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과 기계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난 차슬아(b. 1989)는 만화, 영화, 게임으로부터 만들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며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작가는 조각가로서 게임의 문법 및 실재하는 사물의 규모와 작동 방식을 탐구해 오고 있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차슬아의 작업은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작동되는 시스템이나 이미지를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아이템의 생김새, 인벤토리에 보관하는 방식, 플레이어와 동행하는 펫 캐릭터, 마법 기운을 이용하는 장치, 지도의 모양 등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소재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스크린샷을 하여 이미지로 저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스케치한 다음, 이것을 구현할 재료 실험을 거쳐 가상의 이미지를 조각이라는 물질의 형태로 전환한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가령 2018년 취미가에서 열린 차슬아의 첫 번째 개인전 《Ancient Soul++》는 게임 아이템을 보관하는 인벤토리 창의 구성을 가져와 그의 사물 조각 84점을 진열장에 나열해 선보였다. 차슬아는 작업 크기에 맞는 칸을 가진 진열장을 제작하였고, 정면으로 바라볼 만한 위치를 기준으로 하여 조각들을 도열했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진열장에 자리를 잡은 그의 조각들은 무작위로 배치된 것이 아닌 동물의 가죽, 알, 돌, 보석, 칼, 그리고 치즈와 같은 음식 등의 특정한 계열에 따라 정리되어 있었다. 이러한 세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업은 개별 작품으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각과 공간의 관람/경험 장치를 컨트롤하는 설치 방식이 주요 매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동시에, 차슬아는 자신의 전시 시스템을 손으로 만든 사물 조각들 안에 포함시킨다. 그는 모형 복제와 재료 연구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재료 자체의 특성에 주요하게 반응하는 유희적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게임 아이템에 기원을 둔 차슬아의 사물 조각들은 시각과 촉각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아이템은 게임에서 주체를 격상시키고 일련의 서사를 죽였다 살리는 시스템의 구체적 현물이자, 실제 생활에서도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데 기능하는 장착형 도구들이다.
 
그러나 차슬아의 작업을 통해 물질로 형상화된 아이템들은 전체 서사에 조력하지 않는 감각적 사물로 치환되어 독립적인 조각으로서의 지위를 새롭게 얻게 된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차슬아는 자신의 손으로 빚어낸 사물 조각들을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만져볼 것을 권한다. 그에 따르면, 입체 작업은 공간에서의 부피감과 물성이 중요하기에 보기만 할 때보다 손끝으로 만지거나 두 손으로 들어보았을 때 경험하는 폭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 전시 전경(수원시립미술관, 2021) ©차슬아

가령, 작가는 게임 속 거대한 사물을 재현하되 가벼운 소재로 무게를 최대한으로 줄이곤 하는데, 이는 오직 관객이 직접 작품을 들어 올려야만 체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이 쉽게 들어올릴 수 있게 함으로써 캐릭터의 퍼포먼스를 이해하게끔 만든다.
 
이에 따라서, 그의 작품은 눈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져보는 촉각적 경험을 통해 작업의 의미가 작용된다.


《The Floor is Lava》 전시 전경(소쇼, 2019) ©차슬아

나아가 2019년 소쇼에서 열린 개인전 《The Floor is Lava》에서 차슬아는 게임 맵에 등장하는 가상의 화산과 용암 지대를 조각, 설치의 문법으로 전시공간에 구현하였다. 그는 전시장 바닥에 색을 달리하여 카펫을 깔아 밟을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을 구분해 관객을 게임의 세계관 속으로 이끌었다.
 
게임 속에서 내 캐릭터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듯이, 전시 또한 바닥의 색을 구별해 관객의 동선을 정함으로써 넓은 전시장에서도 작품을 보기 위해선 밟을 수 있는 곳이 한정된다.


《The Floor is Lava》 전시 전경(소쇼, 2019) ©차슬아

제작자가 게임 맵 속에 장비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플레이어가 그 장치만을 따라가도록 교묘하게 설정하듯이, 일반적인 전시 또한 입구에 ‘전시 보는 순서’가 그려진 맵을 노골적으로 비치함으로써 동선을 유도한다. 차슬아의 전시는 이러한 게임 속 맵과 전시장이라는 일상 속 맵의 유사성을 관객의 몸을 통해 직접 경험하게 하였다.


차슬아, 〈QUAD ALTAR〉, 2022, 석고, 우레탄, 아크릴, 점토, 아이소핑크, 종이, 나무, 120x120x147cm. 《각》 전시 전경(하이트컬렉션, 2022) ©차슬아

한편, 2022년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단체전 《각》에서 차슬아는 기존의 게임 아이템 시리즈를 기리는 제단(〈QUAD ALTAR〉(2022))을 제작해 선보였다. 작가는 서양의 4원소설을 바탕으로 12개의 제물을 결정하였다.
 
여기에는 원소의 힘을 봉인한 성물을 상징하는 4개의 돌, 일종의 희생제물을 나타내는 4개의 음식, 그리고 제사 도구인 4개의 사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PET》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다로그, 2022) ©차슬아

그리고 같은 해 열린 개인전 《PET》을 통해 차슬아는 게임 속 플레이어와 동행하는 ‘펫’의 기능과 진화 개념을 조각과 이어 붙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유에서 출발한 작품들은 일종의 ‘반려조각’으로서 관객을 맞이했다.
 
차슬아는 관객이 반려조각을 직접 만지고 교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반려식물의 잎사귀 또는 반려동물의 몸을 쓰다듬을 때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적·감정적 교류가 생기듯, 조각 또한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 한 켠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차슬아, 〈Double Luck〉, 2024. 《UNBOXING PROJECT 3: Maquette》 전시 전경(뉴스프링프로젝트, 2024) ©언박싱프로젝트

한편, 최근 차슬아는 기록하고 수집하는 반복적 행위가 소원 성취에 일조하는 일종의 ‘미신’에 관심을 가지고 소망과 기도를 물질로 형상화해 조각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열린 단체전 《UNBOXING PROJECT 3: Maquette》에서 차슬아는 선반 위, 책갈피, 손목, 방 한구석 등 해당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사물을 모아 행운을 기원하는 작품 〈Double Luck〉(2024)을 선보였다.


차슬아, 〈Threading Beads 珠 [zhū]- Pink〉, 2024, 2/2 UBP 에디션(가변 에디션) + AP, 목재에 채색 안료, 황동, 개량석, 28 × 28 × 10 cm. 《UNBOXING PROJECT 3.2: Maquette》 전시 전경(Various Small Fires, 2024) ©언박싱프로젝트

이어서 같은 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Various Small Fires에서 열린 《UNBOXING PROJECT 3.2: Maquette》에서는 염주의 형상을 딴 작품 〈Threading Beads 珠 [zhū] – Pink〉(2024)를 선보이기도 했다.
 
막대에 꽂아 올린 구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구슬’을 의미하는 동시에 ‘붉다’를 뜻하는 한자 朱와 동음을 가진 한자 珠를 상징적 축으로 삼는다. 옅게 바랜 붉은 구슬들의 표면에는 반복적으로 만져진 흔적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염주를 굴리며 소원을 비는 수행적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반복은 작가에게 조각 속에 스며든 절박한 욕망과 말해지지 않은 소망을 환기한다. ‘소원’이라는 개념을 구현한 이 작품은 하나의 그릇처럼 기능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바람과 더불어 인간이 공유하는 소원 성취에 대한 욕망을 되돌아보게 한다.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 3막-4막》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22) ©차슬아

이렇듯 차슬아는 가상의 세계인 게임의 환경과 그 안의 아이템 및 사물들을 전시장이라는 현실 세계로 소환해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실험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나아가 작가는 그의 작품을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촉감을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크기와 무게를 체감하도록 이끌고 이로써 현실과 가상의 괴리를 실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점차 물질성이 비물질성으로 대체되어 가는 현시대에 여전히 물질적 현존의 가치를 가지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다룸으로써 촉감을 통한 정서적 교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게 좋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믿음이 간다. 상상하던 것들을 우연히 실제로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실망스럽다. 그 간극을 좁혀가는 것이 개인적인 사명이다." (차슬아, 「선택과 맥락 형성에 관한 작품연구」,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차슬아 작가 ©IAB STUDIO

차슬아는 서울대학교 조소과 및 영상연합전공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소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PET》(스페이스 카다로그, 서울, 2022), 《The Floor is Lava》(소쇼, 서울, 2019), 《Ancient Soul++》(취미가, 서울, 2018)이 있다.
 
또한 작가는 《UNBOXING PROJECT 3.2: Maquette》(Various Small Fires,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4), 《UNBOXING PROJECT 3: Maquette》(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4), 《페리지 윈터쇼》(페리지갤러리, 서울, 2022), 《각》(하이트컬렉션, 서울, 2022),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 3막-4막》(아트선재센터, 서울, 2022), 《Latency 유선형의 시간들》(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