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 전시 전경(탈영역우정국, 2021) © 윤소린

탁자 위에서 마른 꽃 해체하는 행위를 보며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소설을 떠올렸다. 나는 책장에 나란히 꽂아 놓은 에르노의 책 중 하나를 꺼내 첫 장을 펼쳤다. 그녀가 별다른 설명 없이 첫 문장에서 그 사건에 대해 이야 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했다. 매시간 가위다리를 하고, 공중 자전거를 타거나 벽에 발을 올려 재촉한다. 곧바로 배 아래, 어딘가 이상한 열기가 꽃처럼 퍼진다. 썩은 보라색 꽃, 아프지는 않다. 통증이 오기 직전이다.

골반에 부딪혀 부서지는 느낌이 사방에서 몰려오다가 허벅지 위쪽에서 사라진다. 거의 쾌락에 가깝다.  〔아니 에르노, 『빈 옷장(Les Armoires Vides)』(1984BOOKS, 2020(원작1974))〕 “썩은 보라색 꽃”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수술대 위에 누워서 “늙은 여자”의 손에 몸을 맡긴 나(드니즈 르쉬르)의 일기처럼 생생한 문장들 때문이었을까,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2021)이라는 시니컬한 제목의 영상 앞에서 그 소설 속 글자들이 만들어 놓았던 복잡한 장면들을 나는 떠올렸다.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2021)은 3채널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른 꽃 묶음을 해체하여 꽃과 잎과 줄기로부터 낱낱의 잔해를 한 더미씩 분류하는 누군가의 행위로 시작해, 나머지 두 개의 화면에서는 각각 그 잔해를 물에 담아 가열한 후 잉크로 추출하는 일련의 상태 변화를 차례로 보여준다.

세 개의 나란한 화면에서 조금 높이 비껴 있는 자리에는 제목 붙이지 않은 영상이 하나 더 있는데, 영상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과 설치 작업 재정의〉(2021) 사이에서 어떤 급진적인 변환을 매개하는 수행성을 드러낸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은 “더 나은 로맨스는 무엇인지 찾아 나가려는 시도”였다는데, 이는 불이 옮겨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재정의〉로 이어져 “낭만적인 사랑은 여성을 조종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문장과 공명하며, 그 둘 사이에 제목 없는 영상이 자리한다.

윤소린은 이 셋의 관계를 긴밀하게 엮어, 자전적인 경험과 신체적인 수행과 언어적인 발화(말하기/쓰기)의 연쇄를 보여준다. 이때, 제목 붙이지 않은 영상 속에는 경험과 발화를 매개하는 행위로서 마른 꽃에서 추출한 잉크로 실크스크린을 제작하는 한 사람의 신체가 노련한 제스처를 내보인다. 전시 공간에 즐비하게 펼쳐진 슬로건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의 비장한 행위에서 이어져 비로소 어떤 사건을 발생시키는 “변환”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윤소린은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으로서 임의의 창작 행위를 통해 발화와 연대의 “지금 여기”라는 무대를 설정하여 낭만적 사랑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재정의〉는 마른 꽃에서 추출한 잉크와 스타킹을 사용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된 슬로건을 포함하고 있는데, 윤소린은 이를 시각적이면서도 신체적인 동선이 촘촘하게 구축된 공간 설치로 연출했다. 그리고 이 공간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쯤, 어쩌면 이 셋의 관계는 계속해서 연쇄하며 처음으로 되돌아가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미완의) 성찰을 지속/지연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그는 제니 홀저의 작업에서 “낭만적인 사랑은 여성을 조종하기 위해 발명되었다(Romantic love was invented to manipulate woman)”는 문장을 가져와, 그것을 그대로 스타킹에 옮겨 적고 자신(들)의 급진적인 슬로건과 엮어 “재정의”하고자 했다. 천장과 바닥을 수직으로 연결한 여러 개의 흰색 봉을 지지대 삼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몇 개의 문장을 새긴 스타킹이 사물의 형태를 거의 잊은 채 표면적을 극대화한 장면을 보여준다. “나의 낭만적인 사랑은 누구도 규정할 수 없고, 그 사랑의 상실을 애도하며 나는 다시 일어난다”, “낭만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의 좌절은 여성을 사랑하는 존재로 굳게 서게 한다”는 슬로건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서 벗어나 “상실”과 “좌절”을 동반한 사랑의 급진성을 재정의한다.
 


윤소린은 마른 꽃을 해체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종결되지 않도록 해체 이후 일종의 재생을 모색했다. 아름다움을 응시하게 하는 꽃의 소명에서 옮겨와, 그는 급진적인 응시로 꽃을 매개한 새로운 수행을 감행한다. 바싹 마른 꽃잎의 잔해에서 추상적인 “색”을 추출했고, 그것으로 선언의 “문장”을 썼다. 그것은 단지 글자와 종이가 만들어내는 언어의 낭만적인 권위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임의의 물질이 예외적인 변환을 겪고 나서 그 사건 속의 수행적인 힘이 현실의 공백에 강렬한 얼룩을 남기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선언하는 문장들은, 온도와 습도에 붕괴되어 뭉개진 언어처럼 불확실한 이미지와 장면들을 눈 앞에서 더듬게 하나, 그 체험의 잔상은 차가운 기구가 몸에 닿(았)을 때처럼 낯선 자극에 대한 몸의 기억처럼 강렬하다.

-Romantic love was invented to disguise the real attraction.
 (낭만적인 사랑은 ‘진정한’ 끌림을 가리기 위해 발명되었다.)
-낭만적인 사랑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그가 원하는 모습이 되고 싶게 한다.
-나의 낭만적인 사랑은 누구도 규정할 수 없고, 그 사랑의 상실을 애도하며 나는 다시 일어난다.
-연애는 남성의 관점에서 고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 ‘너’의 사적인 관계 안에서 새롭게 발명된다.

나무 틀에 결박되어 팽팽하게 늘어나 있어 더욱 투명해 보이는 스타킹은 종이처럼 언어의 지지체가 된다. 나이프로 잉크를 얹고 그 위를 밀대로 힘껏 왕복하면 문장이 새겨지고, 회복 불가능하게 늘어난 스타킹 위의 슬로건들은 공간을 투명하게 나누어 익명의 신체들이 행간을 따라 왕복하며 그 위에 시선을 새기게 한다.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에서 말라서 딱딱해진 꽃의 형태를 낱낱이 부수는 젊은 여성의 두 손이 에르노의 소설에 글자로 적힌 “늙은 여자”의 손과 겹쳐 낭만적인 사랑의 잔해를 처리하는 고통과 성취의 경계에 서 있는 주관적인 교감을 주고받은 후에, 나는 〈재정의〉에서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실체로 우뚝 선 슬로건 위의 문장을 따라 걸으며 저 글자들에서 낭만적인 사랑의 사건을 다시 서술하고자 하는 진실한 글쓰기의 욕망을 보았다. 글쓰기는 성찰에 대한 은유다. 따라서 그 진실한 글쓰기는 마른 꽃의 급진적인 변환처럼 어떤 정지되어 버린 사건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뜻하며, 그것은 언어의 수사 아래 가려져 있었던 진실한 시간들 속 감각의 궤적에 관하여 증언한다.

윤소린은 제니 홀저의 문장을 가져와 그것을 발단으로 몇 명의 여성들과 그들이 겪은 사랑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에서 주고받은 말 중에서 몇 개의 문장이 〈재정의〉를 구성하는 슬로건이 됐다. 그 문장들은 마른 꽃에서 추출한 잉크로 피부 같이 쭉 늘어난 물질 위에 새겨졌다. 그(들)는/은 전시장에서 수많은 익명의 몸들을 맞이하며, 아름다움을 응시하던 어떤 순간들 앞에 멈춰 서서 중첩된 통로를 우회하며 다시 걷다가 비로소 알게 될 어떤 사건에 대한 증언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노출〉(2021)은 사진과 글 혹은 말로 구성되어 있다. 윤소린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이성애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 사랑의 관한 다섯 명의 이야기 중 네 개는 목소리로 녹음했고 하나는 글로 썼다. 각각 헤드셋을 타고 들리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흰 종이에 세 개의 문단으로 적어 놓은 글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하며, 한 여성과 한 남성 사이에 일어난 낭만적인 사랑이 하나의 사건이 되었던 것을 말해준다. 익명의 우리는 그 사건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윤소린과 그들의) 대화의 순간에 남겨진 각각의 증거 사진들 앞에서, 그 사건의 내밀한 목격자 혹은 숨겨놓은 모의자라도 된 것처럼 마른 꽃과 같이 색 바랜 사랑의 흔적들을 뚫고 그 속에 가리워진 진실한 경험들을 더듬어 본다.

이 글의 첫 문장에서 언급한 에르노의 『빈 옷장』은 그의 낭만적인 사랑이 남긴 자전적 경험의 소설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던 그는, 홀로 불법 낙태 시술에 “성공”하기까지, 스무 살의 자신에게 일어난 그 “정제할 수 없는 사건”을 겪으면서 글쓰기의 새로운 수행에 자신의 몸을, 아니 자신의 언어를 던졌다. 끓는 물에 넣은 금속 도구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몸에 남겨진 낭만적인 사랑의 흔적들을 산산이 부수는 고통을 겪으면서, 그는 예전부터 쓰고 있던 소설을 치우고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일은 에르노의 또 다른 소설 『사건(L'événement)』(2000)에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낭만적인 사랑과 그에 관한 비극적인 문학 작품 어디에도 언어로 기록된 적 없는 그 진실한 사건을 그는 글로 썼다. 에르노는 1인칭 화자인 르쉬르가 그 사건에 대해 기록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와 이웃, 친구,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까지 “다시” 회상하도록 한다. 자신에 대한 (경험의) “고쳐쓰기”를 감행하는 글쓰기의 여정에서, 에르노/르쉬르는 그가 사랑하는/사랑했던 대상들 사이에서 구축되어 온 “신체의 감각” 혹은 “신체에 대한 감각”을 재규명하기에 이른다.

윤소린의 〈노출〉도 (유년의 기억처럼 아무도 모를) “그 사건”에 대해 말한다. 이번 전시 《너를 떠나》(2022)에서, 그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남성을 사랑할 때 마주했던 긴장과 갈등, 그에 따른 자기 분열의 과정에서 발생한 심리적 진동을 동력으로 전환시켜 ‘더 나은 로맨스는 무엇’인지 찾아 나가려” 한다는 것을 밝혔다. 윤소린과 마주앉아 자신의 과거 연애에 대해 말한 여성들은 “사랑의 기쁨”과 “내적 분열의 혼란”을 함께 겪으면서, 낭만적인 사랑의 피상적인 서사 뒤에서 소외당한 주체의 경험들을 꺼낸다.

그들의 대화는 “낭만적 사랑”의 표면과 내부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간극이 마치 한 사람의 육체가 공적으로 규정되는 것과 내면에 봉인해 놓은 것 사이에서 숱한 분열을 겪어온 것처럼 그것의 근본적인 모순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작업의 제목처럼 이 급진적인 “노출”의 제스처는 에르노의 자전소설처럼 하나의 주체로서 여성이 겪게 되는 사랑의 전환점으로서 “사건들”을 가리키며, 그것을 매개로 (진부한) 사랑(의 서사)을/를 수정하여 고쳐 쓰려는 시도를 갖는다.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과 〈재정의〉와 〈노출〉은 해체와 분열, 재정립과 재정의, 고쳐쓰기라는 긴밀한 수행적 절차를 만들어 보이면서, 윤소린이 전시 전체를 통해 던진 “더 나은 로맨스”에 관한 물음에 가서 닿는다.
 


〈세이프 서치〉(2021)는 낭만적 사랑의 망상처럼 파고든다. 4분이 조금 넘는 영상에서는, 여성 운전자가 밤길을 운전하는 중에 충돌방지 센서가 작동할 때 경험하는 긴장과 불안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동차의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장치를 통해 여성의 신체(이미지)가 이 세계 안에 구축된 안정성의 낭만적인 허울 속에서 어떻게 불안을 체감하며 신체의 경험을 끊임없이 갱신하게 되는지 질문하게 한다. 이에 〈식별 불가 퍼포먼스〉(2021)는 〈세이프 서치〉와 대구를 이루면서, “뛰어난 여성”의 존재에 대한 당위를 찾는다. “뛰어난” 존재가 되기 위한 모방과 길들임은, 낭만적인 사랑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과 분열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위해 뛰어난 무엇으로 개조되어야 하는가를 재고하며 다시 성찰하게 한다.

“뛰어난 여성”과 “더 나은 로맨스”는 어떤 함의를 가졌을까? 윤소린의 관점에서, 이 둘은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 고쳐쓰기를 수행하는 삶의 방식을 구축한다. 에르노가 계속해서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 『사진의 용도(L'usage de la photo)』(2005)에서 끝나지 않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가능성과 그 안에서 자신이 겪는 긴장과 갈등을 스스로 탐색하며 그것을 글과 이미지로 생산해내는 또 다른 사건의 동력으로 변환해 놓는 것처럼 말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