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제18회 송은미술대상》, 2018.12.21 - 2019.02.28, 송은
2018.12.19
송은

Poster image of 《The 18th SongEun ArtAward》 © SONGEUN
2018년을 마감하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미술계 이슈들을 결산하는 기사들은 미술품 경매시장의 폭발적 성장, 차별화 없는 비엔날레들의 홍수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올 한해 중요했던 키워드로 민중미술, 신여성주의, 4차 산업혁명 등을 꼽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젊은 작가들에게 이러한 리뷰는 다소 먼 나라 이야기다.
이들에게 미술현장은 작가로서 자신의 생각과 본질적인 미적 질문을 던져 소통하고 싶은 광장이지만, 현실은 그 어떤 대질도 없이 공허한 메아리들만 웅성거리는 밀실에 가까운 곳이다. 18회를 맞이한 송은미술대상은 한국 미술계에 존재해 온 이러한 간극의 중심에 서 있다. 지금의 미술상이 갖는 의미는 한 명의 스타 작가 탄생이 아닌, 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밀실의 작가가 세계미술계, 지역미술계, 대중과의 연대를 창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을 것이다.
심사와 경쟁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내러티브와 미학적 양식을 세공하여 보여줌으로써 드러나지 않았던 현 시대 미술의 진정성 있는 화두를 제시하는 것 또한 미술상이 갖는 중요한 역할이다. 본선을 통해 선발된 4인의 후보 작가들에 대한 최종 심사 단계인 송은미술대상전은 이처럼 미술문화와 작가를 성장시키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동시대 미술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송은미술대상의 심사과정은 연 중 1차 예선, 2차 본선, 3차 최종을 거치는 동안 철저히 개별심사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 심사평이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하거나 대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뿐더러, 본 의견이 n분의 1로서 심사위원 개인의 입장을 대변할 때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을 두고 설계된 본 심사의 원래 목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1년의 기간이 소요된 심사 기간 동안 각 단계별 경쟁을 통과한 4인의 작업은 본 전시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변화했으며, 결과는 심사위원 개인의 취향이나 집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에서 발표되었다. 그래서일까? 공교롭게도 올해 최종 4인에 오른 박경률, 전명은, 김준, 이의성의 작업은 주제나 내용, 형식적 측면에서 서두에 기술한 2018년 미술계의 키워드와 전혀 겹치는 바가 없다.
필자는 이들이 미술계 트랜드를 따르거나 특정한 장르나 주제에 종속되지 않으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부조리와 예술계의 생태에 의구심을 갖고 특유의 조형언어를 발명해나간 점이 주목할 만 하다고 판단했다.
굳이 선정 작가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회화, 사진, 설치, 사운드아트 등 기존의 미술 장르가 지닌 경계나 영역을 해체하고 미술작품의 생산과 소비, 유통, 향유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는 형식실험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최종 전시에서 보여준 이들의 작업이 기존에 선보여온 작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그 혁신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Installation view of 《The 18th SongEun ArtAward》 © SONGEUN
먼저 박경률이 ‘회화’라는 전통적 매체를 다루며 시도한 전환은 미술사적 모더니즘 회화의 규범을 굴절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관객을 주체화하는 방식에 대한 미학적, 기술적 탐구이다. 작가가 ‘조각적 회화’라 명명한 설치 방식은 근대적 회화가 지닌 작가 중심적 사고방식이나 직관의 세계가 지닌 해석의 한계를 비약시키기 위해 캔버스 자체를 대상화시킨 것이다. 관객은 해체되어 있는 그림 안과 밖을 거닐며 작가가 제시해 놓은 파편화된 예술의 장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새로운 내러티브를 재구축하게 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18th SongEun ArtAward》 © SONGEUN
매체의 본질 대한 탐구는 전명은의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19세기 달리는 말의 다리 움직임을 포착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사진 이후 근대 기술 발달과 함께 사진가들은 인간의 시각이 지닌 한계, 특히 움직이는 사물이나 분위기, 감정, 에너지를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점에 도전해왔다.
전명은은 후기 디지털 시대 사진 매체를 다루는 젊은 작가로서 전통적 사진 작가들이 지녔던 운동에 대한 감각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도, 이를 사회의 숨겨진 메커니즘과 끊임없는 변화의 움직임에 대한 열망으로 전환시켰다.
〈보름달 직전의 달〉(2018)에서 작가는 여성 할례를 소재로 가부장적 억압과 오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 ‘이리코로시기’의 주인공이 극한의 절망에서 빠져 나오려는 몸짓을 포착했다. 그녀가 담고자 한 결정적 순간으로서의 “역동적 생동감”은 인류가 변화를 열망하는 에너지 그 자체로 보인다.

Installation view of 《The 18th SongEun ArtAward》 © SONGEUN
한편, 사운드 설치 작업을 선보인 김준은 인간의 청각 능력이 지닌 감각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정 장소들의 소리를 채집하고 분석해 아카이브 형태로 재구성한 그의 설치 작업은 관객이 수수께끼처럼 여러 개의 서랍이 장착된 대형 큐브 형태의 구조물을 경험하며 무수히 많은 시간과 공간의 혼재된 역사와 개인적 기억이 신체적 움직임에 의해 새롭게 구축될 수 있도록 만든다.
김준의 작업은 이러한 소리의 아카이브를 통해 왜곡된 채 기록되어 온 근대 도시와 역사의 내러티브를 변경하는 특유의 예술적 힘을 발휘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18th SongEun ArtAward》 © SONGEUN
이의성은 노동과 예술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개념적 예술의 장치를 창안해 보다 직접적으로 기존 사회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예술 생산 역시 노동의 양이나 시간에 따라 환산될 수 있는지 되묻는 이의성의 작업은 경제적 가치로서 예술 활동이 측정되는 기준의 부조리함과 이로 인해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이중 노동으로 에너지 유실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자조 섞인 탐구이다.
사실상 이의성이 작업을 통해 예술 노동의 양이 수치화되어 금전으로 환산되는 과정의 모순을 드러낸 것과 다르지 않게, 미술상이란 본래 객관적 평가 지표에 따라 우열을 가리기 힘든 특수한 분야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과 평가 기제를 통해 운영되며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은 형태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작가로서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시점에 이른 30-40대 예술가들에게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서는 통로로 기능하고, 이러한 경쟁의 기회를 통해 이들이 자신의 기량이나 행동을 증진시키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면, 본 수상 제도와 전시가 작가로서 또 한번의 확실한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은 두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나 긴 심사과정 동안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동기를 강화시켜온 참가자 전원에게 박수를 보내며, 최종에 오른 박경률, 전명은, 김준, 이의성 작가에게 응원과 축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심사 기간 동안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송은문화재단 및 로렌스 제프리스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