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형, 〈평형〉, 2020, 종이에 목판화, 100x430cm © 임재형

임재형의 회화는 얼마 전까지 물리적으로 존재했지만 현재는 사라진 존재에 대한 또 다른 형식의 현현체일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이 특정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과 관련한 이미지들이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그 작업 과정은 기존의 형태와 원래의 기능을 추적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즉 대상의 표피를 추출해 냄으로써 남겨진 허물 자체의 모습을 묘사하여 원래의 물질감에 대한 또다른 감각을 작동시킨다.

그는  '허물'이라는 단어를  2020년도에 온수공간에서 가졌던 개인전 제목으로서 제시했다. (영문으로는 《Tracing on Emptiness》이라고 표기했는데, 직역하자면 '비어있음을 추적하기' 정도겠다.) '허물'은 특정 생물의 변태( 1)를 위하여 탈락된 몸의 표면 조직을 지칭한다. 이 죽은 조직은 더 이상 유기물이 아닌 상태지만, 한때 피부로서 기능하였던 과거의 시간과 존재를 증명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성장이 멈춰진 피부조직은 산화되어 바스러진다.   

2020년의 이 개인전에서 보여준  4장으로 구성된  ‘시든 붓질’(2020) 시리즈는 식물의 줄기 부분을 수채화로 묘사한 그림을 부분 확대하여 다시 종이에 재현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이미지다. 이는 대상을 묘사한 수채화를 확대하여 그 매체와 지지체의 질감까지 표현한, 말 그대로 손으로 이미지를  '전사(후)'하여 완성한 작업이다. 즉 묵직한  유화지의 요철 질감, 그리고 수채물감의 물을 머금은 부분과 붓이 지나간 흔적이 남은 부분의 농도를 관찰하여 이를 그려냈다.

그리하여 마치 흑백 사진으로 찍어낸 듯 기계적인 묘사인 동시에, 이미지가 극적으로 확대되어 실물의 형태가 추상적 도상으로 교란되어 버리는, 구상과 추상의 동시적 감각을 만들어 냈다. 대상을 그대로 보고 그리는  단순한  과정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표피적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한  절대적이면서도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했으며 원래의 대상이 또 다른 차원의 이미지로 읽힐 수 있는 존재로서 재구축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였다.

임재형의  전공이  회화  이외에도  판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전사'의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판화는  마지막으로 찍어내는 종이 매체까지 도달하기 전 원판에 먼저 그림을 그리고, 이를 판화의 종류마다 다른 각각의 과정으로 가공하며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친 뒤에야 최종 이미지에 도달하게 된다. 

임재형의 대부분 작업이 대상을 바로 그림으로 옮기지 않고 그림으로 사전 작업을 한 번 더 거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 볼 만하다. 이 중간 과정은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기 위하여 재구성을 시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사건의 직접적인 서사와 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의 교감을 삭제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즉 작은 드로잉으로 그려보거나 사진을 잘라내고 색을 조정하는 등 서사적이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이미지를 선택하고 가공하는 행위는 직접 새겨진 원판으로부터 의도한 이미지 자체만을 분리하여 기계적으로 옮기는 판화의 속성과도 닮았다. 

임재형의 작업에서 기억을 재생하고 박제하기 위한 대상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한 소멸의 상황이었다. 그가 다룬 소재 중 하나로서  2014년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무력함으로 인한 우울감을 반영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다루기 위해서 생명의 소멸을 목격하면서 느낀 격한 분노를 스스로 다스려야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 개인전에서 보여준 목판화 작업 〈평형〉(2020)은 고요한 바다 풍경이자 국가적 참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기울어지며 물속으로 잠겨가는 선박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 무력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목판 위에 바다를 새기며 표현했다. 이는 최종적으로 종이로 옮겨졌고, 여섯 개의 모양이 다른 각 지면에 검게 표현된 물 이미지의 수평을 유지하도록 연출되었다.

같은 전시에서 선보인 〈어떤 시계〉(2019) 또한 작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데, 이 작업을 마주 보며 관찰력을 발휘해 본다면 각도가 삐뚤어진 것은 사각 벽면 이미지일 뿐 현실 공간에서 보는 이에게 시계 숫자의 수직 수평은 정확히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2022 인천아트플랫폼 창제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개인전  《바다, 연기, 그늘》을 구성하는데 가장 염두에 둔 키워드는 '상실'이었다. 제목으로 제시된 세 개의 대상은 금방 소멸하기도 하며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 형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실체의 본질로부터 남겨진 표피에 몰두하며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 내었던 이전 작업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회화적 방법론 속에서 물리적으로 견고하지 않은 성질을 지닌 요소들을 빌어  '존재함과 부재함'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종 그림의 단계 직전, 최종 이미지를 결정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서 개입되는 형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원래 이미지로부터의 재구성 방식을 유지한다는 것은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 직접적 서사를 피하고자 했던 태도를 지속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전시는 임재형이 꾸준히 다루어 온 시간, 세대, 죽음, 흔적 등의 다양한 도상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구성한 서사의 기억이며 현존하는 표피를 묘사한 일련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세계적으로 위용을 자랑하던 교회의 소실, 조부모의 죽음과 남겨진 것들을 통한 회상 등 그의 현실 세계 속에 존재했던 것에 대한 막연한 익숙함과 당연함의 감정이 그 존재를 둘러싼 부재의 표식이 그의 작업을 통하여 교차하면서 상실의 의미를 들여다보게 했다. 

즉 지난 전시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사건을 통하여 개인의 감성을 반영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일상의 사건을 포함시켰다. 〈더미〉(2022), 〈발생〉(2022) 등의 회화 시리즈는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직후의 현장 사진으로부터 추출한 이미지다. 이 작업은 화재 직후의 검은 그을음에 뒤덮인 잔재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몇백년을 추앙받으며 섬겨진 건물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잔해의 풍경은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잔해이기도 했다. 이 폐허에서 작가가 떠올린 것은 외조부의 죽음이었다. 작가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인을 화장하는 날, 화장터에서 피어올랐던 연기의 잔상을 기억한다.

사진으로 남겨진 이 연기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화재 사건의 폐허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던 연기와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연기는 잠시 공기 중에 배회하다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존재로서 바로 직전까지 물리적인 존재였음을 기호처럼 인식하게 하는 현상이었다. 

또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소형의 성모 마리아상은 집에 남겨진 채 작가의 회화 속에서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개, 혹은 유령처럼 다른 차원의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연기와 같은 기호가 되었다. 할머니의 화장대 위에서 당연하듯 놓여졌던 마리아상이 거대한 사이즈의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낯선 모습으로서의 긴장감과 아우라를 생성하였고 무채색의 화면 또한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표현되는 흑백의 무채색은 현존하기를 멈춘 후 남겨진 잔상의 정서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아련한 잔상처럼 그린  〈세대〉(2022)로부터 감각할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시간과 그 시간에 존재했던 그를 혹은 그것을 또 다른 모습으로 환생케 한다. 9개의 흑연회화로 구성된 이 작품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 소년들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이다.

시간을 상징하는  '물'은 임재형의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물놀이를 하는 이 장면이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찰나일 수도 있다. 혹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닌 어른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지나간 과거를 거슬러 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에는 보여지지 않았지만, 작가의 작업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물의 풍경은 세대 간 공통적인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하며 다소 낭만적인 사변적 감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가 삭제해 온 서사를 끌고 올 또 다른 가능성의 단초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