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에 다양한 종류의 울타리, 빨 래 건조대, 담요, 이불보, 바닥 깔게, 스카프, 레이스, 포장지 등이 무리지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공간에 무작위로 널 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무리지어 전시장에 놓여 있다. 각각의 무리에 명제표가 없어서 관객들은 전시된 무리들만 봐서는 어떤 내용의 작업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전시장 입구에는 각각의 작품 배치도가 비치되어있다. 배치도에는 작품제목이 적혀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나비, 동물, 해, 별, 나무, 구름, 풀, 물방울, 달, 꽃과 같이 모두 명사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각 작품의 제목이 수식어와 함께 병치해 적혀 있다. "지나가던 풀, 앉아있는 동물, 코너에 있던 달, 순서대로 구름, 마주보는 나무, 해님 해님, 줄 서는 꽃, 말린 별 깔린 별, 널린 물방울, 흔들리는 나비 각각의 작품의 상태 혹은 상황을 설명하는 거 같다. 예를 들어 작품 〈나비〉는 나비를 프린트한 스카프가 벽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작품 〈나무〉는 세로로 우뚝 선 빨래 건조대가 병치되어 있다.
작품 〈별〉은 작은 울타리 안에 시멘트 재질로 만든 것 같이 보이는 별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는 별 모 양이 인쇄된 투명한 포장지가 얹혀 있다. 작품 〈동물〉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울타리를 반원 형태로 구부려 고정시켜 놓고 그 안에 얼룩말 무늬 같은 문양이 인쇄된 담요가 잘 개서 그 안에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제목과 더불어 벽글을 참고하여 살펴보면 다양한 물건들을 조합해 놓은 것이 작품 제목의 존재들로 보인다. 그러나 '지나가던 풀'과 같이 몇몇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는 부조리하다는 느낌이다. 이런 작품들을 선보이며 임정수는 전시제목을 《벽, 땅, 옆》이라 하였다. 역시 세 개의 명사를 병치시켰다.
그동안 임정수가 발표한 작업을 보노라면 '오브제'와 '설치' 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 세기 전 뒤샹 M. Duchamp이 레디메이드 작품과 최초의 전시공간을 활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인 이래 팝아트와 미니멀 작가들을 거치며 '오브제'와 '공간'은 전위미술의 핵심주제어로 20세기 서구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한 몫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지금은 전시장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작품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뒤샹을 비롯해서 이런 유의 작업에 천착한 작가들의 공통점은 '반 미학적 성향이라 할 수 있겠다. 반미학적인 작업은 형식주의적인 성찰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찰의 끝까지 가본 것이 개념미술이다. 불가지론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찰을 통해 사유의 끝까지 가볼 수 있는 것은 철학이다. 철학의 매체는 언어이다. 결국 개념미술은 시각예술이 언어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임정수의 최근 작업도 일정부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전시 제목 《벽, 땅, 옆》을 살펴보자. 세 개의 명사로 이루어졌다. '벽'은 인위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즉 인공물이다. 벽은 울타리로 공간을 구획한다. 울타리는 한정 혹은 배제가 되는 경계이다. '땅'은 '벽'에 반하여 자연을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땅은 모든 생명체가 발붙이고 사는 지구의 표면이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의 기준으로 표면과 형태에 따라 땅을 구분한다. '옆'은 위치를 알려준다. 상대적인 위치 정보이다. 또한 거리에 대한 정보도 내포하고 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제목 《벽, 땅, 옆》으로 부터 그녀가 '인간 중심으로 사물을 규정짓는 것'에 대해 회의하고 있지 않나 싶다. 쉽지 않은 화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것일까?
임정수의 작품을 보면 각각의 작품 구성 요소를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의미를 독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 원인은 작품 소재가 생활용품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용도로 인해 관객의 사고에 여지를 별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낯선 조합물에 그녀는 나비, 동물, 구름, 해, 달, 별, 나무, 꽃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그녀는 관객들이 작품제목을 그녀가 제시한 생활용품의 조합물에 투사해 보기를 원한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각의 사물들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전통적인 방식, 즉 특정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녀는 특정 사물을 연상시킬 수 있는 직간접의 요소들을 조합하여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작품제목을 염두에 두고 이 파편들을 조합해 볼 것을 요청한다. 이것이 '임정수의 작품제작 방식'인 거 같다. 아무튼 독특한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하였다. 이 독특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임정수가 선택한 생활용품들을 살펴보자. 전시된 물건들은 두 부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울타리와 건조대 같은 선재이면서 수직적인 요소와 다른 하나는 담요, 포장지, 바닥 깔게, 스카프 등과 같은 면재로 접고 재단이 가능한 수평적인 재료이다. 두 부류의 물건들은 평면적이면서 장식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시제목과 연관해서 살펴보면 울타리와 건조대는 '벽'과 연 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담요, 포장지, 바닥 깔게, 스카프 등 은 '땅'과 상관관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요소들이 서로 '옆'에 놓여 하나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녀는 왜 이와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용하여 특정 사물들을 재현하였을까? 그 실마리는 앞서 살펴본 반미학적인 성향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정수의 이번 전시 작품들은 생활용품으로 사물을 입체로 재현한 것이기에 조각 작품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그녀가 살피고자 하는 것이 그동안 그녀가 전통 조각에 대해 고민하던 어떤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선택한 생활용품들은 장식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그녀가 선택한 면재들은 사물의 실체를 가리고 새로운 표면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식'과 '표면'이라는 두가지 핵심어를 추출할 수 있겠다. 작품을 대면할 때 일차적인 느낌은 표면과 장식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전통 조각에 서는 이 두 요소를 '양괴'와 '물성'에 비해 비본질적인 것으로 소홀히 다루었다. 그녀의 회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만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 미술 모더니스트의 전통이며, 이런 회의를 통해 미술의 지평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지금도 그 전통은 지속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 점이 한국미술계에서 결여된 부분이다. 임정수는 미술에서 시각이 중요하지만 "미술은 그보다는 공기나 촉각예술"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작업이 “시각만을 위한 예술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녀가 말하는 촉각은 "작품으로부터 발산되는 에너지가 관객의 피부를 통해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그녀는 '미술관이 몸보다 시각을 중심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관객이 전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체험하며 작품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회의를 통해 뒤샹이 '반反망막적 anti-retinal 미술'을 추구했던 것과 현상학에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설치작업이 떠오른다. 그들 모두 통시적인 성찰을 통해 미술의 지평을 확장시켜나간 장본인들이다. 그녀도 이런 맥락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회의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시장미술이 대세인 시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