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b. 1988)은 일상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동시대 사람들의 다층적인 욕망이나 가치를 관찰하고, 그것을 시각 예술의 언어로 독해해 나가는 작업을 한다. 특히 작가는 오늘날의 주거환경이나 인테리어 이미지들에 숨어 있는 시대의 가치관과 미적 질서를 탐구하며, 이를 평면 위에 해체하고 다시 입체적으로 엮어내는 ‘조립식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Pink Noise》 전시 전경(갤러리쿤스트독, 2014) © 이미정

동시대 주거환경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셀프 인테리어에 흥미를 가지며 시작되었다. 작가는 오래된 테이블에 대리석 패턴의 시트지를 붙여 그것의 효과만을 향유하는 방법론으로부터 부피감을 가진 실제가 아닌 하나의 껍질 혹은 표면 이미지로서 기능하고 발현되는 지점에 주목했다.  


이미정, 〈Combined body ((effect))〉, 2019, 자작나무 합판에 아크릴, 가변 크기 © 이미정

이와 더불어 이미정은 셀프 인테리어에서 많이 사용되는 조립식 가구의 메커니즘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져온다. 염두하고 있는 서사에 따라 다르게 조립되고 배치되면서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을 갖게 되는 조립식 가구의 메커니즘에 착안해 그는 회화의 조립과 배치를 통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실험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이미정의 작품은 인테리어적 요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장식품으로 위장하며 때로는 갤러리 벽에서 벗어나 조각처럼 서 있는 두꺼운 그림의 형태로 등장한다.


《위로는 셀프》 전시 전경(OCI미술관, 2013) © 이미정

초기 작업에서부터 이미정은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이 경험하는 동시대 상황을 담은 이미지를 회화적 오브제로 만들고 이를 연극적 무대로 연출하였다. 예를 들어, 2013년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위로는 셀프》는 사회 안에서 억압받는 자아의 해방과 자율성에 관한 회화, 그래픽 이미지, 입체를 선보였다.
 
전시에서 이미정은 ‘수상(受賞)’이라는 사회적인 기준이 만들어낸 모범생 콤플렉스의 구조적 연약함과 허술함을 폭로하고, 자위적 수상을 통해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탐구하고자 했다. 또한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성(性)을 유희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억압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미정, ‘Pull & Push’ 시리즈, 2013, 나무에 아크릴, 가변 크기 © 이미정

전시장에는 자가수상에 관한 입체와 설치, 성(性)을 암시하는 다양한 입체 작품과 그래픽 이미지, 회화 등의 다양한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입체 작업인 ‘Pull & Push’ 연작은 억압된 인간의 욕망을 성적인 모티프를 통해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존의 장난감, 스포츠 놀이 종목, 가구의 형태들에 성을 암시하는 형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했다. 이는 번식이 아닌 놀이로서의 성행위를 나타내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가치만이 인정받는 사회적 기준에 대해 도발한다.


《The Gold Terrace》 전시 전경(아트딜라이트, 2018) © 이미정

그리고 2018년 아트딜라이트에서 열린 개인전 《The Gold Terrace》에서는 오늘날 ‘DIY(Do It Yourself)’로 직접 셀프 인테리어 작업을 통해 주어진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는 상황에 주목한다. 전시 제목인 “The Gold Terrace”는 금이라는 반짝이고 그럴싸한 재료, 그리고 테라스라는 ‘원룸’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묘원한 소원과 같은 공간을 상징적으로 지시한다.


《The Gold Terrace》 전시 전경(아트딜라이트, 2018) © 이미정

가성비를 고려하는 셀프 인테리어에서는 원자재의 진실성이나 가치보다는 시각적으로만 닮아 있는 그럴듯한 가짜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정의 ‘가구-오브제’는 이러한 상황 자체를 전유한다. 셀프 인테리어가 시각적으로 그럴싸한 원재료의 표면만을 흉내를 내고 있다면, 이미정은 그러한 제스처 자체를 작업으로 가져와 합판으로 만든 가짜-가구 위에 물감을 이용하여 가짜-질감을 재구현한다.


《The Gold Terrace》 전시 전경(아트딜라이트, 2018) © 이미정

전시를 이루고 있던 가구-오브제들은 얼핏 식탁, 옷걸이, 책장, 커피 테이블 등 쓸모 있어 보이는 가구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또 각각의 가구-오브제에는 브랜드의 이름이나 보증서 같은 라벨이 붙어 있는 일반적인 가구와는 달리 캐릭터화된 얼굴 이미지가 더해져 있다.
 
이러한 가구-오브제들은 접히거나 펼쳐질 수 있어 좁은 공간에서 특히 효과적으로 보관이 가능하고, 사용된다. 비록 가짜-가구일지라도 각자만의 효율성과 쓸모를 가지고 있는 이미정의 가구-오브제들은 의인화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음으로써 쓸모 있는 한 명의 사람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The Gold Terrace》 전시 전경(아트딜라이트, 2018) © 이미정

아울러,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한 가구-오브제들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하였다. 또 자신의 가짜 가구-오브제를 더욱 실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바나나 송이, 접시 위의 케이크, 튤립 한 송이 등의 소품들을 평면으로 재현해 전시장 곳곳에 함께 전시했다.
 
이로써 관객은 가짜-가구로 만들어진 세트장의 연기자처럼 이미정이 만든 연극적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즉 전시를 완성하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 된다.


《Sandwich Times》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이미정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열린 개인전 《Sandwich Times》(송은아트큐브, 2020)에서 작가는 집을 꾸미는 데에서 자주 드러나는 양태들, 유통되는 이미지들을 그래픽적으로 재현하여 개인의 욕망이 묻어나는 부분을 조명하고자 했다.
 
앞서 살펴본 개인전 《The Gold Terrace》에서 이미정은 사물의 기능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두며 좁은 공간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구 형태의 오브제들을 선보였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셀프 인테리어 문화에서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은 가구들로 표현했다면, 이 전시에서는 벽면과 바닥에 주목해 우리가 집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층 넓은 시야로 이어간다.


《Sandwich Times》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이미정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거주하는 장소가 아닌 개인이 소유하고 싶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범위가 확장되면서 작가는 개인이 사회에 내비쳐지고 싶은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해 쏟는 노력과 현재 형편 사이의 간극을 탐구하였다.
 
밝고 경쾌한 색감의 작업들은 문득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면서도 사회 구조의 문제를 또렷하게 마주하게끔 요구하고 현시대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가령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한강 뷰의 창문을 묘사한 평면 작업 등은 오늘날의 욕망을 반영한다.
 
작품이 드러내는 이미지들은 단지 표면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레일 장치 등을 추가해 작업을 좌우로 열었다 닫고, 펼쳤다 접으며 매번 다른 모습을 비춘다. 움직임이 부여된 평면화는 변화하는 위치와 환경에 따라 적응해나가야 하는 현 세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도 교차된다.


《SUITE》 전시 전경(지갤러리, 2022) © 이미정

나아가 2022년 지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UITE》에서 이미정은 동시대에 통용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인 “suite”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된 스위트룸, 가구 세트, 교향곡 등을 일컫는 단어로, 복수의 구성요소가 하나의 전체, 즉 ‘스위트’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전시의 중심에 있던 연작 ‘Striking feature(s)’는 ‘눈에 띄는 이목구비(들)’이라는 제목처럼 얼굴의 구성요소를 짧고 굵은 선들로 이루어진 벡터 드로잉을 토대로 배너, 우드피스 등 다양한 형태로 형상화하며, 작품들의 전체가 하나의 ‘스위트’를 이룬다.
 
작품의 제작 방식 역시 전시 제목을 설명한다. 이미정은 벡터 드로잉을 기반으로 조합과 접합이 생성하는 변주를 ‘Striking feature(s)’ 시리즈로 포괄하며 스위트를 만들어 나갔다. 먼저 작품의 구성요소들의 조합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고, 개별 작품을 중첩하여 서로 다른 두 개의 작품을 하나의 스위트로 변형한다.


이미정, 〈Striking feature(s)_SUITE_01-01_w.d〉, 2022, 자작나무 합판에 부착한 캔버스에 아크릴, 시트지, 134.5x255.5cm © 이미정

‘얼굴’ 또한 이목구비라는 구성요소가 하나의 단일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스위트다. 이 전시에서 이미정은 자신의 조형 언어와 일상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얼굴로 가져온다. 최근 우리의 얼굴은 스마트폰과 같은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평면적이고 부분적으로 떠다니는 이미지로 비춰진다.
 
작가는 디바이스를 통해 클로즈업하거나 왜곡된 형태로 비춰지는 얼굴의 구성요소에 익숙해진 자신의 시지각적 감각을 참조하여, 동시대에 통용되며 합의되는 미적 기준을 관찰하였다.
 
이후 그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익명의 이목구비 이미지(큰 눈과 굴곡진 코, 각진 턱 등)를 굵은 선 안에 머물게 하거나 재조합하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적 기준을 우회한다. 
 
이미정의 벡터 드로잉 작업은 비정형적인 짧은 스트로크를 얼굴 구성요소의 드로잉 라인으로 사용하며, 각각의 얼굴 부분 이미지에 담긴 저마다의 생김새를 굵은 선 내부에 담는다.


《SUITE》 전시 전경(지갤러리, 2022) © 이미정

그리고 작가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입체적인 얼굴의 구성요소를 정면과 측면의 구분 없이 평면적으로 자유롭게 접합한다. 이렇게 표현된 이목구비 사이에 메이크업 브러쉬, 퍼프, 면봉 등의 사물들을 배치하여 얼굴과 얼굴 사이를 잇고, 다각도의 이목구비를 하나의 이미지로 펼쳐낸다.
 
이로써 물리적인 ‘나’의 바깥에서 떠도는 ‘나의 이미지’는 작가의 임의적 선택과 조형적 번역을 거쳐, 거대한 벽을 가득 채운 집합적 얼굴을 한 하나의 ‘형상(figure)’으로 떠오른다.


《사랑의 이름으로》 전시 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언더 레이어, 2025) © PS Under Layer

한편 최근의 작업에서 이미정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공존하는 양가적인 감정과 일상의 장면을 자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그 속에 존재하는 다층적 의미를 탐색한다.
 
2025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언더 레이어에서 열린 개인전 《사랑의 이름으로》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눠진 전시 공간을 ‘집’이라는 소재로 연결하여,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주제를 새로운 서사로 조명하였다.
 
일상의 이미지로 구현된 작품들은 삶의 이면에 감춰진 노동과 수고를 위트 있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깃든 노력과 감정의 층위를 세심하게 환기하며, 모두의 일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의 이름으로》 전시 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언더 레이어, 2025) © PS Under Layer

이처럼 이미정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마주할 수 있는 축적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작업으로 끌어와 동시대의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공간을 연출해 왔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의 가치관과 미적 가치를 재구성해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재배치하거나 변형시킴으로써 일상의 감정과 구조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 이미정의 회화는 평면에서 벗어나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현되기도 하며, 여러 모듈로 분화되고 또 다른 형태로 모일 수 있는 가변성을 보여주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공간에서 사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서사를 상상하고, 생활과 가사 노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효과 등을 레이어링해 허구적 장면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이미정, 노블레스 인터뷰 중)


이미정 작가 © 이미정

이미정은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사랑의 이름으로》(프로젝트 스페이스 언더 레이어, 서울, 2025-2026), 《SUITE》(지갤러리, 서울, 2022), 《Sandwich Times》(송은아트큐브, 서울, 20200, 《The Gold Terrace》(아트딜라이트, 서울,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사물의 시간》(아뜰리에 아키, 서울, 2026), 《Soft and Hard》(서정아트, 서울, 2024), 《오싹하고 부드럽게》(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4), 《데코·데코 Décor·Décor: 리빙룸 아케이드》(일민미술관, 서울, 2023), 《Summer Love 2022》(송은, 서울, 2022), 《선셋밸리빌리지》(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미정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1),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2020), 대만 관두미술관 레지던시(2017) 등에 입주 작가로 참여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관두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