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협업, 지속적 변형은 한국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 중인 작가 이강승의 작업에서 중심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10년 넘게 공공 및 개인 아카이브를 발굴하여 세상을 떠난 퀴어 예술가, 작가, 무용가, 게이 및 트랜스 인권운동가들의 작업과 유산을 되살리는 연구 조사 기반의 작업을 발전시켰다. 국경을 초월하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 중에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사람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잊힌 이들도 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강승은 아카이브의 관리자는 물론 기록에 담긴 역사에 관여했던 생존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종이에 흑연 드로잉, 삼베에 자수, 발견된 오브제 콜라주 등 이강승은 작품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이 속한 퀴어 공동체의 예술가 및 문화생산자와도 협업하여, 진행형의 개방적인 미술 프로젝트, 그룹 전시회, 영상 작업을 진행해 왔다.

공동체 그리고 협업은 <무제(아트스피크?)>(2014-진행 중) 같은 초기 작품부터 작업의 구조를 이루었다. ‘양식 있는 길잡이’라 소개된 로버트 앳킨스(Robert Atkins)의 저서 『아트스피크: 1945년부터 현재까지, 동시대의 개념, 운동, 전문어 안내서』는 여러 미술운동과 동시대 미술용어를 정의한 참고서로, 주요 사건을 연도별로 ‘세계사’ 또는 ‘미술사’로 분류해 넣은 연대표도 들어 있다. 이강승은 <무제(아트스피크?)>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와 칼아츠(이강승은 이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 중 20명에게 협업을 청했다. 이강승은 그들에게 『아트스피크』에 실린 연대표에서 각자의 생년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손으로 그린 확대본을 준 다음, ‘편집’을 부탁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나이, 젠더, 인종, 성적 지향, 문화적 배경 등 면면이 다양했다.1 참가자들은 페이지를 두른 넉넉한 여백 안에 저마다 『아트스피크』에 누락된 작품, 뮤지션, 영화감독 등에 관한 주석, 일화, 사건, 드로잉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모인 편집본들은 당시 이강승의 국가와 세대를 넘는 공동체가 지닌 관심사와 개개인의 배경을 반영한 다중의 역사 서사를 도입함으로써, 『아트스피크』 판본의 역사에 내재한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적이며 식민지적인 관점을 흔든다.2

2019년 즈음 시작된 <하비> 프로젝트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최근 몇 년간 이강승의 공동체적 접근은 역동성과 개방성을 한층 더했다. 이 프로젝트의 근원에는 동료 미술가이자 친구인 줄리 톨렌티노(Julie Tolentino)의 작품 <흙 속의 아카이브>(2019-진행 중)이 있었다. 작품은 톨렌티노가 작게 잘라준 선인장 자구를 길러 키운 크리스마스 선인장 화분으로 이뤄져 있다. 선인장 자구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정감독관이었던 하비 밀크(Harvey Milk, 1930-1978)가 키우던 선인장 ‘모본’에서 잘라낸 것이다.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최초의 선출직 공직자 중 한 사람이었던 하비 밀크는 취임한 지 1년도 못 되어 암살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톨렌티노의 선인장은 퀴어 운동가이자 아키비스트인 친구가 간이 인쇄물을 동봉하여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친구의 선인장도 받은 것으로, 하비 밀크의 옛 룸메이트 중 한 사람(그는 수년에 걸쳐 여러 친구에게 선인장을 잘라 주었다)에게 나눔 받았다.3 톨렌티노의 작품을 본 이강승은 하비 밀크가 세상을 떠나고 40년 동안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그의 식물을 돌보고 번식시켰다는 사실에 감동하였다.4 2019년부터 이강승은 톨렌티노가 ‘하비’ 선인장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도와주었고, 두 사람의 퀴어 친구들이 맡아 키운 식물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에 이강승은 직접 본인의 작품을 만들었다. <하비> 프로젝트는 하비 밀크에 관한 기억을 살리고 오늘에 지키려는 공동의 열망을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북돋는 돌봄과 선물의 행위를 만들어 낸다.

지속적 변형은 <하비> 프로젝트—선인장 자구와 소유자가 세대를 달리하면서 말 그대로 형태가 변한다—는 물론이고 더 넓게 이강승의 예술 작업에서도 핵심이다. 이강승은 작품에서 독창적인 소재를 썼노라 주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작업 양식을 ‘전유’의 측면에서 바라본다.5 그는 아카이브, 서적, 특별 장소에서 특정한 역사와 상징적 울림이 깃든 이미지, 오브제, 유기체 및 기타 재료를 발견하고 수집한다. 본래의 의미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그는 원재료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고 때로는 다른 매체—이 글에서 논하듯 특히 드로잉, 자수, 콜라주, 비디오—로 번역한다. 이렇게 이강승의 작품들은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기억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드로잉: 존재와 부재

이강승의 여러 흑연 드로잉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에서 열린 《떠남 없는 부재》(2016-2017)에서 선보인 것처럼 짧게 막을 내린 퀴어들의 삶을 추모한다. 전시에서 이강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특히 뉴욕의 게이 라이프를 담은 사진을 정교하게 다시 그린 흑연 드로잉 연작을 선보였다.6 작품이 원자료로 삼은 사진으로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자화상, 피터 후자(Peter Hujar)가 찍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의 초상, 피터 벨라미(Peter Bellamy)가 촬영한 마틴 웡(Martin Wong)의 초상을 비롯해, 앨빈 밸트롭(Alvin Baltrop)과 레너드 핑크(Leonard Fink)가 허드슨강 부두에서 찍은 게이 크루징 장면 등이 있다. 이강승의 드로잉은 사진을 충실하게 모사한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사람의 형상은 마치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듯 흐릿하고 알아볼 수가 없다. 인물 지움은 한편으로 에이즈가 뉴욕은 물론 전 세계 도시의 퀴어 공동체에 몰고 온 충격적인 절망과 유행병의 존재를 처음에는 인정하려 들지 않던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를 암시한다. 미국만 놓고 보아도 1990년대 말까지 수십만 명이 에이즈와 그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었고, 메이플소프, 워나로위츠, 후자, 웡, 핑크도 그 숫자에 들어 있다. 그런 이유로 이강승의 드로잉을 미술사학자 이강훈이 말한 대로 상실에 대한 비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7 또 한편으로 인물 지움은 사진 이미지에 대한 이강승의 예술적 개입을, 즉 그가 앞서 세대의 예술가들과 나누는 열린 대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개념적 촉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강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의 작품이 앞서 존재했으나 드러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지운 현실에 의문을 던지고, 세대 간의 연결과 돌봄이 담긴 공간에 관한 대화를 불러오며, 비가시성을 가능성으로 다시금 상상하는 초대가 되었으면 한다.”8 이런 방식으로 그의 드로잉을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노고와 시간을 들인 이강승의 드로잉 방법론 덕분에 관객은 작품을 더욱 오래 천천히 감상하게 된다. <무제(오준수의 편지)>(2018)처럼 대형 작품일 경우 더욱 그렇다. <떠남 없는 부재> 연작처럼 사진을 그린 이강승의 드로잉 대부분이 32 × 28 cm의 아담한 크기이지만, <무제(오준수의 편지)>는 160 × 120 cm로 거의 다섯 배나 크다. 크게 확대된 덕분에 작가이자 시인인 오준수(1964-1998)가 쓴 편지 내용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편지에는 그가 조용필의 노래를 듣다가 에이즈로 죽는 상상을 하며 느낀 외로움이 통렬하게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은 양 잊힐까 몹시 두려워한다. 오준수는 한국에서 에이즈 양성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최초의 게이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명으로 에이즈 환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냈고9 (이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설립에 일조했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생애 마지막까지 일했다. 이강승의 드로잉을 보면 고르지 않은 색조로 나타낸 종이의 질감부터 섬세하게 표현된 종이의 구김까지, 편지의 물리적 특징이 잘 재현되어 있다. 오준수는 편지를 한 번 접어 친구에게 보냈다. 대형 크기의 드로잉은 편지에 담긴 강렬한 개인적 소재는 물론 서신 교환이 상징하는 우정을 기념비화한다. 작품이 전시될 때면, 그 기념비적인 규모 덕분에 그림은 한 번에 다수의 관객—대중—에게 말을 걸어 오준수의 삶과 작업이 실제로 잊히지 않도록 힘을 보탠다.

삼베에 금사 자수: 죽음과 영원

2017년 이후로 이강승은 애도와 덧없음을 일깨우는 한국의 전통 삼베 천에 금사 자수 작업을 해왔다. 삼으로 만든 천인 삼베는 한국에서 장례식,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1950년대 전까지 삼베는 농민과 중산층 가정의 여름옷은 물론 상주와 고인의 상복 소재로 널리 쓰였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구 스타일의 옷이 인기를 더했고, 삼베는 이제 매장 의례에 주로 쓰인다. 삼베는 면이나 비단보다 더 빨리 분해되기 때문에, 특히 수의에 적합하다고 여겨진다.10 노동집약적이고 고도의 숙련을 요구하는 삼베 직조 과정은 한국에서 주로 농촌 지역의 여성 노인 세대의 손으로 이뤄진다. 농촌의 젊은 여성 세대가 더 나은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데다 수입산 대량생산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전통 삼베 가격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이 되었고, 장래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한국의 전통 삼베처럼 이강승이 자수에 쓴 금사에도 쇠퇴의 기미가 엿보인다. 이강승이 쓴 실은 직물의 고장으로 오랜 명성의 교토 니시진 지구에서 1910년대와 1920년대 초에 생산된 24캐럿 금사이다. 금사는 순금박 띠로 명주실을 감싸 만드는데,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사장된 기법이다. 이 특정한 종류의 니시진 금사는 전 세계에 한정된 양만 남아 있다. 비율은 낮아질지언정 아직 생산은 되는 한국의 전통 삼베와는 달리, 이 역사적 실은 어느 시점에서 공급이 끊기고 말 것이다.

이강승의 삼베 위 금사 자수의 기저에 상실—그리고 상실의 예견—이 깔려 있지만, 작품에는 존경도 담겨 있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 분야에서 황금은 전통적으로 특히 신성함, 순수성을 표하는 데 쓰였다.11 <무제(커버)>(2018)에서처럼, 이강승의 손에서 황금사는 자수의 대상을 성상화한다. <무제(커버)>의 본래 이미지는 오준수의 추모집 표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선 양복 차림의 말쑥한 두 남성을 그린 선화를 본다. 한 남자가 다정하게 손을 다른 이의 어깨 위에 올리고 한쪽 발을 상대의 다리에 닿도록 뻗은 모습이다. 추모집 표지에서는 이미지가 “오준수를 추모함”이라는 제목 옆에 배치되었기에, 오준수가 긴밀히 참여하였던 친구사이(말 그대로 ‘친구들 사이’라는 뜻이다)와 오준수 자신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강승의 자수에는 이미지를 특정한 해석으로 이끌 설명이 없다. 이미지는 자유롭게 흘러가 두 남성의 애정의 몸짓을 그린 충만한 이미지가, 호모소셜과 호모섹슈얼 사이를 오가는 이미지가 된다. 금사와 삼베라는 재료로 재맥락화된 이 다의적인 남성 친밀의 이미지는 빛나는 금으로 그려져 영원해지지만, 자수의 바탕인 삼베는 유기물이어서 적절한 조건 아래 관리하지 못하면 바스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콜라주: 연결과 재구성

이강승의 여러 작품에서 콜라주는 아예 다른 인물과 장소와 역사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 알려진 존재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를 연결 지어 모두가 볼 수 있게 가시성을 넓히는 데 활용된다. 콜라주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례를 서울의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중요 전시인 《Garden》(2018)에서 찾을 수 있다.12 전시는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명의 인물인 오준수와 영국의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데렉 저먼(1942-1994)의 관련 이미지와 오브제를 한데 모은다.13 HIV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오준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낙인에 직면하였고 상대적으로 무명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에세이와 시 다수는 사후에 그의 친구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출간되었다. 반면, 퀴어 섹슈얼리티를 펑크 감수성과 결합하여 재현한 저먼의 아방가르드 시네마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비평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게이 인권운동가였던 두 사람은 몇 년의 차이를 두고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Garden》을 위해 이강승은 영국 켄트주의 던지니스로 향했다. 저먼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집과 정원인 프로스펙트 오두막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저먼은 자신이 HIV 양성임을 안 직후 이곳을 발견하고 매입했는데, 생애 만년을 이곳에서 정원을 가꾸며 깊은 위안을 얻었다.14 서울에서 이강승은 한국퀴어아카이브를 찾아 오준수의 삶과 작업을 들여다보는 연구 조사를 진행했고 오준수의 친구와 친구사이 동료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Garden》 전반에 걸쳐, 이강승은 세상의 다른 두 장소에서 수집한 출판물, 사진, 개인 물품, 꽃, 돌, 흙을 배열하여, 데렉 저먼과 오준수가 남긴 서로 균등하지는 않았던 유산을 함께 엮어, 두 사람이 각각 나란히 펼친 투쟁과 창조와 저항을 겹쳐 놓으며 추모한다.

이강승의 《Garden》 전체를 콜라주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전시 초입에 자리한 <무제(테이블)>(2018)은 전시의 전제와 매체 활용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사각의 나무 탁자 위아래로 오브제들이 배열되어 있다. 프로스펙트 오두막과 더불어 게이 공동체 역사와 연관된 서울의 장소를 촬영한 사진들, 오준수가 남긴 일상 메모의 복제본 묶음, 오준수의 추모 기사 면을 펼친 한국 최초의 게이 레즈비언 잡지 중 하나인 『버디』 한 권, 오준수의 일상과 장례식 모습을 담은 스냅 사진들, 두 장짜리 편지를 펼쳐 보이는 오준수의 글 모음 폴더 그리고 필명으로 낸 오준수의 회고록 한 권과 그의 추모집 한 부가 놓였다. 테이블 중간에는 삼베로 된 장식천이 깔려 있는데, 잎이 난 잔가지 위로 하트가 달린 모티프를 금사로 수놓았다. (모티프는 이강승이 프로스펙트 오두막에서 본 커튼에서 유래한 것으로, 《Garden》 전시에서 선보인 프린트 <무제(프로스펙트 오두막의 커튼)>(2018)이 이를 담고 있다) 삼베 장식천의 위와 옆으로 저먼의 정원에서 가져온 녹슨 쇠사슬이 있고, 조약돌이 짝을 지어 혹은 나란히 무리 지어 놓였다. 두 존재 간의 또는 한 집단 간의 친밀한 유대를 은유하는 이미지이다. 캘리포니아 클레이에 던지니스와 서울 탑골공원 및 남산공원—오준수의 글에 언급된 유명한 게이 크루징 장소들이다—의 흙을 섞어 만든 무광의 도자기 한 점이 탁자 가운데 놓여 있는데, 전시 중에 식물을 새롭게 채워 놓게 되어 있다. 탁자 위 금사 한 줄에 매달린 것은 오준수의 묵주 반지이다. (오준수도 저먼처럼 가톨릭 신자로 자랐다.)

오준수가 쓴 두 장짜리 편지는 가슴을 때리는 감정적 충격을 안긴다. (한 장은 앞서 언급한 <무제(오준수의 편지)>로 그려졌다.) 편지에서 오준수는 깊은 낭만적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슬픔과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로 남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이강승은 더 많은 사람에게 오준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먼의 이야기를 이용한 것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15 <무제(테이블)>처럼 《Garden》의 전시작들도 오준수의 유산을 재구성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결합한다. 다만 오준수를 대체로 잊힌 인물로 바라보는 대신, <무제(테이블)>은 오준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중요성과 어떻게 그가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남아 왔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동료들이 보관해 오다가 이번 전시를 위해 빌려준 출판물, 기념물, 기타 물건들이 증명하듯 말이다. 저먼이 척박한 풍경에 무성한 정원을 탄생시켰듯, 이강승의 《Garden》 전시작들도 오준수만의 유산이 커가도록 힘을 보탠다.16

<무제(테이블)>이 두 게이 남성의 유산을 연결하기 위해 오브제들을 한데 모은다면,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Briefly Gorgeous》 전시의 <무제 1>, <무제 2>, <무제 3> 연작(2021)은 지난 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더욱 확장하고 뻗어가는 퀴어 욕망의 역사와 그 다각적인 표명 양상을 콜라주 한다. 잡다한 이미지와 물건들이 세 장의 대형 나무 패널에 모여 있다. 저먼의 프로스펙트 오두막 사진 한 장, 이강승의 3채널 비디오 (2018)의 스틸 이미지 한 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꽃을 든 손>(1957)을 색조 반전하여 그린 흑연 드로잉 한 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트랜스젠더 추모정원 사진 한 장, 장 콕토(Jean Cocteau)가 그린 장 주네(Jean Genet)의 소설 『브레스트의 논쟁』(1947)의 삽화를 다시 그린 흑연 드로잉 한 점, “우리는 아시아인 게이이고 자랑스럽다”고 적힌 큼지막한 현수막을 든 남자들을 담은 사진, 피어스 푸시라는 이름의 뉴욕의 퀴어 여성 콜렉티브가 만든 (2013-진행 중) 연작 중 한 점을 그린 흑연 및 수채 드로잉,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초상 사진 흑연 드로잉을 비롯해, 물건으로는 1850년대의 깃털들, 진주, 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요소가 한데 모여 수 세대에 걸친 퀴어 문화생산자들의 미학 담론, 트랜스 및 동성애자 혐오 폭력의 비극적인 역사, 풀뿌리 운동으로 조직된 여러 퀴어 활동가 집단을 표현한다. 이강승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다시 그린 흑연 드로잉과 본인의 소형 프린트 작품을 연작에 끼워 넣었는데, 이는 그 문화적, 역사적 미시 세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미묘하게 통합하였음을 나타낸다. 『아트스피크』 같은 주류 출판물이 대표하듯 관습적으로 ‘미술사’와 ‘세계사’를 구분하여 가르치지만, 이강승의 콜라주 연작 <무제 1>, <무제 2>, <무제 3>은 미술사가 곧 세계사임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개념을 허물어뜨린다.

비디오: 욕망과 표출

상실과 갈망과 에로티시즘이 어린 욕망이 이강승의 최신 연작 <손의 심장>(2023)에 흐른다. 싱가포르 태생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고추산(1948-1987)의 삶과 작업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고추산은 어린 나이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17 대학 졸업 직후 싱가포르를 떠나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합류했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몇 작품의 발레 안무를 만들었는데, 이 작업이 알려지며 워싱턴 D.C.의 워싱턴발레단의 레지던트 안무가에 이어 예술조감독을 맡았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Baryshnikov)가 아메리칸발레시어터를 위해 의뢰한 〈Configurations〉(1981)의 안무 작업이 비평적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세계 유명 무용단의 의뢰가 이어졌다. 고추산이 거둔 예술적 성취는 생전에 널리 인정받았지만, 그의 섹슈얼리티는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고추산과 널리 동행하였던 오랜 파트너 H. 로버트 매기(H. Robert Magee)는 고추산의 가족에게 비즈니스 매니저라고 소개되었을 뿐, 두 사람의 로맨틱한 파트너 관계는 이야기된 적이 없다. 경력의 정점에서 고추산은 몇 달 앞서 매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강승은 이번 연작에서 양피 위 혼합 매체 작업을 선보였는데, 기록 사진을 보고 그린 드로잉은 무척 정교하지만 고추산과 매기를 포함해 인물들의 모습만은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고추산의 핵심적 정체성을 에워쌌던 침묵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로스앤젤레스의 게이 크루징 장소인 엘리시안 공원의 참나무 옹이 조각, 정액을 연상시키는 진주, 프로스펙트 오두막과 서울 및 싱가포르의 게이 크루징 장소에서 가져온 돌의 수채 드로잉을 비롯해 사비에르 비야우루티아(Xavier Villaurrutia , 1903-1950)와 도널드 우즈(Donald Woods, 1958-1992)와 사무엘 로드리게스(Samuel Rodríguez, 생몰연도 미상)18 등 게이 시인들이 욕망에 관해 쓴 시구와 이를 뉴욕의 게이 미술가 마틴 웡(역시 1999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이 디자인한 미국수어(ASL) 폰트로 옮긴 버전까지, 게이 욕망을 암호화한 표현들이 양피 위로 조심스레 드러난다.

<손의 심장>의 콜라주 혼합 매체 작업에서 욕망이 은근히 드러날 뿐이라면, 연작의 비디오 작업에서는 분명하게 무대의 중심을 차지한다. <손의 심장>(2023) 비디오는 브뤼셀의 논바이너리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조슈아 세라핀(Joshua Serafin), 로스앤젤레스의 영화촬영감독이자 화편집자인 네이슨 머큐리 킴(Nathan Mercury Kim), 서울의 트렌스젠더 작곡가 키라라(KIRARA) 등 퀴어 공동체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영상은 밤의 어둠으로 촉발되어 밀려든 성적 욕망을 표현한 비야우루티아의 시 「녹턴」(1938)의 구절을 웡의 ASL 폰트로 형상화한 손들이 화면 위를 떠다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후 조명의 극적인 명암 아래 춤을 추는 세라핀의 빼어난 독무가 이어진다. 세라핀의 춤은 고전 발레와 현대무용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볼 법한 몸동작을 뒤섞어 놓았다. 음악은 강렬한 EDM 트랙으로 고동친다. 퍼포먼스의 원자료인 〈Configurations〉 안무와 그 음악인 새뮤얼 바버(Samuel Barber)의 「피아노 협주곡 Op. 38」(1962)과 아득히 멀어지는 것만 같다. 퍼포먼스가 중반을 향하면 세라핀이 바닥에 쓰러지고 전구 하나가 천천히 내려온다. 몸이 꿈틀대는 동안 음악이 느려진다. 그러다 갑자기 터져 나온 황홀의 춤사위 이후, 마지막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제는 금색 물감과 반짝이로 뒤덮인 세라핀이 나른하게 관능적으로 춤을 춘다. 세라핀의 입에서 금사 한 줄이 천천히 풀려나온다. 비디오는 세라핀이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똑바로 들여다보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뒤로 걸어 나가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손의 심장> 비디오는 이미지, 움직임 시퀀스, 박동하는 사운드트랙을 통해 발레의 깐깐한 고전주의와 고추산의 호모섹슈얼리티에 가해진 억압에 맞서 지하 클럽에서 춤을 출 때 느낄 법한 해방과도 같은 투쟁, 유혹, 표출의 미학적 비전으로 저항한다.

<손의 심장> 비디오가 무용수 한 명의 서사적 여정에 집중한다면, 또 다른 비디오 작품 <라자로>(2023)은 두 사람의 몸이 상호작용하며 빚어내는 친밀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이 참조한 원자료 중에는 고추산의 발레 <미지의 영토>(1986)와 브라질의 게이 미술가 조제 레오니우송(José Leonilson, 1957–1993)의 <라자로>(1993)가 포함되어 있다. <라자로>는 그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만든 조각으로, 끝단을 이어박은 두 벌의 남성 드레스셔츠로 구성된 작품이다. 영상은 사무엘 로드리게스의 「너의 데님 셔츠」(1998)의 시구를 한 글자 한 글자 마틴 웡의 ASL 폰트로 표현한 손들이 화면 위를 떠다니며 시작한다. 시의 화자는 바이러스로 죽은 연인(“내 사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연인의 소지품이 바이러스를 퍼뜨릴까 두려워 물건들을 버리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다. 구슬픈 음악이 중간 정도의 빠르기로 흐른다. 이후 두 남성이 서로의 손을 만지는 클로즈업에서 시작해 큼직한 방의 바닥 위를 구르다가 쉬었다가 서로를 향해 몸을 웅크리는 등 몸의 형상을 달리하며, 둘 사이에 일어나는 움직임의 시퀀스가 이어진다. 방을 밝힌 삼각형 모양의 형광등은 에이즈 인식 고취를 위해 만들어진 저 유명한 “침묵=죽음” 포스터(1987)의 삼각형을 연상시킨다. 작품의 중반쯤 오면, 이강승이 레오니우송의 <라자로> 조각을 삼베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두 남자가 목이 둘인 삼베 셔츠를 입고 나면 조명은 차가운 느낌에서 따뜻한 느낌으로 변한다. 두 사람이 춤을 추면서 음악은 더욱 극적으로 고조된다. 하나로 이어진 셔츠의 물리적 제약을 받으며 두 사람은 다양한 구도로 서로에게 멀어졌다 다가가기를 거듭한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셔츠를 벗어 정중히 바닥에 놓고, 조명은 다시 차갑게 변한다. 한 남자가 팔을 상대의 어깨에 두른 채,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는 동안 두 사람이 걸어 나간다. <라자로>의 분위기는 다면적이어서, 상실을 특히 에이즈와 연결 지어 애도하는 한편, 또 상실을 딛고 나아가는 극복의 과정에 깃든 감정적 복합성과 양가성을 탐색한다. 특히나 <라자로>의 내러티브는 셔츠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어 의미를 아마도 무한히 재생성할 수 있으리라 암시하며 결말을 열어둔다.

맺음

이강승의 예술적 실천은 돌봄의 연결망을 조명하며, 작품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연결망을 더욱 키워간다. 그의 작품은 간과되거나 제대로 탐색되지 못한 퀴어 인물과 역사의 가시성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탠다. 이강승은 풍요의 장소에서 작업한다.19 아카이브, 도서관, 소장품, 역사적 장소에서 수집한 이미지, 텍스트, 오브제를 재생산하여 새로운 별자리 속에 재배치한다. 형태는 되살아나, 새로운 맥락과 조합 속에서 새 삶을 얻는다. 공동체는 새로운 협업으로 이어지고, 협업은 새로운 공동체로 이어진다. 이강승의 작업은 모두에 움직임을 불어 넣는다.
 
주석

필자는 이강승의 작품과 관련 내용에 대해 너그러이 의견을 나누어준 이강승, 이수연, 정영, 우데이 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또한 번역을 돕고 이강승의 작품과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통찰을 전해준 모친 문은희 님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1 이 프로젝트는 두 권의 책으로 기록되었다. 『무제(아트스피크?)』 의 첫 번째 판은 캘리포니아예술대학 전시를 위해, 두 번째 판은 캘리포니아 피처칼리지 아트갤러리스 전시를 위해 출간되었다.

2 이강승은 1997년 판 『아트스피크』 를 이용했다. 『아트스피크』 최신판(2013)은 연표에 여전히 “세계사”와 “미술사” 구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더욱 국제적이고 포괄적인 면모를 갖추려는 모습이다.

3 톨렌티노의 <흙 속의 아카이브>는 전시 《이후 변경》(2019)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콘래드 벤투어(Conrad Ventur)가 비주얼 AIDS를 위해 기획한 이 전시에 이강승도 작품 1점을 보탰다. <흙 속의 아카이브>와 관련해서는 도록에 실린 톨렌티노의 글을 참고하라. Altered After [이후 변경](New York: Visual AIDS, 2019).

4 에이펙스아트에 실린 이강승과 권진의 글 「퀴어락」 에 톨렌티노의 작품을 본 그의 감상이 담겨 있다. 이강승, 권진, 「퀴어락」 , 에이펙스아트, https://apexart.org/QueerArch_E.php#secondPage.

5 이강승은 「비하인드 더 뷰티 – 이강승 작가 인터뷰」에서 “전유”를 언급한다. 더아트로, 「비하인드 더 뷰티 – 이강승 작가 인터뷰」, 더아트로, 2023년 1월 20일, https://www.theartro.kr/eng/features/features_view.asp?idx=5530&b_code=10&page=1&searchColumn=&searchKeyword=&b_ex2.

6 <떠남 없는 부재> 연작 대다수가 뉴욕과 연관되어 있지만, 연작의 다른 작품들은 서울, 시드니 같은 도시의 게이 공동체를 언급한다.

7 Jung Joon Lee, “Drawing on repair: Kang Seung Lee and Ibanjiha’s transpacific queer of color critique” [고침의 드로잉: 이강승과 이반지하의 태평양 저편 유색 퀴어에 관한 비평], Burlington Contemporary, June 2023, https://contemporary.burlington.org.uk/journal/journal/drawing-on-repair-kang-seung-lee-and-ibanjihas-transpacific-queer-of-colour-critique#fnref:6.

8 Kang Seung Lee, “Kang Seung Lee on Tseng Kwong Chi” [이강승이 말하는 쳉퀑치], in Denise Tsui, ed., Collected Writings by Artists on Artists [아티스트 온 아티스트 전집], vol. 2 (Hong Kong: CoBo Social, 2021), 96–103.

9 『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도서출판성림, 1993)

10 삼베의 역사와 제작 방식을 개관하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하라. Bu-ja Koh, “Sambe: Korean Hemp Fabrics” [삼베: 한국의 삼 직물], in Material Choices: Refashioning Bast and Leaf Fibers in Asia and the Pacific [소재 선택: 아태 지역의 인피섬유와 잎섬유 다시 보기], ed. Roy Hamilton and B. Lynne Milgram (Los Angeles: Fowler Museum at UCLA, 2007), 79–91.

11 로스앤젤레스의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에서 열린 전시 《and Child》(2016)의 주제였던 ‘성모자’와 관련지어 황금을 분석한 이강승의 작업은 다음을 참고하라. https://kanglee.net/section/431813-and%20Child%20%282016%29.html.

12 이 전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도록 『Garden: 이강승』(서울: 원앤제이 갤러리, 2018)에 수록된 권진의 글과 곧 갤러리현대에서 출간될 『이강승』에 수록될 도리스 전의 글을 참고하라. Doris Chon, “Generative Absence: Kang Seung Lee’s Practice of Archival Resuscitation” [생성적 부재: 이강승의 아카이브 소생 작업](서울: 갤러리현대, 2023).

13 앞서 언급했던 이강승의 <무제(오준수의 편지)>와 <무제(커버)>는 본래 《Garden》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14 데렉 저먼은 프로스펙트 오두막이 퀴어 관계로 맺어진 가계를 따라 상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Leslie Dick, “Porous Bodies” [다공질의 몸], X-TRA, Summer 2020, https://www.x-traonline.org/article/porous-bodies

15 Park Han-sol, “Artist Lee Kang-seung’s mission to unearth forgotten queer narratives” [잊혀진 퀴어 서사를 발굴하는 이강승의 사명], The Korea Times (November 9, 2023): https://www.koreatimes.co.kr/www/art/2023/11/398_362871.html..

16 던지니스가 얼마나 척박한 땅인지는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라. Howard Sooley, “Derek Jarman’s Hideaway” [데렉 저먼의 은신처], The Guardian (February 17, 2008):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08/feb/17/gardens.

17 구남매 중 막내였던 고추산의 형제자매 중 세 사람—고수니, 고추치앗, 고수킴—도 발레를 배웠고 모두 이 분야의 저명 인사가 되었다.

18 사무엘 로드리게스의 시 「너의 데님 셔츠」는 다음의 책 서문에 나온다. Robb Hernández, Archiving an Epidemic: Art, AIDS, and the Queer Chicanx Avant-Garde [전염병의 아카이빙: 예술, 에이즈 그리고 멕시코계 미국인 퀴어 아방가르드]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19). 이강승도 이 책에서 이 시를 발견했는데, 시나 시인에 관해 알려진 다른 정보는 없는 듯하다.

19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에서 열린 《Permanent Visitor》(2021) 전시(https://commonwealthandcouncil.com/together)를 맞아 조앤 기와 이강승의 대화가 줌으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서 조앤 기의 이 통찰력 있는 언급이 나왔다. 이는 또한 이강승의 친구로 여러 프로젝트에서 함께 작업하였던 예술가 제니퍼 문이 개념화한 “레볼루션”의 원칙과도 공명한다. “레볼루션”의 제 1 원칙은 “1) 언제나 풍요의 장소에서 작업하라.”이다. 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Jennifer Moon, “About the Revolution,” The Revolution, http://www.therevolution.jmoon.net/About/.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