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허앵의 작업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 현실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피로와 사건,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
개인전 《BAD ENDING ~어쩐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아카이브 봄, 2015)에서
작가는 혼란스러운 시위 현장을 바라보며 가까운 미래에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드로잉 서사로 풀어냈다.
이
시기의 인물들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새로운 선택을 시도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구조 안에 놓인다.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도 망태를 만들고 칼을 가는 인물들의 태도는, 이후 작업 전반에서 반복되는 김허앵 특유의
비관적이면서도 끈질긴 생존 감각을 예고한다.
2020년
개인전 《mama do》(킵인터치, 2020)를 전후로 작가의 시선은 임신, 출산, 육아, 돌봄 노동의 현실로 옮겨간다. 그러나 김허앵은 ‘엄마됨’을
따뜻하고 숭고한 이미지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머리통이 펑 하고 날아가 버렸다〉(2019), 〈Daily Routine〉(2019), 〈한여름의 산책〉(2018), 〈잠이 안와〉(2019) 등에서 양육자는 지치고, 흘러내리고, 반복 노동 속에 갇히지만, 그 장면은 비극으로만 닫히지 않는다.
작가는 육아의 질척임, 몸의 변화,
감정의 소진을 블랙코미디처럼 다루며,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의 이미지 바깥에서 ‘엄마하기’의 실제 감각을 드러낸다.
이때 웃음은 고통을 가리는 장식이 아니라, 무너지는 일상을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에
가깝다.
《Furry Ways》(미학관,
2022) 이후 김허앵의 작업은 개인의 일상에서 출발하되, 게임과 만화의 세계관을 통과하며
더 넓은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된다. 반려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죽음 이후의 세계, 어린 시절의 게임 기억,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향수를 겹쳐 놓는다. 〈너머의 지도〉(2022)는 “접속할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게임
속 지도와 현실의 상실감을 함께 불러낸다.
여기서 아이의 형상을 한 플레이어들은 적을 물리치거나 무언가를
정복하기보다, 관찰하고 산책하며 세계의 질서를 익혀나간다. 이는
삶을 퀘스트처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 안에서 감각을 축적하며 성장하는 방식에 가깝다.
2023년
《나의 지구를 지켜줘》(스페이스 윌링앤딜링)와 2025년 《Dear morning》(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 이르면, 작가의
관심은 모성과 양육의 경험을 지나 인류세, 기후 위기, 인간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꽃들〉(2023), 〈사랑하는
저녁〉(2023), 〈산 꼭대기〉(2023), 〈문어 아가씨〉(2023), 〈우리가 나눈 짙은 꿈〉(2023) 등은 어른의 불안과
다음 세대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든다.
최근 작가노트에서 말하듯, 김허앵은 인간이 더 이상 기존의 인간 형상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산, 문어, 새, 벌레, 바위 같은 존재들과 뒤섞이는 새로운 생명체를 그린다. 그의 작업에서 변신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습이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계를 다시 상상하려는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