 두 개의 존재 상태를 구별해 낼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이러한 직조를 통해, 박제된 장소를 무한한 사건의 발생 지점으로, 분리된 역사를 살아있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리라.
대개 장보윤의 여행은 사진, 슬라이드, 일기장 등 존재를 증언하는 명백한 증거에 의해 시작된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실재와의 사후적 만남만을 용인한 채 종결되고 만다. 일전에 그녀는 작업이 끝날 때면,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비애,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진을 찍고 드로잉을 그리고 텍스트를 쓰는 재현 행위들은 이러한 절망감을 초극하기 위한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수행적 실천들은 상실에 대한 “보상 아닌 보상”이 되어 되돌아온다. 과거의 사건이 소환되고 타자의 부재가 대리 보충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열림, 즉 다층적 감각이 만들어기 때문이다. 실재는 죽었지만, 그 흔적들과 끝없이 유희할 수 있는 여행, 이것이 바로 장보윤이 제안하는 다산(多産)의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