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here is no gold that does not decay》 (Incheon Art Platform, 2025) © Hee Vaak

희박 작가의 《썩지 않는 금은 없다》는 일곱 점의 회화로 구성되며, 작은 큐브의 공간으로 높은 천장고에 상응하는, 비닐에 싸인 바뇌의 성모를 그린, 세 개의 대형 작품과 상대적으로 작고 다양한 주제의 네 작품이 있다. 중심 도상인 성모를 비롯한, 하나의 공통된 토대는 배경이다.

배경에는 어떤 사물도 없고 일정한 톤을 형성한다―〈축하 케이크 Celebratory Cake〉(2025. Oil on canvas, 65.1×90.9cm.)는 그 예외이며, 예외성은 또한 전시장 바깥의 윈도우에 따로 전시되었다는 것으로 발현된다. 배경은 첫 번째로 피사체가 자리한 현실을 지우거나 축소하거나 은폐하며, 두 번째로 그 현실이 자리한 시간성을 소거한다.  

이는 물론 피사체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함축하며, 나아가 실내 공간 혹은 스튜디오와 같은 특수한 환경의 조성에 따른 매체적 경로―일종의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를 상기시킨다. 전체의 화면을 하나의 재현적 유출로 상정했을 때 그리고 거기에 사진과 회화의 오랜 관계를 경유해 온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추정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리얼리즘의 구상 회화 계열에서, 이러한 배경 설정은 사물에 대한 집중, 사물 자체의 아우라로 연장된다.

이 사물에 대해 거는 기대와 그것이 하나의 사물일 뿐이라는 것 사이에서, 사물들은 분열되는 주체를 노정한다. 거기에는 성모를 사물화하고 결정화하는 성모를 싼 비닐이 있다. 배경과 분기되는 피사체를 그 배경으로부터 보호하거나 가로막고 있는, 비닐이라는 중간층은 성모상의 성스러움을 그야말로 ‘포장’을 통해 보존하고 가시화한다. 성모상은 가치의 사물로 포장되어 있다.

금의 가치를 체현하는 성모상이 썩을 것처럼 비닐 역시 썩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썩는다’의 기호는 비닐로부터 오는 것 같은데, 가치의 사물인 성모상은 비닐과 결착되어 있고, 분해됨이라는 연관/연상 기호로서 비닐이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비닐은 그림 자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데, 이 비닐이 성모상을 싸고 있다는 건 이 비닐이 없는 성모상이라는 신체를 우리가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성모상은 비닐에 의해 포획되어 있다. 이 비닐은 빛이 투과되는 성모상의 신체를 안과 바깥의 공간으로 나누는 한편, 성모상과 비닐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곧 안쪽의 신체를 투과(하면서 분별)해 내는 가운데 비닐은 그 신체와 불일치하는 경계선의 흔적을 추가하는 한편, 그 신체를 투과해 내면서도 이를 자신만의 결정의 레이어들로 새롭게 조각하는데―이러한 파편들의 세계는 일종의 모자이크화와 유사한 지층을 구성한다.

그것은 그 안쪽으로부터 온 각각의 색이 물든 그 자신만의 신체성을 구성해 낸다. 여기서 더 이상 안의 신체는 분별되지 않으며, 선은 그 자신만의 신체를 가리키게 된다. 안의 색과 바깥의 빛이 만나는 하나의 경계는 그 자체의 구획으로 결정화된다―이는 3개의 그림에서, 예외적으로 적용된다. 


Installation view of 《There is no gold that does not decay》 (Incheon Art Platform, 2025) © Hee Vaak

감싸여진 신체는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펼쳐지면서 동시에 바깥으로부터 안을 향해 반쯤 접혀 들어간다. 반면, 비닐은 신체를 싸고 있으며 그것을 동시에 투과하고 또 투과하며 밀봉한다. 따라서 신체는 절대적으로 펼쳐지는 건 불가능하며, 또한 추정과 상상의 영역 아래 존재한다. 이는 신비한 존재라는 하나의 영역을 구성한다.

〈Butter〉(2025. 캔버스에 유채, 325×130.3cm.)에서, 약간 왼쪽으로 신체는 나와 있고, 뚜렷하게 드러난 왼손바닥을 중심으로, 수그린 얼굴과 치마 끄트머리의 왼쪽 부분만이 형체를 가늠할 수 있다. 

〈Butter〉는 〈Pink to Purple〉(2025. 캔버스에 유채, 325×130.3cm.)과 〈Prussian〉(2025. 캔버스에 유채, 325×130.3cm.)에 비해 비닐과 신체가 더 결착되어 있고, 상호 얽힘이 극대화된다.

비닐은 신체를 꽁꽁 동여매듯 감싸고, 신체는 그 비닐로 연장되면서 결정된다―그에 비해 다른 두 작업에서 신체는 더 투명하게 드러나며 비닐은 그 자체로 분리되고 분별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신체와 결착되며 완전한 하나의 결정들로 드러나는 부분은 〈Pink to Purple〉에서는 신체의 하단 부분 쪽이며, 〈Prussian〉의 경우, 팔의 왼쪽 부분의 일부만 해당한다.).  

얼굴은 빛이 투과되는 투명한 비닐 부분, 색을 반영하지 않는 순수한 접힘, 하나의 선에 가까운 영역들로부터 왼쪽 눈은 그 선의 연장이자 분절로 자리하는데, 빛-선-물질이 그 눈에 맺혀 있다는 착각을 준다. 그것은 눈을 찌르고 흘러내리는 눈물로 변용된다. 그리고 이는 〈Pink to Purple〉과 〈Prussian〉에서도 반복되는 부분으로, 신비화된 존재와 그 효과로 부속되는 얼굴 위의 변용은, 〈Maria〉(2025. 캔버스에 유채, 112.1×145.5cm.)에서 가려진/쓰인 얼굴로 드러난다.

그로써 눈코입은 식별 불가능하게 되는데, 찢긴 위쪽 부분은 포박되는 존재의 상징적 의미를 암시한다. 곧 신비함은 진정한 실재의 차원이 되며, 시선은 은근하게 바깥을 지배하는 대신에, 내부의 폐부를 찌르는 것으로 역전된다.

발색의 차원상, 가장 시원하면서 뚜렷하게 빛의 전이를 부르는 이 그림은 〈1989〉(2025. 캔버스에 유채, 116.8×91cm.)의 파란색 배경과 흰색 옷을 입은 십자가 형상으로 신체 전면을 드러낸 갓난아이의 모습에 대응되는 것이지만, 후자가 전자―종교적인 것 혹은 신비스러운 것―에서 묻어나오는 것에 가까우며, 실은 성모상을 다른 차원으로 기입하고 제시한다.

원상으로서 제시된 〈Butter〉로 돌아오면, 중단부터 하부의 붉은색 배경은 뭔가 색상 차원에서 조화롭지 못하고 또 형태적으로도 불안정적인 차원의 번져 나감을 표현하는데, 이는 〈Pink to Purple〉의 하단에 성모상의 그림자로 자리한 안정적인 보라색과 완전히 검은색으로 화면을 덮는 〈Prussian〉과는 확실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후자의 이 두 그림은 성모상을 덮는 비닐이 비교적 투명하며 성모의 신체를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또한 차이를 갖는데, 비닐과 성모가 겹쳐지며 하나의 결정을 이루는 부분, 나아가 비닐 자체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부분은 축소되게 된다.  

그에 따라 가장 꽁꽁 싸매진 〈Butter〉는 더 많은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진다―즉물적인 형태의 차원에서, 그리고 그 존재의 의식을 추정하는 서사의 차원에서. 그 존재는 가장 불명확하며 또한 사물과도 같고 의중을 알 수 없는 것이 되는데, 이는 감춰진 얼굴, 〈Maria〉에서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며 현시된다. 그 두 작업 사이의 간격이 큰 만큼, 실은 해소할 수 없이 큰 간격을 가지는 만큼, 이 전시는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진 더 커다란 방이었어야 할 것이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