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ijung, 4 walls, 2021, acrylic on canvas, each 53x65cm (4piece) © Lee Mijung

여기 사물들이 있다. 웃거나 살짝 찡그린 표정의 도상들, 탐스러운 빛깔을 띤 과일과 발색이 좋은 식물, 취향에 꼭 맞는 실내를 꾸미는 데 사용되는 벽면의 장식과 패턴,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벽면의 페인트 색감까지. 그래서인지 이 보기 좋은 이미지로 단장한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적당히 세련되어 우리의 취향을 충족시키며, SNS에서부터 실제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자주 마주치는 소위 일상의 감성이라 할 것과 맞닿아 있다.

여기서 ‘적당’하다는 것은 대중적 취향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너무 드라마틱하거나, 너무 매니악하지도 않으며, 이제는 (연출된) 일상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흔히 ‘취향’이나 ‘감성’ 같은 검색어에 자주 걸리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무난한 취향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대중적인 만큼 대다수에게 이견 없이 소비되는 감각의 층위를 형성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성향을 분석했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모든 문화 상품에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치 위계가 존재한다고 역설했던 것을 떠올렸을 때 특정 집단의 강한 선호를 받는 ‘취향’이란 계급의 지표로 기능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취향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는 그의 말과 같이 사회적 분류체계에 의해 구성되는 주체들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별함으로 스스로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 탁월함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미정의 작품은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은 쉽게 눈길을 끄는 이미지의 전략을 취함으로 친숙하고 전형적인 오늘날의 감성이 대변하는 취향과 계층의 문제를 건드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휘발해버리는 오늘날의 수많은 이미지의 순환 및 소비 플랫폼의 전략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 스스로를 프로젝션하기 위한 대리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그 저변에 깔린 개별이 딛고선 오늘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그의 작업이 취향 좋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도록, 오히려 이미지의 표피적 차원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거나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 너머를 향하도록 하는 지점에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납작한 이미지와 사물의 구조적 형태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끄러짐이 그 첫 번째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미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중적 선호도의 취향, 이를테면 특정 브랜드의 광고나 이모지 등에 사용될 법한 웃거나 찡그린 표정의 얼굴, 라이프스타일지나 사람이 몰린다 싶은 카페 등지에서 볼법한 실내장식에 사용되는 톤과 패턴은 우리의 미감을 하나로 수렴하고 특정 경향에 쏠리도록 하는 오늘의 풍경을 장식하는 기호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완성도, 계산된 선의 두께, 적절한 색의 배치와 구성을 통해 성취한 표면 이미지의 매끄러움, 셀프인테리어 등에서 참조한 합리적 구조와 모듈화된 구성 방식은 이제는 익숙한 우리의 삶의 양식을 환기하며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의 작업이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일견 가구와 같은 형태를 취한 이 사물들의 형식이 기존 제품에서 추구하는 기능성이나 합목적성으로부터는 다소 동떨어져, 그저 흉내를 내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서부터이다.

이는 기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이미지와 사물이 추구하는 목적의 어긋남에서 비롯되는데, 이를테면 깔끔하게 채색된 이미지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순환, 소비되는 스킨화된 이미지를 환기함으로 가구가 지닌 기능적 구조를 극단적으로 압축, 상실하게 해버린다. 그리고 이는 그저 각을 잡아 버티고 선 듯, 기능을 수행하기엔 견고하지 않아 보이는 사물의 입체적 구조로 시선을 옮기게 하고, 눈앞에 놓인 사물이란 그저 표면의 이미지를 위해 헌신하는 조형적 배경 장치(prop)에 지나지 않는, 생산성과 소비의 논리에서 비켜난 비논리적 사물임을 깨닫게 한다. 
 
둘째로는, 이미정 작가가 사물 형태의 작업 위에 자주 입히는 특정 이미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종종 합판으로 세운 가구 구조에 마치 카툰과 같은 형식의 어떤 표정을 한 얼굴을 더하곤 한다. 이를테면, 〈Table with a hidden face〉(2018)에서는 바퀴 달린 간이 책상의 상판 아래로 머리 위에 인 또 다른 사물들의 무게가 불편한 듯 찡그린 반원 형태의 얼굴을 기입하거나, 〈Super floor〉(2018)에서는 테라조를 모방한 바닥 패턴 위에 두 개의 구멍을 뚫음으로 표정 없는 일상의 구조에 독특한 감정을 허락한다.

이러한 방식은 〈Green plate series〉(2018)나 〈Flat-pack: plaster series〉(2018), 〈Breakfast at HOME〉(2020) 등에도 적용되는데, 균일한 색감의 평평한 녹색 식물 이미지나 순백의 핏기없는 석고상에 두 개의 타원을 그려 넣음으로 새로운 활기를 더하거나, 장식적 액자 이미지 안 흰 천으로 뒤덮인 의자를 마치 만화 속 유령과 같은 이미지로 탈바꿈해 버린다.

이러한 사물의 의인화 전략은 죽어있는 사물-이미지에 새로운 생동의 서사를 부여하거나, 객체에서 주체로 포지션을 전환함으로 작가가 창조한 사물을 기능과 용도 중심의 도구의 서사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사물-이미지 고유의 유희적 서사로 진입, 확장하게 된다. 
 
이미정 작가의 작업에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지점은 공간을 구성하는 전시적 전략이다. 작업의 외형적 인상이 시각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미지에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말했듯 특정 취향에 부합하는 감성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탓도 있지만, 이와 함께 그것이 전시되는 방식에도 기인한다. 이를테면 그의 기존 전시 《The Gold Terrace》(2018, 아트 딜라이트)는 외견상 대형 생활용품점의 디스플레이, 즉 쇼룸을 방불케 한다.

물감으로 재현한 금빛 햇살을 담아내는 평평한 창문, 마찬가지로 그 앞에 놓인 가짜 화병과 과일 이미지의 소품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주변에 위치한 평평한 석고상과 식물, 케이크가 올려진 테이블까지 이 모두는 눈앞의 풍경을 그럴싸하게 통일된 하나의 이미지로 완결하여 제안-전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개인전 《SANDWICH TIMES》(2020, 송은아트큐브)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디스플레이를 운용하고 있는데 〈Wall system for concentration〉과 〈Decorative line piece : green plate〉는 하나의 벽면에 보기 좋은 한 쌍을 이룬 채 설치돼있으며, 〈Decorative line piece : Short curtain〉, 〈Picturesque (Picture) #01〉, 〈Delivered flowers #01, #02, #03〉, 〈_place〉, 〈Domino fires〉는 전시장 한쪽에 함께 배치, 구성되어 잡지에서나 볼법한 분위기 좋은 실내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술의 전시란 비선형적 서사의 작동을 다루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분절된 이미지로 구축된 골조 사이를 거닐며 관객과 작품의 상호작용 아래 구멍 나고 조각난 서사를 매듭지어야 하는 일과 같다. 그렇기에 다분히도 개인의 지식과 경험을 동원한 능동적 해석을 요구하며, 기저에 깔린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지적 교환 행위를 전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톤 앤 매너의 통일성을 골자로 빈틈없이 완성된 환경을 제안하는 쇼룸과 같은 형식은 각 오브제의 형태와 색감을 고려하여 적당한 간격과 응당히 놓일만한 위치에 배치함으로 완결된다. 특히 시각에 기대어 욕망을 자극함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제안과 설득의 목적을 갖는다.

이렇듯 쇼룸과 전시는 시각성을 주된 감각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정은 쇼룸의 외형을 전유한 전시를 함으로써 서로 다른 두 성격의 경계면에 관객을 위치시키고, 겉으로 표출된 공간이나 눈앞의 개별 오브제에서 눈 돌려 그 아래 내재한 장소적 감각과 대상에 대한 관점을 이중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생산성, 효율성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삶의 양식과 태도, 유행은 곧 자본의 논리와도 맞닿아 숙고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범람하는 이미지의 형태로 삶 속에 주입되어 어느새 하나의 주된 경향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에 떠밀린 우리는 주체로서의 선택권을 상실한 채 흐름에 몸을 맡긴 수동적 객체가 되기에 이른다. 이미정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 현상에 날 선 비판적 어조로 대응하기보다는 표면적 이미지로 수렴되어버린 오늘날 삶의 양태를 예술의 실천적 차원에서 다시 소비-전유한다.

이는 동시대 이미지의 순환 및 소비의 전략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 현재를 순식간에 과거로 갈아치우는 오늘날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삶의 방식에 반문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이 미끼처럼 던지는 첫인상, 그 외피를 둘러싼 이미지의 표면적 질서에 동조한다는 것은 미궁의 출구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는 이중 삼중으로 쳐진 이미지의 결계를 부수기 우리에게 익숙한 관점을 의심하길 요구하고, 관습적 수용보다는 그로부터 거리 두기를 요청한다. 이제 이미정이 펼쳐놓은 지적 유희의 무대에 기꺼이 오르고자 한다면, 표피적 이미지와 모방의 형식은 곧 문화적 코드가 함의하는 사회적 계층의 문제와 몰개성적인 삶의 양태를 폭로하는 표현 양식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 La Distinction’에서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회집단들의 분화는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적 취향에서도 드러남을 논증하였으며, 사회적 주체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탁월한 것과 천박한 것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게 된다고 역설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