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의 즉흥성이 현대적으로 느껴져요. 시간과 기억의 흐름에 개입해서, 내가 본 걸 게워내어 뭔가를 새기고, 재료가 마르고 굳어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거죠. 오늘의 생생함, 생겼다 사라지는 인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고착되도록 하는 게 화가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고흐의 연필 드로잉이나 수채 드로잉을 떠올려보세요. 고흐는 논리보다 직관에 의해 움직인 순수한 화가예요.
주변의 별거 아닌 흔한 풍경을 그렸는데, 그 선이 너무나 쾌활한 상태로 고착되어 그림이라는 존재로 환원되잖아요. 수백 년이 지나도 느껴지는 그 선의 싱싱함이, 전 정말이지 좋았어요. 비슷한 맥락으로 옛 화가에게도 영감과 영향을 많이 받아요. 매우 시대적이고, 진실한 그림이죠. 박수근의 조형적이고 공예적인 느낌, 이중섭의 회화적이고 운동감이 느껴지는 필체 등을 화학적으로 섞어 지금 시대에 맞게, ‘문성식스럽게’ 만드는 것이 제 당면 과제입니다.”
화가의 그리는 행위는 화면이라는 물질을 만나, 그림이라는 물성을 가진 오브제로 남는다. 그런 그림을 대면한 나의 사유는 미술사적 체계적 의미를 따라가려 애쓰지만, 나의 감정은 결국 그림을 그린 이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에 감동으로 증폭된다. ‘실로 훌륭한 그림을 그렸구나’ 싶을 때보다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나’ 할 때, 회화의 시간성과 나의 시간성이 절묘하게 만나고, 일상의 공기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당대 화가들은 저마다의 미학으로 자신의 행위성을 그림에 심어놓는데, 우리는 이를 두고 스타일 혹은 회화 언어라 일컫는다. 문성식의 고유한 행위성 역시 캔버스와 손 사이에서 잔잔히 요동친다. 물감이 두껍게 발린 화면에 연필심으로 홈을 파다시피 그린 그림의 선은 막 꿈틀꿈틀하고, 부조와 같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문성식의 회화는 눈과 손, 몸과 마음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작가가 현존했음을 명쾌하게 증명한다.
“형무소 같은 데 가보면 당시 사람들이 ‘나가고 싶다’ 같은 문장을 벽에 써놓은 걸 볼 수 있죠. 그 딱딱한 데 무언가를 새기면서까지 행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 처절한 아우성 같은 게 느껴져요. 내 그림도 결국 긁어서 만드는 회화이고, 표면 위에서 꼼지락거리던 저의 호흡이, 행위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 이 화가가 여기서 붓을 휘두르고 싶었구나, 하는 궤적이 더 잘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여기, 드로잉에 연하게 채색한 이 작품을 볼 땐 정말 상쾌하게 작업했구나, 하는 게 와닿았으면 했고요. 작가라는 인간이 열심히 붓질해 에너지를 집어넣음으로써 그림은 생명력을 갖추게 돼요.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에너지의 교환,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해요.”
미술가가 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커다란 사건이다. 단순히 방식 및 형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자신을 부정해야 할 수도 있고, 자신을 지지해온 이들을 실망시킬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러나 문성식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작가로 활동한다’보다 상위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림이 무엇이고, 무슨 의미이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마땅하고,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가” 같은 거대한 질문의 답을 찾느라 30대 내내 고투했다.
그림에 현존성을 새기고 싶다는 그는 공교롭게도 미술계에 새겨진 자기 존재감을 즐기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고, 이대로는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는 벼랑 끝에서 명성은 더더욱 도움이 안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시절인 2005년 무렵, “어떤 꼬마 애가 희한한 감성으로 그린” 놀라운 그림은 ‘최연소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작가’라는 두고두고 유용한 타이틀을 선사했다. 그러나 너무 일찍부터, 너무 오래 ‘재능 있는 젊은 작가’로 불려온 그는 명성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긴 젊음의 대가를 그만큼 긴 혼란과 방황으로 치러야 했다.
“기억을 길어 올리는 그림의 특성상 소재는 고갈되어버렸고, 한 달을 쏟아붓고 보름을 쓰러져 있는 작업 방식은 정말 가학적이었어요. 네, 어쩔 수 없는 시간이었죠. 그 후 ‘자기에게 맞는 그리기’와 ‘너무 가혹하지 않은 그리기’, 두 가지가 내가 계속 화가로 사는 데 필수 요소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완벽에 대한 강박도, 그럴듯함에 대한 욕심도 버렸고요. 그림에 대한 제 이해력도 부족했던 것이, 말하는 그림, 주장하는 그림만 그림이라고 착각한 거죠.
말이 없는 그림도 충분히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어요.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화가가 그림과 손을 잡는 겁니다. 그래야 관객도 보편적인 것에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발길 닿는 대로, 아무거나, 아무 방법으로나 다 그려보는 사람으로 살자 싶어요. 호크니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활짝 핀 장미가 아니라 완전히 일그러진 장미도 곧 그려볼까 해요. 왜 이걸 그렸냐고 묻는다면 ‘그러고 싶어서’라고 답하려고요(웃음).”
한 인생이, 한 의식이 세상을 보는 시선은 역사, 선입견, 스타일 모두를 반영하기에, 한낱 캔버스는 작품이 된다. 그래서 회화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문성식 회화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붓도, 물감도, 연필도 아닌, 바로 문성식이라는 화가다.
순진하게 탐미적인 문성식 작업의 기원, 작가의 말마따나 “이렇게 공예적이고,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재잘재잘한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을 수도 있고, 선이 삐져나가는 걸 무서워했을 수도 있고, 시골에서 평범하지만 정 많은 가족과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작은 키 덕에 어떤 액션을 취하기보다는 주로 관찰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성식은 매 순간 용기를 내야 했지만, 그의 그림은 모두 부끄럼 없이 보여주었다. 희한하고도 총체적인 문성식이라는 도구야말로 자기 그림의 필연적인 에센스임을 인정하는 화가,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림은 고스란히 화가의 인생을 함께 살아내기에 결국 문성식의 “그리고 싶다”는 “살고 싶다”로 번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