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마치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엘리트 운동선수처럼 작업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레슬링이나 장대높이뛰기 정도가 어울리겠다. 꾸준히 자신의 기예를 연마하고, 단련된 신체와 전술적 이해를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그 목표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손과 카메라를 통해서, 사진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히는 데 있는 듯하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투박한 언어로 정의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초기의 작업 노트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영호가 자기 작업의 목표로 제시했던 것은, 대체로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즉 집회 현장의 뜨거운 구호를 베어내어 전혀 다른 시공간에 가져다 두었을 때 그 언어의 질감과 시대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려 했던 〈독백집회〉 (2017~2018) 연작이나, 물리적 실체 없이 떠도는 온라인의 여론과 정보, 가짜뉴스와 혐오의 데이터를 3D 오브제로 출력하여 촬영한 〈비사진적 사례들〉(2021) 등이 그 좋은 예다.
작가는 정보와 언어, 매체, 시공간의 맥락 등을 이해하기 위해 사뭇 집요한 시도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영호가 그 이해의 수단으로 한결같이 사진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선택'이라는 말이 그리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런 말은 자신의 개념을 물질 세계에 구현하는 데 있어 사진이 가장 적합한 매체일 때 이를 ‘선택하는' 개념미술가들, 즉 존 발데사리나 조셉 코수스의 후예들에게나 어울린다. 반면 작가 정영호는 사진의 영토에 사는 거주민으로서, 빛과 렌즈와 카메라와 입자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한다.
다소 무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지한 도전과 야망이 작가 정영호의 작업에 독특한 질감과 뒤틀린 주름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형체도 냄새도 없이 온라인을 떠도는 증오와 혐오를 우리 눈 앞에 들이밀고 싶은 예술가가 있다고 하자. 그는 아마 그 말뭉치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를 입체적인 그래프나 오브제로 스크린에 구현할 것이다. 정영호도 그렇게 한다. 예술가들은 그 그래프와 오브제가 생성되고 출력되는 방식에 있어 자신의 의도와 개념, 미감을 투여할 것이고, 이를 교란하여 다른 매체로 전환할 수도 있다. 물론 정영호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사진을 택한다.
즉 정영호는 숙련된 사진적 기예를 바탕으로 3D 프린팅된 오브제를 정교하게 촬영하여 그 촉감을 생생하게 드러내거나,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정밀하게 찍어서 형체 없는 데이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사실 물리적 화소의 집합체라는 것을 보여준다.(〈Facing Shopping〉, 2020-) 그의 프레임에서 미움은 생생한 질감과 형태를 지니며, 디지털 이미지는 그 소재와 성분을 누설한다. 사진의 역량으로는 도무지 다룰 수 없다고 간주되던 정보의 세계마저도, 충분히 단련된 자신의 카메라로는 추적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작업에는 있다.
2.
생각해 보면, 엘리트 운동 선수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최초의 조건은 자신의 종목에 대한 강고한 믿음이다. 예를 들어 레슬링이라는 종목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다면 굳이 매일매일 땀을 흘리며 밧줄을 탈 이유는 없다. 레슬링의 역사와 가치, 제도와 생태계를 의심하지 않아야만 자신의 지점과 목표, 훈련 방법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때 레슬링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사진 역시 예술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잃고 디지털 이미지들 사이로 그저 녹아내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에서 이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폴 비릴리오의 말과 거의 비슷한 종말론적 언술들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발화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말은 역사가나 비평가의 것이라기보다는, 신경증을 앓는 선지자의 그것에 가깝다. 종말론적 욕망이 서구 역사의 특정 지점을 견인해 온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미래를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이르는 길은 단선적(unilinear)이며, 자신은 이를 내다볼 수 있다는 착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낡고 허술하다. 사진의 역사에서 복제와 조작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으며, 사진의 역량은 언제나 그 기계적 신뢰성보다는 믿음과 의심이 뒤엉킨 불안정한 결속에서 비롯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비평적 판단으로서는 지나치게 조악하다 하더라도, 비평적 대상으로서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아마 이런 말들을 거칠게 요약하면 ‘사진이 예전 같지 않다' 정도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들은 꽤 중요하다. 대중들의 관심이 없다면 레슬링이 스포츠 제도에 남을 수 없듯이, 사진 역시 충분한 욕망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사가 제프리 배첸은 초기 사진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사실 사진을 구성하는 기술들은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오래 전에 구체화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빛을 받은 염화은의 입자가 검게 변한다는 것, 어두운 방이나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 렌즈를 끼우면 한쪽 벽에 외부의 이미지가 맺힌다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은 마치 현상되지 않은 필름의 잠상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반의 시기에 갑자기 수많은 ‘원시 사진가'들의 욕망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서 결합하고 제련되어 사진술이라는 형태로 구현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는 ‘누가 사진을 (조금 먼저) 발명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공간에서 사진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했는가'라고 그는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