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Hoping for a Safe Day》 (Cheongju Art Studio, 2022) © Hee Vaak

1. 지금 이곳의 종교

전시장엔 과장된 기호들이 늘어서 있다. 후경으로 사라지는 성모상, 기도하는 손과 커다랗게 매달린 “HOPE”라는 활자 등…. 이러한 기호들은 일견 한 작가의 작품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다양한 매체/형식이 나열된 데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심상을 전한다. 그것은 토착화된 기독교 관습에서 유래하는 모티프 탓으로, 작가는 성상에서 직접적으로 도상을 차용하거나, 구복과 안위를 비는 종교적 행위에 관련된 가시적 이미지를 흥미롭게 관찰해 왔다.

유화로 그린 2009년작 〈1996〉을 다시 그린 2023년 회화 〈1996〉에서, 인물은 면포를 쓰고 플래시 앞에 선다. 그 뒤로 어둠 속에 성모 마리아 상이 보인다. 정황으로 유추컨대, 이 어린 소녀는 세례를 받은 기념으로 사진 찍히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는 그물로 짜인 프레임에 자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린 일체의 설치 작업으로,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한 어린 아이가 눈을 살짝 위로 뜬 채 옆얼굴을 하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도상을 반복해 보여준다.

그 상단에는 아래로 가느다란 실을 빛줄기처럼 늘어뜨린 커다란 원이 띄워져 있다. 바닥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소금을 하얗게 쌓아 둔 〈구슬사리〉는 “빛과 소금”이라는 익숙한 상징을 환기하는 한편, 소금 둔덕 위를 구르는 작은 구슬들이 어떤 성스러운 것을 집약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희박의 작업에 드러난 종교적 모티프는 그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경배와 숭고의 태도를 유발하는 ‘종교 미술’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작가는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해석되고 활용되는 상징들을 공간에 재편한다. 하지만 또, 희박의 작업은 모독에 가까운 성상파괴적 시도들과 구별되며, 단순 이미지 차원에서 성상을 레디메이드로 소비하는 팝-아트적 시도들과도 구별된다.

그가 작업에 들여오는 종교적 모티프는 구복 내지 구원을 바라는 소망의 성격을 완전히 탈색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고, 다만 좀 더 토착적으로 소화되어 키치적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가령, 희박이 초기 페인팅에서 현재의 입체 작업에 이르도록 반복하고 있는 “기도하는 소녀” 도상을 살펴보자. 작가는 국내 기독교 미술¹에서 번안/복제되었던 특정한 도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흑발의 곱슬머리를 한 하얀 피부의 소녀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희박은 이것이 발가벗은 천사 모티프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본의 구체적인 제작 방식이 묘연한 가운데, 기도 생활의 습관과 중요성을 환기하는 이미지이자 신의 은총을 받는 어린 양의 이미지로서 이 구체적인 도상은 사진과 회화 등으로 제작되어 국내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자기 작업에 가져오고 채도 높은 회화와 스킬 자수를 선보인다. 이때, 1970년대 이후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며 소규모 상점이나 가정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양식화된 키치 회화들을 참고하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유행한 “기도하는 소녀” 도상은 몇 가지 문제적 함의를 품고 있다. 하나는, ‘기도하기’라는 궁극의 종교적 행위가 ‘아버지’ 앞에 무릎 꿇은 ‘여성’으로 성별화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의인화된 도상이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신이 대개 서양인의 외양을 하고, 토착화된 원주민 – 한국인 – 의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적이다.² 하얀 피부의 어린 여자 아이 이미지는 이상한 염원을 운반한다.

이는 작가가 탐구하는 종교적 가시성의 모순, 아주 미시적인 수준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차원을 드러낸다. 어쩌면 백인 여아/남아로 형상화된 인형들을 화면 가득 채워 그리던 희박의 초기 작업들이 이러한 맥락을 공유하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현대 한국의 기독교는, 토착화 과정에서 굴절된 종교적 이미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해 왔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자기 삶에서 더 가까이 체험하고 있었던 듯하다. 성모 마리아와 주 예수를 섬기지만 동시에 조상신을 섬기며 유교적 제례를 지내던 가정 풍습이나, 신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외조모의 유품에서 불자에게서 선물 받은 불교 용품을 발견한 일 등. 이는 작가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사실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통과 특수한 길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면면은, 종교의 수용과 현대화에도 당연 반영되었다. 기독교는 유∙불∙도 3교 및 각종 민간 신앙과 타협점을 찾거나 그에 필적하는 유인책을 가지고 삶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민간 풍습으로서 구복신앙과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의 결합, 핵가족 단위의 은혜와 축복의 서사는 한국을 고발전 사회로 이끄는 기저에 놓여있었다. 또, 유교 가부장 질서와 유일신 숭배의 합치는, ‘뿌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를 여전히 지탱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는 작가 개인의 삶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부친과 양가 조부의 부재로 인한 모계 구조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일찍이 자신이 수녀가 될 줄 알았다고 말하며, 정해진 직업적 정체성에 순응하며 살았던 학창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자녀를 성직자로 길러내는 일을 영예로 여겼던 조모와, 신부 ∙ 수녀 밑에서 자라났던 외조모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삶이 종교와 떨어지지 않은 채로 살았던 이전 세대와, 좀 더 급진적이지만 여전히 종교와 유착관계를 유지하는 많은 현대 한국인을 생각할 때 희박의 유년 회상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어떤 각성을 시도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작업으로 극화했을 때 드러났다. 작가는 가부장적 구복신앙적 기독교 풍토를 의문시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다 이해하지 못한 삶의 편린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작업에 끌어들임으로써 어떤 모순을 극복하려 시도해왔다. (희박이 첫 개인전 《구월주공》(2011)에서부터 성모상을 비롯한 종교적 모티프를 드러냈던 것을 염두에 두자.)

가부장의 부재로 정의된 모계 가정은 종교(아버지 예수)를 그 부재의 대체로 세우는 면모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억압적 질서가 작가에게 일차적인 극복의 대상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Hee Vaak, Pieces of Oksoon, 2023, Single-channel video, FHD, color, sound, 21min. © Hee Vaak

2. 말할 수 없는 자, 소망의 이름으로

하지만 크고 작은 극복의 노력과는 별개로, 희박의 작업이 메타적인 사회 비평이라 할 만한 분석적 태도를 내보인다고 하긴 어렵다. 작가는 자기와 가족들을 둘러싼 종교, 그리고 종교에 밀착된 삶을 세속화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삶과 종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아이러니를 가까이서 보면서 ‘키치한 종교적 이미지’ 또는 ‘연약하고 부실한 의식’ 등으로 그것을 형식화하고, 종교인으로서 혹은 기도하는 자로서 존재하는/했던 주체들과 그들의 작은 행동들을 몹시 소중히 여긴다. 그 과정에서 무성(asexual)적 존재이자,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한낱 개인으로 스스로를 정체화 하는(그래야만 했던) 늙은 여인들은 따뜻하게 조명된다.

희박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옥순의 방〉(2015~) 연작은 90이 넘은 외조모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옥순은 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성당에서 수녀와 신부의 잔심부름을 하며 자랐던 옥순은 자기도 커서 수녀가 될 줄 알았지만, 부모라는 후견인이 없는 그는 수녀가 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다른 일을 구해야 했던 그는 산업화가 시작되던 무렵의 일본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돈을 벌었다.

일본어로 말하지 않으면 따귀를 맞아야 했던 시기를 지나, 어느새 일본어가 조선어보다 익어갈 즈음 광복이 찾아왔다. 그럭저럭 돈을 벌며 잘 살던 나날이었는데,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라고 했다. 터전이 자꾸만 역전된다. 그가 뺏긴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해방된 조선에 와서 그는 잊어버린 조선어를 되찾는 동안 자꾸 말을 잃어갔다.

일본어가 더 익숙해서 그게 튀어나올라 하면 직장을 잃었고 지하철에서도 쫓겨났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니혼진’이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며 ‘네’와 ‘아니오’를 대신하고 말을 삼갔다고 했다.

옥순의 삶은 말할 수 없는 자(서발턴; subaltern)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 앞에서 말간 얼굴을 드러낼 때에도, 그가 자신의 삶을 짧은 몇 마디로 담아낼 때도, 그는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자다. 그는 자신을 어떤 주체로서 드러내 보이지(표현하지) 않고, 사태와 사건을 증언하려 하지도 심지어 그러한 가능성을 의식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음이 곧 무력한 것은 아니다.

〈옥순의 조각〉(2023)으로 마무리될 일련의 다큐멘터리 연작을 통해 희박은 ‘옥순’ 또는 ‘춘자’로 불린 외할머니의 삶을 조명했다. 작가는 작가 스스로의 삶을 비롯해 옥순이 표상하게 된 어떤 말할 수 없음의 처지를 다만 소중하게 그러모으고 있었다.

희박은 말할 수 없는 자를 카메라 앞에 불러 세우고 또 그가 남긴 흔적을 여러 형태의 작업으로 담아내면서도 가시성을 전략 삼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는 스피박 식의 결론을 두고, 말할 수 없는 자를 말할 수 있게 하거나 여태 가려져 있던 진실 따위를 드러내겠다든지 하는 ‘가시화’의 시도는 애꿎은 도덕주의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서발턴에게는 (자기)재현의 문제가 그 도구를 취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달려 있지 않다.

서발턴에게 재현 – 말하기(가) – 이 애초에 상상 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듯 (옥순이 스스로를 옥순이라 부르거나 춘자라 부르거나, 조선인 또는 일본인으로 살아가거나, 거기에 어떤 재현적 의도가 개입할 틈이 없었던 것처럼), 희박은 자기 작업을 의미 획득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희박의 작업에서 과잉된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기표들은 마땅히 말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의미를 차라리 투명하고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다. 작가는 식민과 해방, 가부장 질서와 독립, 무지와 깨달음, 침묵과 기도, 죽음과 애도 등이 엉키는 삶의 이야기들을 한편에 두고, 거대한 진실을 좇기보다 그것들이 편편이 조각나는 가운데 안온한 하루를 기도하는 소박한 마음에 수렴하게 한다.

깨진 그릇을 이어 붙이거나 할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명주실을 사용해서 틈을 메우면서 작가는 어떤 성실한 삶을 돌아보고, 어머니의 스카프에 그려진 화려한 색감의 꽃과 풀, 새 등의 키치한 도상을 반복해 그리면서 잃어버린 행복을 채우려는 작은 욕망들을 확인한다. 그 한계와 가능성은 모두 저편으로 제쳐 두고서 말이다.



¹이 글에서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울러 지칭한다. 
²일제시대, 기독교가 전래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기독교미술의 맹아기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동양인 예수가 조선의 산천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림들이 생산되기도 했다.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 서성록, “한국 기독교미술의 전개와 과제”, 『신앙과 학문』, 21(3), 2016.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