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의 작업은 회화, 드로잉, 영상, 설치, 자수, 오브제, 수작업을
가로지르며 전개된다. 초기 작업에서는 캔버스 위 혼합매체, 수집한
물건, 드로잉 등을 통해 개인적 기억과 생활공간의 파편을 다뤘고, 이후에는
깨진 사물과 실, 천, 자수, 바느질, 종교적 기물처럼 손의 노동과 관련된 재료가 중요해졌다.
〈부개동 기찻길에서 수집한 다섯개의 잔〉은 기찻길에 버려진 깨진 잔을 맞추는 과정을 단채널 영상으로 담아내며, 부서진 사물을 복원하려는 행위 자체를 기억과 안위의 문제로 연결한다. 〈무명의
기억〉 역시 흩어진 기억을 되짚는 영상 작업으로, 희박의 작업에서 복구와 봉합, 이어붙이기가 단순한 수리 행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바느질과 자수, 실과 천을 통해 여성 가족사의 노동을 물질화한다. 《옥순의 실》에서
옥순의 딸과 손녀가 땋은 명주실, 외조모가 남긴 실과 반짇고리, 재봉틀, 이불은 한 세대의 생계 노동이 다음 세대의 예술 노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옥순의 금줄〉은 명주실, 고추,
숯, 솔가지, 한지로 구성된 작업으로, 출생과 보호, 금기와 기원의 의미를 가진 전통적 금줄을 외조모의
실로 다시 만든다. 이때 작가의 손작업은 단지 공예적 기법이 아니라,
옥순의 삶을 기억하고 지나간 세대의 안위를 비는 수행적 행위가 된다. 희박의 작업에서 실은
물리적 재료인 동시에 기억을 잇는 선, 세대를 통과하는 감각, 믿음과
소망이 남긴 흔적이다.
2022년
《오늘도 무사히》(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2)에서는 회화, 설치, 스킬자수, 그물망, 나무, 오브제가 하나의 유사 예배당 같은 공간으로 구성된다. 〈기도하는 소녀〉는 그물망에 아크릴, 스킬자수, 나무를 결합한 설치 작업으로, 평면 이미지였던 ‘기도하는 소녀’를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도상으로 확장한다. 〈믿음으로 작동하는 세계〉는 캔버스 위에 반복된 기도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믿음이 어떻게 반복과 복제, 습관을 통해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이 시기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찍고 꿰매고 세우는 노동을 통해 소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작가는 기도하는 이미지의 신성함보다, 그
이미지가 사람들의 불안과 바람을 어떻게 대신 품어왔는지에 집중한다.
2025년
이후 회화 작업에서는 이전의 서사적·설치적 방식이 보다 압축된 심리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썩지 않는 금은 없다》에서 성모상은 자연광 아래 투명하게 재현되지 않고, 비닐과
인공적인 색조, 분절된 화면, 유리 조각처럼 반사되는 색면으로
나타난다. 〈Maria〉는 성모상을 초로 본뜨는
과정에서 남겨진 이미지이며, 밀랍과 양초는 기원의 도구이자 다시 녹고 변형될 수 있는 물질로 등장한다.
《Girlhood》의 회화들은 어린 시절 영성체의 풍경, 흰 드레스와 미사보, 기념사진의 포즈와 표정을 다시 불러오며, 무결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분장해야 했던 어린 몸의 불편함을 드러낸다. 희박의
형식은 영상과 설치에서 회화로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남겨진
것’, ‘반복된 것’, ‘몸에 익은 것’, ‘믿음으로 작동하는 것’을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