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리(b. 1989)는 다양한 관계 속 발생하는 불안정한 감정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회화와 설치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긴장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에 가까운 ‘그리기’의 수행성을 탐구하고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실험적으로 활용한다.


고우리, 〈Flexible Mark (weigh) 02〉, 2017, 캔버스에 유채, 액션 페인팅, 162x130cm © 고우리

우리는 매일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 부딪히고 관계를 짓는 필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우리에게 있어서 타인과의 감정적 마찰은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감정은 곧 신체적 증상으로 뻗어나가 불안, 공포, 스트레스로 번진다.
 
이러한 감정은 해결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지나가고, 또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작가는 감정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고우리, 〈Flexible Mark (weigh) 03〉, 2017, 캔버스에 유채, 액션 페인팅, 162x130cm © 고우리

이를 위해 고우리는 신체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 내면의 혼돈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행위 과정에 녹여 표현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 안에는 내면에서 발생한 감정이 남긴 행위의 흔적이 남는다.
 
가령 작가는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손 전체에서부터 손톱까지 모두 사용해 선율, 파동과 같은 날카로운 이미지의 선들을 표현하고, 형태를 흐트러트리며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표출한다. 또는 손날을 사용하여 발라져 있던 물감을 닦아내 형태의 경계면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물감의 유(有).무(無)의 경계를 흐리며 본질에 대해 혼돈을 일으키도록 한다.


고우리, 〈Exterior2 03〉, 2017, 긁어낸 캔버스, 130x130cm © 고우리

이러한 신체성을 동반한 그리기의 방식과 함께 작가는 재료의 물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작업의 전반적인 표현방식은 벗기고 채우는 우연과 필연의 반복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작가는 물 먹인 캔버스를 동그랗게 압축한다. 이때 외부의 표면에 마찰을 가하게 되면 표면에 있던 프라이머(젯소)는 탈락되고, 그 밑에 존재하던 천 본연의 상태가 드러나게 된다. 이 위에 다시 물감을 도포했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은 틈이 메워지기도 하고, 덜 메워지기도 하며 우연을 통한 서정적 추상 이미지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 통해 고우리는 경계와 본질을 시각화 하고, 물감의 유(有).무(無)의 반복으로 층위를 교란시키며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고우리, 〈Flexible Mark (Crack) 02〉, 2018, 긁어낸 캔버스에 아크릴, 핑거 페인팅, 162x130cm © 고우리

이렇듯 고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양가적 감정에 ‘틈(crack)’을 만들고, 자신과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는 신체 수행을 기록하여 관객과 감정에 대한 공유를 시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2018년 대안공간 눈에서 열린 개인전 《알 수 없는· 경계· 순간· 틈· 겉》에서 고우리는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되짚어보고 진심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사유의 과정을 신체의 물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이 전시에서 고우리의 작업은 캔버스를 칠하고, 구기고, 적시는 행위 등을 통해 화면에서 여러 겹들을 구성한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 속으로 융화되기 위해 ‘진심’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몸부림’의 흔적으로 남는다.


고우리, 〈Exterior2 04〉, 2018, 긁어낸 캔버스, 73x73cm © 고우리

먼저, 작가는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올라가 사회적 관계 속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되새기며 화면 위에 선율, 파동과 같은 스트로크를 활용해 감정을 표출했다 이후 캔버스를 구겨 내부와 외부의 세계를 만들고, 외부의 세계를 마찰시켜 표면을 탈락시켰다.
 
이를 통해 감정과 생성의 소멸까지의 과정을 캔버스 표면의 강조로 겉(exterior)과 경계(border), 틈(crack)을 한 번에 보여주는 회화 작업이 완성된다.


고우리, 〈Uncatchable, Sentimental, Movement 02〉, 2022,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핑거 페인팅, 130x162.2cm © 고우리

따라서 그의 작업은 개인이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호한 것들을 추상적 이미지에 투영하고, 진심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사유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추상적인 화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되짚어보고, 각자만의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이끈다.


고우리,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6〉, 2023, 바느질한 캔버스에 핑거 페인팅, 모델링 페이스트, 실, 130x130cm © 고우리

또한 고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으로써 바느질을 활용해 입체와 평면을 오가는 설치 작업을 제작하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종종 불안과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유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이렇게 얽히고 설킨 관계상을 캔버스와 바느질을 통해 마주하며 풀어낸다.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4) © 고우리

예를 들어, 2024년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에서 선보인 일련의 작품들은 조각난 캔버스를 이어 붙여 그 위에 채도가 거의 없는 무채색 계열의 물질(핸디코트와 몰딩페이스트)을 손으로 이겨 바르듯 펼쳐 놓았다.
 
고우리는 캔버스를 해체하고, 물감의 채도 대신 무채색 물질의 투명한 반짝거림을 통해 회화 표면의 질감을 구축하여 행위와 촉각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성한다.


고우리, 〈무제-연결된 말〉, 2024, 바느질한 캔버스에 해체된 캔버스 실, 450x80cm © 고우리

전시 서문에서 안소연 비평가는 “이때 그는 자신의 신체 행위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육체로서의 캔버스를 의인화하여 행위의 주체자로 자신과 대면시킨다”고 표현한다. 이에 따라서, 그의 평면은 정면성을 추구하는 관습적인 회화적 평면보다 의인화된 신체로서 또 다른 신체와 대면하게 되는 촉각적 “피부”를 환기시킨다.


고우리, 〈흐릿한 언어, 연결된 몸짓〉, 2024, 바느질한 캔버스에 해체된 캔버스 실, 143.3x143.3cm © 고우리

그리고 캔버스 내부의 평면을 다수의 조각으로 절단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캔버스 가장자리에 생겨난 생채기를 그대로 남겨둔다. 하얗고 평평한 자리들을 지나 얼룩덜룩하고 이질적인 모서리들이 뒤엉켜 연결된 경계에 작가의 신체적 행위로써 촉각을 덧입힌다.
 
이렇게 캔버스의 신체와 고우리의 몸은 우연과 필연을 오가는 신체적 수행성에 의해 연결된다. 상처 난 피부의 균열을 봉합의 행위로 쓰다듬으며 남겨진 흔적은 마치 상처의 흉터처럼 드러난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 전시 전경(소현문, 2025) © 고우리

이처럼 고우리는 ‘관계의 불안’에 집중했던 작업에서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관계’에 주목한다.
 
2025년 개인전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에서 작가는 자신과 멀거나 가까운 관계의 여성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는 등 타인과 교류하는 환경을 조성해 관계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 전시 전경(소현문, 2025) © 고우리

이전의 작업에서 작가는 모양을 정리하고, 자신의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작업을 끌고 나갔다면, 이 프로젝트에서는 타인(과)의 느슨한 상태를 받아들이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감정에 솔직하게 가 닿는 것에 집중했다.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면, 먼저 프로젝트 설계자(작가)는 그의 정체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또 다른 여성(들)을 사전에 초대했다. 다회에 걸쳐 고우리의 작업실에 방문한 참여자(들)는 미리 준비한 매체와 지시에 따르는 섬유 바느질 기반의 개인 작업 및 공동 작업을 펼치게 된다.
 
앞선 과업을 마친 각자에게는 사적인 이야기를 편지에 옮기는 제안이 주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피)섭외자들은 고우리의 이전 작업을 반복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함으로 말없는 연대감을 공유하였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 전시 전경(소현문, 2025) © 고우리

이처럼 고우리는 관계에 따른 감정에 대한 고민을 자신의 몸을 통해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캔버스 위에 남겨진 흔적, 안과 밖이 역전되어 양면이 드러나는 이중성은 외부 세계와 부딪히며 형성된 감정의 다양한 층위를 촉각적으로 드러낸다.


고우리, 〈이렇게 저렇게〉, 2023-2024, 바느질한 캔버스에 퍼티, 실, 가변크기 © 고우리

내면의 혼란을 해소하고자 시작된 그의 작업은 곧 현상에서 벗어나 심상의 변화 과정의 재구성을 통해 수축, 팽창하고, 형상 없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서정적이고 초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작가 개인의 심리적 풍경에서 나아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구조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추상의 이미지로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새롭게 남겨진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이 만나 관계를 짓는 필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관계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에 상처와 불안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유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있다. 이렇게 얽혀있는 관계상을 캔버스와 바느질을 통해 불안을 마주하며 해결하기 위해 작업을 했다." (고우리, 작가 노트)


고우리 작가 © 아트인컬처

고우리는 건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소현문, 수원, 2025),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온수공간, 서울, 2024),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하여》(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언피지컬리듬》(스페이스 이색/스페이스mm, 서울, 2024), 《뉴 앙데팡당: 존재-감각》(양평군립미술관, 양평, 2024), 《어쩌다 마주친 것일까》(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3), 《다시, 바라보기》(고색뉴지엄, 수원, 2023), 《SIMA FARM》(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고우리는 수원문화재단 푸른지대창작샘터(2025),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21)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