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솔의 ‘인체 분해-쇼’ 들은 별 뜻 없이 수상한 웃음을 자아낸다. 미하일 바흐친은 일찍이 이런 종류의 수상쩍은 웃음을 알고 있었다.[2] 바흐친에 따르면 어떤 웃음은 이중적이다. 이런 웃음을 자아내는 장르에서, ‘몸’은 자주 일그러지되 의도적인 슬랩스틱을 연출하지 않고, ‘사건’이 벌어지지만 미리 세워 둔 서사적 종점이 이를 가로막진 않는다.
의미를 지우려는 시도와 만들려는 시도가 함께 하고, 이미 존재하던 일체의 계열은 흐트러지며, 계열을 따라 서있던 것들은 위치를 바꾼다. 류한솔 작업에서 서사는 있으면서 없고, 몸은 파괴되지만 죽지 않는다. 이야기는 텅 빈 농담 아닌 리얼리티를 통해, 의미를 잃은 리얼리티는 시청각적 과잉을 통해 끝없이 차오른다. 이중성의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몸을 가르는 핏빛 장면에도 불구하고 살 떨리는 공포 대신 웃음이 발생한다.
수상한 웃음은 작가가 자기 작업을 설명하면서 언급하는 ‘짤’, 그 생성 원리와도 연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웹을 항해하는 이미지들, 동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손쉽게 짤의 운명에 처한다. (안 그래도 짧은) 콘텐츠를 다시 요약하고 밈(meme)화 하는 ‘짤’은 특정 콘텐츠에 포함된 내용과 맥락, 그를 뒷받침하는 사실성을 모두 휘발해 버린다. 오늘의 미술을 포함한 동시대 이미지는 (현실에 발 디딘 분명한 실존의 요청을 한쪽에 두고) 뿌리 없이 자가증식 하는 가상적 표피, ‘짤’로서 자기 존재를 긍정(해야)한다. ‘표피에는 이면이 있을까?’, ‘이면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완벽한 탈각, 나머지 없는 매끈한 분리 대신 침과 피를 흘리는 여분을 만드는 행위에는 이러한 질문이 동반한다. 그의 작업에서 몸/짤이 생성되는 과정이 낭자하게 구체화될 때, 오늘날 미술/이미지의 존재론적 상황이 다시금 환기된다. 류한솔은 동시대 이미지의 조건, 파편으로 부서지고 잉여로 넘쳐나는 짤의 운명을 시험해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류한솔은 ‘짤’을 통해 ‘짤’로서 살아나는 몸을 모색하고, 그와 동시에 과거(이면의 흔적)와 미래(무한한 분열)를 함께 현실화한다.
《Every Body, Come On! Yo!》는 그렇게 흩어진 몸-이미지들을 불러 모아 질펀한 파티를 연다. 가상이 실제에 틈입하고 실제가 가상에 겹치는 초-접속의 시대에, 이름 붙일 수 없으며 소유나 소속을 밝힐 수도 없는 채로 피를 흘리는 몸, 그 이미지 덩어리들의 생을 축하하며!
기획, 글 허호정
[1] 백룸(backrooms): ‘불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요청하는 웹 게시판에서 유래했으며, 한 익명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에 이야기가 덧붙으며 콘텐츠로 확산되었다. 백룸은 “무작위로 생성된 방들이 끝없이 나열된 미로로 묘사”되며, “젖은 카펫 냄새, 노란 단색의 벽, 깜빡이는 형광등’이 특징적인 공간이다. 열린 공간 뒤로 미지의 공간이 숨어 있다는 설정에 음모론적 색채가 더해져 백룸 서사는 도시 괴담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또, 비디오 게임, 유튜브 영상 외 각종 픽션으로 생산, 소비되면서 다양한 ‘레벨’, 거기 거주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엔티티(entity)’ 등 확장된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2] 바흐친의 ‘웃음’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미하일 바흐친, “서론: 문제의 제기”, 이덕형, 최건영 옮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학』(아카넷, 2001), 19-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