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b. 1989)은 사진 이미지와 이를 담고 있는 프레임, 즉 액자의 결합을 통해 조형과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그의 작업에서 액자는 사진의 보호구이자 스토리보드로서 과장된 외형을 형성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사진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사진의 내용은 액자와 연결되어 작가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대변한다.


이정근, 〈Navidance〉, 2021, 혼합 매체, 150x120x10cm ©이정근

이러한 이정근의 작업은 그의 작업실이 침수되는 사건을 겪게 된 이후 시작되었다.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한 액자가 물에 의해 파손되면서 모두 버려야 했던 경험은 그로 하여금 평면 이미지의 연약함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었다.


이정근, 〈PPI + MeandmE〉, 2022, 혼합 매체 ©이정근

이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작가는 단단한 보호 장치에 대한 강박을 느끼며 이미지를 둘러싼 외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의 사진은 평범한 나무 액자가 아닌 가시가 솟아나거나 두꺼운 강철 속에 존재하는 등 강박적으로 부풀어 비대해진 액자, 즉 단단한 금속 조형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는 곧 액자가 그 자체로서 작품의 역할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관객은 사진 이미지보다 액자의 강렬한 조형성에 먼저 시선을 뺏기기도 하고,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이미지에 몰입하게 된다.


이정근, 〈Ni-Alloy+내가그린기린그림〉, 2022, 혼합 매체 ©이정근

이미지와 액자 사이의 연결성을 만드는 방식으로 변환된 이정근 작업은 액자의 이름과 이미지의 제목을 병합한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별과 번개, 파도, 그리고 돌을 소재로 한 이미지는 액자의 이름과 합쳐져 〈Rover413+Almagest〉(2022), 〈Mig01+Thunderbolt〉(2022), 〈Ni-Alloy+내가그린기린그림〉(2022) 그리고 〈PPI + MeandmE〉(2022)와 같이 명명되었다.

이정근, 〈Mig01+Thunderbolt〉, 2022, 혼합 매체 ©이정근

또한 이정근은 온습도의 활용이나 라이트 페인팅 등의 공법을 활용하여 사진 이미지가 재현하고 있는 자연 현상과 연결시킨다. 예를 들어, 번개를 소재로 한 작품 〈Mig01+Thunderbolt〉의 프레임은 번개 사진에 어울리는 방식에 따라 상하로 비행하며 움직인다. 거대한 입방체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이 프레임의 제작 방식 또한 과거의 비행기의 표면, 그리고 조립 방식과 유사하다.


이정근, 〈Mig01+Thunderbolt〉(세부 이미지), 2022, 혼합 매체 ©이정근

이러한 키네틱 액자는 작품의 서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역할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정근은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움직임을 ‘맥거핀(MacGuffin)’ 트릭으로 설명한다.
 
극의 본질적인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 관객의 주위를 끄는 트릭인 맥거핀처럼, 이정근의 작업에서 이러한 장치는 사진 작품의 이야기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작품 감상 동기를 유발하고 관객의 흥미를 일으키는 속임수(미끼)로 작동한다.


이정근, 〈Rover413+Almagest〉, 2022, 혼합 매체 ©이정근

작가는 이러한 미끼를 통해 ‘실체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가 작품에서 다루는 번개, 별, 돌, 물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시는 똑같이 반복될 수도, 복제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대상들이다. 작가는 실제로 만날 수 없을 고전압 전기 발생으로 나온 번개, 원본에서 끊임없이 복제되는 수석, 춤을 추며 찍은 물결처럼 ‘없는 것이 생기길 바라는’ 생각들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SUPERNATURAL》 전시 전경(OCI미술관, 2023) ©OCI미술관

2023년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SUPERNATURAL》은 이러한 ‘갑옷’이자 ‘미끼’로서 작동하는 이정근의 액자-조각을 집중적으로 조망하였다.
 
강철로 만들어진 구 형태에 날카로운 철제 원뿔이 가시처럼 돋아 있는 등 작품의 화려한 외형은 자연스레 시선을 홀린다. 작가는 실제보다 과장된 상태에 오히려 쉽게 끌리는 반응을 일컫는 ‘초정상자극(Supernormal Stimulus)’ 이론을 알맹이보다 돋보이는 껍데기, 사진보다 과장된 액자로 풀어낸다.
 
사진은 모두 연출된 자연 현상을 촬영한 것이다. 인공 눈과 인공 비, 스모그 머신으로 피워낸 구름 등의 모조 자연은 실제로 위장된 상황과 함께 휘황찬란한 갑옷을 두른다.


이정근, 〈Temptation trap〉, 2023, 혼합 매체, 145x160x320cm ©OCI미술관

시각예술의 전통에서 액자는 작품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 장식성과 이동의 편의를 가져와 주었다. 하지만, 액자의 이동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원래 작품이 위치해 있던 장소의 벽, 건축 등 별개로 생각할 수 없었던 공간의 맥락, 서사에서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정근은 장소적 맥락 보다는 자립하는 액자의 기능미와 장식적 특징, 외부와 내부의 모호한 관계성에 집중한다.


이정근, 〈비오는 날의 청소〉, 2023, 혼합 매체, 150x120x10cm ©OCI미술관

예를 들어, 사각의 철제 액자 안에 세로축의 가느다란 선들로 운동성을 시각화해 비 내리는 장면을 연출한 작품 〈비오는 날의 청소〉(2023)는 평면 이미지가 수직의 스트로크를 통해 질감을 드러낸 것에 비해, 이를 둘러싼 철제 액자는 그라인더가 회전하며 만들어 낸 나선형의 생채기가 새겨져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이정근, 〈Water world〉, 2023, 혼합 매체, 146x177x145cm ©이정근

이외에도 3개의 조각이 서로 기대어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연출해 촬영하고, 이 이미지를 4개의 철제 다리가 있는 액자에 담아 벽이나 바닥에 기댈 수 있게 하거나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에 손가락으로 그린 낙서를 촬영한 이미지가 수족관 형태의 액자 안에 있는 등 다양한 액자에 촬영한 대상과 상황이 모호하게 연출된 사진이 담겨 관계를 형성함과 동시에 서로 의미를 밀어낸다.
 
아이러니하게 기능을 초과한 물성과 형태로 인해 작업은 존재감을 획득한 반면, 액자에 담긴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는 자극에 감각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방공호에서 눈 떠보니 아가미를 갖게 되었다》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4) ©성곡미술관

나아가, 2024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방공호에서 눈 떠보니 아가미를 갖게 되었다》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마치 동물의 몸을 흉내 내며 그 질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촉각적인 사진을 시도하고 있었다.
 
작업실 홍수 사건을 계기로 이정근의 작업이 취해온 조형 전략이자 생존 전략은 이 전시에서 ‘의태’로 나아가며, 사진과 액자가 주와 부의 관계를 잃고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특정 생명체를 흉내 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방공호에서 눈 떠보니 아가미를 갖게 되었다》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4) ©성곡미술관

이 전시에서 몸을 드러낸 이정근의 작업은 동물의 특징을 본뜬 알루미늄 액자로 이루어졌다. 이때 액자는 사진을 보호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사진이 다른 개체로 변하도록 한다. 가령, 뒷면을 칼로 그어낸 캔버스를 촬영한 사진은 지느러미가 달린 액자와 합쳐져 상어의 아가미로 인식된다.
 
한편, 장노출로 빛의 곡선을 담아낸 사진은 알루미늄 날개와 겹쳐지면서 반딧불이의 불빛처럼 느껴지고, 일렁이는 연기와 그 너머의 빛이 포착된 사진은 긴 꼬리를 달아 마치 악어의 시점으로 본 물 속 풍경처럼 보인다.


이정근, 〈Drip Drop〉, 2024, 혼합 매체, 50x36x7cm ©이정근

벽면에 설치된 작업은 인간의 몸을 의태하면서 질감을 강조해 촉각을 불러일으킨다. 붉은 물감을 손끝으로 긁어낸 면을 촬영한 사진은 액자의 손가락으로 감싸져 악력과 움직임의 표현이 더욱 강화된다. 굴곡진 검은 면을 담은 사진은 갈비뼈 형태의 액자가 덧씌워지면서 근육의 흐름처럼 표현된다.
 
이러한 사진들은 의태를 거치며 질감이 강하게 드러나고, 육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때 사진이 육체들은 특정 부분이 극대화되면서 그 감각과 외형이 과장된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방식은 강한 자극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한 그의 전작과도 연결된다.


이정근, 〈Fore primitive〉, 2024, 혼합 매체, 40x120x90cm ©이정근

이렇듯 몸을 잔뜩 부풀린 이정근의 작업은 종이를 지지체로 하는 연약한 매체를 다루는 청년 작가의 생존 전략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진화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이러한 이정근의 액자는 ‘보호’라는 기능을 넘어 그 안의 이미지와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사진의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조형과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제 작품의 흐름을 돌아보면 꼭 생물이 진화하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화려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화려한 꼬리 장식이나 무늬가 생존사에서 우위를 갖는 것처럼, 겉모습의 화려함으로 이목을 끄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죠." (이정근, 성남문화재단 인터뷰 중)


이정근 작가 ©이정근

이정근은 서울예술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사진학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방공호에서 눈 떠보니 아가미를 갖게 되었다》(성곡미술관, 서울, 2024), 《SUPERNATURAL》(OCI미술관, 서울, 2023), 《Water filled plastic glove》(Dohjidai Gallery, 교토, 일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WWNN, 서울, 2024), 《미술관에서 만난 이상한 과학자》(성남아트센터, 성남, 2023), 《디버깅》(미러드스피어 갤러리, 서울, 2022), 《XxX(Two times)》(룬트갤러리, 서울, 2021), 《Shanghai Photo Fair 2019》(Shanghai Exhibition Centre, 상하이, 중국,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정근은 성곡미술관이 주최하는 ‘SAM 2024 오픈콜’, OCI미술관의 ‘2023 OCI YOUNG CREATIVES’, 테이트 모던의 ‘2018 Offprint London’ 등에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