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제공 사진 © 류한솔

둥글고 평평한 육덕진 모양새로 의자에 눌린 허벅지살을 보면 질근질근 썰어보고 싶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우직끈 푹 꽂아보고도 싶고, 팔뚝에 있는 중력에 쏠린 너덜거리는 살은 엄지와 검지로 수제비 반죽을 뜯어내고 싶기도 하다. 다섯 손가락의 뼈에 얇은 살로 둘러싸여 밑에는 살짝 통통하고 위에는 주름과 뼈, 손톱으로 딱딱한 다섯 손가락 모두를 동시에 길고 두꺼운 칼로 뚜벅뚜벅 썰어보고 싶다. 또각또각 똑똑 꿀룩꿀룩 딱딱 바닥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의 물렁뼈가 칼에 미끄덩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다. 딱딱하면서도 흐렁텅 미끄러운 느낌이 난다. 타원형의 마디 조각들은 이제 더이상 손도 손가락도 아니다. 동그란 조각이다.




할머니가 눈을 깜빡이며 깔깔 수다 떠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웃고 있다. 주름진 살가죽 속으로 빛나는 눈알이 들어있다. 할머니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겉에 불투명한 막이 있는 황토색 얇은 주름들이 잘잘잘 이리저리 움직인다. 할머니의 주름진 얇은 눈꺼풀과 노랗고 물렁하고 탄력 없이 둥근 척척한 눈동자 사이의 헐텅거리는 건조한 빈 공간. 얇지만 단단한 눈꺼풀은 꽤 커져서 눈알을 여유 있게 덮어버린다. 깜빡거릴 때마다 황~하고 바람이 불어, 물기 없는 눈알을 더 메마르게 만든다. 그러면 얼른 꼬옥 눈을 감아 눈알 표면에 물기를 적신다. 누런색 꽉 찬 액체 덩어리와 찰싹거리는 물기 없는 눈꺼풀에서는 쩍쩍. 소리가 난다. 쩍쩍. 쩍쩍. 어두운 밤이 되면, 검게 덮인 눈구멍 속에서 몰랑몰랑한 눈알은 퐁퐁 움직이기 시작한다.



양말이 벗겨지듯이 몸의 껍데기가 벗겨지면서 살이 주욱 늘어난다.
살색 스타킹에 눌어붙은 살이 스타킹을 당겨 벗는 동시에 찌이익 늘어난다.
양말을 벗듯 살을 벗는다.
씹던 껌을 엄지손가락으로 쭈욱 당기듯이 
새콤달콤이 녹아 찌익 늘어나듯이 
뿌리의 근원 없이 늘어난다. 
쭈 – 왁


작가 제공 사진 © 류한솔



담가둔 지 한참 지난 줄 알았는데 어디서 스스스 소리가 난다. 방금 담근 것인지 아직 움직임이 남아있다. 작은 방울들이 터지면서 수건이 물 위로 둥둥 뜬 채로 서로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물을 힘껏 빨아들인 돌기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뿔룩뿔룩한 수건의 돌기들 사이로 바글바글 보글보글 망측한 락스 방울들이 쎄-한 매운 냄새를 풍기며 움직인다. 바글바글한 내장들이 엉켜있는 것처럼 그런데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버글버글한 수건들 사이로 락스 거품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서서히 더 꼬이면서 서로서로 더 말리면서 움직이고 있다.



철캉철캉 쇳가루와 쇠 냄새가 진동하는 을지로 골목 오래된 건물 외벽에는 배꼽에 탈장된 내장이 붙어있다. 페인트가죽은 발뒤꿈치처럼 군데군데 제멋대로 파여서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쑤컹쑤컹 구멍으로 넣어보지만 영 들어갈 기미가 없다. 그냥 밖에 묶어두기로 결심한다. 탱글탱글 힘이 강한 긴 내장은 돌돌 묶여 배에 고정에 두었다. 팽팽하게 묶인 내장 표면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들은 팔랑팔랑 자유롭다.



혀로 만지고 싶어서 혀가 앞니 뒷면을 날름날름거린다. 분명 거친 표면이지만 뽀봉뽕하고 동그란 모양새이다. 심지어 울퉁불퉁한 껍데기 사이사이 금이 가서 손가락으로 만지는 재미가 있다. 패이고 덧나고 패이고 덧나고를 반복한 것인지, 덧나고 아물고 덧나고 아물고를 반복한 것인지 모르지만, 온전한 원기둥에서 벗어난 이 덩어리는 바삭하게 맛있게 생겼다. 마치 스콘처럼 덩어리로 부서져 나갈 것 같기도 하고, 그럼 그 내부는 생생한 핑크빛 나뭇결이 닭 가슴살처럼 스읅 스읅 주변을 살피며 떨어질것 같다.


작가 제공 사진 © 류한솔



늦은 저녁 매점에 가면, 한가득 쌓여있던 1300원 김밥 더미는 거의 다 팔리고, 맨 밑에 눌려있던 김밥 몇 개만 겨우 남아있다. 꾸깃꾸깃 구겨진 은박지를 양옆으로 쫙 핀 후, 그 한가운데에 아주 매력적일 정도로만 휘어진 쭉 뻗어있는 김밥의 상태다. 잘린 낱개의 김밥들이 비교적 오랜 시간 보관된 탓에 밥알 표면이 찐득해져 그것들끼리 떨어지지 않으려 붙어있다. 그 찐덕하게 눌린 밥알 사이를 푹 꽂아 날카롭게 지나간 매끈하고 길쭉한 당근과 흩어진 우엉, 그리고 아주 약간의 참치와 김치. 덕분에 김밥의 양 끝은 무자비하게 터져 나온 밥알로 가득 찼다. 매끈한 김밥 표면 위로 고급스럽게 발려진 코를 찌르는 참기름의 고소한 상태다.

또 

끼익 끼익 귀를 찢는 녹슨 쇳소리를 내는 맷돌에는 나사가 달려있다. 녹이 묻어 나오는 나사를 퉁퉁한 가슴(심장 바로 윗부분의)에 갖다 댄다. 둔탁하고 더러운 나사 끝을 대고, 있는 온 힘을 다해 누른다. 누름과 동시에 돌린다. 맷돌이 커서 무겁겠지만 쥐어짜서 겨우 돌린다. 살이 조금 패여서 나사가 조금 들어간다. 어긋난 가슴뼈 사이 공간으로 들어간다. 퉁퉁한 살은 이제 마르기 시작한 주름진 밀가루 반죽처럼 둔하게 꼬인다. 나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둥글게 천천히 살이 말린다.

그 끝에서 검은빛 붉은색의 꽉 찬 핏물이 서서히 나와 고이기 시작한다. 겹친 살들 사이사이로 스며들며 흘러내린다. 투둑투둑 가슴뼈를 뚫거나 비껴가며 녹슨 둔탁한 나사는 용케 쑥쑥 가슴을 누르며 파고든다. 맷돌이 무거워 부드럽게 들어가진 않는다. 어긋나고 밀리면서 천천히 그러나 무식하게 들어온다. 두껍고 질긴 피부를 뚫고, 단단한 뼈를 뚫고, 이제는 척척한 핏덩이다. 그 안 제일 깊은 곳에는 쿵쾅쿵쾅 기계 소리를 내는, 검붉은 색의 뜨겁고 시끄러운 바람이 나올 것 같은 심장이 있다. 이제 모든 살과 뼈는 맷돌에 말려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