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SIMA FARM》 © Suwon Museum of Art

김아라는 2015년 건축적 구조의 목형에 채색을 더한 입체 회화 작업 〈집합 #1〉을 남상점 삼아, 새로운 양태의 포스트-형식주의 회화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경기대 환경조각학과에서 학사 과정과 석사 과정을 마친 작가는, 조각적 구조를 바라보는 눈을 통해 회화를 실험한다는 면에서, 또한 단청이 입혀진 전통 건축의 구조를 조각으로 이해하고 그를 실험적 추상 회화 작업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미 전례 없는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다.
 
(김아라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도예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다소 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어쩌다보니 도예과 대신 조소과에 입학하게 됐다고 한다. 2016년의 석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현대조각의 재료 선택에 관한 연구”였는데, 예의 개인 작업 논문이 아니었다. 조각 예술에서의 재료 사용의 변천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다시 재료에 따라 영역별로 나누어 분류-고찰-기술한 뒤, 그를 바탕으로 근미래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즉 매체 변환으로 고찰한 조각사 논문이었다.)
 
심란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경복궁을 방문하곤 했다는 김아라는, 관광객들 틈에서 고궁의 건축물들을 보며 심리적 안정을 느끼는 자신 또한 일종의 관광객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도심의 복잡한 현실로부터 피신하는 심리적 관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 건물의 외피, 무수히 많은 아파트의 외관을 단청 문양으로 뒤덮어버리는 판타지를 발달시키게 됐고, 도심 속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것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모습에 화답하는 작업을 전개하게 됐다.
 
2015년 시작한 ‘집합’ 연작에서 작가는, 단청의 문양을 취사선택하고, 전유한 개체를 반복하고 패턴화해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조형적 균제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첫 번째 작업만 목형 작업이었고, 이후 한동안 캔버스로만 작업했다.) ‘집합’ 연작에서 이어지는 ‘흔들흔들’, ‘균형’, ‘스퀘어 패턴’ 연작은, 집합 구조를 해체 재구성하는 걸음마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2018년의 ‘흔들흔들’, ‘균형’ 연작까지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했지만, 2019년의 ‘스퀘어 패턴’ 연작에서부터는 아크릴 물감과 단청 안료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퀘어 패턴’ 연작에서 파생된 2019년의 ‘공존하는 이미지’ 연작은, 작가의 눈과 손을 통해 재창조된 단청 문양이 건축적 시공을 뒤덮어나가는 모습을 구현한다. 일종의 청사진이자 프로토타입이었던 셈.
 
2019년 수원시립미술관의 작가 지원 프로그램 ‘SIMA FARM’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되돌아본 작가는, 회화의 지지체가 되는 스트레처(캔버스의 틀) 자체를 건축적 구조로 사고하며, 조각적으로 재구성한 스트레처 구조와 단청 회화를 결합하는, 일종의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을 전개하게 됐다. 형식주의 미술의 역사에서 변형 캔버스 작업은 그림에 맞춘 지지체를 특징으로 한다(순수 평면, 즉 창문으로 인식되는 화면에 환영을 그려 넣는다는 구식 관념을 거부하는 것이 핵심). 하지만 한국의 전후 모더니즘의 역사에선, 이러한 반환영주의적 강박과 지지체의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고, ‘셰이프드 캔버스’ 작업으로 성취를 거둔 거장은 나타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아라는, 캔버스의 짜맞춤 구조와 고건축의 짜맞춤 구조를 중첩해 사고함으로써, 자신의 기존 작업들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해내는 동시에, 재창안해낸 전통을 바탕으로 과거지사가 됐던 형식주의 회화의 실험까지 유의미한 양태로 부활시키는, 널찍한 길을 열었다. 2019년 11월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처음 선뵌 이 득의작의 제목은, 〈무제 커넥션(Untitled Connection)〉. 단청을 두른 캔버스의 뼈대처럼 뵈기도 하고, 건축적 질서가 되고자 하는 회화의 물화 버전으로 뵈기도 하는데, 목구조의 한쪽 머리에만 낙산사의 단청에서 인용했을 것처럼 뵈는 전통적 패턴을 구현해 놨다. (이 부분에 주목하면, 마치 공간을 가로지르는 스네이크 바이츠(Snake Bites) 게임의 스크린 샷처럼 뵈기도 한다.)
 
단청의 기본 문법인 점층, 반복, 대칭을 의태하고 변주하는 과정을 통해, 2020년대 수원/한국/아시아/세계의 시공에서 다각적으로 설득력을 띠는 한국식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장을 개척해낸 셈이니, 반자동적으로 도출되는 변주와 확장의 과제는 무궁무진할 게다. (한국식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차원에서 이탈해, 건축적 색면추상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을 터.)
 
당분간은 색긋기를 바탕으로 한 긋기단청으로 작업을 이어나가야 할 것 같지만, 언젠가 작업량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모로단청, 얼금단청, 금단청의 문법을 해체-재구성 혹은 매시업하는 실험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비고: 2016년작 〈집합 #7〉은 예외다.) 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태국 등의 단청을 고찰하며 지역 특정적 색채와 문양을 전유하는 작업들도 기대해본다.
 
산책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이미지도 채집한다는 작가는, 수원성을 품은 수원시에서 나고 자랐다.

References