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고유시〉, 2017, 668개의 시계, 가변크기 © 이완

노동은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인식된다. 새삼스럽지만 사전적 정의를 돌이켜보면 노동이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일컫는다. 노동의 형태는 자급자족, 자영업, 임금노동과 같이 다양하지만, 시장의 효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비교 우위에 따른 분업과 임금노동이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은 새로운 정의를 요청하며, 이미 오래 전에 발표된 자본주의에 대한 탁월한 연구서에서 ‘노동(력)은 곧 상품’이라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다. 즉 자본주의 체제로 사실상 일원화된 현실 세계에서 노동은 인간의 상품화이자 인격적 삶과의 분리인 것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은 현실 경제와 임금노동 체제에 대하여 주로 구별 짓기 전략으로 대응해왔다. 예술이 노동의 자기소외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자부심은 예술적 실험의 추진력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특권의식이나 허위의식으로서 창작 및 문화노동의 구조를 왜곡하기도 해왔다. 개별적인 취미 활동의 범주를 넘어선 국가 산업으로서의 예술은 임금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혹은 배제된) 예술가와 무수히 많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데 모여 구성된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는 예술가의 노동 착취에 관한 문제제기를 비롯하여 예술이 (어떤) 노동인지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는데, 창작의 관례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노동 구조 및 제도 비판적 관점이 구체화되는 작업이나 전시 및 포럼도 눈에 띈다.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에 관한 사회과학적 논의와 예술가를 포함한 문화 노동에 대한 논쟁의 역사를 고려하면, 이완 작가가 최근(2017) 313아트프로젝트 개인전에 선보인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시리즈는 다소 피상적으로 보인다. 현실 노동 시장의 최하위층인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여 작업의 의미나 의도를 설명하지 않은 채 100호짜리 캔버스를 ‘성실하게’ 채워 달라 의뢰하고,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제스처로서 선을 그어 완성한 작업은 현실노동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보여준다.

관람의 대상을 물감의 구축으로부터 발생하는 감각적 쾌감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로 돌리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현실의 임금노동과 예술 노동을 구분한다. 이렇게 예술은 무의미한 성실함으로서의 현실 노동을 비판적으로 일갈하지만, 예술 노동에 대한 반세기 전의 인식을 반복하고 현실 노동과의 거리를 관습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상품화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누구인가? 

현실 노동에 ‘거리두기’하는 이완의 전략은 오히려 고용의 구조가 배제되었을 때 좀 더 흥미롭다. 아시아 12개국을 방문하여 각국의 대표적인 생산 구조를 직접 체험해보는 ‘메이드 인’ 시리즈는 아시아의 낙후한 산업적 풍경을 드러낸다. 약 3년을 들여 아침식사 한 끼를 차려내는 프로젝트는 식사 한 끼에 축약된 전 지구적 노동의 결과를 극도로 ‘비효율적인 노동’을 거쳐 해체한다.

이완의 작업에서 아시아의 노동집약적 산업은 단지 서구 중심적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지 않고, 자급자족 시스템으로의 낭만적 후퇴를 주장하기 위한 체험 삶의 현장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메이드 인’ 시리즈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거치면서 황학동에서 구입한 수집품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구성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수집’은 이완의 작업 방법론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인 듯하다.

특히, 이미 ‘메이드 인’ 시리즈에서 아시아 각국의 대표 공산품을 집합시키고 있듯이, 이완에게 있어서 수집은 ‘전형’을 추출해내는 것과 같다. (서양사를 기준으로) 수집은 계몽의 시기를 전후해 부유한 귀족과 상인의 문화로 보편화되었으며, 점차 자아실현과 확장의 수단으로서 특정한 종류의 사물을 수집하는 문화가 발생한다. 주체는 수집을 통해 사물과 연결되며, 소유욕의 연쇄에 따라 산적한 사물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함으로써 소장품을 완성한다.

도서관의 분류체계가 비교적 객관에 달하는 반면,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분류하는 미술관 체계의 자의성이 드러난 지 벌써 오래되었다. 개인이 소장품을 분류하는 방식은 어떨까? 이완은 어떤 체계를 세웠을까?  

이완이 지난해에 발표한 사진 작업 〈한국여자〉(2016)는 상업지구의 난잡한 풍경과 상품물신 소비자의 초상을 결합하여 한국 경제 체제의 천박함과 척박함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여성혐오 논란의 대상이 되며 전시 주최 측의 작품 철수로 막을 내렸다. 작업 의도나 그동안의 작업 맥락을 고려하면 부당한 비판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종의 ‘코드’ 수집과 분류 방법에 내재된 주관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오해 또는 의도를 배반하는 이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예술은 통상적인 기호의 체계를 변형하고 전복하여 작가의 주관적 관념을 드러내고,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인식의 가능성을 공유하는 활동이지만, 주관을 전달하는 형식과 매체에 따라 의도가 명확해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이완의 작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개되었던 경우는 경제 체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분석적 관점이 단지 관념적 삽화로서 제시되지 않고 작가 개인의 사적인 신체를 통과했을 때였던 듯하다. 작가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 수집 작업을 선보인다는데, 코드 유희의 과정에서 주관성을 이용하는 구조가 (어떻게) 들어갈 지 궁금해진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