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b. 1987)는 매일 마주하는 일상적인 풍경이나 장소를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대상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적이 사라진 공간이나 오래된 벽과 바닥, 혹은 신체에 남겨진 흔적 등 전경에 가려진 이면에 주목한다.


한성우, 〈cooling tower〉, 2013, 캔버스에 유채, 130.3x193.9cm © 한성우

한성우는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거나 혹은 쉽게 잊히는 것들을 그림으로 담아왔다. 예를 들면, 건물의 옥상이나 건물 뒤편에 놓인 냉각기 같은 것들이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또 작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 목공실 풍경에 주목했다. 매일 풍경이 변화하는 공간인 목공실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그곳에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에 관심을 두었다.
 
이 흔적들은 일시적이고 우연한 사건의 결과로, 고유한 이름이나 장소를 부여받지 못한 것들이다. 한성우에게 이러한 흔적들은 무대의 뒤편 풍경으로 다가왔고, 그 이름 없는 대상을 화면 안에 잡아두고자 했다.
 
이후 작가는 초기 구체적인 풍경,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점차 무대 뒷면이라는 주제를 가진 상상의 장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풍경-그림과 그리기》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3)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러한 작업 세계를 반영한 그의 첫 번째 개인전 《풍경-그림과 그리기》(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3)에서는 풍경을 통한 그림과 그리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의 과정을 담았다.
 
한성우는 ‘풍경’의 사전적 정의에서 ‘어떤 정경이나 상황’이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을 때, 특별히 ‘어떤’이라는 단어를 흥미롭게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의 정경이나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었겠지만, 작가에게 그 ‘어떤’이란 단어는 그가 그림의 소재로 삼는 ‘정경이나 상황’ 안에서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까지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풍경-그림과 그리기》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3)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또한 작가는 이러한 풍경들과 풍경 그림 사이에서 앞서 말한 그 ‘어떤’을 화면에 붙잡아 두기 위한 ‘그리기’ 행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성우의 작품 속 빈번하게 드러나는 직선적인 요소들, 다소 차가운 색감과 명도의 대비들은 작가가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긴장감의 극대화된 표현이다. 이러한 직선의 표현에서 작가는 테이핑을 사용하여 곧게 직각으로 떨어지는 선을 만들기 보다는 자를 대고 그 위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방식을 택했다.


한성우, 〈dissonance〉, 2013, 캔버스에 유채, 40.9x53cm © 한성우

미처 마르지 않은 물감들은 예상되는 효과를 빗겨가며 충돌하는데, 이는 화면 속 예기치 않은 흔적들을 만들어낸다. 작가에게 있어 이러한 흔적들은 단순한 자취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 그림의 언어로써 작가가 찾고자 하는 ‘어떤’ 분위기를 환기함과 동시에 촉각적이고 실제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한성우, 〈untitled〉, 2016,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 한성우

‘어떤’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한 ‘그리기’의 탐구는 2017년 청주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개인전 《가능한 장면》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작업실, 텅 빈 오래된 내외부의 공간들, 낡고 빛 바랜 주변의 풍경들에서 가져온 ‘이름 없는’ 대상들은 그의 캔버스 위 두툼한 물감의 층과 추상적인 이미지로 남겨졌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 자체의 외연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신체적 행위의 표식이 더 강하게 전달되며, 그가 감각하려는 시각과 인식의 층위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이전의 작업에서 공간의 외연에 자신이 지각하는 미묘한 표면적 감각을 덧입혔다면, 이 개인전에서 선보인 회화들은 캔버스에 몸을 밀어 넣은 듯 대상에 대해 매우 함몰적이고 주관적으로 보인다.


한성우, 〈untitled〉, 2016,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 한성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세한 붓보다는 나이프의 면으로, 또 사물과 대상의 원래의 빛깔보다는 캔버스 위에서 비벼져 경계를 지우는 색으로 그리며, 대상의 외연을 드러내기보다 그 이면의 보이지 않을 시간적 감각을 드러낸다.
 
작가에 따르면, 그것은 매순간 기억에서 떠오르고 변화하며 사그라드는 대상을 동시성의 맥락에서 화면에 붙잡아 두기 위함이고, 일종의 비재현적인 형상을 얻기 위해서다. 그림위의 흔적들이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형태는 모호해지고 다른 방향을 스스로에게 지시하며 동시에 구체적인 형상을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균형》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한성우

한성우는 이 같은 그림의 방식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대상들이 어떻게 사실적인 모양새로 드러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그리고 2020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균형》에서는 보고 그리는 행위 안에서 대상과의 거리 감각을 느끼고 조율해온 과정을 두 가지의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다.


《균형》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한성우

먼저, 뭉치고 흩어지면서 전시장 벽면을 점유하고 있던 ‘사계-환절기’ 시리즈는 흔적의 방식을 계절과 계절 사이, 언어로 고정되지 않는 시간인 환절기의 이미지로 그려낸다. 상상한 장소의 풍경을 그리고 지우기를 거듭하는 작가의 제스처는 사건의 증거로서 켜켜이 축적된다.
 
세 폭이 나란히 놓여 대형 화면을 구성하는 ‘균형’ 시리즈는 작업실 내부의 벽을 경계로 나뉜 작업의 흔적들을 본 것을 실마리로 삼아 보다 직접적으로 표면의 이미지를 그렸다.
 
상상하거나 기억 속에 남아있거나 실제로 본 벽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질감으로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이 표면에 함몰되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게 한다. 


한성우, 〈균형 (no.3, no.5, no.4)〉, 2020, 캔버스에 유채, 각 227x182cm © 한성우

이러한 그의 그리기는 자신이 보는 행위를 통해 감각한 풍경의 분위기를 체현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지금 바라보는 어떤 자리가(상상이건 실재이건) 의미에 포섭되지 않게 부단히 붓질을 번복하는 한성우의 그리기는 구상과 추상의 관습적인 구분 사이에서 또 다른 자리를 상상하게 한다.
 
이후의 작업에서 한성우는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며 작가 특유의 마티에르를 보다 얕게 표현해보거나, 같은 대상을 두고 구상에서 추상까지 여러 캔버스에 나누어 작업해 보는 등 표현 방식에서도 변화를 시도했다.


《, 저기》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2)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2년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 저기》에서 작가는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틈새를 탐구하며, 그 과정을 “저기”라는 지시대명사와 같이 열린 상태로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는 작가가 천안 화이트블럭 창작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스튜디오로 동지를 옮겨오면서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꽃을 사러 나간 경험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작가에게 꽃은 무언가를 그려봐야겠다는 욕망의 종착역과 같은 대상이었다. 그러나 신기루와 같이 떠올릴 수 있지만 명확히 그려낼 수 없는 부재의 이미지로, 이를 그려내는 노력의 끝에서 매번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 저기》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2)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그러던 어느 날 꽃을 찾아 방문한 화원에서 작가는 우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덤으로 얻은 꽃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되돌아온 “저기”라는 지시대명사에서 한성우는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것, 그리고 그것을 화면 안에 구현하려는 자신의 바람을 대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선보여왔던 두터운 유화가 상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예술적 태도의 일부라면, 작업복과 화병에 꽂힌 꽃의 일부를 좇아 계속해서 작은 화면에 옮겨 넣은 작업은 인지의 바깥에서 대상이 스스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다.


《지평선을 맴돌며》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4)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그리고 2024년 같은 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지평선을 맴돌며》에서 한성우는 풍경의 전통적 개념을 넘어 그리기의 행위와 과정에서 형성되는 풍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 전시에서 작품들은 ‘풍경’과 ‘장면’이라는 두 카테고리로 나뉜다. ‘풍경’은 ‘장면’에 비해 형상이 드러나고 구성적인 반면, ‘장면’은 붓질과 물감의 물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두 카테고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 언제든 전환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일부 작품은 기억과 감각의 파편을 통해 현실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히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대한 재현이 아닌 그리기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풍경으로, 관객에게 각자의 내면 풍경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지평선을 맴돌며》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4) ©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이처럼 한성우의 작업에 늘 중심에 있어온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수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다. 그것이 실제의 대상이든 보이지 않는 뒷면에 대한 상상이든, 작가는 그로부터 감각한 정서나 질감, 분위기를 캔버스 화면 안에 ‘그리기’라는 행위로써 붙잡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그리기’의 여정으로 이어져온 한성우의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끝없이 확장되는 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길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들이 어떠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들은 이유와 목적을 가진 것의 진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부산물에 가까워 보였다. 이름 없는 것들이 있다. 얼굴 없는 것들이 있다. 아니면 이름이 잊혀 진 것들과 얼굴이 잊혀 진 것들이 있다. 아니면 그것들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잊혀 진 것들이 있다." (한성우, 작가 노트)


한성우 작가. 사진: 안부 ©한성우

한성우는 고려대학교 미술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지평선을 맴돌며》(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4), 《, 저기》(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2), 《균형》(송은아트큐브, 서울, 2020), 《대포08》(별관, 서울, 2019), 《가능한 장면》(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KEEP GOING #5》(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6), 《Painting Painting》(이유진갤러리, 서울, 2025), 《뒷모습》(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4), 《어색한 낭만주의》(누크갤러리, 서울, 2023), 《Summer Love 2022》(송은, 서울, 2022), 《What If!》(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1), 《몸짓을 따라가며, 주변을 배회하고, 중심에 다가서려는》(학고재 청담,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성우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4),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3),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202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16)에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