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경의 작업은 극영화, 다큐멘터리, 인터뷰, 다채널
영상, 사진, 설치, 프로젝션을
오가며 전개된다. 《도채비 길어올리기》가 미완의 영화 시나리오를 전시장 안에서 낭독하고, 문·빛·소리·영상의 구조를 통해 관객이 직접 접근하도록 만든 작업이었다면, 《도채비
가로지르기》는 사진과 영상을 매우 작은 크기로 배치해 관객의 이동과 시선의 조절을 요구했다. 이때 전시장은
이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소라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몸으로 거리와 위치를 다시 정하며 타인의 이야기에
가까이 가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정신질환 당사자를 선명하게 포착하는 대신, 손과 발, 풍경, 빈
공간 같은 주변부의 이미지들을 통해 ‘보는 행위’가 지닌
폭력성과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은 양은경의 형식적 전환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업이다. 이
전시는 조현병 당사자 8인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6채널
영상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Invisible Body,
Tangible Word)〉(2024)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각자의 몸과 말을 병렬적인 다채널 구조 안에 배치한다. 영상은 하나의
인물이나 사건을 따라가는 선형적 내러티브를 만들지 않고, 서로 다른 음성, 자막, 빈 화면, 신체
일부, 얼굴과 목소리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나란히 놓는다. 이를
통해 조현병이라는 병명이 하나의 설명으로 환원되지 않도록 하고, 각 인터뷰이가 처한 상황과 공개 가능성에
따라 다른 방식의 가시성을 부여한다.
이 작업에서 편집은
단순한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의 문제로 작동한다. 초상 공개에 동의한 인터뷰이는 얼굴과 음성이
함께 드러나지만,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에는 모자이크 대신 손, 발, 잘린 화면, 공백, 텍스트, 타인의 말과 이미지가 사용된다. 이러한 공백은 부재의 표시가 아니라, “이 사람의 몸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된다. 전시장 역시 관객이
처음부터 화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도록 설계되고, 어둠에 적응한 뒤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화면과 말을 만날 수 있다. 이는 타인의 말을 듣고 타인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과정인지를 공간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몸과 말의 경계에서〉에서는
영상 녹화와 음성 녹음, 그리고 프로젝션이라는 매체의 물리적 조건이 작업의 핵심이 된다. 작가는 흐릿하거나 지나치게 선명한 이미지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며, 기록된 몸과 목소리가 전시장 안에서 다시 재생될 때 발생하는 빈틈에 주목한다.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City Made of Lights)〉(2025)처럼 모서리에 영사되는 영상, 지하철에서 본 바깥 풍경과
빈 공간, 작가의 문장, 인터뷰 영상은 모두 정면으로 명확히
보이는 화면 대신 돌아보고, 이동하고, 위치를 바꾸어야만
접근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양은경의 영상 설치는 그래서 기록된 사실을 전달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어야 하는지 묻는 감각적 편집의 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