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스토리를 억지로 끌어내긴 했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읽어야 할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이 이미지의 왼쪽 페이지를 보자. 그 전 페이지에서 반지는 바닥의 핏물 속에 있었다. 다른 희생자들은 모두 가슴이 뚫린 채 시신이 되었지만, 그녀만은 시신 없이 핏물만 남아있었다. 그러니 이 페이지는 현실 또는 현재가 아니어야 한다. 동일한 공간이지만, 반지 안과 반지 밖의 색이 다르다. 이 반지는 과거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 전 방의 기억일까, 아니면 주인공의 생각일까. 원하는 대로 해석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어쨌건 그녀 역시 왕관고양이의 습격으로 죽었을 테니까.
그보다 오른쪽 페이지의 두 번째 단을 보자. 시각적 통일성과 변주를 볼 수 있다. 총 7개의 모든 칸에 동그라미가 각기 다른 스타일로 하나씩 등장한다. 심장에 난 구멍(1), 달(2), 달과 반지의 융합형(3), 반지(4), 달과 반지의 융합형(5), 달(6), 구멍(7). 달과 반지의 융합형이란 딱히 달도, 딱히 반지의 모습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칸에 3차원적 모서리가 등장한다. 그것이 집구석이건, 또는 규정할 수 없는 하늘의 공간이건. 물론, 모두 다른 스타일이다.
칸의 배열에도 질서가 있다. 칸의 넓이는 동일하다. 가운데 칸(4번째 칸)은 주인공, 바로 양쪽 칸(3번째, 5번째)은 주인공의 집, 그 다음 양쪽 칸들(2번째, 6번째)은 하나는 애인의 집, 다른 하나는 클럽의 모습, 양 끝은 애인의 모습(1번째, 7번째)이다. 가운데 칸에서 주인공이 던진 반지는 마지막 칸의 전경까지 클로즈업된다. 온통 검은 공간속에 여전히 반지와 주인공은 이어져있다. 독자가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스토리는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시각적 즐거움은 독자들이 충분히 즐겨야만 하는 부분이다.
다른 단편들도 전체적으로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스토리는 없다. 부분적인 논리는 존재하지만, 도대체 미상씨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설정이, 그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도저히 알 수 없고 설명되어 있지도 않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으므로, 시각적 제시방식에 조금 더 시선이 가는 것일 수도 있다. 2000년대가 되면, 시각적 차원이 더 강조된다. 방바닥과 방문이 사람의 얼굴처럼 형상된다거나,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을 더 많이 등장시킨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2004년의 「파마헤드」에 실린 단편 〈미스 메두사〉는 한 칸 안에 시각적인 정보들이 초현실주의적으로도, 입체주의적으로도 중첩되어 제대로 읽어내기도 어렵다. 그냥 부분적인 해석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 전체를 읽어낼 수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