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린, 〈세이프 서치〉, 2021, HD, 단채널 비디오, 4분 25초 © 윤소린

《너를 떠나》는 페미니스트인 작가가 반복된 실연의 경험에서 얻은 문제의식과 통찰을 다룬다. 로맨스와 실연이라는 소재는 자칫 진부해 보이지만, 페미니스트 미술/담론에서는 잘 회자되지 않기에 오히려 신선했다. 이성애자 여성의 로맨스는 가부장제의 억압 또는 결혼제도와의 연관성 속에서만 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살다 보면 남성과의 연애는 자포자기의 정서를 동반하는 ‘소모적인’ 일로, 그 욕망은 알아서 해소해야 하는 ‘하찮은’ 일로 간주될 때가 많기에 이 주제를 공론장으로 가져온 전시가 개인적으로 무척 반갑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for Everybody)〉에서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페미니즘을 강조해 온 흑인 페미니스트 저자 벨 훅스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권력) 투쟁의 장에서 괄시받는 상황을 지적한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이성애) 로맨스에 대한 열정을 포용하고 그 안에서 자기다움과 자유, 상호 존중을 배우고 실현하는 일이 갖는 급진적인 의미와 사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를 떠나》 역시 가부장 사회의 이성애 연애 문화를 비판의 대상으로 단순화하기보다 여성 욕망의 다양한 층위에 귀 기울이고, “지금보다 나아가기 위해”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벨 훅스의 철학과 궤를 함께 한다. 
 
 윤소린의 전시는 페미니스트 미술의 계보를 이으며 여성들의 공론장을 조성하기 위해 시도한다. 전시의 메인 작업은 미국 미술가 제니 홀저의 작품에 등장하는 경구, “낭만적 사랑은 여성을 조종하기 위해 발명되었다(Romantic love was invented to manipulate woman)”를 참조한다. 이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여성 개개인의 내밀한 욕망을 통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고 지배체제에 편입하게 한다는 의미로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이라는 메시지를 시사한다. 즉 여성의 일상적인 경험은 성별의 정치학에 의한 사회 구조적인 맥락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이 ‘사적’ 영역이야말로 여성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힘과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작가 본인을 포함한 5인의 (이성애자 여성) 참여자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해당 문구를 다시 쓰고, 새로 탄생한 문구들은 스타킹으로 만든 “배너”에 프린트되어 전시장에 걸린다. 한편, 각 여성의 경험과 관점은 목소리 또는 텍스트로 서술되어 본인이 선별한 소지품 또는 ‘과거 연애 사진’과 함께 병치된다. 붉은 벽에 나란히 정렬된 내밀한 이미지, 팽팽하게 늘어나 전시장을 횡단하는 살색 스타킹 배너, 배너 만들기의 과정: 작가가 헤어진 애인에게 오래전 선물로 받은 마른 꽃다발에서 잉크를 추출하고 그것을 스타킹에 직접 실크 스크린 하는 공정을 기록한 영상 등, 전시는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개인적인 것과 공공적인 것 사이를 진동한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무엇을 공론장으로 가지고 오는가? 이는 배너에 적힌 메시지 와 다섯 참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선별된 다섯 개의 에피소드는 가부장제 너머를 상상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고민과 관점들을 공유한다. 현대 가부장제에서 (거의 유일하게) 승인하는, 이성애자 간의 일대일 연애라는 틀을 전제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혹자는 페미니스트로서 저항적 관점이 충분히 두각 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시가 가부장제를 얼마만큼 부정하고 옹호하는지 논쟁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작가는 가부장제와 ‘더불어’ 지금 이곳 (2021,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면서, 부정과 옹호만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그사이의 층위들을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배체제에서 대상화되는 여타 주체들이 그렇듯이, 가부장제하에서 이성애자 여성들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양가적(ambivalent)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이 욕망하는 여성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어떤 문제의식을 제기하는가, 가부장제에서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인식의 재고가 일어나는가이다. 
 
다섯 참여자들이 공유한 내용은 어이없는 연애 에피소드에서부터 사랑에 대한 인식과 통찰까지 다양하다. 진짜 사랑은 ‘로맨스’가 아니며 가족/친구/반려동물을 향한다는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차별적 인식에 대한 견해, 낭만적 사랑과 그 좌절을 인간적 성숙의 과정으로 바라본 분석, 반복적인 가벼운 연애에서 비롯된 관계와 주체성에 대한 질문 등이다.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낸 작가가 자신의 연애사를 가장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남자친구의 이상형에 부합하기 위해 ‘바람직한, 미술 하는 여성상’을 재현하며 경험한 내적 갈등에 대한 것이다.

선별된 이야기들은 개인성이 반영된 정도가 다르며 전체적으로는 정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남성들의 진짜 사랑은 형들 또는 동성 친구를 향하는 게 아닐까” 질문하면서 전 남친에게 “(네 베스트프렌드와) 둘이 살림 차려, 병신아”라고 일침을 놓은 일화가 말투나 내용 면에서 화자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면, 밑줄 친 책의 이미지로만 자신을 대변한 여성은 본인의 연애 경험에 대한 단서 대신 목격담과 통찰을 문어체의 투로 서술한다. 참여자들의 에피소드가 본인의 목소리로 낭독된다는 점에서 각 개인이 드러나는 측면이 있지만, 이들에게서 이끌어 낸 개인성의 개념과 수위에 대해서는 질문이 남는다. 개인성과 공공성을 교차시키는 이 작업에서 “개인적인 것”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는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볼 만한 화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의 목소리는 가부장제에 어떤 문제의식을 던지는가? 참여자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유롭고 적극적인 성적 주체로 살기 위한 마음 자세, 규범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연애의 모습, 로맨스를 통한 인간적 성장의 과정 등을 나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적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작가도 밝혔듯이) 이 작업이 완결된 결과이기보다는 탐색의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어떤 방향으로의 발전이 가능할지 함께 고민해보게 된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사랑을 섹스의 조건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 보편화된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 작업만의 특수한 의미를 확보해 나갈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은 본디 복잡하고 위반적인 면모를 가지며 그것에 정상/비정상성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다. 그리고 가부장제 근현대사회는 한 명의 애인과 정신, 육체적으로 모든 것을 나누는 일대일 독점 관계를 낭만적 사랑뿐 아니라 욕망의 기본값으로 상정한다. 선별된 참여자들의 사례가 이러한 전제 조건을 재고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삶에서 부딪히는 것 사이의 괴리를 보다 첨예하게 드러낸다면 어떨까.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업이 ‘더 나은 로맨스는 무엇인지 찾아 나가려는 시도’라 했다. ‘로맨스’에 우열이 있을까? ‘더 나은’ 로맨스를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이해심이 넓고 매력적인 페미니스트 남성을 만나 연애한다면 여성들의 욕망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고, 이 작업도 일단락 지어질까? 아마도 작가가 말한 ‘더 나은’ 로맨스란 보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확장된 사랑의 의미를 찾아 나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테다. 앞으로도 지속될 이 작업이 욕망의 주체로서 여성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다 치열하게 이끌어냄으로써 가부장제 내의 규범적 욕망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그것을 질문할 수 있을 때 작가의 바람처럼 이 전시는 공론장으로서 ‘더 나은’ 로맨스에 대한 상상력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