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눈-회화 : Multi-Painting》 전시전경 © OCI미술관

회화는 인간의 내적 작용을 구체화 하는 기제 중에서도 인간과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예술 매체로, 창작 행위의 중심을 이루며 미술의 가치와 역사를 대변해왔다. 돌이켜보면 회화의 여정은 인간의 현실 인식을 가장 민감하게 수용하고, 새로운 세계관이 도래할 때마다 그 한계에 도전하는 자기 부정과 정체성의 재정립을 무수히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그것은 회화가 태생적으로 ‘보는 문제’를 담당해온 매체라는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본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 문화, 생활환경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당대의 특수성을 고스란히 투영하면서도 항상 유동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의 과거는 미술계의 주도권에 대한 이해관계의 면에서 부침의 역사로 기록되어 왔다. 줄곧 예술의 중심축을 차지해 왔던 회화가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자존에 대한 염려가 시작되었고, 점차 스스로의 구조와 체계를 잃어버린 채 그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방황해왔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회화의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관점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결과론적으로 회화는 꾸준히, 그리고 충분히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회화는 19세기 중반까지 ‘위대한 재현의 시대’를 완성하며 영광과 권위를 누려왔다. 이 시기에 원근법, 명암법, 단축법 등과 같은 표현 수단의 진보가 모두 이루어졌으며, 당대의 사회적 주체가 요구하는 공증된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수용하면서 회화는 줄곧 각광받는 매체로 존재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후 사진, 영화, 인쇄, 복제기술이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눈에 대한 오랜 신념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회화의 재현적 역할과 기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간에 축적되어 왔던 회화의 내적 질서와 뿌리가 크게 흔들린 점에서 이 시기는 분명, ‘위기의 시대’였다.

이후 모더니즘 시기에 회화는 2차원의 평면성만 남고 모든 재현성과 이야기의 흔적이 홀연히 사라진 추상의 상태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면서 자존의 길을 찾아 나섰고 이와 같은 ‘반재현성의 추구’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분명한 선택적 행보로 여겨졌다. 그러나 추상회화가 반세기동안 물성과 같은 형식적 요소에만 집중하는 사이, 내러티브나 환영적 요소와 같은 회화 안에서의 오랜 가치와 특성들은 타 매체들의 언어가 되어갔다. 게다가 후기모더니즘 시대의 ‘반미학적, 반회화적 눈’을 통해 회화의 모든 관습적인 성향들이 부정되는 가운데 급기야 ‘회화는 끝났다’고 회자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관점은 물론 회화의 모든 양상을 대변한 것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미술의 중심을 차지했던 모더니즘 시대까지의 상황과 논리에서 비춰진 회화의 위상 변화에 대한 추적일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해 온 회화의 자생적 가능성을 보여준 지난한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즉, 19세기 말엽에 찾아온 회화의 위기 앞에서 화가들은 색채, 형태와 같은 조형적 요소를 비롯하여 시점과 같은 표현 수단이나 재료 등의 형식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그때까지 일구어온 회화의 고전적 자산들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재해석하는 등, 변화된 시대에 따른 ‘보는 눈의 변화’를 거의 혁명적으로 수용하고 발산하면서 회화의 지평을 넓혀 놓은 바 있다.

이후에도 회화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형식의 문제와 형식 너머의 문제, 개념의 문제 등, 이전 시대에 경험하지 못했던 갖가지 표현적 방법론과 이론적 체계를 접하고, 그것을 회화 안으로 수혈하면서 스스로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다져나갔다. 이처럼 골조마저 무너뜨린 철저한 자기 해체의 과정을 겪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실험적 모색을 반복하는 고군분투(孤軍奮鬪)의 여정 속에서 회화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진단과 달리, 오히려 시대와 호흡하는 예술 매체로서의 본질에 더욱 다가설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다원주의의 시대를 맞아 우리 주변의 어떠한 것이라도 예술의 영역에 포괄할 수 있게 되면서 회화는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 듯 보였으나 기존의 유산을 다시 호출하여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타 장르와의 연계나 방법적 공유를 시도하면서 좀 더 유연하고도 열린 언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는 회화라는 장르의 입장에서 볼 때 일종의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의 끝이자 새로운 출발점에 들어선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시기에 회화는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접근을 통해 모더니즘 시대 전후에 타 장르에게 내주었던 조형적 요소, 표현 방식, 재료, 내러티브와 같은 오래된 회화의 틀을 되찾아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각 시대를 거치며 습득한 다양한 층위의 회화적 형태, 즉 개념적, 매제적으로 확장된 모습으로 귀환하여 이전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언어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지만 이미지 생산자라는 측면에서 회화는 장르에서나 매체에서나 그 영역과 규모를 계속 확장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 세계의 리얼리티를 꾸준히 반영해온 다양한 경험의 층위에도 불구하고 회화의 ‘위기설’은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이는 일견, 회화 스스로가 모더니즘 이후에 발견된 균열을 이렇다하게 수습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견해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문화 환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진입하면서 다시 한 번 일대의 혼란과 함께 미경험의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과 기류를 감지한 언급이라고 본다. 실제로 멀티미디어 환경이 시작되었을 때의 회화는 19세기 말 사진의 등장으로 위축되었던 회화의 위기 상황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회화의 수작업의 성격을 대체하는 편리함과 재현성을 넘어서는 리얼리티의 면에서 유사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우리 사회는 대중문화, 소비문화의 확산과 함께 영상매체, 정보 네트워크의 급증으로 문화 지형에 일대의 변화를 겪었다. 그 중에서도 급속히 늘어난 멀티미디어와 디지털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적 현실이 되었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적용되어 미디어 아트와 같은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고, 미디어 환경을 이용한 예술 창작의 방법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시대의 눈-회화 : Multi-Painting》 展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만연한 다원주의의 논리 속에서 다면적이고도 다차원적인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회화적 현실에 주목하고, 그 중에서도 멀티미디어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문화 환경적 특성에 친화하는 회화의 한 현상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과 이념, 목표 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의 원리는 개인이 모든 것의 단위이자 결과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하고, 하나의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다수’의 ‘여러 가지’ 관점을 양산하게 했다. 또한 멀티미디어 환경은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 영상, 음성, 문자 따위와 같은 다양한 정보 매체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으며, 예술의 표현 형태도 그만큼 ‘다차원적’으로 제시되었다. 이 전시에서 명명한 ‘Multi-Painting’은 ‘Multi-’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의 환경과 특성이 회화의 영역에서 ‘다층적, 다면적’으로 발화되는 양상을 함의하는 별칭이다.

오늘날의 회화는 그야말로 다원적이다. 재현, 반재현, 재현의 재현 등의 다면적인 범위가 공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르에 있어서나 매체 활용에 있어서나 경계 없이 무한 확장하듯 멀티플한 양상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또한 미디어를 통한 정보의 습득과 재생산의 방식은 우리의 사고방식의 체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무제한의 정보를 큰 수고 없이 취사선택하여 수집할 수 있게 된 점은 예술 창작의 모티프를 선택의 문제로 나아가게 했으며, 가상세계 속의 무한 확장성의 경험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물리적인 시․공간의 개념을 해체하거나 변용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미지를 추출하는 방식에서도 필요한 이미지를 몽타주 형식으로 파편화하거나 분절해서 서로 중첩, 병치하기도 하고 연속과 불연속을 통한 시각적 혼융을 자유자재로 시도하는 점은 회화적인 표현 방식에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물론 이런 다면적인 양상들 때문에 오히려 이 시대의 회화가 회화적 특수성이 희박하다고들 한다. 또한 더 이상 새로운 실험이나 새로운 표현 방법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회화의 발전적 행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이 시대의 환경은 회화적 발현에 더 없이 좋은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회화의 고전적 자산 층이 두텁게 축적되어 있고, 타 매체들과 회화적 원소들을 공유했던 친연적 경험으로 인해 표현의 영역이나 방법에서 자유로워졌으며, 거기에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익숙해진 새로운 창작 태도와 조형적 방법론이 더해져 ‘보는 눈’의 변화가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 전시에 초대된 9명의 작가는 모두 멀티미디어 환경에 친화적인 세대로서 회화 고유의 매체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Multi-Painting’의 현상을 관통하는 회화적 발언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현대 회화의 다양한 지류 중 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작가마다 예술 언어의 새로운 단위를 형성하면서 회화의 활로를 열고 그 지평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부단한 활동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