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진짜 주인공은 용기다. 진짜 주제이며, 중심은 용기다. 이전과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용기, 사람들의 평가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 예술 앞에서 몸을 움츠리지 않을 용기 말이다. 작품의 영혼은 예술이 발산하는 힘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예술은 천사 같기도 하고, 괴물 같기도 하다.

영감이 찾아와 재능 있는 자로 평가받게 해주기도 하지만, 재능으로 알았던 영감이 어느 순간 휘발되고 그 재능이 위장된 재능이었음을 드러낼 때도 있다. 자신이 지녔다고 생각하는 재능에 빠져들어 눈이 멀기도 하고, 재능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의 예술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예술을 하기도 한다. 예술은 천사이며 괴물이다. 그래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수다. 용기가 예술의 보이지 않는 진짜 주인공이다.

배윤환의 작업에는 용기가 깃들여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 페인팅과 드로잉과 영상을 넘나드는 용기, 호기심을 따라 예술의 주제와 형식을 바꾸는 용기. 배윤환은 시작이 어디이고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서사를 엄청난 크기의 장대한 장면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미술계에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2.2미터 높이에 폭이 50미터나 되는 초대형 회화 작업인 〈내가 본 게 고양이야?(WAS IT A CAT I SAW)〉(2014)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작업으로, 이후 형식적인 면에서 이 작업과 유사한 작업이 다수 창작되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뒤로하고 영상작업을 하거나 초대형 작업에 비하면 소박할 정도의 크기를 지닌 작업을 근래에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이전의 약간 침울하고 무겁고 어둡던 분위기를 재치 있는 이야기와 약간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바꿨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미술계에 각인된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이 용기로 충만함을 알려준다.


배윤환, 〈키득대는 빙하들〉, 2022, 캔버스에 페인트, 27 x 22 cm © 배윤환

두텁고 거대한 정신: 우글거리는 생각 덩어리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에게 각인된 작업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모든 예술가가 필연적으로 행해야 할 숙명적 행위다. 큰 틀에서 배윤환의 작업 변화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만이 특별하다고 치켜세우는 것은 이상할뿐더러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변화를 그저 예술가의 일반적인 변화라고 치부하며 살펴보지 않으면, 배윤환이 지닌 예술적 특성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변한 듯 보이지만,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작가는 초대형 회화로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근래의 작업에서는 압도하는 크기의 초대형 작업을 찾아볼 수 없다. 왜일까? 그는 끝도 없이 거대한 서사를 펼쳐놓기 위해 초대형 회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없어 큰 화면에 자신의 생각/감정 지도를 그려보고자 초대형 회화를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회화가 드로잉과 설치 및 클레이아트가 결합된 〈스튜디오 B로 가는 길(Road to Studio B)〉(2018)라는 영상작업으로 바뀌고, 서사를 분절하여 개별 작업으로 완성하는 방식으로 변모한 것을 통해, 배윤환이 초대형 회화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담을 공간이 필요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수천수만 번의 드로잉과 조소 작업의 변화를 매 컷 촬영하여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시간 속에 압축한 영상작업을 선보인 것만 봐도, 이는 분명하다. 따라서 그의 작업 특성은 거대한 화면 형식이 아니라, 현실과 상상과 욕망이 혼재된 두텁고 거대한 정신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 실험을 하지만, 그가 지닌 근본적인 작업 방식은 그대로다. 2014년에 이단지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에 관해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거나 축적된, 실체가 없이 떠도는 이야기, 혹은 괴담이나 전설, TV드라마나 정치적 사건, 뉴스, 인터넷 댓글, 새벽에도 울리는 스팸 문자의 이미지를 주워 담아 마치 판타지 동화와 같이 은유적인 장면으로 재구성”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는 이렇게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뒤섞인 자신의 작업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뇌 주파수는 여전히 여러 가지가 뒤섞인 생각, 그 생각들의 교배, 배설 주문을 내렸다. 여전히 내 생각에는 개미와 애벌레가 우글거렸고 쥐들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무런 제어 없이 작업의 형태로 전이됐다.”(작가노트, 2021) 그의 최근 인터뷰에서도 같은 맥락의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온갖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와글 와글거리는 그 생태계, 그게 제 머릿속인 것 같고, 지금은 변할 수 없는 제 성격인 것 같아요.”(작가인터뷰, 2022, 이하 인터뷰) 형식과 그 주제는 변했지만, 복잡하게 뒤섞인 사실과 생각을 표현하는 작가의 예술적 본성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여기에 배윤환 작업의 핵심이 있다. 현실과 상상, 욕망과 이성, 생각과 감정을 비선형적으로 시각화하는 것, 우글거리는 생각 덩어리들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 이것이 배윤환의 예술적 본성이며, 작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배윤환, 〈키득대는 빙하들 4〉, 2022, 캔버스에 페인트, 45.5 x 27.5 cm © 배윤환

의인화의 팽창과 내파

최근 배윤환의 작업은 자연, 특히 동물의 의인화에 집중되고 있다. 이전에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무작위적인 생각과 감정을 선별해 거대한 비선형적 서사를 구축했다면, 근래에는 이러한 무작위적인 생각과 감정을 분절하여 분절된 서사를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 특히 동물이 살아가는 속성과 인간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이전부터 “자연, 인간의 삶이나 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살아가기 위해서 저마다 생리적 특성과 전략에 따라 모양이나 크기 등 온갖 것이 다 다른” 생물의 특성, 즉 그 다양성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인터뷰).

이러한 다양성은 앞서 밝혔듯이 작가의 머릿속 및 성격의 특성이며(“그 생태계, 그게 제 머릿속인 것 같고 …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작가의 예술적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자연에 집중하는 것은 기존 작업의 맥락 안에서 변주된 형식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2019년부터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동물과 관련된 작업을 해왔다. 2021년까지의 동물 의인화나 동물 관련 작업은 조금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였는데, 2022년 최근 작업은 사회적 이슈를 블랙코미디 같은 방식으로 상황을 비틀어 재치 있게 보여준다. 작가는 “누구나 아는 쉬운 이미지”로 “더 재밌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재치 있는 풍자적인 작업을 그리게 됐다(인터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배윤환의 최근 작업은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이기적 생태를 비판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2022년 신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기후 위기이며(〈몇 명은 살려두자고 했잖아 You Would Keep Some of Them Alive?〉, 〈다행이야 What a Relief!〉, 〈연중무휴 북극마트 곧 문 닫아요 24/7 Arctic Mart is Closing Soon!〉, 〈마마 우 MAMA WOOOO〉, '키득대는 빙하들 Chuckle Cracking Sea Ice' 연작 등), 인간의 인위적 생태계 조성에 관한 문제의식(〈송곳니들을 위한 자장가 Lullaby for Fangs〉, 〈꿀 좀 줄까? Need Some Honey?〉)과 인간의 습성에 대한 비판의식(〈초승달 굽는 디스코 나이트 Disco Night of Roasting Crescent〉, 〈긴장감은 사라졌지 The Thrill is Gone〉, 〈광부들과 황금 분수대 Rumble & Crumble〉, 〈I'm Mr. Easy on the I...Ice!〉, 〈건드릴 수 없는 토끼 Untouchable Bonnie〉 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미술과 문학의 명작에 영감을 받은 작업도 있다(〈나의 호밀밭에 라임오렌지나무 Lime Orange Tree in My Rye Field〉). 이러한 작업의 양상은 인류의 삶을 객관화하여 비판의식을 높이려는 미러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전과는 다르게 명확한 주제의식을 발현하는 면모는 더욱 정제된 하나의 집합적 내러티브를 끌어내기 위해 작가가 수년간 시도한 작업의 결실로 평가할 수 있다.


배윤환, 〈키득대는 빙하들 6〉, 2022, 캔버스에 페인트, 30 x 42 cm © 배윤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동물 의인화 작업에 해소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의 작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의 최근 작업 중에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업이 많지만, 여러 주제가 혼재되어 있거나 모호해서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않는 작업도 병존한다. 후자가 존재하는 까닭은 작가의 근원적 작업 방식이 지닌 원초적 에너지가 의도치 않게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원초적 에너지는 결코 정제될 수가 없다. 작가는 “계획적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즉흥적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있고, … 굉장히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오는 작은 스릴, 작은 긴장감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게 오기를 바라고.”라고 말한다(인터뷰). 한마디로 즉흥성을 무척 원하고, 계획에도 즉흥성이 가미될 수 있다는 의미다. 즉흥성은 배윤환 작업의 특성인 모호성, 혹은 비선형성을 불러오는 주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원초적 에너지이다.

물론 그의 최근 작품이 모두 즉흥성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 계획적으로 작업하여 완성한 작업이 더 많다. 이는 정제된 하나의 집합적 내러티브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계획으로 빈틈없이 막아놓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계획을 뚫고 즉흥성이 삐죽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즉흥성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면 계획했던 작업과는 다른 형태의 작업으로 완성된다. 계획적이었으나 계획을 넘어선 작품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과정은 동물의 의인화를 부풀어 오르게 하고(팽창), 계획된 의미를 약화시킨다(내파). 결국, 의인화의 목적도, 주제의식도 모호해지면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모호한 작업은 확실한 주제의식과 확실한 계획적인 작업과 함께 있을 때,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고, 더 강력한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정제된 작업과 즉흥성이 충만한 작업은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이렇게 그의 새로운 시도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알 수 없는 곳을 향한다.

배윤환은 자신의 사유방식과 작업과정을 계속 실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그의 작업에는 용기가 깃들여 있다. 하지만 그의 근원은 한결같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많은 생각이 와글거린다. 그는 그것을 분절하여 정제된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려 시도한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즉흥적인 몸짓이 함께 있기에 그의 작업이 특별해진다. 그의 즉흥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원초적 에너지가 정제된 화면과 조화를 이루며 자주 불쑥불쑥 튀어나오길 기대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