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린, 〈오픈스튜디오: 반상회〉, 2023, 벽에 드로잉, 사진, 소책자, 가변설치.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윤소린 개인전 《리빙 위드 더 트러블》(2023)은 작가가 층간소음과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보이지 않는 대상이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소음을 다루고, 주민들과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고민하고, 아파트의 숨은 구조를 찾아본다. 그리고 이런 비가시적인 소재들을 관람객에게 꺼내 보이기 위해 ‘기록’이라는 일관된 방법을 사용한다. 개인으로서 일기와 같은 기록을 남기고, 공동주택이라는 집단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여러 사람의 의견을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하며,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오픈스튜디오를 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책으로 묶어 전시한다. 또한 아파트 벽 뒤에 숨어있는 구조물들을 탐지해 탁본처럼 기록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대상의 사적인 기록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응 일지〉(2021-23)라는 작업을 볼 수 있다. 전시 공간 바닥에는 날짜 도장이 수백 개쯤 정신없이 찍혀 있는 장판 비슷한 재료가 널찍하게 깔려 있고, 그 위에 모니터 한 대가 설치되어 있다. 모니터에는 1인칭 슈팅 게임과 비슷한 시점으로 누군가가 천장을 향해 총구 대신 날짜 도장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 재생되고 있다. ‘쿵쿵’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날짜 도장은 재빨리 소리가 나는 위치로 이동해 도장을 ‘탕탕’ 찍는다. 이 상황이 게임이었다면 눈앞에 나타난 적을 소탕하고 승리하는 통쾌한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슬프게도 층간 소음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의 날짜 도장은 아무런 힘이 없다.

바닥/천장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사는 윗집과 아랫집의 관계는 아파트의 구조만큼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다. 소리는 아래로 더 잘 전달되기에 아랫집은 쉽게 약자, 나아가 피해자가 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층간 소음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을 유예하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넘기고자 날짜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1] 작가는 윗집의 소음을 일종의 지시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자신의 반응을 액티비티로 치환한 것이다. 소리가 날 때마다 집 천장에 도장을 찍는 행동이 상황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날짜 도장 찍기” 활동은 2년 넘게 이어졌고, 작가는 소음이 감지된 날들을 천장에 그려갔다. 더구나 날짜 도장이 찍힌 위치는 물론 도장의 화살표 방향과 강도를 통해 그날 감지된 소음의 진행 방향, 크기, 그에 따른 작가의 감정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그림일기’ 같다. 전시된 작업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접근 방식이자 층간 소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층간 소음 문제는 소리에 대한 반응에 개인차가 있어 소음의 기준을 명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적인 이슈로 치부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직까지 효과가 있다고 할 만한 사회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소 답답한 상황에서 작가는 본인의 말대로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트러블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듯하다.

윤소린은 날짜 도장을 찍은 벽지를 집 천장에서 떼어내 스캔한 후 출력해 전시장 바닥에 설치했다. 작가에게는 갈등의 장소가 천장이었지만, 관객의 시점을 소위 ‘피해자’인 자신과 동일하게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입장이 너무 강하게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게 완급조절을 한 셈이다. ‘가해자’로 지목되는 위층과 더 유사한 관람객의 위치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 없이 누구나 이웃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음 암시한다. 누군가의 윗집이자 다른 이의 아랫집으로 살 확률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층간 소음 문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신경 써야 할 문제임을 피력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보이지 않는 관계와 공동체의 실험 기록

작가는 본인이 겪은 사적인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 경험을 공유할 상대를 찾는다. 〈인터-폰〉(2023)은 층간 소음을 겪어 본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두 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작가 아래층에 사는 주민의 인터뷰 기록이 담겨 있고, 다른 하나는 층간 소음을 겪은 이들이 보이지는 않는 이웃에 대해 짐작해 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주거지가 맞닿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인터뷰들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전시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작가는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는 인터폰을 활용했다. 전시장 1층과 2층에 인터폰이 한 대씩 설치되어 있는데, 수화기를 들면 작가가 인터뷰이의 말을 옮기는 화자가 되어 인터폰 화면에 마치 방문객인 것처럼 등장해 말을 한다. 전시장의 인터폰은 관람객에게 간접적으로 ‘가상’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윗집의 동선과 일과를 본의 아니게 꿰뚫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 벽에 붙어있는 세탁기 덜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푸념, 소음의 주체가 강아지라는 사실 알고는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고백, 이삼십 대 남자가 혼자 사는 것 같다는 추리 등등.

짤막하지만 다양한 경우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청자의 입장만 취할 수 있는 관람객은 본의 아니게 이웃의 잠재적 가해자가 되었다가, 격하게 공감하는 피해자가 되었다가, 함께 고민하는 이웃이 되었다가, 내 상황은 이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는 위안을 얻는 주민이 되기도 한다. 관람객은 그렇게 인터폰을 매개로 잠시 층간 소음 상황극의 공연자가 되면서 자신을 상황에 대입해 보며 나와 실제 이웃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에 의하면 인터폰은 “일방 소통 매체”이다. 경비실과 세대, 세대 간, 또는 방문자와 주민 사이에 특별한 용건이 있을 때만 통화하고 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인터폰은 ‘쌍방(인터) 전화(폰)’이다. 같은 주거지역 안에 있는 세대끼리 손쉽게 소통하라고 설치한 장비이다. 그럼에도 인터폰은 울리면 움찔하게 되고 경계심마저 살짝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소통이 단절된 아파트 주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서 인터폰을 활용한 듯하다.


윤소린, 〈반응 일지〉, 2021-2023, 단채널 비디오, 모니터, 바닥에 출력물, 라인 드로잉, 가변설치.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 윤소린

〈반응 일지〉가 관람객이 날짜 도장이 찍힌 출력물을 밟게 함으로써 이들을 가상의 층간 소음 상황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인터-폰〉은 조금 더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층간 소음과 더불어 이웃 관계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이 외에도 전시공간 2층에 설치된 〈플로어링〉(2023) 또한 마치 무대와 같이 거실을 연출한 설치 작업인데, 바닥을 일부러 휘어지는 판자로 제작해 관람객이 공간에 올라서면 울렁거림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작가는 바닥의 존재감을 극대화한 층간 소음의 무대에 관객을 다시 한번 올려놓는다.

작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들과의 소통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오픈스튜디오: 반상회〉(2023)라는 작업을 진행한다. 층간 소음으로 3년을 고생한 후 이사 나가기 직전에 아파트 주민들을 집에 초대해 작업을 소개하고, 작업 소재인 층간 소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오픈스튜디오 홍보 포스터를 아파트 곳곳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해 초대장 배포, 오픈스튜디오 개최, 사후 뒷정리까지의 과정을 전시장 벽면에 사진 기록과 함께 일러스트처럼 시트 커팅으로 붙였다.

그리고 관리소장, 주민, 경비원, 청소원, 집주인 등 다양한 관계자와 만나며 겪은 각양각색의 일화들을 책자로 엮어냈다. ‘오픈스튜디오’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 주민들을 위해 ‘반상회’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집주인으로부터 세입자가 왜 반상회를 주최하느냐는 오해를 받은 사연부터 이 전시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윗집 거주자와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픈스튜디오: 반상회〉는 본인이 속한 거주 집단에서 일반인의 참여를 유도해 작업했기 때문에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업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진행한 것 같다. 커뮤니티 아트가 예술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도구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 작가로서 주민의 참여를 종용하지 않았고, 작가와 비예술가가 작업 안에서 위계적인 관계로 만나지 않게 신경 쓴 것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픈스튜디오라는 예술 행사와 반상회라는 사회 모임을 합쳐 두 성격을 다 띠는 자리를 만들었고, 예술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 층간 소음 문제에 대한 관심도의 차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주민들을 만났다. 오픈스튜디오 개최 전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층간 소음과의 직접적 관련도와 상관없이 담담하게 기록했다. 작가로서 본인이 염두에 둔 작업 전개 방향에 부합하도록 더욱 극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담는 결과물이 욕심났을 법도 하지만, 윤소린은 사건들을 한 발 떨어져 관찰하고 전시에서 그대로 공유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진행한 주민과의 관계 맺기는 층간 소음으로 한정될 수 있는 전시 주제를 현대사회에서도 공동체가 가능한지를 질문하는 방향으로 확장시킨다. 커뮤니티 아트의 묘미일 수도 있는데, 참여자의 행동이나 반응을 예상할 수도, 유도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들이 도리어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면서 생각의 물꼬를 터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픈스튜디오에 초대하기 위해 ‘이사 떡’을 가지고 이웃집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작가가 느낀 긴장과 이에 답하는 주민이 처음에 보인 경계심이 ‘공동체’ 개념과 대치되는 ‘현대 개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사 떡’ 덕분에 주민들이 마음을 조금 더 쉽게 열어주더라는 작가의 회상을 통해 함께 모이고 소통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한 ‘반상회’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 주민회장과 관리소장이 갖는 권위, 청소원과 주민의 보이지 않는 위계 등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된다. 주민들이 작가의 초대에 보인 관심의 정도나 오픈스튜디오/반상회의 실제 참여율은 우리 사회의 이웃 간 소통이나 공동체 의식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것도 같다.

이와 관련해 작가가 나이가 지극하신 이웃과 오픈스튜디오 때 대화한 내용을 소개한 글이 인상적이다.

대화를 나누며 나는 이분이 아파트가 처음 분양될 때부터 이곳에 살아온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층간소음이 있어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이곳을 공동체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점이 인상 깊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를 갈 수는 없는 사이’. 이러한 조건에서 공동체라는 의식이 생겨나는 것일지 질문하게 되면서도, 공동체라는 조건이 얼마나 첨예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웃님은 근래 종종 보도되는 층간소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을 접하며 젊은 세대가 걱정되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지금 (오픈스튜디오에 와서 이렇게) 얘기를 듣고 나니까 앞으로는 괜찮아질 것 같네요. 그런 희망이 생겨 듣다 보니까,”라는 소회를 남기셨다. “좋은 사람이 이웃에 사는 것도 모르잖아. 이거 하는 것도 모르니까 … (중략)”

희망을 보았다는 어르신의 말씀처럼 윤소린의 〈오픈스튜디오: 반상회〉는 너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과하게 진지하지 않은 예술적인 방법으로 접근함으로써 ‘함께 잘 살아갈’ 가능성을 상상해 보게 만든다. 이사를 나가는데 ‘이사 떡’을 돌리는 엉뚱함이나 ‘반상회’라는 제목으로 집에서 작품 전시회를 여는 재치는 윤소린이 예술가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이런 접근이 사회 문제로 비화하는 층간 소음을 비롯해 경계심으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이웃 간의 긴장을 조금은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한다. 이렇게 예술은 사회 이슈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구조의 기록

마지막으로 작가는 건축 구조에 관한 탐구를 통해 층간 소음 소재를 다루는 작업을 진행한다. 한국의 아파트들이 주로 천장을 벽으로 받치는 구조로 축조되기 때문에 벽을 타고 윗집 소리가 아래층으로 잘 전달된다는 건축가의 설명에 착안해 벽 속을 탐지해 보기로 한 것이다. 〈스터드 파인더〉(2023)는 벽 속 구조물을 탐지하는 장비인 ‘스터드 파인더’를 활용한 작업이다. 장비를 벽에 데면 구조물이 감지되는 위치마다 불이 들어온다.

작가는 집의 벽 전체를 스터드 파인더로 훑어 구조물의 위치를 일일이 벽지 위에 축광잉크로 표시했다. 마치 집의 뼈대를 엑스레이처럼 보여주듯이 말이다. 전시장에서는 작업 과정을 녹화한 영상과 함께 탁본 같은 벽지들을 늘어뜨려 설치했다. 이와 함께 한국 건축의 변화사와 사회경제적인 이익구조 등이 맞물려 악화된 층간 소음 문제 등을 논의하는 건축가의 음성과 모습을 각각 지향성 스피커와 모니터 영상으로 틀어 놓았다.[3]

〈스터드 파인더〉를 보다 보면 전시 초입에서 보았던 〈반응 일지〉가 다시 떠오른다. 도장을 찍는 작업 방식의 유사성과 더불어 작업에서 드러나는 예술가의 집념이 닮았기 때문이다. 천장에는 2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히 찍은 날짜 도장이, 벽에는 공간 전체를 한 뼘 한 뼘 탐지해 표시한 축광잉크가 각각 흔적으로 남았을 것이다. 작가가 처했던 시간적, 공간적 상황을 예술로써 견뎌낸 증거이자 일상에서 예술하기를 실천한 기록인 것이다.
 
현대사회는 핵가족이 해체된 “핵개인” 시대라고 말할 정도로 개개인이 흩어져 사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평생을 한 집에서 사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여러 이유로 자주 이사를 하는 상황에서 ‘함께 살아간다’라는 개념 자체가 약해졌다. 집단보다는 개인에 방점을 두는 현대사회에서 층간 소음 갈등은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뀔수록 증가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소통은커녕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지내기 때문에 실체를 본 적 없는 대상이 소리로써 존재를 드러내니 불편한 것이고, 그게 소리가 아닌 소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리빙 위드 더 트러블》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겪은 층간 소음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점차 사람 간의 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하는 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작업 하나하나가 전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보완하며 큰 덩어리를 이룬다. 그럼에도 작가는 층간 소음 해결에 앞장서는 액티비즘의 성격을 띠는 쪽으로 기울지 않고 끝까지 개인으로서 예술적인 방식으로 이 집단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윤소린의 관심은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이 트러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트러블과 함께 살기이며,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예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1] 윤소린, 『리빙 위드 더 트러블』 (서울: 온수공간, 2023), 페이지 없음.; 작가는 “화를 내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하거나, 혹은 행운을 기다리지 않고” 층간소음에 접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2] 윤소린, 『오픈스튜디오: 반상회』 (서울: 온수공간, 2023), 페이지 없음.
[3] 작가는 〈스터드 파인더〉에서 축광잉크로 표시한 벽지를 일종의 악보 삼아 그래픽스코어로 그리고 이를 소리로 변환해 음악처럼 만들어낸 〈소리, 소음, 아니면〉(2023)이라는 작업도 전시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