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Yesul, Artist survival, 2015, digital print on paper, 24 page, 27 x 21cm © Kim Yesul

김예슬의 〈아티스트 서바이벌-당신의 작업은?〉을 구성하고 있는 ‘MCLC 테스트’는 현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신랄한 비평을 포함하고 있다. MCLC는 테스트에 응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각각 4 단계의 머리글자로 각각 다음의 내용들이다: M: Museum(미술관)/ C: Character(성향)/ L: Life(인생)/ C: Career(경력).

즉 M단계는 현재 창작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 “한국현대미술작가의 고유한 시각과 미감을 보여주는가”나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철학을 구현하는가”로 이어진다. C는 작업의 성향이나 특성에 관한 테스트항목들, 예컨대 “자기고백적인가”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가” 등으로 구성된다. L은 아티스트로서 생활상, 즉 “사채 빚이 있는가”나 “동성애자인가” 등을 묻고, C는 “젊은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가”나 “비엔날레에 참여하였는가”와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상자 모두 ‘예/아니오’로만 대답하도록 요구되는 이 테스트는 넌센스 퀴즈와도 같은 형식을 취하지만, 그 바탕에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깔려 있다. 엉뚱해 보이는 문항들조차 미술계라는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보자. C단계, 곧 커리어(경력)를 묻는 문항들 중에는 유독 학력에 관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중앙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는가”, “스쿨오브 비주얼아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가?”, “시라큐스 대학교를 졸업하였는가?”, “미야기 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였는가” 같은 식이다.

이러한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들을 따르노라면, 화가 나다가도 어떤 결핍으로부터 발원하는 헛헛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아찔함을 느끼게도 된다. 이같은 정서가 단지 미술계의 주변을 서성이며 느끼곤 했을 김예슬 개인의 것만은 아닐 터이다:

“평소에 작업을 할 때… 궁금증이나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가끔 전시를 보러갑니다. 어떤 정답을 찾으려는지… 전시장 입구에 놓인 팜플릿 한 장을 들고 작품과 설명을 매치하며 이리저리 보고 읽습니다. 요즘은 어떤 주제로 전시하고 자신의 작업을 노출시키는지… 그러면 나도 그런 작업을 해야 내 작업도 노출시키고 전시도 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에 모두 부합하고 만족시키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의 이런 조건과 상황에 만족하는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김예슬)

예술가가 되는데 그렇게나 많은 조건들이 필요한가에 대해 김예슬은 새삼 놀란다고 말한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학위를 손에 쥐어야 하고, 유학을 다녀와야 하고, 뉴욕이나 런던 주변을 적어도 한두 번쯤은 어슬렁거려야 하는 것인가?

작업엔 반드시 매우 일관된 주제가 있어야 하고, 우선 어느 정도의 양이 담보되어야 하는 경력 란에는 각종 공모전에서의 수상경력 따위가 적혀 있어야 비로소 아티스트로서 행세할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이젠 모국어는 물론이고 국제어인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그림 열심히, 그리고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작가가 된다는 것인가?

내 생각으론 김예슬이 사실을 제대로 보았다. “젊은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가”나 “비엔날레에 참여하였는가?”와 같은 문항들엔 직관적인 깨달음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의 이면에서 다음의 의미를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매우 절망적이다”, “오늘 비엔날레에 참여하지 못한 작가들에게 내일의 시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MCLC 테스트의 문항들은 결국 하나의 인식을 환기시키는데, 그것은 예술과 예술가들이 (널리 퍼져 있는 온갖 낭만적인 가설들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시스템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디 작가들뿐이겠는가?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관객, 심지어 비평가조차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에 거의 노예적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통상의 관객들이나 전문적인 이론가들 사이의 간극은 더욱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전시를 보러가서는 그들이 우선 확인하는 것은 작가의 약력이나 수상경력이다.

김예슬이 설계한 ‘B급 테스트’인 MCLC 테스트는 시스템 안에 거하는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웃픈’ 보고서다. 테스트의 결론도 중의적이다. A 타입의 커리어 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당신이 공부하고 졸업한 학교의 덕을 하나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작업은 비평가나 관객에게 호평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저물어버릴 것입니다.… 후배들을 만나면 그만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선배들을 만나면 영혼 없이 그저 그만두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교훈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주변을 모두 짓밟고 일어서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접으시길 바랍니다. … 너무 무리한 일은 모든 계획을 지치게 합니다. … 이제는 욕심을 조금 줄이고 하나라도 잘 해내자는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오.”

MCLC 테스트의 문항들이 지시하는 진실과 거짓, 과도한 구체성과 모호함, 과장과 누락, 우스꽝스러움과 분노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전제’, 즉 시스템에 의해 전제로 주입되고 설득되어온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전제를, 즉 현 시스템을 그것도 철저하게 되묻는 것이 예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철저하게 전제를 되묻기 위해서는 제2의 실행적 전제가 요구되는데, 시스템의 내부자로서가 아니라 외부자로서의 인식으로 스스로를 무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새로운 결론이 아니다. 18세기의 시인 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의 『독창적인 작품에 대한 고찰 Conjectures on Original Composition』(1759) 도 동일한 내용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학식(Learning)은 주로 당대의 시스템으로부터 빌려온 지식이다. 그래서 영은 말한다: “빌려온 부는 우리를 오히려 가난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명하게도 그 가난함으로부터는 어떤 흐름(issue)도 생겨나지 않는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