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연의 작업은 현실과 상상, 기억과 경험, 과학과 신화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화석을 수집하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자연의 생성과 시간의 축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유학을 거치며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질문들을 회화의 언어로 발전시켜 왔다.
그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뿌리, 종유석, 내장기관, 구름, 버섯과 같은 형상들은 특정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세계의 상태를 상징한다. 이들은 자연과 인공, 생명과 무생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현실 이면에 잠재된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탐색한다. 화면 속 공간은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 경험이 중첩된 가상적 공간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세계는 관람자에게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며,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통상적인 인식 체계를 흔든다. 민정연이 구축하는 세계는 환상적이지만 현실로부터 분리된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또 다른 시각의 장이다.
민정연의 작업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사유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한다. 특히 리좀(rhizome), 생성(becoming), 차이(difference)와 같은 개념은 작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깊게 연결된다. 그녀의 화면 속 뿌리 구조들은 단순한 조형적 모티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와 시간, 공간을 연결하는 리좀적 관계망을 상징한다.
이 연결 구조는 중심과 위계를 거부하고 무한히 확장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생성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를 하나의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적 네트워크로 제시한다.
결국 민정연의 작업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그녀의 회화 속 인물과 동물, 식물과 구조물들은 명확한 경계를 잃고 서로 변형되며 공존한다. 이러한 생성의 과정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 보다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존재 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민정연의 세계는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경계와 정체성의 문제를 시적으로 재구성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