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주, 〈Harmony at the Porte, Triumphal Gate, Harmony_Lip-sync Project II in Paris〉, 2008, HD 비디오, 3분 24초 © 안정주

콜렉티브 사운드

‘눈처럼 마음대로 쉽게 감을 수 없기 때문에 귀는 위험하다’고 적었던 시인 이성복의 말처럼 우리의 귀는 언제나 열려있다. 바람 부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까지 어느 곳에도 소리가 없는 시점은 없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소리가 ‘동사’를 통해 세계 밖에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건물 끝에 매달린 깃발이 흔들리는 장면에도 바람의 움직임과 펄럭이는 깃발 천의 질감이 섞여 나오는 ‘소리의 2중주’가 있는 것처럼, 모든 소리에는 마찰의 순간이 있다. 맹인들의 경우에도 지팡이가 땅에 닿는 것을 통해 계단의 협소함을 파악하고 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공기의 울림을 느끼는 것으로 현상에 대한 감각을 지탱한다고 한다.

소리가 형성되는 데에는 수많은 복잡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대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만드는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공간, 그 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도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작가 안정주가 〈Harmony_Lip-Sync Project II〉에서 들려주는 소리-이미지들 또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그의 이번 작업은 복잡 미묘한 현실의 시청각적 이미지를 풀었다 조였다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유럽 도시의 기념비적인 문(gate) 앞에서 찍은 비디오 영상에 모든 소리를 제거하는 행위가 서로 달라붙어 있는 이미지와 청각의 관계를 뜯어내고 풀어내는 동작이라면, 다시 참여자들에게 화면을 보고 의성어 의태어를 발성하게 해 소리를 덧입히는 과정은 이미지에 청각을 조여서 다시 붙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개선문 앞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횡단보도의 동영상에 덧입힌 소리들은 개인이 묘사한 각각의 소리가 하나의 집단적 음성이 되는 자발적 화음의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휘자라 할 수 있는 작가에 의해 베를린이라는 초국가적 도시에 모인 참여자들은 동영상 이미지 속에서 자신이 따라해야 할 각각의 캐릭터들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는 빨간 버스일 수도, 2차 대전 패잔병을 흉내 낸 가짜 마네킹일 수도, 습관처럼 아침 조깅을 하는 지역의 평범한 인물일 수도 있다.

다른 목소리와 다른 발성법, 다른 대화법을 가진 그러나 잠시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참여자들은 가만히 서 있는 남자의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묘사하고 횡단보도 사이를 지나는 차의 그을음 소리를 따라한다. 화면 안에 갑자기 등장한 관광객이 사진 찍는 소리, 휘뚜르르 지나가는 새의 동작까지도 그들의 모방 대상이다.

사람의 음성을 통해 구현되는 가상의 ‘다성적인 현장음’은 얼굴 없는 오페라 연기자들처럼 적극적으로 무대 배경음을 만드는 참여자들을 통해 자유자재의 배열을 형성하게 된다. 누군가는 ‘쪼로롱’으로 누구는 ‘통통통’으로 또 다른 누구는 ‘음음음음음’으로 행인의 발걸음 소리를 천차만별 묘사해내는 데에는 체득적으로 획득한 의성어, 의태어의 힘과 자유분방함이 묻어난다.

안정주가 찍은 로마, 스페인, 인스브루크, 파리의 풍경은 고정된 카메라의 위치 때문에 마치 풍경화 또는 동양의 산수화 같은 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은, 말 그대로 동영상이다. 최소한 나뭇잎이 움직이거나 때로는 눈으로는 잡히지 않는 알 수 없는 움직임들로 인해 작은 소리가 끊이지 발생하는 ‘계속되는 이미지’인 것이다.

작가는 행인 1이나 2로 묘사되는 보잘것없는 개인, 역사적인 장소에서 관광지로 정형화된 기념비 앞의 풍경들도 사실은 놀랄 만큼 다양한 사회적 배경 차를 깔고 있다는 것을 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스페인의 기념문 앞에서 화창한 날씨 아래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운동에너지를 내뿜기에 정신이 없고 인스부룩에서는 조용하고 차분한 정적인 소리들로 가득하다.

각 도시를 유랑한 후 다시 베를린에서 참여자들을 모아 의성어, 의태어를 입히는 과정에서 작가는 디테일한 감수성의 차이를 발견하는 데 집중한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풍성하게 혀를 굴려가며 음악적인 소리로 묘사하는 프랑스인들이나, 사람의 동작을 군대식 발걸음으로 무뚝뚝하게 표현하는 낮은 목소리의 독일인들은 각 개인의 음역대가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다는 걸 보여준다.

독일에서 가짜 마네킹 역할을 하는 유사 관광 상품인 인물이 사진을 찍지 말라는 제스처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을 ‘경례하는 것’으로 위트 있게 해석해 소리를 낸 참여자도 있다. 이렇게 이미지에 적합한 소리를 유추해내는 과정에 들어선 참여자들은 이미지 안에 포함된 소리, 소리 안에 포함된 이미지의 관계를 나름대로 뒤집고 연출하고 교란시키기까지 하는 것이다.


안정주, 〈Breaking to Bits〉, 2007, 4채널 영상, 사운드, 7분 14초 © 안정주

소리의 표정

작가가 소리를 지워버린 공간이 유럽의 기념비적인 문(gate)이라는 사실도 사회적 관습,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역사적 승패에 따라 선망과 멸시의 대상이 명확하게 갈라지던 이곳에서 후세 사람들은 일상을 큰 사건사고 없이 이어가는 듯 보인다. 동시에 지구의 반대편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은 발 도장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로 호들갑을 떨며 이곳을 방문한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가 집합하는 장소로서 기념비이자 문화적 통로로서의 게이트(gate)는 최적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와 소리로 붙어있는 한 덩어리를 해체하고 다시 그 위에 소리를 재현하게 하는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는 과거 작가가 보여줬던 작업들과 연장선에 있다.

중국 공안 부대의 제식훈련을 담은 〈Drill〉, 공사현장의 광폭한 굉음을 채집했던 〈Turn Turn Turn-Breaking to Bits〉, 소주병을 만드는 공장에서 발산되던 강렬한 기계음을 노래로 편집했던 〈Turn Turn Turn-The Bottles〉이 사회적 생산, 해체, 집단 훈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분절/단위’에 대한 개인의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Harmony_Lip-Sync Project II〉는 다양한 개인들이 가진 ‘소리의 표정’을 다원화하는 데 초점이 가 있다.

안정주가 2007년 《Turn, Turn, Turn》 전시에서 이미지와 소리의 병치를 통해 누구에게는 소음인 것이 누구에게는 명령이며, 다른 누구에게는 친숙한 배경음이 된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현실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했다면 〈Harmony_Lip-Sync Project II〉는 뒤로 숨은 지휘자처럼, 자체 발성하는 악기들에 그들 스스로 음역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명의 기회를 준다.

작가가 이전 작업에서 자신의 가공 작업을 통해 획일화된 서사와 무늬를 드러냈다면, 〈Harmony_Lip-Sync Project II〉는 획일화된 서사를 강요하는 기념비적인 문이라는 공간 앞에서 거꾸로 출발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Harmony_Lip-Sync Project II〉는 보다 충만하게 ‘다른 청취’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청각적 공간에 반응하는 개인들의 사적인 사운드에 의지한다.

사회의 생산 구조 속에서 형성된 소리의 집합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한 소리의 차이와 좁고도 광활한 음역대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작가가 직접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역사적인 공간에 현실의 시공간을 덧입히는 요소가 부동의 건물인 기념비 자체가 아니라 움직임의 마찰을 통해 발생하는 소리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전시장에 놓인 흑백 사진을 통해 다시 한번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시장 벽에는 각 도시의 기념문의 사진이 흑백으로 걸려있다. 어린아이가 숨은그림찾기를 한 후 가위로 도려낸 듯, 사진 속에서 소리를 발생하게 하는 모든 이미지들은 오려져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다시 작가는 사진에서 오려낸 움직이는 대상들, 그러니까 소리를 만들어내는 걷는 사람들, 나뭇잎, 자전거 등의 이동수단을 듬성듬성 종이에 붙여놓고 ‘사운드 아카이브 북(sound archive book)’이라는 책을 만들어 전시장에 툭 하니 던져놓았다. 머리가 뻗칠 만큼 펄쩍 뛰고 있는 사람의 사진 옆에 이제 전시를 보러 온 누구나 그 이미지에 맞는 소리를 적어놓을 수 있다.

주변 배경이 모두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철저하게 관람객이 상상한 맥락에 의해 사운드의 표정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음성이 이미지가 되고, 다시 이미지를 보고 음성을 문자 언어로 적어놓는 과정은 세계에 눈 뜬 어린아이가 막 세계에 대해 하나하나씩 다양한 언어로 말 걸기를 시작하는 ‘다른 방식의 소통’ 방식에 대한 갈구이자 흥미로운 실험을 닮아있다.

통일된 배열과 선율 대신 각 참여자들이 움직이는 대상을 보고 ‘이런 소리가 날 것’이라는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추상적인 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소리의 현현을 마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여러 소리의 집합은 조화가 되고, 소리를 듣는 ‘수신자’로만 존재했던 개인들은 다성적인 청취와 발성이 가능한, 소리의 ‘경험자’로 자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하모니(harmony) 또한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기념비 앞에 새겨진 무한한 시간과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상징하는 다양한 문화의 중층적인 음표들을 통해 ‘겹쳐진 악보’에서 흘러나온다.


음향 다큐멘터리

작가에 의해 하나의 조화를 일궈낸 이 ‘소리의 표정’들은 세밀한 ‘음향 다큐멘터리’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현장음, 즉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다 지우고 나서 인위적으로 하모니를 만들어 보는 행위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혹은 너무 당연시되어 일상에 묻어버린 소리의 음역대를 활발하게 깨어나게 한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소리에도 끝과 시작이 있는지 관람객에게 묻는다. 그리고 소리가 사라진 흑백사진의 공간에서, 그 나이 들고 강해 보이는 기념문들의 진짜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영상 속의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차는 ‘부우웅’ 하는 소리의 꼬리를 남긴다.

안정주의 작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래가 되기 직전의 어떤 아카펠라 모음집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음악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좁은 범위에서 묘사된 각각의 소리와 그것이 모였을 때 다시 생겨난 ‘청각적 공간’은 눈과 귀의 또 다른 소통 가능성을 열어두게 하는 협업하는 소리들이다.

독일 베를린의 베타니엔 스튜디오 레지던시로 1년간 이동했던 안정주의 이번 전시는 다양한 바깥소리의 합주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작가가 직접 경험한 현실의 체험 보고서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와 관광안내 책자에서 보던 스테레오타입한 풍경, 삐져나올 틈 없이 정형화되었던 이미지도 작가 안정주의 작업에선 이미지와 소리의 새로운 충돌로 되살아난다.

20세기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은 “참다운 동작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내야 한다. 마치 음악에서 하모니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내야 하는 것과 똑같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병치를 보여주는 안정주의 작업은 조금 더 유연하게 몸을 구부리고 있는 악기들의 동작을 풍성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같다. 끝없이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러한 악기 중 하나일 수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