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규(b. 1987)는 설치와 뉴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질과 비물질,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작가는 유년시절 아버지를 따라 중동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시작되는 불안함과 이질감을 사람들을 만났던 장소, 거주했던 지역의 생경했던 시각적 이미지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시대와 공간, 문화를 초월한 그만의 새로운 건축적 조각으로 재조립한다.


최민규, 〈Permeate module 1〉, 2015,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볼트, 너트, 30x30x30cm © 최민규

이러한 유년시절에 대한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최민규의 작업은 건축적 요소를 통한 경계의 익숙함과 낯섦, 결합과 해체를 독특한 오브제의 발견으로 새로운 조형적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건축을 “각 시대의 사고와 이념의 결과물”이자 “타인을 매혹할 수 있는 시각매체”인 동시에, “인간과 사회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최민규, 〈Blank Hide and seek-assemble 90 degrees〉, 2018, 아크릴에 프린트, 철, 볼트, 너트, 30x30x20cm © 최민규

작가는 인간 사회의 이념이 건축물에 반영되어 왔듯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경험했던 불안정한 감정을 완벽히 설계된 구조물로, 시간이 흘러 그에게 스며든 감정들은 재구성된 이미지들로 변환시켜 새로이 공간구성을 한 “공간구조물”로 표현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2차원 평면에 설계된 각각의 구성원들은 설계와 조립 과정을 통해 3차원으로 구성되고, 이 과정은 ‘나’라는 주체가 환경과 문화를 흡수하고 소화하는 과정을 대변한다.


최민규, 〈Permeate structure Ⅰ〉, 2015,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검은색 거울, 볼트, 너트, 100x50x25cm © 최민규

작품을 살펴보자면, 2015년에 발표한 추상 건축 작업 〈Permeate Structure〉는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성장했던 작가 최민규의 내밀한 심리와 감각이 응축되어 나타난다. 작품은 모스크 사원의 건축 문양과 한옥의 기와 문양을 결합해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공존하는 이질적인 조형성을 드러낸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낯선 환경과 문화에 ‘스며드는(permeated)’ 작가 자신의 테크놀로지적 미감을 녹여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는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공간 구조물에 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민규, 〈Permeate structure Ⅰ〉(세부 이미지), 2015,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검은색 거울, 볼트, 너트, 100x50x25cm © 최민규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면, 먼저 제작할 건축적 조각을 스케치한 후 포토샵 이미지로 재구성해 3D 프로그램을 거쳐 모형을 제작해 보고, 실제 작품을 제작할 경우의 구조적인 결함을 확인한다. 작가는 문제점을 검토하여 보안한 후, 도면을 수치화하는 CAD 작업을 통해 정확한 크기와 부품의 수량, 조립 위치 등을 최종 결정한다.


최민규, 〈Permeate structure Ⅱ〉, 2015,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검은색 거울, 볼트, 너트, 120x30x15cm © 최민규

이러한 세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완성된 각 요소들은 작가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조립되어 건축 조각으로 거듭난다.
 
이와 같은 조립식 건축 조각은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과 또 한번 맞닿아 있다. 어린시절 레고 블럭 쌓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향후 예술적 자양분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숙이 내재한 조립에 대한 취향을 탐구하며, 이를 현재의 자기 규정적 실천행위로 전환시킨다.


최민규, 〈Drift grid-scene 867〉, 2017,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거울, 볼트, 너트, 80x80x180cm © 최민규

한편, 2017년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그리드의 표류》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아가 작가 자신이 현재 발 딛고 있는 땅을 바탕으로 ‘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시에서 소개된 연작 ‘Drift Grid’는 부조이자 건축화 이전의 입체 드로잉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Drift grid-scene 867〉의 경우 상업, 주거, 복합시설 등으로 구축물의 정체성을 유추할 수 있지만,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주장하는 구조와 재료, 건축적 개성이 뒤섞여 있다.
 
심지어 내부 공간은 거울로 인해 반사되어 내부구조가 중첩됨에 따라 관람자의 시선을 표류하게 만든다.


최민규, 〈Drift grid-scene 867〉(세부 이미지), 2017, 폴리카보네이트, 철, 목재, 거울, 볼트, 너트, 80x80x180cm © 최민규

최민규는 이러한 ‘Drift Grid’ 작업에 대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마주한 건축물을 통해 내가 느꼈던 각 요소들의 이질감과 그것들을 흡수하며 내가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2차원의 평면 그리드는 불안정함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완벽한 구조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site)을, 완성된 구조물은 새롭게 작가에게 스며든 감정들을 재구성한 또 다른 ‘나’를 상징하는 것이다.  


최민규, 〈Blank Hide and seek-Unusual point〉, 2018, 목재, 인디안 잉크, 550x500x340cm © 최민규

한편, 2018년 갤러리조선에서 열린 개인전 《Blank-Hide and Seek》에서 최민규는 완성된 작품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이 능동적으로 이미지를 조립해 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먼저, 《Blank-Hide and Seek》는 검정색 구조물로부터 출발한다. 검정구조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으며 건물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문, 창문, 면, 장식 등 어떠한 구성요소도 들어가 있지 않아 어떤 의미와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최민규, 〈Blank Hide and seek-Hide to〉, 2018, 목재, 볼트, 너트, 140x100x160cm © 최민규

작가는 이 구조물을 “Blank”라고 말한다. Blank 구조물 주변에는 수집된 이야기로 만들어진 파편들이 존재한다. 파편들은 각자 다른 형태와 내용 그리고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 파편들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행위에 대해 “Hide”라고 명칭한다.
 
곳곳에 설치된 파편들은 Blank 구조물에 어떤 요소로 작용하는지와 구조물의 최종 형태, 공간 배치, 크기, 배경, 목적 등을 유추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준다. 제시된 각 파편들을 가지고 유추하는 행위는 본 전시에서 “Seek”라고 명명된다. 그 안에서 관객은 현실과 가상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Blank를 개인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추하기 시작한다.


최민규, 〈Blank Hide and seek-assemble 360 degrees〉, 2018, 아크릴에 프린트, 철재, 볼트, 너트, 30x30x20cm © 최민규

즉, Blank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수집된 파편을 가지고 Hide와 Seek를 반복하고 각자 상상으로 풀어낸 공간으로 재구성 될 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의 작품은 주어진 단서와 빈 공간을 통해 다양한 공간으로 끊임없이 탈바꿈 된다.


최민규, 〈59초를 위한 동력기〉, 2024, 모터, 알루미늄, 나무, 3D프린트, LED 라이트, 55인치 TV, 2D 애니메이션(0:59), 비디오 콜라주, 가변크기 © 최민규

한편, 최근의 작업에서 최민규는 공간적 조형과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개인의 감각과 동시대 미디어 환경이 교차하는 장을 구축하며, 테크놀로지를 미학적 언어로 전환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질을 매개로 행했던 낯선 곳에서의 감각적 여정이 이제 비물질 공간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되어 나간 것으로도 읽힌다.


최민규, 〈당신이 믿는 어떤 것들〉, 2020, 비디오, 설치, 3분 8초 © 최민규

이에 대해 이광석 교수는 “창작 매개체의 질적 속성, 매질과 감각의 확장”으로 읽어낼 수 있으며, “조소적인 것(물질)과 뉴미디어적인 것(비물질)이 함께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혼합되고 연결된, 즉 ‘절합(articulation)’의 과정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 예로, 물질과 비물질 사이 경계선에 접어들기 시작하며 발표한 비디오 설치 작업 〈당신이 믿는 어떤 것들〉(2021)은 가상과 현실 공간이 마주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데이터의 질서가 그의 작업에 들어서면서 생긴 감각의 변화와 그 혼란스러운 감각을 다룬다.


최민규,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 2025, 설치 및 비디오, 스테인리스, 3D 프린트, 철판, LED 패널, 모터, 205x230x230cm © 언폴드엑스

그리고 2025년 언폴드엑스에 참여하며 선보인 작품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2025)는 1분에 한 바퀴 회전하는 구조물을 통해 정보의 끊임없는 재생산과 확산을 직관적으로 시각화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현대 정보 환경을 반영하는 회전 속도와 일정하게 지속되는 움직임은 거대한 정보 생산 동력기로 기능한다. 여기에 1분마다 변화하는 영상이 결합되며, 기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일상적 선택과 소비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끝없는 생성과 확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1분 회전과 1분 영상이 만드는 시간적 리듬은 정보가 생성되고 잊히는 주기를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최민규,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 2025, 설치 및 비디오, 스테인리스, 3D 프린트, 철판, LED 패널, 모터, 205x230x230cm © 언폴드엑스

작품은 이처럼 반복되는 시각적 리듬을 통해 기술과 자본의 가속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되짚는다. SNS와 디지털 플랫폼의 파급력은 한 개인을 넘어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며,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는 개인의 존재 방식과 사회적 연결을 구성하는 핵심 행위가 되며, 속도 중심의 콘텐츠는 왜곡되고 단편적인 사고 패턴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키네틱 구조물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정보의 질량을 표현하고자 하며, 회전체의 속도를 통해 정보의 덧없고 휘발적인 성격을, 그리고 1분 길이의 짧은 영상을 통해 무의미하게 압축된 삶의 이야기들을 시각화한다.


최민규,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 2025, 설치 및 비디오, 스테인리스, 3D 프린트, 철판, LED 패널, 모터, 205x230x230cm © 언폴드엑스

이렇듯 최민규는 새로이 주어진 환경 속에 적응하며 경험한 감각과 심리, 시각적 사고의 변화를 건축적 조각에 투사하는 작업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 환경 속에서 개인의 감각과 인식의 변화를 설치와 뉴미디어의 경계에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대한 데이터 환경 속에서 감각과 인식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물질적 경험과 디지털 감각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각적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

"새로이 주어진 환경과 삶 속에 스며든다는 것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환경 속에 적응하려는 개인의 심리, 시각적 사고의 변화를 불러온다." (최민규, 작가 노트)


최민규 작가 © 서울문화재단

최민규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감각의 장막》(시민청 담벼락미디어, 서울, 2022), 《Blank-Hide and Seek》(갤러리조선, 서울, 2018), 《그리드의 표류》(신한갤러리, 서울,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언폴드엑스 2025 《Let Things Go: 관계들의 관계》(문화역서울284, 서울, 2025), 《퍼블릭아트 뉴히어로》(K&L Museum, 과천, 2024), 2023 서울 미디어 아트 위크(삼성역 일대, 서울, 2023), 《도시채집》(LG U+갤러리C, 서울, 2020), 《Love of light》(마이아트뮤지엄, 서울, 2019), 《뉴바우하우스》(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최민규는 2024년 월간 ‘퍼블릭아트’에서 ‘뉴히어로’ 선정 작가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